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상상의 영역을 뛰어넘은 능력을 보여주는 사람을 가리켜 흔히 천재라고 부른다. 그런 의미에서 유세윤은 천재적인 개그맨이다. KBS <개그콘서트> 무대 위에서 그는 막돼먹은 꼬마, 험상궂은 착한사람, 소심하지만 ‘장난하냐?’며 사사건건 따지고 드는 형, 형편없는 실력에도 불구하고 무게만 잡는 록커 등 조합되지 않을 것 같은 요소들을 하나로 만든 기상천외한 인물들을 연기하며 개그맨으로서 입지를 다졌다. 그리고 MBC <황금어장>의 ‘무릎팍 도사’를 통해 탄생한 건방진 캐릭터를 입은 그는 방송사와 프로그램의 형식을 뛰어넘어 그 자체로 기능할 수 있는 역할을 부여받기도 했다. 그리하여. 리얼리티가 최고의 미덕으로 여겨지는 방송 트렌드에도 불구하고 언제 어디서나 ‘예의바르지만 건방진’ 특유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유세윤은 흔치 않은 존재감을 남기는 개그맨이 되었다.

그러나 유세윤은 단지 특출난 개그맨에 머무르지 않았다. 개인적인 쇼핑몰 사업을 할 때도 그는 기괴하면서도 일차원적이지 않은 유머 감각을 반영했고, 최근 발표한 그의 신곡 ‘쿨하지 못해 미안해’ 역시 폭소를 자아내는 뮤직비디오로 화제를 모았다. 이미 ‘닥터 피쉬’의 활동으로 음악을 통한 개그를 시도한 바 있지만, ‘쿨하지 못해 미안해’는 보다 발전된 가사와 음악성을 통해 무대와 방송의 도움 없이도 대중을 웃길 수 있는 전대미문의 개그맨으로서 유세윤의 능력을 입증하는 계기가 되었다.

“연예인이 되고 싶었는데 이제 연예인이 되었고, 신부는 누굴까, 아기는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했는데 이제 다 알잖아요. 그래서 계속 두근거릴 수 있는 일이 필요했어요”라며 존재 가치를 위해 자신을 흥분시키고 긴장하게 만들 호기심을 찾아다니는 유세윤은 이제 생활이라는 무대 위에서 기습적으로 사람들을 웃기는 개그 게릴라가 되었다. 그래서 그가 털어놓은 그의 성장기도, 그리고 그 시기마다 그가 즐겨 들었던 인생의 BGM들도 마냥 예사롭게 들리진 않는다. 혹시 창의력을 쑥쑥 키워주는 음악들은 아니었을까.




1. Michael Jackson의 < Off The Wall >
유세윤의 기억은 빅스타를 통해 귀가 열린 유년기에서 출발한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팝송이 나오는 라디오 채널을 항상 집에 틀어놓으셨던 기억이 나요. 그 덕분에 유명한 팝송을 많이 들으면서 컸는데, 제가 기억하는 최초의 노래이자 처음으로 좋다고 느끼고 따라 불렀던 노래는 마이클 잭슨의 ‘Don`t Stop `Til You Get Enough’였어요. 물론, 너무 어려서 영어로 된 가사를 정확히 이해하거나 발음을 알아듣지는 못했죠. 그래서 가사를 제 나름대로 한국어 발음으로 알아듣고서 외우고 다녔던 것 같아요. 지금도 마이클 잭슨은 제가 정말로 최고로 좋아하는 뮤지션입니다. 언젠가 DJ가 되고 싶은 꿈이 있는데, 그런 기회가 실제로 주어진다면 아마 첫 곡은 마이클 잭슨의 노래를 틀 것 같아요. 저에게 음악을 사랑하게 해 준 최초의 뮤지션이 바로 마이클 잭슨이니까요.”



2. Boyz II Men의 < Motown Love >
“처음으로 제 돈으로 샀던 앨범이에요”라고 들뜬 표정으로 기억을 되살리는 유세윤이 두 번째로 추천한 앨범은 보이즈 투 맨의 데뷔작 < Cooleyhighharmony >다. 에디 머피가 주연한 영화 <부메랑>의 OST에도 수록된 이 곡은 발표 당시 빌보드 싱글차트에서 13주간 1위를 차지하는 대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마이클 잭슨으로 출발했기 때문인지 어릴 때는 흑인 음악을 참 좋아했어요. 보이즈 투 맨의 목소리와 하모니를 듣는 순간 얼마나 반했던지 처음으로 용돈을 모아서 앨범을 샀다니까요. 그중에서도 ‘End Of The Road’는 지금 들어도 진짜 명곡이잖아요. 그 시절에는 라디오에서 언제나 이 노래가 나왔던 것 같아요. 그런데 아무리 들어도 들을 때마다 새삼 감탄하게 되는 곡이에요.”



3. Extreme의 < Pornograffitti >
메탈 밴드 익스트림의 최대 히트곡이 ‘More Than Words’라는 사실만큼 록계에 아이러니한 일도 드물 것이다. 감미로운 ‘More Than Words’에 매료되어 앨범을 샀다가 낭패를 본 여학생이 한둘이 아니라는 소문처럼, 유세윤 역시 앨범 < Pornograffitti >를 구입했다가 당황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갖고 있다. “앨범을 플레이 하는 순간 정말 깜짝 놀랐었죠. 앨범 커버나 제목이 좀 이상하다고 느끼기는 했지만 그 정도로 강한 음악들이 수록되어 있는 줄은 상상도 못했던 거죠. 그래서 처음에는 ‘에이, 이게 뭐야’ 하면서 잘 듣질 않았는데 록 음악에 기호가 생기고 나서는 새롭게 들으며 좋아하게 된 앨범이기도 해요. 고등학생 때는 록 밴드가 하고 싶은데 악기를 연주할 줄을 몰라서 친구들과 ‘입밴드’를 결성하기도 했었어요. 입으로 악기소리를 내면서 노래도 하는 거죠. 주요 연습곡은 너바나의 ‘Smells Like Teen Spirit’!”



4. 드렁큰타이거의 < Year of The Tiger >
대학생이 된 유세윤은 장동민과 유상무를 만났다. 그리고 기묘한 유머감각을 공유한 이들은 ‘옹달샘’이라는 팀을 만들어 개그맨의 인생을 함께 걷는 평생의 동료가 되었다. 그리고 ‘옹달샘’을 위한 노래를 골라달라는 부탁에 유세윤은 이들이 처음 만난 해를 상징하는 노래들을 떠올렸다. “저희가 99학번이에요. 그 해를 상징하는 노래가 드렁큰타이거의 ‘난 널 원해’, 그리고 코요태의 ‘순정’이었어요. 대학 신입생 때 클럽에 가거나 어디 놀러 가기만 하면 두 곡이 꼭 흘러나왔거든요. 듣기만 해도 그 시절로 돌아가는 기분이 드는 그런 노래 있잖아요. 다양한 장르를 좋아하는데, 그중에서 힙합도 굉장히 좋아해요. 그래서 특히 ‘난 널 원해’는 아직도 굉장히 아끼는 노래입니다. 가사도 거의 다 기억 하는걸요. 타이거 인 더 프레즌스 범범! 예!”



5. Deep Purple의 < Singles & E.P. Anthology `68 – `80 >
한때 국내 록밴드 ‘신조음계’의 앨범을 소장할 정도로 지극한 록키드였던 유세윤이 딥 퍼플의 명곡 ‘Smoke On The Water’를 추천하는 것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나 그 곡을 아주 오랫동안 결혼식의 주제곡으로 꿈꿔왔다는 사실은 아무래도 비범하다. “결국 실현시키지는 못했지만, 정말 어렸을 때부터 항상 제 결혼식을 상상할 때는 ‘Smoke On The Water’가 배경음악이었어요. 처음엔 멀쩡하게 결혼행진곡으로 시작해요. 딴딴딴따- 그러다가 음이 고조될 때 슬쩍 바뀌는 거죠. 딴딴딴- 딴딴따라- 어때요? 감쪽같을 거 같죠? 하하. 결혼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신혼여행도 사실은 자전거를 타고 전국 일주 같은 걸 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다 무산됐죠. 아내가 아기를 임신 중이어서 그런 무리한 모험을 할 수는 없었거든요.”




실제로 유세윤의 유년기는 발군의 상상력과 평균 이상의 관찰력으로 만들어낸 자신만의 모험과 같은 시간이었다. 영화 <구니스>를 동경해 동네 탐험대를 조직하기도 하고, 만화 속의 박사님처럼 스스로 만든 자동화 기계를 통해 방의 형광등을 손대지 않고 끄기도 하고,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가 대 유행일 때는 일부러 같은 노래의 영어 버전인 ‘블라인드러브’를 외워 부르고 다녔다고 한다. 물론, 가사는 손수 한글로 받아 적었던 것이었지만. 남과 다른 일을 마음껏 할 수 있었던 시간은 진부하지 않고 지루하지 않은 대단한 개그맨을 탄생시켰다. 그래서 지금 마음껏 자신만의 개그를 펼치는 그에게 더 큰 기대를 보내게 된다. 자유로운 시간이 축적된 만큼 그의 개그 내공도 깊어질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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