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원│“적도 많고 친구도 많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런 제작자로 살 것”
정태원│“적도 많고 친구도 많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런 제작자로 살 것”
누군가는 그를 인정사정 볼 것 없는 제작자라고 말합니다. 누군가는 그를 영민한 비즈니스맨으로 평가합니다. 누군가는 그를 의리를 아는 형님이라고 부릅니다. 이십 대 초반, 영화 수입으로 충무로에 발을 디딘 무서울 것 없는 청년은 이후 등 대중영화의 제작자로 파워리스트에 그 이름을 올렸습니다. 타고난 비즈니스 능력,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와의 돈독한 인연 속에 시리즈 등 굵직굵직한 외화를 수입해 큰 수익을 올리는 실속 있는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대표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009년에는 도박에 가까운 블록버스터 드라마 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짓고 올해 6월 다시 200억 원 예산의 스핀오프 (이하 )에 차승원과 정우성을 캐스팅해 촬영을 앞두고 있습니다. 오늘도 를 둘러싼 몇몇 소송과 계약을 처리하는 가운데 6월 개봉을 앞둔 영화 의 마지막 편집을 보고 왔다는 강성의 워커홀릭. 예민한 예술가들이 추앙 받고 숫자와 규모가 홀대 받는 한국 엔터테인먼트 세상에서 이 무서운 추진력의 에너지 덩어리에 대한 평가는 엇갈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성공한 제작자 이전에 한 눈 팔지 않고 한 길을 걸어온 사람으로서의 그의 열정을 부정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인터뷰 100’의 9번째 주인공은 거대한 포화를 뚫고 나와 또 다시 즐거운 포화 속으로 부지런히 발을 옮기는 사내, 태원 엔터테인먼트의 정태원 사장입니다.
100: 예전의 사무실에 비해 작지만 훨씬 안정적인 느낌이네요.
정태원: 선택과 집중의 시기니까요. 사실 집에서 일 보고 현장에 있는 게 좋지 이렇게 인터뷰 있을 때를 제외하면 사무실에도 잘 안 나와요. 작품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배우 같은 삶이랄까. (웃음)

“는 스핀오프, 는 내년에 KBS에서”

100: 사실 올 연말 정도에나 방영 될 에 대한 관심과 기대치를 단숨에 높여 준건 역시 정우성, 차승원의 동반 캐스팅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정태원: 처음엔 국제시장을 고려해야 하니까 당연히 한류스타부터 생각했죠. 그런데 이게 누구를 가져다 놔도 이병헌보다는 약해 보이는 거야. 더 세보여도 모자랄 판에 캐스팅부터 약해 보이면 안 되잖아. 결국 고민을 하다가 한류스타를 버리자, 그냥 한국 시청자만 생각하자는 방향으로 갔죠. 한국에서 봤을 때 누가 나왔을 때 이병헌에게 밀리지 않을까? 아! 그러면 둘을 붙여야겠다, 기럭지 긴 놈으로다가. (웃음) 원래 차승원이 먼저 캐스팅이 먼저 되었는데 이후 정우성이 결정한 후에 한 번에 공개를 하니까 반응이 좋았죠. 또한 이병헌과 정우성을 비교 할 수 없도록 캐릭터를 아예 차별화시켜 놨어요. 우성이는 이병헌처럼 정예요원이 아니라 초반에는 풀어져 있고 실수도 많이 하는 그런 캐릭터예요.

100: 그러다가 여자 캐스팅이 나왔을 때 의외라는 반응이 있었어요.
정태원: 누가 보기에도 잘 할 것 같은 여자 캐스팅은 오히려 피하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다소곳한 느낌의 수애가 스파이 역할을 잘 해 낼 때 시청자들이 와, 수애에게 저런 면이 있었어? 라고 놀랄 수 있으면 더 좋다고 생각했죠. 김태희도 처음엔 얼마나 반대가 심했는데. (웃음) TV는 한 회에 끝나는 게 아니잖아요. 처음에 탐탁지 않아도 시청자와 두 달 반을 싸워서 끝에 이기면 되는 거예요. 사실 이지아는 얼마나 안티가 많아? (웃음) 그녀를 둘러싼 수많은 의혹들을 이 기회로 다 밝히면서 갈 거예요. 사실 난 좀 채울게 있는 사람이 좋아요. 그 사람이 나하고 일해서 잘 되는 데서 보람을 느끼나 봐요. 게다가 수애는 고전적이고 이지아는 현대적인 얼굴이라 그 조화도 좋았고. 여하튼 캐스팅에 대한 반응을 뒤엎을 수 있는 드라마로 평가 받고 싶어요.

100: ‘시즌 제 드라마’가 한참 이슈가 된 시기가 있었는데 한국 시장에서는 좀 무리가 있다는 회의적인 시선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의 경우 분명 와 연계가 있는데 배우가 다르단 말이죠. 배우가 동일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이 시리즈를 계속 가져갈 수 있겠다고 자신한 점은 무엇이었을까요? 기획에 대한 확신인건가요?
정태원: 사실 를 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는 엄밀히 말하면 ‘스핀오프’고 는 내년에 KBS에서 할 거예요. 이병헌, 김태희도 함께. 출연이 확정되었다고 말할 수 없지만 그 사이 내가 준비한 카드의 메리트가 충분하면 바보가 아닌 이상 하겠죠. 그러니 결국 나에게 달린 거예요. 내가 내년까지 탐나는 카드를 그들에게 던질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하는 거죠. 현준(이병헌)이 어떻게 부활하는지는 이미 써놨거든요. (웃음) 이야기 해줬더니 배우들이 좋아하더라고. 3가지 버전이 있어요. 첫째, 현준이 부활해서 또 다른 20부를 끌고 가는 거, 둘째 초반에 현준이 등장했다가 중간에 새로운 누군가가 바톤 터치를 해서 새로운 팀들이 이야기를 이어받는 거. 3안은 아예 현준이 죽은 이후 NSS의 새 팀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까지. 결국 캐스팅이 1편에서 이어질 수 없을지는 장담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는 만들어 질 수 있다는 말이죠.

100: 그렇다면 는 새로운 시리즈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 거겠네요.?
정태원: 뉴욕도 있고 라스베이거스도 있는 것처럼, 같은 시대에 NSS도 있고 NTS도 있는데, 는 NTS이야기인 거죠. 그래서 에서 나왔던 사람들이 크로스오버 되기도 할 거예요. 쉽게 말하면 의 정우성이 스위스 북한대사관 앞에서 의 김승우를 만나서 조명호 대통령의 안부를 물어 볼 수도 있는 구조라는 거죠. 내년에 가 만들어 지면 거기에 정우성이 등장 할 수도 있는 거고. 그런데 하나는 KBS, 하나는 SBS고. (웃음) 보통 미국 시리즈들의 크로스오버는 같은 방송국, 같은 프로덕션에서 이루어지지만 우리는 프로덕션은 같은데 방송국이 다른 셈이에요. 그 긴장감이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고 여러 시도를 해보는 거죠.

100: 이미 광화문광장까지 점거한 을 본 시청자들에게 에 더 센 거, 더 큰 거, 더 화려한 볼거리를 원할 것 같은데 그런 점에서 부담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정태원: 그렇죠. 그런데 오히려 그게 부담이라기보다는 를 통해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해보고 싶은 욕구가 더 커요. 사실 총예산은 와 같이 200억인데 의 성공이 만들어 놓은 길이 있어서 지원해주겠다는 곳이 많아서 더 적은 돈으로 더 많은 욕심을 내 볼 수 있으니까요. 우리가 같이 일하는 스태프들이 워낙 영화 현장에서 단련된 사람들이라 전투력이 뛰어나요. 뭔가 일이 떨어지면 안 된다는 게 없어요.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고민은 있어도 이게 안 되니까 다른 걸 주세요, 하는 경우는 없거든요. 물론 내가 워낙 지랄 맞기도 하고 마음에 안 들면 난리를 치니까. (웃음) 촬영장 가면 소품팀, 촬영팀, 조명팀, CG팀, 미술팀 할 것 없이 한 팀씩 나에게 다 깨지는 식이니까 늘 좀 더 나아지고 있어요. 오늘도 아침에 시즌 8 보다가 나왔는데 사실 요즘 시청자들도 그렇겠지만 나도 매일 미드만 보고 있으니까 눈높이가 높아질 수밖에 없잖아요. 스태프들도 내 요구의 수준이 높다는 걸 아니 긴장을 많이 해요. 어디에도 본 적이 없는 걸로 만들려면 모든 소품들에 리터치가 들어가는데 그렇게 한번 뒤집고 나면 다음엔 확실히 달라지는 거죠. 없으면 만들어, 식이니까. 에서는 미술 팀이 2팀으로 늘었고, 소품 팀도 강화했어요. 지금 NTS 세트제작 도면을 받고 있는데 되게 멋있어요.

100: 해외촬영의 스케일도 커졌더라구요.
정태원: 이탈리아, 싱가포르, 일본, 중국 아마 뉴질랜드도 갈 수도 있고. 초반에만 나오는 게 아니라 중간 중간에 해외에 가는 걸로 잡았어요. 스태프들도 3 유닛으로 나눠서 좀 더 효율적으로 찍어요. A팀이 이탈리아에서 촬영하고 있을 때 B팀은 싱가포르에서 준비하고 마지막 유닛은 CG와 특수촬영을 담당하는 식이죠. 만들면서 아, 이렇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찍을 수 있겠다, 하는 부분을 최대한 적용해서 찍으려고요. 또 에는 1, 2부 대학교 장면을 제외하면 너무 몰아쳐서 쉬어가는 부분이 좀 없는데 는 웃음도 많고 유머가 많을 거예요. 재미있는 조연들도 많이 배치할 예정이고.

100: 의 촬영은 언제 들어가나요?
정태원: 6월에 국내에서 찍다가 7월에 로마, 베니스 등 이탈리아 북부, 싱가포르, 다시 국내로 들어왔다가 9월쯤에 중국 베이징, 일본은 10회 이후에 찍으려고. 그렇게 5개월쯤 찍고 11월에 방영 될 것 같아요. 시청자는 끊임없이 예측을 하고 우리는 계속해서 그 예측을 피해가야 하니까 사전제작을 다 해놓으면 힘들어요. 작전이 들키는 순간, 그 부분을 다시 찍어야 하니까요. 네티즌들의 의견을 어마어마하게 봐요. 블로그도 그렇고, 어떨 땐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고. (웃음)

“사실 우리 회사의 별명이 ‘태원 재활원’”
정태원│“적도 많고 친구도 많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런 제작자로 살 것”
정태원│“적도 많고 친구도 많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런 제작자로 살 것”
100: 태원엔터테인먼트가 95년에 창립되었으니까 벌써 15주년이네요. 그 사이 한국영화계도 르네상스가 찾아오고 거품이 빠지기까지 엄청난 파고를 겪었는데, 그 안에서의 지난 15년을 스스로 돌이켜 보면 어떤가요?
정태원: 하…. 힘들게 살았어. (웃음) 그때 영화잡지 파워 순위 안에 들면서 활동하던 사람들 중에 지금까지 왕성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많이 안 남아있죠. 그만큼 이 판이 거칠고 힘든 거고.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겠다고 등장했다가 바람처럼 사라진 사람들도 많으니까. 그냥 나는 꾸준히 여기에서 어쨌든 서바이벌 해온 사람인 것 같아요. 한국에 내 이름으로 법인을 차린 게 95년이고 미국에서 일을 시작한 게 86년이었어요. 공연 프로모팅부터 시작해서 88년에 비디오 사업을 시작했고 92년부터 를 시작으로 외화를 수입했죠. 그러다가 95년에 한국에서 회사를 차리고 를 개봉하고 96년에 마이클 잭슨 내한공연을 하고 를 제작해서 97년에 첫 한국영화를 개봉을 하게 된 거죠.

100: 고등학교 때까지는 한국에 있다가 대학을 미국으로 갔는데요.
정태원: 주변에 친한 친구들이 이민을 많이 가기도 했고 막연히 미국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릴 때 교환학생이 오면 나는 머리 빡빡 깎고 있는데 걔네들은 머리도 길고, 우와 멋있는 거야. (웃음) 그래서 크면 꼭 미국을 가야지, 했죠. 공부엔 큰 뜻이 없기도 했고. 처음엔 샌프란시스코로 갔다가 이후 L.A.로 가서 공부하고 거기서 첫 사업을 시작한 거죠.

100: 어떤 사업이었나요?
정태원: 85년에 윤형주, 김세환, 조영남, 양희은 같은 한국 통기타가수들을 L.A. 오디토리움에 초청해서 교민상대로 공연을 했는데 그게 성공적으로 잘됐어요. 그걸 한 후에 너무 재미있고, 내 길은 이 길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러다가 미국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들어가서 미국공연을 배우고 이후 한국 가수를 초청해서 공연 프로모팅을 시작했죠. 그러다 88년 올림픽 때 미국에서 모델을 데려다가 올림픽공원에서 KBS랑 같이 올림픽 패션쇼 같은 걸 기획했어요.

100: 88년이면 겨우 이십 대 초반이었을 텐데, 어릴 때부터 꽤 간이 큰 청년이었군요. (웃음)
정태원: 예, 간이 컸었죠. (웃음) 80년대 말에 한국에 비디오 붐이 불었어요. 비디오 회사가 몇 백 개 있고 비디오 잡지만 해도 꽤 많았고, 그때는 주인공이 총 들고 있는 외화를 수입만 해 오면 만장, 이 만장 나갔어요. 정말 말도 안 되는 시절이었지. 여하튼 그 때 비디오 시장에 뛰어들어서 딜러, 즉 미국영화를 수입해서 한국에 파는 일을 시작한 거죠. 내가 제일 많이 팔았어. (웃음) 한 500편 이상? 최하 만 불은 받았으니까. 돈을 진짜 많이 벌어서 물 쓰듯이 썼죠. 어릴 때니까. 에휴, 그 돈 다 어디 갔나 몰라. (웃음) 그런데 돌이켜 보면 나는 쭉 이 일 밖에 안 했어요. 부동산이 뭐고 다른 사업에는 관심이 없어. 밖에서는 나를 되게 비즈니스맨이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나는 버는 돈은 족족 다 영화 일에만 쓴 것 같아요. 물론 내가 비즈니스를 못하는 건 아니지만. (웃음) 오랫동안 알고 지낸 CNN 한국 사장님은 나를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때 ‘Street Smart’하다고 해요. 길에서 부딪히면서 배운 노하우라고. 외국 애들하고 비즈니스 할 때도 늘 항상 말도 안 되는 개똥철학을 늘어놓기도 하고.

100: 어떤 거요?
정태원: 의리, 희생 이런 거? (웃음) 희생 없는 감동은 없다. 이런 이야기. 어릴 때 이 일을 처음 시작할 때 내 경쟁자들이 극장주들이었어요. 그러다가 대기업이 영화에 뛰어들면서 그 분들이 무너지고 대기업 간에 가격경쟁이 붙었죠. 그러다가 다시 그들이 떠나고 또 다른 자본이 들어와 멀티플렉스 극장사업 경쟁이 붙고…. 어쨌든 충무로의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그 물갈이에서 죽었죠. 나는 거기서 안 죽으려고 발버둥을 쳤고. (웃음)

100: 그 놀라운 서바이벌의 비결을 무엇이었을까요??
정태원: 오버하지 않는 것? 뭔가 잘되어도 거기에 취하지 않고 향후 2년은 직원들 월급 주고, 회사 임대료 내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는 큰 지장은 없겠구나, 그 정도로 받아들이는 거죠. 반대로 망하면 너무 속이 쓰리지만 한번 왜 망했나 생각 한 이후엔 다시 돌아보지 않은 거고. 안 좋은 기억은 도움이 안 되니까 빨리 잊으려고 노력하고. 또 다른 하나는 판을 볼 줄 알았던 거죠. 아, 이 판이 어떻게 변하겠구나. 그 다음엔 내 포지션을 어디에 놔야 하는지 주제파악을 하는 거죠. 묻어 갈 때는 철저히 묻어가고 홀로 자생해야 할 때는 외롭게 가는 거고. 대신 그 상황에서도 잘 안될 때를 대비한 백업플랜도 만들어 놓고 그렇게 부딪혀가면서 온 거예요. 그런데 나는 주장이 센 사람이라 그 와중에서도 결국 내 뜻을 관철시켜왔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적이 많이 생겼죠. 사람도 많이 안 만나고. 저는 매년 핸드폰의 번호가 계속 줄어요. 지금 한 200명 정도가 저장되어 있는데, 그 중 100명이 지난 6개월 사이에 만난 사람들인 것 같아요. 6개월 지나면 또 다 지워지겠지. 그때 작업하고 있는 일에 관련된 사람만 만나니까. 그런데 이제는 그렇게 안 살려고. 너무 폐쇄적으로 살았더라고.
정태원│“적도 많고 친구도 많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런 제작자로 살 것”
정태원│“적도 많고 친구도 많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런 제작자로 살 것”
100: 그 어떤 제작자보다 배우밀착형의 프로듀서로 유명하잖아요. 따르거나 어울리는 배우들도 많고, 실제로 매니지먼트를 운영하기도 했고.
정태원: 나는 늘 그들의 형이라고 생각해요. 형이니까 동생들을 위해서 내가 먼저 희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대신 내가 남들이 시도해보지 않은 일을 하려고 할 때 그들 역시 돈 보다는 먼저 내 뜻을 믿고 따라와 주기를 바라는 거죠. 밖에서는 태원이 돈이 넘쳐나는 회사인줄 알지만 사실 안 잡힌 건 장기 밖에 없어요. (웃음) 모든 프로젝트가 시작 때는 힘들게 마련인데 배우들이 다 도와줬어요. 형이 돈 벌어서 땅 사겠다는 게 아니라 작품 만들겠다는 걸 아니까. (웃음) 도 도 그런 믿음 없이는 제작되기 힘들었던 작품들이었죠. 영화가 안 되면 제일 처음으로 미안한 게 배우예요. 꼬셔가지고 하자고 했는데 내 영화로 그 사람 인생에 스크래치를 만들게 된 거니까. 마음의 빚으로 남죠. 그래서 어떻게든 그 빚을 갚고 싶고. 사실 우리 회사의 별명이 ‘태원 재활원’이에요. (웃음) 나는 송강호 같은 배우들하고 일을 못해요. 늘 톱이고 어디에도 하자가 없잖아. 오히려 배우들이 위기일 때, 어려울 때 나하고 작품 해서 ‘재활’ 이 되면 그게 그렇게 좋아요. 이번 에서 제 1의? ‘재활’ 대상은 김민종이에요. 예전에 민종이랑 를 했는데 그게 잘 안됐거든. 에서 되게 중요한 역할이에요. 북한 특수요원 출신으로 탈북 해서 남한에 있는 사람인데 상당히 웃길 거예요.

100: 현재 일본 TBS를 통해서 가 방영 중이죠?
정태원: 는 기존의 한류 팬이 아니라 일본의 젊은 층들에게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이 참 좋아요. 대부분의 한류 팬들이 점점 나이가 들고 계시니까. (웃음) 에서 시작된 한류가 정말 좋은 바람을 불러 일으켰지만 역으로 이 한류가 반한류를 이끄는 주범이 되기도 했었던 것 같아요. 팬이 주로 중, 노년 층 여성에 편중이 되다 보니 엄마가, 부인이 한국 드라마에 빠져 있는 모습을 싫어한 사람들이 생기고 에서 이어지는 소위 ‘한류 드라마’가 주로 멜로다 보니까 젊은 아이들, 아저씨들은 한류스타, 하면 고개를 젓고 하는 부분이 있었고요. 대신 요즘 좋은 현상이 동방신기나 빅뱅 같은 아이돌, 최근엔 걸 그룹까지 일본에 진출하면서 젊은 애들이 한류를 넘어서 그냥 그 그룹을 좋아한다는 점이 한류에 대한 새로운 포인트인 것 같아요. 사실 는 기존 한류 팬들이 보기엔 전개나 속도가 너무 빠르고 정통 멜로가 아니잖아요. 일본 TBS와 우리의 전략도 이병헌의 기존 팬을 공략하자는 게 아니었어요. 홍보도 기존 한류 타겟형 드라마와는 달리 아예 보통 일본 드라마 홍보하듯이 했고 ‘한류’라는 말을 일단 의도적으로 안 썼죠. 공항에 한류 팬들 모이는 사진 같은 걸 절대 안 내보내고요. 기존 한류 팬보다는 젊은 층과 남자 시청자를 잡자는 것이 최우선이었던 거죠. 지난주에 4.6%인가? 유료위성에서 TBS사상 시청률 기록이 나오고 있어요. 이번 주 수요일이 5회가 나온다는데 일본 공중파 프라임타임 9시에 들어간 건 미국드라마가 8시에 들어간 이후 처음이라고 하더라고요.

“를 통해 전 세대들 겪은 시대를 볼 수 있었으면”
정태원│“적도 많고 친구도 많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런 제작자로 살 것”
정태원│“적도 많고 친구도 많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런 제작자로 살 것”
100: 는 어떻게 기획되었나요?
정태원: 전쟁영화는 한번쯤은 만들어 보고 싶었는데, 어쩐지 지금이 아니면 만들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올해가 전쟁 발발 60주년인데 조금 지나면 젊은 사람들에게 한국전쟁은 임진왜란 같은 게 되버리겠더라고, 자기 할아버지도 겪지 못한 그런 전쟁. 그래서 아 올해가 되게 중요한 해구나 이 해에 만들어야겠다, 젊은 사람들에게 전쟁이 얼마나 무섭고 끔찍한 것인지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가 장사가 잘됐으면 하는 마음도 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 전 세대들이 어떤 시대를 겪어 왔는지 이 영화를 통해 더 많이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어요.

100: 의 이재한 감독은 외국에서 자라고 공부한 사람이잖아요. 어떻게 보면 한국전쟁에 대한 체감온도가 가장 낮은 사람인데 그에게 메가폰을 쥐어주었던 점은 의도적이었을까요?
정태원: 오히려 색다른 느낌의 전쟁영화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죠. 그런데 막상 맡기고 보니 그 간극이 너무 큰 거야. 워낙 비주얼에 강한 감독이라 화면은 기대 이상이었지만 한국전쟁을 전혀 모르는 배경의 사람이고 세대이다 보니까 처음엔 찍어 온 걸 보고, 이건 도대체 어느 나라 전쟁이니? 하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죠. 중간부터 각색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같이 만들어 나갔어요. 지금은 모두가 만족할 수준의 결과를 만들었다고 자부하고요.

100: 늘 하비 웨인스타인 같은 제작자를 꿈꾼다는 말을 하셨는데, 하비에게는 마틴 스콜세지 같은 감독이 있잖아요. 지금까지 비교적 기획력, 프로듀서의 힘이 강한 작품들을 주로 제작해 왔는데 스콜세지처럼 강력한 감독이 옆에 있기를 꿈꾸지는 않나요??
정태원: 물론 있죠. 김지운 감독 같은 감독하고도 하고 싶고. 그런데 나한텐 과분 한 것 같아요. 그런 감독이 왜 나하고 하겠어요? 소문 들어서 익히 아실 텐데. (웃음) 내 별명이 ‘김일성’이 예요. 내 멋대로 다 한다고. 신현준 핸드폰에는 내 번호가 ‘김일성’으로 떠요. 어느 날 인터넷에서 형 사진 찾았어, 하고 보내준 사진도 김일성 사진이었고. (웃음)

100: 혹 그런 적극적인 간섭과 참여를 보이는 건 언젠가 감독을 하겠다는 뜻이 있는 건가요?
정태원: 아뇨, 특별히. 물론 사람이 장담을 할 순 없지만 일단 지금은 프로듀싱이 좋아요. 감독들에게는 늘 이렇게 말해요. 내가 적군도 아니고 그저 기 세고 경험 많은 조감독 하나 있다고 생각하라고. 감독은 예술 하려고 하는 거고, 나는 관객들이 만족하는 지점을 찾아야 하는 사람이고. 모니터 결과를 보여주면서 설득을 하는 거죠. 그러다 설득이 안 되면 김일성이 되는 거고. (웃음)

100: 제작의 중심 혹은 철학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정태원: 다양한 스타일의 제작자들이 있잖아요. 감독 위주의 제작자가 있고, 제작자 중심적인 제작자가 있고 어떤 사람이 옳다고 말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물론 저는 후자 쪽이죠. 하지만 내가 잘 할 수 있는 건 상업영화, 상업드라마라고 생각해요. 그 동안 국내외를 돌아다니며 얻은 노하우가 있으니까 뭘 가르친다거나 간섭한다기보다는 훈수를 둘 수 있는 조력자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걸 잘 흡수하는 감독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는 거죠. 나는 감독에게 나쁜 짓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내가 감독 자리가 욕심이 나서 월권을 하려는 것도 아니고요. 그저 감독이 하려는 예술성과 관객이 원하는 상업성을 중간에서 조율하는 그 역할을 너무 충실하게 하는 제작자라고 생각해요. 그 스타일을 바꿀 생각은 없어요. 물론 내가 너무 강성이니까 물론 좀 더 부드러워 져야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웃음) 하지만 나는 앞으로도 이런 제작자로 살 것 같고, 이런 제작자도 분명히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100: 이미 꺼내놓은 카드만 해도 현실화 하려면 만만치 않겠지만 혹시 품고 있는 또 다른 카드가 있으세요?
정태원: 생각한 건 많은데 일단 와 시리즈에 집중을 해야 할 것 같고, 또 조만간 신현준, 탁재훈, 공형진 등 우리 코미디 가족들을 불러 모아서 (웃음) 한국판 같은 작품을 드라마로 만들어보고 싶어요. 공중파에서는 소프트버전, 케이블은 하드버전으로 확실히 구분시켜서 배급하고. 액션도 액션이지만 모든 것에서 업그레이드 된 액션 코미디를 하고 싶어요. 일본 가서 야쿠자랑도 붙고, 이태리 마피아랑도 붙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 사람 때리는 걸 좋아하거든요. 김두한처럼, 처럼. (웃음) 현장이 너무 즐거우니까 다를 빨리 시작 하자고 난리예요. 그런데 당장 해야 할 작품들이 있으니까 이 프로젝트는 작가를 계약해서 일단 대본은 시작 시키려고요.
정태원│“적도 많고 친구도 많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런 제작자로 살 것”
정태원│“적도 많고 친구도 많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런 제작자로 살 것”
100: 그런 계획이라면 영화는 당분간은 힘들겠네요.
정태원: 영화는 까지 합쳐서 28편을 했어요. 너무 달려왔어요. 딴 건 몰라도 추진력이 되게 있거든요. 한다고 하면 무섭게 밀어붙이니까. 그렇지 않았으면 불가능했을 일이 많죠. 그러다 보니 지난 15년 동안 항상 촬영을 하고 있었던 거죠. 개봉을 그만큼 맞이한 거니까 흥행이 되든 안 되든 매번 안 힘든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영화 같은 TV에 마음이 가고 있어요. 드라마 시청률이 오르니까 그건 천만 관객 영화와도 비교가 안 될 만큼의 파급력이 있더라고. 짜릿함도 다르고 시장도 훨씬 커요. 영화는 한번 보고 말지만 잘 된 드라마는 몇 달 동안 한 나라가 그걸로 살잖아요. 이제 막 시작했으니까 드라마를 2, 3개 더 해보고 싶어요. 그러다가 다시 영화하고 싶은 생각이 들면 그 때 시나리오를 하나, 둘 들춰보겠죠. 그저 그 순간 가장 재미있고 하고 싶은걸 하고 싶어요. 나는 촬영장에 가 있는 게 너무 좋아. 되게 건강해지는 것 같거든요.

글, 사진. 백은하 one@
편집. 장경진 three@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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