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우리는 언제까지 김수현 드라마에 열광해야 하는가. 지난 3월 말부터 방영하기 시작한 김수현 작가의 신작 SBS 는 최근 시청률 20%를 돌파하며 여전한 김수현의 파워를 증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 대한 반응은 단순히 수치로 환산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다. 무려 다섯 집살이를 하던 난봉꾼 할아버지(최정훈)와 게이인 장손 태섭(송창의)의 존재는 과거 가족 드라마에서 볼 수 없는 소재였고, 이것을 자극적이지 않게 인간과 인간이 이해하는 과정 속에 녹여내는 필력은 명불허전이다. 이번 ‘10 포커스’는 가 새롭게 연 가족 드라마의 지평을 다룬다. 그리고 한정된 글 안에 모두 담을 수 없는 캐릭터 각각의 성격을 담은 픽션과 그들의 만만찮은 과거사를 담은 게임, 이 모든 일이 벌어지는 제주도의 풍광에 대한 짧은 여행기를 더했다.

만약, 원래 계획대로 김수현 작가가 집필한 그대로 영화 가 만들어졌다면 어땠을까. 합리적 의사소통과는 거리가 먼 비뚤어진 욕망이 지배하는 가족과 그 안에 타자로 들어간 하녀 사이에 벌어지는 배제와 차별의 메커니즘에 대해 그는 어떤 통찰력을 보여줬을까. SBS 를 볼 때마다 드는 궁금증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 드라마에 전체적으로 흐르는 ‘인생은 아름답다’는 김수현 작가의 낙관주의를 보며 느끼는 궁금증이다. 첫 회에서 공항 마중 시간에 늦은 민재(김해숙)와 시어머니(김용림) 간의 갈등이 당시 상황에 대한 몇 가지 정황 제시만으로 해소되는 에피소드부터 최근 커밍아웃한 태섭(송창의)에 대한 가족들의 태도에 이르기까지, 에서는 서로의 대화가 모든 갈등의 해결책으로 제시된다. 이 작품이 김수현 작가의 가족 드라마 계보 안에서 특별한 위치를 점하는 건 그래서다. 과거 김수현 드라마 속의 가족이 더럽고 치사해도 결국 남이 아니기에 끌어안는 존재였다면, 의 가족은 수많은 남남으로 이뤄진 이상적 의사소통 공동체에 가깝다.

가족, 이상적 의사소통 공동체의 등장
<인생은 아름다워>│예순여덟 대가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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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KBS 이후 등장했다는 것은 그래서 필연적이다. 에서 한자(김혜자)가 자신에게 강요되던 가족 내 역할 모델을 벗어던지면서 전통적인 의미의 가족은 해체된다. 그럼에도 일석(백일섭)과 충복(이순재)이 오랜 시간 가족에 헌신한 한자에게 휴가를 주는 착한 사람들이기에 가족 공동체 자체는 붕괴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이 착한 가족에게만 해당하는 결과일 뿐, 가족 내 역할 모델에 대한 의 문제제기를 해결할 어떤 보편타당한 방법은 아니다. 가족에 대한 소속감이, 그리고 그 안의 위계질서가 그렇게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면 과연 그 안의 관계를 이루는 건 어떤 가치여야 하는가. 은, 말하자면 자신의 전작이 제기한 질문에 대한 김수현 작가 스스로의 대답이다.

실제로 가족 구성에서부터 는 가 끝난 지점에서 시작한다. 다섯 집살이 하는 할아버지(최정훈)를 둔 이 가족은 진즉에 가부장제의 굴레를 벗어났고, 가장인 병태(김영철)는 아내와 사별한 뒤, “딱 아닌 것 같아 (전 남편과) 바로 이혼한” 민재와 각각 아이 하나씩을 끼고 새 가정을 이뤘다. 이미 파란만장한 갈등을 극복했고, 혈연주의로 얽힌 위계질서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운 상태인 이 가족의 대화는 그래서 대부분 수평적이고 솔직하다. 수십 년 만에 돌아온 할아버지를 받아들이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것을 비롯해 종종 병태 집안은 다분히 민주적인 가족회의를 진행한다.

가령 지혜(우희진)의 낙태 여부에 대한 가족회의에서 “생명을 어찌 죽이느냐”는 할머니의 말에 태섭은 아리스토텔레스에서부터 선진국 사례까지 인용하며 생명의 모호한 기준에 대해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지혜가 아이를 낳기로 결정하는 결과가 아닌, 그 과정이다. 드라마 전체를 통틀어 가장 화제가 됐던 태섭의 커밍아웃이 정말 파격적인 건, 자극적 소재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최대한 합리적 논의 안에서 소화하려는 가족들의 태도 때문이었다. 심지어 처형이 게이인 걸 받아들일 수 없다던 수일(이민우)조차 지혜에게 “토론으로 해결하자”고 청한다. 이것은 앞서 말한 의 딜레마를 해결하는 김수현의 해법이다. 등장인물들은 다양한 가치관과 정서를 가지고 있고, 그것은 단순히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가치관의 타당성을 상대방에게 입증하는 상호 소통의 방식 안에서라면 서로가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 가능하다. 에서의 갈등과 해결이 물 흐르듯 이어질 수 있는 건 그래서다.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카페를 열고 싶다며 수일과 대립각을 세우던 지혜는 펜션의 저녁 식사 준비로 북적대는 분위기에서 카페 영업이 가능하겠느냐는 병태의 지적에 고집을 부리지 않는다.

인생은 아름다워야 하는 김수현의 세계
<인생은 아름다워>│예순여덟 대가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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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드라마로서의 가 흥미로운 건 이 지점이다. 전통적 가족의 정이 아닌 합리적 소통으로 관계가 맺어질 수 있다는 건, 꼭 가족이 아니고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도 얼마든지 병태 가족처럼 행복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걸 뜻한다. 실제로 민재와 연주(남상미), 아라(장미희)와 병준(김상중)은 남남이지만 대화를 통해 무리 없이 합의에 이른다. 즉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의 공동체 의식이 아닌 보편타당한 소통의 방식을 통해서라면 그 어떤 타자와도 공존하는 것이 가능하다. 언제나 뭍으로부터의 타자였던 제주도 안에서 이 모든 일이 벌어지는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가족 드라마 너머의 가족 드라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거부하기에 역설적으로 이 가족은 무한히 확장될 수 있다. 태섭의 애인인 경수에 대해 “아들 하나 더 얻는 거”라 말하는 병태의 말은 이 모든 상황을 함축한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이런 의사소통 공동체로서의 병태 가족의 모습은 다분히 이상적이다.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볼 수 있는 이 드라마의 개연성이 사실은 현실의 그것과 매우 동떨어졌다는 건 상당히 재밌는 일이다. 태섭의 커밍아웃을 어떻게든 이해하려고 하는 병태 가족의 태도는 경수(이상우)에 대한 경수 엄마(김영란)의 그것과 비교할 때 훨씬 합리적이다. 하지만 과연 현실에서 경수 엄마보다 병태 같은 부모가 많을 거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즉 는 인생을 아름답게 사는 현실 세계에 대한 반영이라기보다는 인생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당위성을 바탕으로 김수현이 창조해낸 하나의 세계에 가깝다. 인간은 합리적이라는 불완전한 전제 위에 세워진 완전한 세계.

실제로 “지금 내 소원은 다음 날 아침에 눈 뜨지 않는 것”이라 말할 정도로 병태를 괴롭혔던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양보 없는 다툼은 할아버지가 계단에서 넘어져 다치는, 이 드라마 안에서 가장 개연성 없는 사건을 통해 겨우 해결됐다. 그 틈새가 눈에 띄지 않는 것은 김수현 작가의 필력 덕분이지만 결코 대화로는 해결될 수 없는 비이성적 상황 앞에서 의 세계는, 그리고 김수현의 낙관주의는 아직 취약하다. 이 드라마의 세계관 안에서 유일하게 용납할 수 없는 타자인 경수 엄마처럼 비이성적인, 하지만 현실 세계에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까지 가 어떻게 끌어안을지 궁금한 건 그래서다. 가족에 대해 탐구하다가 인간관계 자체에 천착하게 된 이 대가는 사실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은 이 세계에 대한 어떤 통찰을 드라마 후반부를 통해 보여줄 수 있을까. 물론 그렇지 않다 해도 는 인간이라는 소우주들이 함께 공존하는 방식에 대한 탁월한 텍스트로 남을 것이다. 이제 볼 수 없는 에 대한 궁금증은 계속될지 모르지만.

글. 위근우 eight@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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