성동일은 인터뷰를 잘 하지 않는 배우 가운데 한 사람이다. “내가 이십대도 아니고 한류 스타도 아닌데 이제 와서 피부 좋게 보인다고 연기력이 막 느는 것도 아니라” 자주 씻지도 않거니와 스킨, 로션조차 거의 바르지 않고 지낸다는 그의 말에 딱히 반박할 거리가 없는 것처럼, 성동일은 모든 것을 떠나 ‘연기’ 만으로 자신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배우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SBS 의 양동팔, 영화 의 방 코치, KBS 의 천지호까지 매 작품마다 잊지 못할 연기를 보여주었던 그를 꼭 한 번 만나고 싶었다. 그리고 의 개봉을 앞두고 만난 성동일은 매 순간 질문보다 몇 배 흥미로운 답변들을 내놓았다. 대사 두 마디짜리 조연이었던 ‘빨간 양말’을 최고의 ‘신 스틸러(scene stealer)’로 키워낸 배우의 말이 갖는 힘은 과연 남달랐다.

의 예고편을 보니 천지호와는 또 전혀 다른 캐릭터다. 어설픈 개 도둑 형제 중 형인데 ‘성동일 표 코믹 연기’이면서도 그 전과 미묘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성동일 : 를 보다 먼저 찍었는데 의 조 페시를 모델로 삼아 목소리를 가늘게 뽑아서 가성을 써 봤다. 관객들은 나의 코믹함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으니까 약간 거부감을 줄 만한 장치를 하나 심어보려고 한 거다. 원래 내 목소리는 굵은 편인데 이렇게 생긴 사람이 그런 목소리를 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고.

“솔직히 나는 목숨 걸고 연기하는 배우는 아니다”
성동일│“코믹한 게 제일 진지한 거다” -1
성동일│“코믹한 게 제일 진지한 거다” -1


에서는 어미 개 ‘마음이’역의 ‘달이’가 주연배우 중 하나인데 동물과 동료가 되어 작업하며 힘든 점은 없었나.
성동일 : 나와 (김)정태가 개 도둑이 되는 바람에 멧돼지한테 쫓기거나 마음이를 쫓아가는 신이 많았는데 감독님이 우리에게 마음이 수준의 속도를 요구하셨다. 그런데 네발로 뛰는 거랑 두 발로 뛰는 거랑 어떻게 같겠나. 산은 보라고 있는 거지 뛰라고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하루 죙일 산만 뛰어다닌 기억이 있다. 하루 죙~일! (웃음)

그래서 그런지 살이 좀 빠진 것 같다.
성동일 : 사실 내 나이 또래가 되면 어느 순간부터 살빼기가 힘들다. 원체 사람 좋아하고 술 좋아하다 보니까 75kg까지 나갔는데, 더 이상 쪘다가는 화면에 나올 때 게을러 보일 것 같았다. 역할에도 한계가 있을 것 같고. 그래서 흔한 말로 ‘해 먹으려고’ 살을 좀 뺐다. 그동안 우리 집 밥그릇이 보통인 줄 알았는데 엄청 크더라. 사람 만나 어울리고 술 먹는 건 똑같은데 밥 양만 좀 줄였다.

영화 와 에 이어 까지 지난 2,3년 사이 출연한 작품들이 흥행은 물론 연기 면에서의 평가도 좋다. 말 그대로 상승세인데.
성동일 : 운이 좋았다. 10년 전, 20년 전에도 연기를 안 했던 게 아닌데 좋은 감독들이 내가 갖고 있던 걸 잘 포장해주셔서 지금 성동일이가 조금 먹고살 만 해진 거지. 솔직히 나는 목숨을 걸고, 엄청나게 깊게 고민하면서 연기하는 배우는 아니다. 전체를 다 공부하지도 않는다. 때도 시놉시스에 천지호는 죽는다고 써 있는 걸 보고 그러면 제일 중요한 건 내가 어떻게 천지호답게 죽느냐 라고 생각했다. 그 과정에서는 마음껏 놀면 되는 거고.

지금 돌이켜 봐도 마음껏 놀았던 것 같은가.
성동일 : 사실 처음 섭외가 왔을 땐 안 하려다가 ‘철저한 악역 한번 줘봐라. 그럼 하겠다’고 했더니 정말 비열할 정도의 악역을 만들어주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2회치를 찍고 났더니 감독님이 좀 코믹한 톤으로 해 달라고 주문하시는 거다. 젊은 주인공들이 다 멋있게 가라앉는 톤으로 연기하니까 분위기 띄워 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던 거지. 그래서 “아니 이미 내 목소리로 찍었는데 갑자기 어떻게 하냐. 아유, 난 못 하겠다”고 하다가 결국 설득 당했다. 그래서 3회부터는 목소리 톤이 달라진다. 3, 40% 정도 의 혁필이와 비슷하게 높여 썼다. 캐릭터가 바뀌는 것 때문에 중간에 ‘꼬장’도 좀 피고 그랬는데, 지금도 작가 선생님하고 감독님께 죄송하다. 이번에 KBS 에서 또 만나는데 이번에는 최선을 다해서 ‘개기지’ 않으려고 노력해야지. (웃음)

하지만 결과적으로 천지호는 코믹하기 때문에 더 무게감을 갖는 인물이 되었던 것 같다.
성동일 : 내가 살아보니까 코믹한 게 제일 진지한 거다. 눈 부릅뜨고 목소리 낮춰 얘기하는 게 진지한 게 아니다. 웃는 얼굴이라고 아무 일 없는 게 아니고. 예를 들어 보통 사기꾼 역할을 맡으면 눈부터 사기꾼처럼 뜨려고 하지만 진짜 사기꾼은 정말 친절하고 약속 잘 지키고 남을 배려하는 사람 중에 있기도 하다. 내가 도둑이라면 안 잡히려고 교통 법규 위반도 안 하고 무단 횡단도 안 할 거다. 그 아이러니 한 게 본질이고 연기의 다양성이다. 그래서 배우마다 다 다르겠지만 나는 연기에 진지함과 웃음, 눈물을 다 넣고 싶다.

“애드리브는 0.05초 사이에 승부가 난다”
성동일│“코믹한 게 제일 진지한 거다” -1
성동일│“코믹한 게 제일 진지한 거다” -1
과거 SBS 에서의 ‘빨간 양말’이나 영화 등에서의 사투리 연기가 워낙 인상적이어서 전라도가 고향일 거라고 짐작하는 이들이 많다. 사실은 인천 출신으로 알고 있는데 사투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노하우가 있다면.
성동일 : 사투리 쓰는 역할을 맡으면 일단 그 지방에 간다. 5일장 열리는 날 네 시에서 다섯 시 사이에 선술집 가면 적당히 취한 노인 분들이 많다. 그쪽으로 카메라 돌려놓고 밥 먹고 술 먹으면서 테이프 분량 두어 개 찍어오면 그 안에 별별 이야기가 다 들어 있다. 작가들의 대본은 말을 글로 쓴 문어체인데 배우는 글을 말로 풀어야 하니까 분명히 느낌이 다르다. 흔히 충청도 사투리를 “그랬시유 저랬시유” 하는데, 때려 죽여도 대한민국에 그렇게 쓰는 말은 없다. 오히려 충청도 말은 상당히 빠르다. “그류? 언제 그류?” “내가 언제 그랬슈? 말 겉지도 않은 소리! 됐슈!”하는 식으로. 전라도도 그렇다. 드라마나 영화에선 욕 위주로, 상스럽게 나올 때가 많지만 전라도 말은 대한민국 언어 중 제일 따뜻한 말이다. “어디 가? 밥 먹었어?”하고 끊는 게 아니라 “워디강가? 왔는가? 밥 먹었소?”하면서 툭툭 던져 준다. “밥이나 처먹고 댕긴가 몰겄네” 같은 건 얼마나 정감 있나. 이런 언어 트루기를 알면 어떤 배우나 사투리는 다 어느 정도 할 수 있다. 몸 관리나 미용도 중요하지만 어떤 배역에 맞는 언어를 배워서 구사하는 것도 그 이상으로 중요한 일이다.

사투리 뿐 아니라 애드리브에도 남다른 ‘감’이 있는 것 같다. 에서 택배로 받은 사과 상자를 두고 부인과 싸우는 신은 대사의 호흡과 표정까지 가히 한국 코미디 영화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로 꼽을 만한데, 상당 부분이 애드리브라고 들었다.
성동일 : 아내 역을 한 배우가 정말 연기를 잘 하는 분인데 리허설 때 좀 약한 것 같아서 “최대한 세게 해라. 여기서 나는 남들 앞에서나 검사지 당신 앞에서는 그냥 남편이다. 욕을 해도 된다”고 했더니 정말 최대한의 성량으로 시원스레 질러 줘서 같이 놀기에 편했던 신이다. 사실 그 사과 상자에 뇌물로 보낸 돈이 들었다면 내가 와이프 앞에서 더 자신감 있고 당당해질 수도 있는데 진짜 사과가 들어 있어 버리니까 오히려 내가 더 초라해지고 은근히 실망하는 게 재밌지 않나. 발로 툭 찼더니 뒤로 떼구르르 굴러가는 사과 마냥.

현장에서 애드리브를 만들어갈 때 원칙이 있다면.
성동일 : 기본적으로는 대본대로 가는 게 중요하다. 해석을 달리 하는 게 아니라 전달을 좀 더 자연스럽게, 딱딱한 모서리를 깎아 주는 게 배우가 할 일인 것 같다. 그래서 진실이 들어있지 않으면 애드리브도 안 먹힌다. 희한한 게, 애드리브는 0.05초 사이에 승부가 난다. 우리가 똑같은 이야기를 듣고 친구한테 했을 때 이 친구가 안 웃는 건 내가 타이밍 조절을 못해서다. 그렇기 때문에 한번 했던 걸 다시 가려고 해도 절대 처음처럼 안 나오고, 그래서 리허설 할 때는 일부러 애드리브를 안 하는 편이다.

타고난 입담이 워낙 좋은 것 같다. 한동안 등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활약했는데 어느 순간 다시 연기로 돌아왔다.
성동일 : 로 모았던 돈을 사기당해 날리고 나니 관리비 낼 돈도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넉 달 치를 밀렸는데 설마 성동일이가 돈이 없어 못 낼 거란 생각은 못하고 바빠서 못 내는 줄 알았다더라. 결국 가족들과 상의 끝에 쇼 프로에 나갔다. 1주일에 다섯 개 정도 하면서 빚 갚고 관리비도 내고 아파트 융자금도 갚고 나니 어느 순간 여기서 더 했다가는 연기자로서 더 이상 못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능이 안 좋은 게 아니라, 항상 정해진 시간에 왔다 갔다 하며 입담 좀 풀다 오면 통장에 돈이 들어오니까 내 본연의 일을 등한시할 것 같았다. 한 주 사이 다 접고 연기할 기회를 기다렸다. 지금도 후회될 때는 있다. 좀 더 했으면 더 좋은 집에 살 텐데. (웃음)

글. 최지은 five@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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