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계 [명사]1. 단계의 잘못된 표현
2. 단계 + 너머 : 예상치 못한 경지

MBC 199회 방송에 출연한 길은 하하로부터 전수받은 예능의 비법들이 수록된 그의 소장품 ‘길이의 예능노트’를 공개했다. 여기에는 실전을 통해 터득한 멤버들과의 관계 맺음 방식과 태어날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못 웃겼을 때 3번 운다는 예능인으로서의 굳은 각오 등이 빼곡히 기록되어 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눈길을 끌었던 것은 힙합크루 무브먼트의 행동 대장이자 리쌍의 절반으로서 무대를 주도하던 그가 예능이라는 신세계에 발을 내딛으며 남몰래 짊어져야 했던 고민의 흔적이었다. ‘망가질 수 있다. Hip Hop, 음악. 그것은 또 다른 세상에 대한 도전의 당계’라고 그가 흘려 쓴 문장은 얼핏 쉽게 쓰여진 문장처럼 보이지만, ‘망가짐’에 대한 의욕을 스스로 고취한 다음 이에 배치되는 힙합과 음악을 제시한 후, 또다시 앞 문장에 제시된 것과 일치하지 않는 주어를 ‘그 것’으로 칭하는 고도로 복잡한 사유의 단계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Hip Hop은 영어로, 음악은 한글로 표기한 방식은 단어의 의미를 시각적으로도 구체화하려는 그의 의도가 엿보인다. 그런 점에서 이 문장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줄바꿈하여 홀로 빛나고 있는 마지막 단어, ‘당계’다.

‘당계’는 일반적으로 상승, 혹은 하강의 규칙에 의해 서열화되는 ‘단계’의 시스템에 대한 대안적 개념이다. 기존의 단계에서 볼 때, 내에서 가장 높은 개그 단계에 도달한 것은 유재석이다. 그러나 박명수는 흐름을 파괴하고 주변과의 화합을 붕괴하면서도 분명 웃음을 만들어 내는 독특한 지점을 보여준다. 전반적으로 무색무취한 듯하지만 기대하지 못한 순간에 ‘토크쇼 시즌8’을 창조하는 정형돈의 불규칙한 피치 역시 단계적으로는 고급에 속하지 못하나, 분명 간과할 수 없는 파괴력을 갖고 있다. 이처럼 균질한 곡선을 그릴 수 없으나 분명한 에너지를 기대하게 할 때, 개별적인 특성을 구체적으로 카테고리화 할 때 우리는 ‘당계’를 사용할 수 있다. 그러므로 비록 앉아서 스탠딩 쇼를 진행하고, 만연히 봄이 되어 산새들이 지지적이는 해괴한 상황을 묘사하며, 옆 사람의 허벅지를 잡으라는 돌발적인 요구를 하는 길의 진행 방식은 미성숙의 단계일지언정, 가장 고달프고 서러운 순간에도 ‘핫바 핫바야’ 라고 힘차게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그의 센스는 가히 최고의 당계에 도달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당계의 단계
* 스치기만해도 남자들이 픽픽 쓰러지는 넘치는 마성의 당계
* 잘하는 것을 버리고도 다른 장르에서 거성으로 진화하는 게임몬의 당계
* 외교적으로 민감한 문제를 일거에 무시해버리는 충무공의 당계
* 극도의 당혹스러움 속에서도 관용을 베푸는 석가모니의 당계
* 이별과 자연재해, 신문명의 트리플 어택 속에서도 예술혼을 불태우는 뮤지션의 당계

글. 윤희성 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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