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의상 너무 튄다. 이 동네하고 진짜 안 어울린다.” 하얀 피부, 소녀처럼 가느다란 몸. 챙이 넓은 흰색 모자와 알록달록한 상의. 그래서 젊은 시절 “웃으면 남자들 뿅 갔다”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드는 여자, 미자. 미자는 마을을 돌아다닌다. 농사를 하느라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의 여자가 있는 마을을, 타인의 도움 없이는 운신이 어려운 할아버지가 있는 마을을. 미자에게 이 마을은 어울리지 않는다. 파출부 일을 하며 근근이 생계를 잇는 생활 보호 대상자이지만, 시상을 떠올리며 천진한 표정을 짓는 미자에게 이 마을은 어울리지 않는다. 미자는 애초에 시가 어울리는 여자다. 강 노인(김희라)을 돌본 뒤에는 깨끗하게 샤워를 하고, 다시 곱게 단장한 모습으로 돌아가는 미자의 모습에는 삶의 팍팍함이 보이지 않는다. 미자는 그가 좋아하는 꽃과 같다. 세상의 소음과 먼지에 시달려도, 여전히 곱게 마을의 어딘가에 있다.

흔히 볼 수는 없지만 어딘가에 있는 꽃
윤정희│시처럼, 꽃처럼
윤정희│시처럼, 꽃처럼
그래서 윤정희였다. 수백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남자들이 혈서를 쓰게 할 만큼 “남자들을 뿅 가게” 만들었고, 영화제에서 상을 타면 서울 거리에서 카퍼레이드를 했던 슈퍼스타. 그러나 윤정희가 와 만난 것은, 화려한 충무로 시절이 아닌 그 전후의 삶 때문일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어린 시절부터 그가 언젠가는 프랑스로 떠나 우아한 예술가의 삶을 살기를 바랐다. 그리고 윤정희는 “마음 먹은 만큼”만 배우 생활을 한 뒤, 피아니스트인 남편과 함께 프랑스로 떠났다. 매일 가족들과 함께 영화를 보며 잠드는 삶. 그는 남편의 연주와 함께 미당 서정주의 시를 낭송한 앨범을 냈다. 그 수많은 ‘트로이카 여배우’ 중 누군가는 대중의 곁에 남아 한국인의 삶 속에서 어머니가 됐다. 하지만 윤정희는 프랑스에서 고운 꽃이 되고 있었다. 스튜디오에서 비발디의 곡에 환하게 웃으며 춤을 추듯 몸을 움직이는 꽃으로.

흔히 볼 수는 없지만 어딘가에 있는 꽃. 는 윤정희가 평생 동안 품어온 자태를 거리로 옮겨 심었다. 미자가 샤워를 위해 옷을 갈아입을 때, 관객들은 마치 여린 소녀와 같은 윤정희의 등을 볼 수 있다. 윤정희의 그 등은 마을과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미자의 존재를 현실로 만들어놓는다. 어떤 옷을 입어도, 어떤 상황에 있어도 시를 쓰는 것이 어울리는 여자. 여전히 고전적이라 말할 수 있는 배우의 아우라가 2010년의 스크린에 나타나자 마치 시처럼 현실에서 사라진 것 같았던 고운 여자가 등장했다.

그녀가 쓴 우리들의 시
윤정희│시처럼, 꽃처럼
윤정희│시처럼, 꽃처럼
하지만 미자가 보며 설레던 살구처럼, 시는 깨지고 밟힐 때 우리의 다음 생에 기여할 수 있다. 예순이 넘는 동안 미자는 마치 마을의 혹은 세상의 주변인처럼 살아갔다. 생활 보호 대상자였지만 사는 게 그리 힘들다고 느끼지 않았고, 자신에게 손자를 맡긴 채 타지에서 돈을 벌어 얼굴 한 번 보기 힘든 딸과의 관계는 “친구 같은 사이”라며 낭만적으로 포장했다. 그리고 살면서 있었던 많은 일들을 잊었다. 망각과 외면으로 가능했던 시와 같은 삶. 그러나 미자에게 어울리지 않았던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어느 순간 그의 삶으로 들어올 때, 미자는 더 이상 그들을 외면하지도, 망각하지도 못한다.

뙤약볕에 그을린 채 과일을 수확하던 여자의 얼굴 뒤에는 누구에게도 말하기 어려운 깊은 슬픔이 있었다. 몸을 움직이지 못하던 노인에게는 미자가 생각지도 못했던 모습이 있다. 그가 자신이 몰랐던 어떤 비밀을 알게 된 순간부터, 미자에게 마을은, 또는 현실은 며칠 전 그가 바라보던 곳이 아니다. 시상이 떠오르지 않을 만큼 슬픈 세상. 미자가 그 세상에 무언가 해야 시를 쓸 수 있다면, 그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 순간 는 기적을 보여준다. 현실이 시가 되고, 시가 현실을 움직이는 기적. 그리고 마을에 어울리지 않았던 할머니, 미자가 사실은 세상의 상처를 고치려 했던 성(聖) 미자였음을 보여주는 기적. 그리고 본명이 미자인 윤정희는 우리와 오랫동안 떨어져 있던 과거의 여배우가 아니라 지금의 한국으로 돌아와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고 참회하게 만드는 여배우가 된다. 가히 종교적이라고 해도 좋을 의 구원은 한국의 현실과 비현실적일 만큼 아름다운 예술가의 세계 어딘가에 놓인 윤정희의 존재감을 통해 가능했다. 미자는 마을에 어울리지 않는 여자다. 1960년대의 스타 윤정희는 2010년의 한국과 어울리지 않는 여배우다. 그러나 미자는 마을로, 한국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시를 썼다. 우리가 볼 수 없었던 우리의 세상에 대한 시를.

글. 강명석 two@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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