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류│야구 아는 여자
김석류│야구 아는 여자
“어. 저기 야구…” 인터뷰를 위해 주차한 곳에서 주차관리를 하는 한 아저씨가 김석류 KBS N 아나운서에게 사인을 요구한다. 아직 이름까지 외우진 못하지만, TV를 통해 얼굴을 접한 적이 있는 아저씨는 연예인을 만난 듯 반갑게 대한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거리에 나가면 사람들이 아직 못 알아본다”며 겸손해 했던 김석류 아나운서지만, 그녀의 인기는 이렇게 날이 다르게 올라가고 있다. 물론 이 인기는 프로야구의 흥행과 무관하지 않다. 지난해 여성 관중의 폭발적인 증가로 정규시즌 최다 관중(592만 5,285명) 기록을 세운 프로야구는 올해 누적 관중 1억 명 돌파 초읽기에 돌입했다. “제가 2007년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경기장에는 온통 다 남자였어요. (웃음) 프로야구에 여성관중이 많이 증가하고, 규모가 커지면서 저도 같이 상승효과를 받았죠.”

야구 생초보에서 야구 여신이 되기까지
김석류│야구 아는 여자
김석류│야구 아는 여자
현재시점에서 김석류의 이름을 떠올리면 야구를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지만, 그녀는 알려진 대로 야구의 ‘야’ 자도 몰랐던 야구 생초보였다. “입사 면접 때는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투수를 하고 있던 김병현 선수를 ‘일본에서 스리런 홈런을 쳤다’는 기사를 읽었다고 당당하게 말할 정도였어요.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웃음)” 그러나 그녀의 당돌함은 면접관을 사로잡았고, 케이블채널 KBS N에 아나운서로 입사하게 된다. 하지만 경쟁을 뚫었다는 만족감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미숙한 진행으로 “온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릴” 욕설도 들어야했고, “여자가 와서 재수가 없다”는 선수단의 따가운 시선도 받아야했다. 오기가 생겼다. 고3 수험생 시절을 방불케 할 만큼 그날의 기록을 빽빽하게 노트에 적고, 스포츠 신문을 뒤적이며 야구지식을 머릿속에 “미친 듯이” 집어넣었다. 금녀의 영역 같았던 야구장의 문도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는 듯 했다. “조그만 여자애가 화장하고 와서 감독님이나 선수들에게 질문하니까 처음엔 얼마나 싫었겠어요. 하지만 인터뷰 질문이 정말 괜찮고 ‘열심히 공부하고 왔구나’ 싶은 생각이 들면 잘해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야구장에서 살아남은 꽃
김석류│야구 아는 여자
김석류│야구 아는 여자
김석류│야구 아는 여자
김석류│야구 아는 여자
수컷들의 땀 냄새가 진동하는 야구장에서 살아남는 법을 터득한 김석류에게 여자라는 건 오히려 남성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좋은 무기가 됐다. 베테랑 해설위원들만이 가능할 것만 같았던 작전에 관한 질문도 김석류가 하면 가능했다. 그녀가 한 꺼풀 예쁘게 포장해 질문을 던지면, 꽁꽁 닫아놨던 경계심은 스르륵 하고 해제됐다. SK 와이번스의 김성근 감독은 “여자 아나운서들이 인터뷰를 하면 평소처럼 화난 듯한 표정을 하고 있기가 미안해 일부러라도 웃게 된다”고 털어놓을 정도다. 특유의 미소를 지으면서 민감한 질문들을 무례하지 않게 할 수 있는 건 여자의 부드러움이 남성의 투박함을 이겨낸 증거다.

스포츠신문에 칼럼을 연재하고, 인터뷰도 진행하며 차츰 보폭을 넓혔다. 자신의 이름으로 된 책을 내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도 바로 이 무렵이었다. 방송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뒤, 새벽 2시부터 밤을 꼬박 새며 7개월을 매달린 끝에 이란 야구입문서를 낸 건 오기로 버텨낸 지난 세월과도 다르지 않았다. 그녀가 자신의 열정이 고스란히 담긴 책을 한 페이지 씩 읽으면서 “내 모든 것”이라며 눈물을 왈칵 쏟아낸 건 고생담조차 추억의 한 페이지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었다.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바람’이라는 서정주의 시인의 말처럼, 김석류는 맞바람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맞으며 야구장의 꽃으로 피어났다. 때론 경기장 안팎에서 쉴 새 없이 들려오는 루머에 상처도 받았지만, 그걸 이겨낸 것도 결국 그녀 자신이었다. “팬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어준 것 같아요. 사랑의 종류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내가 받은 사랑은 뭘까. 가슴 뭉클할 때가 많아요.” 야구에 대한 애정과 집념으로 똘똘 뭉친 김석류에게 세상이 보내는 응원은 아직, 따뜻하다.

글. 원성윤 twelve@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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