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드라마 스페셜> ⑥│이보희 “단막극은 내 작품 같은 애착이 생긴다”
⑥│이보희 “단막극은 내 작품 같은 애착이 생긴다”" />
80년대 트로이카 여배우로 불리던 시절 이후 주로 우아한 사모님 역할을 연기해 온 이보희는 최근 종영한 KBS 의 ‘계솔이’ 역을 통해 주책스럽고 코믹한 캐릭터로 변신했다. 그리고 계솔이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촌스러운 파마머리 아이디어를 직접 냈을 만큼 캐릭터에 세심하게 접근하는 배우답게 그는 ‘이유’ 에서도 다소 답답해 보이는 정장과 단정한 단발머리를 통해 무거운 현실에 갇힌 여교수 지수의 내면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한편, 2005년 KBS ‘시은&수하’에서 백혈병에 걸린 언니를 둔 수하를 연기하며 이름을 알렸던 박그리나는 이후 약혼자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여자, 어린 시절 길에 버려진 고아 등 외로운 캐릭터들을 연기해 왔다. 그가 2년 만에 컴백하는 작품에서 내면의 상처를 안고 있는 간병인 송이를 만나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59년생 이보희와 85년생 박그리나, 무려 25년의 경력 차를 지닌 두 여배우가 6월 26일 방송되는 KBS ‘이유’의 두 여자로 만났다. 지난 11일, 경기도 양평 촬영지에서 두 배우를 만나 이번 작품 속 캐릭터 이야기를 시작으로 첫 단막극에 대한 기억까지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오늘 촬영지인 지수의 집이 상당히 멋지다.
이보희: 그러니까. 왜 이렇게 좋은데서 하는 거야? 아무리 교수 집이라도 이렇게 좋은 줄 몰랐네. (웃음)

“송이와 지수는 모두 자신의 현실에 갇혀 있다”
KBS <드라마 스페셜> ⑥│이보희 “단막극은 내 작품 같은 애착이 생긴다”
⑥│이보희 “단막극은 내 작품 같은 애착이 생긴다”" /> KBS 의 종영과 이번 ‘이유’ 초반 촬영이 맞물렸는데, 어땠나.
이보희: 이틀 정도 촬영이 겹쳤다. ‘이유’ 야외 촬영을 마치고 마지막 촬영에 들어갔는데, 계솔이 캐릭터가 약간 낯설어질 정도였다. 계솔이는 내 연기 인생에 있어 영원히 남을 캐릭터다. 물론 그런 캐릭터가 다시 들어오면 안 할 것 같지만. (웃음) 아무튼 초반에 정신없이 촬영해서 아쉬운 부분이 있다.

언제 출연 제의를 받았나.
이보희: 사실 굉장히 촉박하게 받았다. 사실은 좀 쉬면서 계솔이의 옷도 벗고 마음을 비운 다음에 다른 옷을 입어야 되는데, 갑자기 변신을 하려니까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좀 부담이 된다.
박그리나: 지난 2년간의 공백을 깨는 첫 작품인데, 촬영 열흘 전에 제의를 받았다. 다행히 월드컵 때문에 ‘이유’ 방영이 한 주 늦춰져서 조금 여유가 생기긴 했는데, 그래도 너무 아쉽다. 지금까지 했던 연기가 겉핥기였다는 걸 느낄 정도로 송이는 내가 맡았던 캐릭터 중 가장 어려운 역할이다. 처음엔 물음표 투성이에 답도 없었다. 감독님이 송이는 지수라는 아바타를 조정하는 인물이라고 귀띔해주셨다. 그 이후로는 송이를 연기하는 게 좀 수월해지더라.

그동안 우아한 교수님이나 사모님 역할을 많이 맡아왔다. 그래서 계솔이보다 지수 역할이 더 수월하게 느껴질 것 같은데.
이보희: 계솔이가 모든 걸 다 쏟아내는 역할이라면, 지수는 모든 걸 담아내는 인물이다. 실제 내 성격을 생각해 보면 우아한 캐릭터가 더 맞을 수 있지만, 그런 캐릭터를 연기할 때는 감정을 자제하고 조심해야 되는 부분이 있으니 오히려 불편한 점이 있다. 그래서 차라리 나를 내던져 버리는 계솔이 캐릭터가 더 편했던 것 같다. 지수의 내면 감정을 표현하는 데 꽤 애를 먹고 있다. 편안한 옷보다 갇힌 느낌의 정장을 선택한 것도 조금이나마 지수의 내면을 겉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다.

그에 비해 송이는 의상도 캐주얼하고 성격도 자유분방해 보인다.
박그리나: 송이 역시 지수처럼 자신의 현실에 갇혀 있다. 하지만 송이는 스스로 그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지수보다 좀 더 자유분방하게 보일 수 있다. 지수는 스스로 현실을 탈출할 힘이 없기 때문에 송이가 그녀의 마음을 열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고.

차갑게 닫혀 있기만 하던 지수가 송이에게 운전을 배우면서 비로소 마음을 연다. 극 중에서 운전은 두 사람 사이의 중요한 매개가 되는 것 같다.
이보희: 송이가 운전을 가르쳐주고, 또 내가 그걸 거부하지 않는다는 건 두 사람 모두 마음이 열렸다는 증거다. 그것 말고도 송이가 만들어 준 샌드위치를 만날 버리다가 나중에는 냉장고에 그냥 두는 장면이 있는데, 이런 부분에서도 지수의 심경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이보희 선생님은 생각하는 것까지 정말 우아하다”
KBS <드라마 스페셜> ⑥│이보희 “단막극은 내 작품 같은 애착이 생긴다”
⑥│이보희 “단막극은 내 작품 같은 애착이 생긴다”" /> 각자 자신이 출연했던 첫 단막극에 대한 기억은 어떤가.
이보희: 첫 단막극은 2003년 ‘시집가기 전날 밤’이었고, 이번이 두 번째 작품이다. 연속극을 촬영하면 그냥 흘러간다는 느낌인데, 단막극의 경우엔 내 작품으로 남는다는 애착이 생긴다. 내 연기를 다지면서 공부하는 마음으로, 좀 더 깊이 있게 촬영하는 것 같다.
박그리나: 2005년 ‘시은&수하’에서 백혈병 언니(시은)를 둔 고등학생 동생(수하)을 연기했다. 갓 스무 살 넘긴 나이에 고등학생 시절로 돌아가려니 너무 신났는데, 극 중 언니가 머리를 삭발하는 장면에서 꽤 충격을 받았다. 순수함에 상처를 많이 받았는데, 그 충격 덕분인지 10대들의 아픔이 잘 표현된 것 같다. 그때만 해도 단막극이 많았는데, 요즘은 너무 아쉽다.

KBS 이후 두 번째로 호흡을 맞추고 있다. 서로에 대한 인상은 어떤가.
이보희: 그리나가 너무 착해서 내가 굳이 조언을 안 해줘도 알아서 잘하는 것 같다.
박그리나: 아니다, 굉장히 말씀을 많이 해주신다. 선생님이 ‘내가 이렇게 할 거야’라고 말씀해주시면 나는 거기에 맞춰 가면 되니까 굉장히 편하다. 그리고 이보희 선생님은 내가 본 선배들 중 가장 우아한 배우이신 것 같다. 배려심도 강하시고. 얼마 전, 차 안에서 찍는 장면에 있었는데 내가 너무 더워서 아무 생각 없이 에어컨을 켰더니 선생님이 다시 끄시더라. 이유를 여쭤보니까 우리는 시원하겠지만 차에 딱 붙어 있는 스태프들은 차에서 나오는 열기 때문에 더 덥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시더라.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생각하시는 것까지 정말 우아하시다.

다음 작품에서는 어떤 역할에 도전해보고 싶은가.
박그리나: 지금까지 고른 작품들을 보면 음침하고 어두운 게 많았던 것 같다. 영화 의 희영이도 그렇고 이번 송이도 그렇고. 안쓰러운 캐릭터들을 보면 안아주고 싶었나 보다. 다음에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사극이나 악역에 한 번 도전해보고 싶다. SBS 의 후궁 경빈처럼 독한 역할이나 MBC 의 미실 같은 캐릭터. 생긴 건 그렇게 안 생겼다는데 완전 무서운 역할에 끌린다. (웃음)

글. 이가온 thirteen@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장경진 three@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