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이 바뀐다고 축구를 다 잘하게 되는 거야?
감독이 바뀐다고 축구를 다 잘하게 되는 거야?
오늘 D-10이라며?
응? 뭐가?

월드컵 말이야. 곧 있으면 월드컵 중계 시작이니까 좋겠네?
아, 월드컵. 그렇지. 한국이 16강에 오르면 좋겠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토레스의 스페인이 그 환상의 스쿼드를 가지고 우승에 오를지, 브라질은 그 토할 것처럼 무시무시한 선수들을 데리고 어떤 성적을 보여줄지, 과연 아르헨티나의 메시는 어떤 활약을 펼칠지 기대하면 정말 즐거워. 비록 늦은 시간 마감 때문에 마음 편히 경기를 볼 날이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즐거워. 영국이랑 브라질은 월드컵 기간 중에 근로시간을 탄력적으로 조절한다고 하는데 어쨌든 그래도 즐거워.

나는 어차피 다른 나라 경기는 관심 없으니까 우리나라가 2002년처럼 4강 정도 올라가주면 좋겠어. 그럼 그 때처럼 축제 분위기가 되지 않을까?
딴죽 걸고 싶진 않지만 4강 정도? 그게 무슨 쉬운 일인 줄 아냐. 히딩크라는 명장이 와서 대대적인 리빌딩을 하고 홈 어드밴티지를 얻지 않았더라면 그런 기적은 절대 일어날 수 없었어.

나는 좀 궁금한 게, 우리나라가 홈팀으로서 좀 유리한 판정을 받았다는 건 이해할 수 있는데 히딩크라는 한 개인이 팀을 그렇게 강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건 잘 이해가 안 가. 감독이 바뀐다고 해서 선수가 갑자기 잘하게 되는 건 아니잖아.
음, 갑자기 잘하게 되는 건 아니지만 시간을 두고 천천히 잘하게 되는 건 가능하지. 그리고 무엇보다 감독은 주전 명단 안에 자기 팀에 어울리는 좋은 선수를 넣을 수 있는 권한이 있거든. 물론 모든 감독은 정해진 숫자 안에서 최대한 좋은 선수를 뽑으려고 하지. 그런데 이 때 중요한 건 개개인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이 팀 안에서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는 거야. 가령, 소녀시대의 태연은 뛰어난 가창력의 여자 아이돌이지만 태연을 애프터스쿨에 넣는다면 과연 그 만남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까? 어차피 애프터스쿨은 가창력 좋은 멤버보다는 다리 긴 멤버가 필요할 거고, 태연 역시 자기의 가창력을 소중히 여기는 팀에 들어가는 게 좋겠지?
감독이 바뀐다고 축구를 다 잘하게 되는 거야?
감독이 바뀐다고 축구를 다 잘하게 되는 거야?
아, 그렇게 말하니까 조금 이해되는 거 같기도 해.
기본적으로 히딩크는 수비수라고 수비 라인에만 쳐져 있고, 공격수라고 공격 라인에서 공 오기만 기다리는 선수보다는 공격 수비 가릴 것 없이 활발한 운동량으로 공간을 차지하는 선수를 원했어. 그건 체력과 팀에 대한 헌신이 바탕 되어야 가능한 거지. 당시 최고의 공격수 중 하나였던 이동국이 발탁되지 못한 건 그런 요소를 충족시키지 못 해서야. 역시 축구 천재로 이름 높던 이관우의 경우에도 히딩크가 원하는 플레이를 하기에 체력적 문제가 있어 빠졌던 거고. 그에 반해 박지성이 히딩크의 지도 아래서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가 된 것 역시 마찬가지 이유야.

그럼 그렇게 또 열심히 하는 선수만 뽑으면 4강 가는 거야?
내가 아까 홈 어드밴티지 얘기했지? 그리고 그렇게 자기가 원하는 선수를 뽑는 건 전략의 차원이지만 필드 위에서 축구를 하는 건 전술의 차원이야.

전략? 전술? 그게 다른 거야?
쉽게 말해 전략이 전술보다 더 넓은 의미라고 보면 돼. 말하자면 전략은 전투에 앞서 부대를 가장 최적화된 상태로 훈련시키거나 상대편의 내부에 혼란을 일으키는 방식으로 좀 더 우위에 서는 방식이야. 이것도 어렵나? 더 쉽게 말해 일단 유리한 위치에서 싸울 수 있도록 준비하는 모든 과정이 전략이라고 보면 돼. 그런데 가끔 불리한 싸움에서도 이기는 경우가 있잖아. 이순신 장군처럼. 그건 전투 상황에서 부대를 운용하는 능력, 즉 전술이 뛰어나기 때문이야. 이렇게 말하면 좀 더 이해가 쉽겠구나. 이순신 장군의 경우에는 전략적으로는 불리했지만 전술적으로 그 핸디캡을 극복했다고 할 수 있는 거지.

그럼 히딩크는?
히딩크는 외국인 감독이었기 때문에 한국 내 학연을 비롯한 인맥으로 선수를 뽑을 이유가 없었고 덕분에 자신이 원하는 대로 팀을 구성할 수 있었어. 물론 그 선수들이 호나우두나 지단 같은 선수들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협회의 압박이나 지인의 부탁으로부터 자유로이 선수를 뽑을 수 있던 건 일종의 전략적 우위였다 할 수 있겠지. 그런데 심지어 이 사람은 전술적으로도 뛰어난 감독이야. 토털풋볼의 근원지 네덜란드 출신답게 토털풋볼을 잘 구사했거든.

토털풋볼은 또 뭔데?
아까 히딩크는 열심히 뛰는 선수를 좋아한다고 했잖아. 하지만 체력이 좋고 열심히 뛴다고 해서 모든 선수가 공 하나에 몰려들면 그건 동네 축구겠지. 흔히 전원 공격, 전원 수비의 토털풋볼을 그런 식으로 오해하는데 정확히 말해 토털풋볼은 경우에 따라 수비수도 공격을 할 수 있고, 공격수도 수비를 할 수 있는 유기적이고 유연한 시스템을 말하는 거야. 가령 골키퍼를 뺀 10명의 선수 중 5명이 공격수고 5명이 수비수라고 할 때, 수비 상황에서 주위의 공격수 한 명이 도와주는 것만으로 상대팀 5명의 공격수는 우리 팀 6명의 수비수를 상대하는 것 같은 효과가 생기는 거야. 이게 가능하려면 감독의 전술을 선수들이 절대적으로 따라야 하지. 물론 그렇게 만드는 것도 감독의 능력인 거고.
감독이 바뀐다고 축구를 다 잘하게 되는 거야?
감독이 바뀐다고 축구를 다 잘하게 되는 거야?
그런데 잘하는 선수들은 그런 감독 싫어하겠다. 원래 잘 할수록 절대 복종 이런 거 싫어하잖아.
그래서 ‘지구 방위대’ 레알 마드리드가 호날두와 카카, 알론소를 영입하고도 결국 바르셀로나를 넘지 못한 걸 수도 있어. 사실 개인적으로는 샤비와 이니에스타, 메시가 있는 바르셀로나가 멤버 자체로도 더 뛰어나다고 보지만 기본적으로 스타플레이어 위주인 레알 같은 팀은 감독이 원하는 그림대로 움직이기 어렵지. 그래서 이번에 ‘스페셜 원’ 무리뉴 감독이 부임하는 거고.

그건 또 뭔데?
뭐가 아니라 사람이다. 최근 챔피언스리그에서 메시의 바르셀로나를 꺾고 결국 우승까지 거머쥔 인터밀란의 감독이었던 사람인데 이번에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으로 부임해. 세계 3대 축구 리그를 영국의 프리미어리그, 이탈리아의 세리에 A, 스페인의 프리메라리가 이렇게 세 개로 꼽는데, 무리뉴는 첼시로 프리미어리그에서, 인터밀란으로 세리에 A에서 우승하며 2대 리그 우승을 기록했어. 만약 이번에 레알로 프리메라리가 우승까지 하면 3대 리그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는 거지. 그런데 그가 이번에 부임 직전 “스타는 팀 자체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어. 말하자면 스타고 나발이고 자신의 전술 안에서 열심히 뛰어야 한다는 거야. 그가 꼭 우승을 만들어낸다고 장담하긴 어렵지만 확실히 그의 지도를 통해서 우승에 좀 더 가까워지는 건 사실일 거야.

축구에서 감독이 그렇게 중요한 거였어? 난 잘 몰랐어.
사실 모든 일에서 지도자가 다 그렇지. 그러니까 잘 뽑아야 돼.


글. 위근우 eight@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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