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호│탁월한 보컬리스트의 가창력을 느낄 수 있는 음악
오지호│탁월한 보컬리스트의 가창력을 느낄 수 있는 음악
간혹 아랍인 같다는 농담을 들을 정도로 조각 같은 얼굴과 잘 다듬어진 몸매. 배우 오지호의 탁월한 외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일지 모른다. 벗은 몸의 아름다움에 천착하는 영화 에서 남자 주인공으로 데뷔한 것이 벌써 10년 전이다. 하지만 흥미로운 건, 그토록 눈에 띄고 당연하게 느껴지는 그 육체적 아름다움을 꽁꽁 숨기는 방식으로 이 배우가 생존해왔다는 사실이다.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최근작인 KBS 이전, 그가 주연으로서 인상적인 발자국을 남겼던 작품들을 보라. MBC 에서 연기한 장철수는 공사판에서 잡다한 일을 도맡아 처리하는 전형적인 육체노동자에 간혹 조카들과 비슷한 정신연령을 보여주는 동네 형 타입의 캐릭터였다. SBS 의 고만수는 돈 많고 매력적인 골프선수지만 뚱뚱하고 못생겨서 좋아하던 여자에게 무시당했던 트라우마를 가슴에 새긴 특이한 성격이었고, 그에게 제2의 전성기를 안겨준 MBC 온달수는 불필요할 정도의 정의감과 꽉 막힌 융통성 때문에 회사에서 고난을 겪는 인물이다. 말하자면 그는 뛰어난 신체적 스펙을 전시하는 동시에, 그에 어울리지 않는 어리바리한 모습을 통해 캐릭터의 코믹함을 더욱 부각하는 방식으로 로맨틱 코미디의 주연으로 활동해왔다.

가 그의 연기 경력에서 특별한 건 그래서다. “전작들에서는 여자들에게 사랑스럽고 보듬어주고 싶은 남자를 보여줬는데 한 번 정도는 남자들이 봤을 때 정말 의리 있고 멋있는 인물을 하고 싶었고, 그런 마음으로 송태하를 받아들였어요.” 그의 말대로 조선 최고의 무장 송태하는 남성적 매력의 극단을 보여주는 인물이었고, 동시에 오지호라는 배우가 얼마나 남자다운 외형을 가진 미남인지 새삼스레 느끼게 해준 캐릭터이기도 하다. 물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과거의 이미지와 송태하 중 무엇이 더 오지호와 어울린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때론 이렇게 자신의 장점을 한 점 후회 없이 후련하게 발현하는 것도 필요한 법이다. 탁월한 보컬리스트들이 자신의 가창력을 남김없이 드러낸 다음의 곡들처럼.
오지호│탁월한 보컬리스트의 가창력을 느낄 수 있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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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선주의 < A4rism >
“박선주 역시 가창력이 정말 대단한 가수인데, 역시 그 못지않게 노래 잘 부르는 김범수가 피쳐링을 맡아 최고의 하모니를 만들어 내죠. 사랑에 대한 남과 여의 마음을 각기 다른 목소리에 담아 이야기하다 같이 화합해 같은 노래를 부를 때 ‘사랑이 이런 거구나’ 싶어요. 그렇기 때문에 ‘영원히 함께 하자는 그 말은 우리 아껴요’ 같은 가사가 훨씬 더 진정성 있게 다가오고요.” 오지호가 추천한 첫 번째 곡은 가수들을 가르치는 보컬 선생님으로 더 유명한 박선주의 대표곡 ‘남과 여’다. 최고 수준의 남자 보컬이자 자신의 제자이기도 한 김범수와 함께한 이 곡에서, 박선주는 좋은 목소리와 고음뿐 아니라 곡을 위한 절제 역시 보여준다. 덕분에 ‘남과 여’는 김현철, 이소라의 ‘그대안의 블루’ 이후 가장 인상적인 남녀 듀엣곡 중 하나가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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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꼭 제가 출연한 드라마의 삽입곡이라 추천하는 건 아니에요. 하하. 임재범 씨 특유의 보이스가 정말 매력적이라 할 말을 잃게 만들 정도였어요. 드라마도 좋았지만 이 노래 덕에 가 시청자들로부터 더욱 사랑받지 않았을까 싶어요.” 어쩌면 예상 가능한 선곡일지도 모를 두 번째 추천 곡은 임재범이 부른 ‘낙인’이다. 오지호가 연기한 송태하보다는 대길이(장혁)와 언년이(이다해)가 붙는 신에서 자주 나오는 이 곡은 두 남녀 주인공의 애절한 마음을 더욱 강렬하게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한국 최고의 보컬리스트라는 수식이 아깝지 않은 임재범의 거칠지만 풍부한 흉성은 여전히 매력적이고, ‘가슴을 데인 것처럼 눈물에 패인 것처럼 지워지지 않는 상처들이 괴롭다’는 식의 직유는 곡에 비장미를 더한다.
오지호│탁월한 보컬리스트의 가창력을 느낄 수 있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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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바비 킴의 < Love Chapter.1 >
가수를 정의하는 가장 확실한 범주가 곡의 장르라면, 바비 킴은 도저히 정의할 수 없는 가수다. 레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제대로 된 국내 레게 뮤지션이 없는 상황에서 닥터 레게로 데뷔해 정통 레게 리듬을 보여줬고, 또 나중에는 타이거 JK와 윤미래로 대표되는 힙합 크루 무브먼트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그리고 여기 오지호가 추천한 곡 ‘사랑..그 놈’을 비롯한 컨템퍼러리 넘버에선 감미로운 발라드 가수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수많은 정체성 안에서 바비 킴이 여전히 바비 킴인 건 그 특유의 목소리 덕일 것이다. “노래방 같은 데서 제가 즐겨 부르는 곡이기도 해요. 바비 킴 특유의 목소리와 리듬을 타는 창법이 정말 매력적이거든요. 사랑에 힘들어하면서도 다시 다음 사랑에 대한 희망을 노래하는 게 남자답기도 하고요.”
오지호│탁월한 보컬리스트의 가창력을 느낄 수 있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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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신성우의
“이 곡은 제가 어렸을 때 자주 따라 부르던 곡이에요”라며 추천해준 네 번째 곡은 신성우의 ‘사랑한 후에’다. 최근에는 MBC 같은 작품으로 자신의 카리스마를 스스로 무너뜨리고 친근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90년대 초반만 해도 그는 무대 위의 야생마 같은 존재였다. 비슷한 시기에 함께하던 록 보컬리스트 이덕진과 함께 한국의 테리우스로 꼽히던 그는 ‘노을에 기댄 이유’나 ‘서시’처럼 터프하면서도 감성적인 록발라드를 들려줬다. “조금 옛날 곡이라 할 수 있는데 2006년에 새로 녹음을 하셨더라고요. 하지만 제게는 여전히 그때 그 시절 추억의 노래에요. 그래서 에서 같이 활동하는 창렬이 형의 출연했을 때 이 곡을 불렀던 거고요.” 에서 재녹음된 버전은 원곡에 낮게 짓눌린 목소리와 달리 좀 더 굵고 풍부한 목소리를 매끄럽게 뽑아낸다.
오지호│탁월한 보컬리스트의 가창력을 느낄 수 있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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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서준서의 < Return By Self >
오지호는 대부분 발라드 혹은 록발라드를 추천했는데 이 곡 ‘나만의 그대 모습’ 역시 마찬가지다. “서준서가 B612 시절에 이 곡을 부를 때 고등학생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정말 그 고음을 동경하며 즐겨 불렀어요. 아마 록발라드를 좋아했던 사람들은 이 곡을 다들 좋아했을 거예요. 하지만 노래방에서 한 번 시도했다가 숨넘어가는 경험을 했던 사람들이 여럿 될 거예요. 하하하.” 대중적으로 알려진 고음 록 보컬리스트라고는 김종서 정도가 전부였던 시기, B612는, 그리고 B612의 리드 보컬 서준서는 그야말로 혜성처럼 등장한 고음 보컬이었다. 다분히 메탈 스타일인 그들의 음악은 록 마니아들의 입맛에도 맞는 것이었지만 ‘나만의 그대 모습’은 사춘기 소년들의 고음에 대한 로망을 자극하며 대중적으로도 제법 많이 알려지게 된다.
오지호│탁월한 보컬리스트의 가창력을 느낄 수 있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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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송태하처럼 남성적인 역할을 다시 해보고 싶지만 과거처럼 로맨틱 코미디로 돌아갈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건 시청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는 거죠. 그에 따라 작품을 고르고 작품에 따라 캐릭터가 만들어지겠죠.” 결론적으로는 무엇을 할지 정해지지 않았다는 말이지만 중요한 건, 그가 어떤 갈림길 앞에서 고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와 달라진 그의 위치를 보여준다. 즉 그는 이제 잘생겼지만 어딘가 나사가 풀린 듯한 로맨틱 코미디의 귀여운 주인공으로서도, 자신의 남성적 매력을 마음껏 발산하는 역할로서도 제작자와 시청자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배우가 됐다. “휴식을 취하며 그동안 즐기지 못했던 레포츠를 하고 있는” 그의 기다림은 과연 어떤 선택지로 향할까. 알 수 없지만 그래서 더 빨리 대답을 듣고 싶은 질문이다.

글. 위근우 eight@
사진. 이진혁 el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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