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혁권│옆집 아저씨의 정체
박혁권│옆집 아저씨의 정체
도드라지지 않는 풍경 같은 사람이 있다. MBC 에서 장준혁 교수 바로 밑에서 시니컬한 오더를 묵묵히 받아내는 홍상일 부교수, MBC 에서 은은한 카리스마를 뽐내던 국정원 요원 기호. 사진 촬영용 의상을 넣은 배낭 하나를 달랑 메고,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으로 를 찾은 박혁권은 TV 속 어느 한 귀퉁이에 자리 잡고 있던 바로 그 모습이었다. “제 얼굴이 평범해서 그런지 이런 배역들이 많이 들어온다”며 자신을 소개하는 박혁권은 정직하게 생긴 자신의 얼굴을 아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궤적을 하나씩 짚어 나가보면, 자신의 이미지를 다각화시키기 위해 무던히 노력해온 배우라는 걸 알게 된다.

언제나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처럼
박혁권│옆집 아저씨의 정체
박혁권│옆집 아저씨의 정체
“혁권 더 그레이트!” 윤성호 감독의 영화 속 혁권은 팔을 ‘L’자로 만들어 어린이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 보이는 어린이 TV 프로그램 의 히어로다. 그는 실어증에 걸린 주인공 영재의 입이 되어 능청스럽게 복화술을 선보이고, 능글능글한 웃음으로 여자들에게 접근한다. 최근 윤성호 감독의 신작 에서도 그는 배우 박혁권으로 등장한다. 감독과 대면하는 첫 오디션 장면에서 이미지 변신을 하겠답시고 스모키 화장을 하고 오는가 하면, 난데없이 자신의 젖꼭지가 아파 고생했던 경험담을 털어놓는 민폐형 인간이다. “왜 옛날 이야기하면서 자리 이상하게 만드는 사람들 있잖아요. 혁권도 그런 인물이죠. 주변 사람 어색하게 만들고. 그런데 걔 입장에서는 그 얘기가 가장 중요해요. 그런 진실성을 드러나게 표현하려고 했죠.” 사람을 늘 관찰하고 이를 연기에 재료로 쓰는 그에게 세상에서 현실적이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박혁권이 구현하려는 연기는 현실에 땅을 디디고 있는 모든 사람인 동시에 바로 우리 주변의 이야기다. 인물과 풍경이 빚어내는 부조리의 지점에서 ‘빵’하고 터지는 웃음, 박혁권은 바로 그 부분을 자신의 얼굴에 담아내고 있었다.

“연기자로서 이제 스타트 선상에 들어섰다”
박혁권│옆집 아저씨의 정체
박혁권│옆집 아저씨의 정체
박혁권│옆집 아저씨의 정체
박혁권│옆집 아저씨의 정체
이런 느낌을 얻기 위해 그가 견지했던 인생관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묻고, 자신이 뱉어 낸 답을 통해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건 그가 터득한 인생의 노하우이자, 연기를 대하는 자세이기도 했다. 비록 그런 고집 때문에 남들보다 더디 가는 인생을 살아가게 만들더라도, 자신에게 거짓말 하지 않고 한 걸음씩 발걸음을 옮겨 왔다. 1993년 연극 무대로 첫 발을 내딛고, 뮤지컬에서 성공을 거뒀어도 미련 없이 무대를 떠났던 건 성공 자체가 주는 감흥 보다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알아야 한다”는 마음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뮤지컬은 아직도 어색해요. 자질이 없었던 거 같고…. 서양 음악을 한국말로 노래한다는 것이 저는 못내 거슬리더라고요. 영어로 판소리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거든요.” 그가 본격적으로 영화로 넘어오게 된 시기도 이 무렵이었다. “정 떼기 위해” 마음먹고 대학로를 떠난 그가 초짜였던 윤성호 감독의 데뷔작인 단편영화 에 출연한 건, “지금까지 본 영화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재밌는 영화”였기 때문이었다. 고작 두 장면 밖에 나오지 않는 단역이었지만 자신을 배우로서 숨 쉬게 하는 시나리오, 그걸로 충분했다.

인터뷰가 무르익을 무렵, 박혁권은 “모든 연기는 가짜”라는 연기의 정의를 내놓았다. 이유인즉, “어차피 진짜가 아니기 때문에, 진짜 보다 더 진짜 같아야 가치가 있는 게 연기”라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진짜를 찾기 위해 여러 갈래 길을 돌아가는 수고스러움을 마다하지 않았던 그임을 알기에 “연기자로서 이제 스타트 선상에 들어섰다”며 현재의 자신을 다잡는 말도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그건 ‘이제부터 뛰겠다’는 확고한 다짐의 말과도 같아서다. 이제 박혁권의 유쾌한 질주를 감상할 차례다.

글. 원성윤 twelve@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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