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진이 스튜디오에서 쓰는 컴퓨터 모니터에는 바이크를 타는 그의 사진이 깔려 있었다. 인터뷰 전에도 잠시 바이크를 탔다는 그는 자신의 취미 생활에 어울리는 검게 그을린 피부와 탄탄한 몸을 갖고 있었다. SM 또는 아이돌 음악에 대한 모든 이야기들을 뒤로 하고, 직접 만난 유영진은 그렇게 건강하고 활기찬 모습의 남자였다. 그건 그가 지난 15년 이상 SM의 댄스 음악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였을 것이다. 스튜디오보다는 할리데이비슨 위가 더 어울릴 것 같은 그는 지금도 여전히 그의 말처럼 ‘거대한’ 댄스 음악을 만들고 싶어 하고, “댄스 음악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질리지 않고 음악을 만들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어쩌면 우리는 상업적인 결과만을 보고 그가 음악을 만드는 태도까지 오해했던 건 아닐까. 유영진의 음악이 왜 그렇게 만들어지는가를 이해하고 싶다면, 이어지는 인터뷰를 확인해보길 바란다.


사회 비판적인 가사들도 썼다. 상업적인 아이돌 음악에서 그런 가사를 쓰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도 있다.
유영진
: 감각적인 단어를 쓰는 사랑 노래는 많다. 그래서 조금 다르게 가고 싶다는 게 처음의 생각이었다. 동방신기나 H.O.T.가 이런 노래를 했을 때 처음에는 애들의 노래와 춤을 즐기겠지만 몇 번씩 반복해서 감상하다보면 가사가 귀에 들어오고, 누군가는 가사의 내용에 관심을 가질 거라고도 생각했다. ‘O-正.反.合.’은 이수만 선생님이 사회의 변화를 이야기할 때 오정반합을 얘기하는데 그걸 네가 꼭 한 번 다뤄봤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써본 것이기도 했고. 동방신기의 무대를 보고 즐기다가 관심 없던 사회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인터넷에서 검색이라도 해볼 수 있으면 조금이라도 다른 방향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노래로 사회를 바꾸겠다는 그런 목적은 아니고, 가사를 통해 뭔가 얘기해보고 싶었다. 물론 그런 가사에 대해 호불호가 갈린다는 것도 알고 있다.

“동방신기는 모든 게 완벽하게 맞물렸던 팀”



음악과 무대, 그리고 가사까지 당신은 곡의 모든 부분에서 자극을 주려는 것 같다.
유영진
: 맞다. 문화는 충격이니까. 마이클잭슨이 ‘빌리진’을 부르고 문워킹을 했을 때 전 세계의 흐름이 바뀌지 않았나. 언젠가는 그런 순간을 만들고 싶다.

하지만 그런 충격은 대중성이나 아이돌 그룹이라는 특유의 위치를 생각해서 조절해야할 것 같다. 가수들에게 곡을 줄 때는 어떤 것들을 고려하나.
유영진
: 팀마다 다 다르다. 슈퍼주니어는 그렇게 너무 한 쪽으로 편향되기 보다는 퍼포먼스에 적절하게 위트도 섞으면서 대중적인 느낌을 가져가는 게 좋은 팀 같다. 그래서 적절하게 재미와 대중성을 고루 갖추고 싶었는데, 그러다 생각한 게 ’Sorry Sorry‘였다. f(x)는 이제 1년째인 그룹인데, ‘Nu ABO’를 처음 듣고 굉장히 충격적이고 앞서가는 노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중적인 흥행도 중요하지만, 이런 새로운 것들을 과감하게, 엉뚱하게 시도하면 사람들에게 충격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회사에서도 그런 생각이었고.

H.O.T.와 동방신기, 샤이니 같은 남성 5인조 그룹들은 어떤가.
유영진
: H.O.T는 그 때 굉장히 어린 친구들이었는데, 그들의 통상적인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인생경험은 적은데 에너지는 꽉 차있고, 하고 싶은 건 많은데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으니까 불만은 많고. 그래서 공격적인 태도를 가진 상태를 표현하고 싶었다. 그리고 무대에서는 H.O.T.가 어느 순간 거대해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돌이 잠실 주경기장에서 공연한 게 H.O.T.가 처음이었는데, 그런 걸 할 때 애들이 거대해 보였으면 했다. ‘아이야’는 넓은 사막에서 <매트릭스>의 인물처럼 검은 트렌치코트를 입은 사람이 혼자 걸어가는 이미지가 생각나서, 처음부터 아예 큰 무대에 있는 걸 생각하고 썼다.

거대한 무대나 강한 퍼포먼스라는 점에서 H.O.T.와 동방신기는 비슷한 부분이 있을 것 같다.
유영진
: 동방신기는 춤 노래 모두 내가 따로 뭘 할 필요 없이 너무 잘하니까 여러 가지를 다 시켜보고 싶었다. 특히 H.O.T.처럼 거대한 무대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게 완성된 게 ‘라이징 선’이었는데, 그 노래는 내 마음 속의 바람을 이뤄줬던 곡이었다. 십년 넘게 댄스곡을 만들면서 안무, 보컬, 춤추는 능력과 구도까지 모든 게 완벽하게 맞물렸던 게 그 때가 처음이었다. 그러다보니 이 친구들이 이런 것도 할 수 있을까 싶어서 준 곡이 ‘Tonight’이라는 곡이었는데, 음역대를 굉장히 넓게 쓰는 곡이었다. 그런데 애들이 정말 하더라고. (웃음) 그래서 나도 신이 나서 즉흥적으로 애드립을 만들어서 시켰는데 다 하더라. 그래서 얘들은 내가 해보고 싶은 게 있으면 다 해보면 되겠구나 (웃음) 싶어서 멤버 개개인의 능력을 극대화 시킬 수 있는 곡을 구상했었다. 그리고 샤이니는 너무 어렵거나 공격적인 걸 하기 보다는 좀 더 쉬운 부분을 가미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고, 내가 원래 솔로 앨범 시절부터 한정된 코드 안에 멜로디를 쓰는 작업을 공부했는데, 이게 요즘 트렌드도 맞아 떨어지는 게 있어서 그런 요소를 가미했었다.

“점점 더 독특한 아이디어와 복잡한 구성이 필요하다”



“동방신기는 멤버들의 능력을 극대화 시킬 수 있도록, 슈주는 좀 더 대중적으로 프로듀싱했다”
시대에 따라 만들어내는 곡의 스타일이 계속 변한다. 요즘 댄스음악의 트렌드는 어떻게 변한다고 느끼나.
유영진
: 처음 곡을 만들 때부터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건, 음악이 점점 더 크로스오버된다는 점이다. 어떤 장르든 계속 새롭게 장르를 파생하고 있고, 점점 더 독특한 아이디어와 복잡한 구성이 필요해지는 것 같다. 그 점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시도하는 걸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 것 같다. 블랙아이드피스의 ‘Boom Boom Pow’ 같은 곡은 미니멀리즘에 가까울 만큼 심플한 구성을 가져서 정말 실험적이라고 느꼈는데, 미국 사람들은 그걸 엄청난 히트곡으로 만들어줬다. 그런 노래를 만들고 받아들여주는 광경이 부럽기도 했다.

그 점에서 요즘 당신도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것 같다. ‘미인아’는 ‘Sorry Sorry`와 만드는 방식은 비슷하지만 의도적으로 한국적인 멜로디라인 구성을 넣으려고 했던 것 같다.
유영진
: 맞다. 일단 ‘Sorry Sorry’와 너무 다른 걸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Sorry Sorry’를 가수들부터 너무 좋아했고, 어울리기도 했으니까. 그래서 그걸 꼭 비켜 가겠다고 생각하는 대신 그 연장선상에서 만들었다. 아내가 대학시절 국악을 좀 했는데, 그래서 아내에게 사물놀이 장단을 추천해달라고 하다가 사물놀이에서 북을 치는 리듬을 들으면서 그게 멜로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미인아’의 앞부분에 나오는 멜로디는 그런 느낌에서 시작됐다. 대중음악 작곡가라 분명히 한정된 폭은 있지만 그 안에서는 더 특화된 음악을 하고 싶다. ‘미안아’는 멜로디가 단순하게 반복되더라도 그 흐름 속에서 다양한 변화를 주고 싶었고.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다. (웃음)

특히 사운드적인 면에서 소리를 하나 하나 쌓아 올리는 방법이 더 치밀해졌다. ‘링딩동’에서 퍼쿠션의 톤도 인상적이었고. 너무 건조하지도 않고 너무 퍼져서 다른 사운드를 잡아먹지도 않더라.
유영진
: 소리 하나하나가 층층이 쌓이는 레이어에 충실하려고 많이 노력한다. 대중이 댄스음악을 들을 때는 킥, 스네어, 하이햇, 퍼쿠션 같은 몇 가지 것들만 듣게 된다. 거기에 멜로디와 베이스, 스트링 정도인데 댄스 음악은 그런 소리들만 구분하기 쉽게 넣으면 만들 수 없다. 그 밑에 많은 소리를 숨겨야 한다. 전혀 리듬에 쓰이지 않는 것 같아도 리듬을 가진 소리들도 있고. 가장 기본적인 소리를 먼저 넣고, 그 다음에 그걸 꽉 차게 들릴 수 있는 소리들을 계속 집어넣는다. 모든 소리를 다 잘 들리게 할 수는 없지만, 들리지 않아도 공간을 채우는 소스들을 사용한다. 어떤 때는 LP 노이즈를 넣기도 하고, 어떤 곡은 직접 입으로 효과음을 내기도 하고. ‘Sorry Sorry’에서도 글래스 퍼쿠션이라는 소리가 들어갔는데, 그게 사실 커피 마시는 머그잔을 드라이버의 플라스틱 손잡이로 때려서 만든 소리다. 지난 15년 동안 경력이 쌓이면서 그런 엉뚱한 아이디어를 곧바로 실제 작업에 투입할 수 있는 노하우가 생긴 것 같다.

“항상 내 맡은 몫을 항상 하는 조력자이고 싶다”



그런 아이디어는 음악을 독학으로 배우면서 가능해진 걸까.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있을 테니까.
유영진
: 맞게 봤다. 나는 어떻게 보면 시기를 놓쳤다. 피아노를 되게 배우고 싶었는데 집이 가난해서 피아노를 배울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 떨어져서 동생들을 내가 키워야 하는 상황이었고. 커서 피아노를 배우려고 했을 때는 바로 가수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다 군대에서 문선대에 복무하면서 병장 달 때쯤부터 코드 이론하고 작곡법하고 코드진행 패턴 같은 걸 공부했었다. 그 때 피아노를 독수리타법으로 치면서 코드에 대해 배웠다. (웃음) 그런데 제대하고 바로 앨범을 내는 바람에 아직도 피아노는 독수리다. (웃음) 그 때 주변에서 쟤는 코드를 어떻게 저런 말도 안 되는 걸 쓰냐고 하면서 그러지 말라고 했는데, 내 귀에는 그게 약간 불협화음처럼 들릴 수 있어도 그게 맞았다고 느껴졌다. 이런 발상이 점점 커졌던 것 같다.

그래서 음악을 멜로디가 아니라 리듬으로 받아들이는 건가.
유영진
: 선배들이 넌 왜 보컬을 리듬으로 생각하냐고 했을 때, 나는 마이클 잭슨을 보시라고 했다. 왜 그가 중간에 ‘아!’하는 추임새 같은 걸 넣겠는가. 그런 부분은 안무하고 같이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의 발상부터 갈래를 치기 시작했다. H.O.T.의 강타부터 지금의 동해나 윤호까지 SM에도 음악하고 싶은 친구들이 많다. 그 친구들에게 나는 네가 지금부터 아무리 열심히 피아노를 친다고 해서 이루마 씨 같은 분들을 능가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대신 네가 잘할 수 있는 걸 만들라고 한다. 바보처럼 보여도 새롭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이미 12음계로 할 수 있는 건 다하고 있는 상황이라 앞으로 곡을 만들려면 정말 생뚱맞은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컴퓨터를 유리창에 던졌는데 맞고 튀어나오는 소리가 리듬으로 쓰일 날도 올지 모른다. 그래서 언제까지 작업할지 모르겠지만 엉뚱한 아이디어를 계속 내려고 한다.

혹시 4집 앨범을 낼 생각은 없나.
유영진
: 이수만 선생님도 앨범은 내라고 하고, 나도 생각은 있다. 다만 회사에 부담을 주기는 싫다. 내가 하고 싶다고 하면 회사는 내줄 거다. 하지만 앨범을 5000장 찍었는데 “유 이사님 900장밖에 안 나갔어요. 나머지 4100장 어떡하죠” 이런 말 들으면 내가 힘들 것 같다. (웃음) 부담이 안 되는 상태에서 디지털 싱글로라도 내가 노래를 꾸준히 하고 있다는 걸 들려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 발표하고 싶긴 하다.

뮤지션으로서의 목표는 뭔가.
유영진
: 나는 지금까지 인터뷰 요청이 오거나, 동방신기가 방송을 하는데 잠깐 뭘 가르친다거나 하는 장면을 찍자고 할 때 다 거절했다. 이 인터뷰 이후로는 인터뷰를 안 할 생각이고. 나는 한 쪽에서 계속 내 역할을 하고 있는 게 낫다. 가수가 주인공이면 그들에게 포커스가 정확하게 맞춰져야지, 내가 프로듀서라는 이유로 시선을 받는 건 싫다. 나는 SM에나 가수들 모두에게 조력자가 되고 싶다. 항상 내 맡은 몫을 항상 하는 조력자. 여든이 돼서도 스튜디오에서 리듬을 만들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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