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수 없겠지만 믿어야 하는 이야기. 윤정희가 정상의 인기를 누리고 있을 때, 그는 한 영화제에서 상을 탄 뒤 서울 시내에서 카퍼레이드를 했다. 그리고 더 믿을 수 없는 이야기. 윤정희는 그 인기를 뒤로 하고 원래 계획대로 프랑스로 떠났다. 한국 영화사를 장식한 최고의 스타였고, 프랑스로 떠난 뒤에도 꾸준히 시나리오가 들어오며, 아직도 팬클럽이 있는 배우. 그리고 15년만의 작품으로 이창동 감독의 를 선택한 배우. 윤정희는 대체 어떤 인생을 사는 배우일까. 그에게 인생과 영화에 대해 들었다.

개봉에 맞춰서 여러 매체와 계속 인터뷰 하는데, 이런 경험은 처음이시죠?
윤정희 : 처음이에요. 한창일 때는 시간도 없고, 기자들이 현장으로 오거나 단체로 오는 경우가 많았죠. 그런데 이번에는 를 사랑하고, 배우로서 작품만 끝내고 떠나는 것 보다는 좋은 작품을 성공적으로 알려드리는 게 의무 같았어요. 새로운 친구들하고 인터뷰를 하니까 새로운 것도 많이 배워서 좋구요.

“서른다섯 번씩 찍은 장면도 있다”
윤정희│“<시>는 칸 작품상으로 충분한 영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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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정말 만족스러우셨군요. (웃음)
윤정희 : 그럼요. 이 영화를 보시면 내 말에 대해 찬성하실 거예요. 가 칸에 가기도 했지만, 내가 심사위원이라면 정말 에게 작품상을 줄 거예요. 다른 엄청나게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는 한, 작품상으로 충분한 작품이에요.

그 대단한 작품이 아마 일 겁니다. (웃음) 이창동 감독은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윤정희 : 되도록 좋은 영화를 많이 보려고 해요. 이창동 감독의 영화도 당연히 다 보려고 했죠. 예전에는 영화제 심사를 많이 해서 큰 화면으로 많이 봤는데, 이창동 감독의 영화는 아쉽게 DVD로 볼 수밖에 없었어요. 보면서 와, 이렇게 훌륭한 감독이 있구나 했죠.

이창동 감독의 작품 중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 뭐였나요?
윤정희 : . (웃음)

하하. 이창동 감독은 어떻게 출연을 설득하던 가요?
윤정희 : 설득 같은 건 전혀 없었어요. 언제 이창동 감독이 우리 부부하고 자기 와이프하고 넷이서 밥을 같이 먹자고 하길래 만나서 식사를 하고 커피숍에 갔는데 거기서 할 말이 있다는 거예요. 자기가 날 생각하고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데, 계속 말없이 있는 게 마음이 무겁다고. 그 말을 듣고 우리는 “오우!”하면서 너무 기뻐했어요. 주제도 물어보지 않고, 아무 스토리도 모르고 그냥 하겠다고 했죠. 요즘 애들은 그렇게 말하더라구요. “감동이에요.” (웃음) 딱 그런 기분이었어요.

는 여주인공이 거의 모두 끌고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작품이고, 배우로서 힘들법한 부분도 많던데요. 시나리오를 받고 어떤 기분이었나요?
윤정희 : 시나리오를 받아보니까 작품의 90% 이상을 내가 끌고 가야 하더라구요. 그만큼 책임감도 더 커지고. 하지만 시나리오가 너무 좋았고, 미자 역이 너무 매력적이었어요. 요즘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꿈도 꾸고, 아름다움 속에서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영화 안에서 큰 사건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우리 인생에 평화롭고 아름다운 것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하지만 미자를 연기하기는 보통 일이 아니었을 것 같아요. 같은 선생님의 과거 작품을 보면 그 시절의 연기는 지금보다 연극적인 느낌이 강하잖아요. 요즘 배우들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쪽이구요. 특히 이창동 감독은 배우에게 최대한 자연스러운 연기를 주문하구요.
윤정희 : 이 영화는 멜로드라마도 아니고, 서스펜스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에로틱한 것도 아니에요. 극단적으로 가는 연기가 아니라 다양하고 섬세한 연기가 필요했어요. 그리고 이창동 감독은 굉장히 사실주의적인 연출을 하잖아요. 세트나 데코레이션 하나까지, 엑스트라도 보통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연기해야 하고. 그런 연기를 하는데 노력이 필요했어요. 어쩔 때는 한두 번에 오케이를 받기도 하고, 너무 어려웠을 때는 서른다섯 번을 한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100% 잘 되는 영화가 어디 있겠어요. 풀리지 않는 장면에서 해답을 찾는 희열이 행복을 주잖아요?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모든 스태프들이나 이창동 감독과 호흡이 잘 맞았기 때문에 고통스럽지는 않았어요. 어떤 정답을 찾는 것 보다는 계속 대화하면서 결과물이 조금씩 나왔던 것 같아요.

“이창동 감독과 얘기하면서 내가 몰랐던 날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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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희│“<시>는 칸 작품상으로 충분한 영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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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다섯 번 찍은 장면은 어떤 장면인가요?
윤정희 : 어떤 아주머니를 만나서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부분이 있어요. 그런데 그 때 미자는 한 편으로는 굉장히 낭만에 젖어 있는 상태에요. 약간 환상에 빠져 있는 사람 같기도 하고. 그게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참 비현실적인 순간일 수도 있는데, 그 모습을 어떻게 자연스럽게, 미자처럼 연기해야할지가 너무 어려웠어요.

이창동 감독은 선생님의 연기에 대해 어떻게 얘기하던가요?
윤정희 : 이창동 감독의 연기지도가 너무 좋았어요. 자기가 시나리오 쓰고 자기가 연출하는데, 감독 자신이 상상하는 미자의 모습을 다양한 아이디어로 제시해줬으니까요. 이창동 감독과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내가 몰랐던 윤정희를 볼 수 있었구요. 그래서 대화를 많이 하고, 둘이 사이좋게 열심히 할 수 있었어요. 서른다섯 번 찍은 장면도 미자와 닮은 점이 있어서 계속 몰입할 수 있었어요. 나도 미자처럼 가끔 현실에서 넋을 놓고 자기도취에 빠지기도 하니까요. (웃음) 삶을 살면서 작은 것도 지나치지 않고 그 아름다움에 빠지는 것도 비슷하고.

하지만 미자와 선생님의 삶의 모습은 전혀 다르잖아요. 동년배의 매우 다른 여성인데, 이 미자에게 어떻게 접근하려고 하셨나요?
윤정희 : 그런 생각을 갖기 보다는 순간 순간의 느낌에 따라 움직였어요. 물론 촬영 전에 공부는 다 했지만 현장에서는 순간적인 느낌에 충실했던 것 같아요. 카메라 앞에 설 때는 꿈을 꾸듯 몽상에 빠지거든요. 그런 느낌을 유지하는 게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됐어요. 나는 지금도 착각을 하면서 살거든요.

뭘요?
윤정희 : 나이를! (웃음) 물론 정신과 육체의 나이차가 너무 생기면 안 되겠지만. (웃음) 그런데 학교 다닐 때 책을 읽으면 그 주인공에 빠져 날아다녔어요. (웃음) 그래서 데뷔 작품이었던 의 여주인공 오유경도 먼저 책을 읽으면서 참 매력적인 여자라면서 빠져들었는데, 그런 생각이 후에 작품을 하는데 도움을 많이 준 것 같아요.

꽃을 보면 지금도 가슴이 뛴다고 하시더니 그 때도 문학 소녀였군요. (웃음)
윤정희 : 꽃 싫어하는 사람 없잖아요? (웃음) 난 가슴이 뛰는 게 아니라 고함을 질러요. (웃음)

글. 강명석 two@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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