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숙 : “내가 누군 줄 알아? 하느님 부처님하고 맞장 떠서 이긴 년이야.”
– KBS 에서 강숙의 대사 중 –
그리고, 이미숙은 시대와 맞장을 뜬 여배우다. 데뷔 30년째, 바로 지금이 절정일지도 모를 여배우의 길.

원미경 : 이미숙이 인기상을 받았던 1978년 ‘미스 롯데’ 선발대회에서 1등을 한 배우. 아버지가 아홉 살에 세상을 떠난 뒤, 어머니가 혼자 생계를 책임지는 모습을 보면서 이미숙은 “알아서 열심히 커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고, 친구의 권유로 ‘미스롯데’에 출전했다. 당연히 1등을 할 줄 알았지만 인기상을 받게 되자 충격 때문에 펑펑 울다 “난 기필코 유명해지겠다”고 다짐하며 연예인 생활을 시작한다.

유인촌 : MBC 의 ‘장희빈’에 함께 출연한 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이미숙은 장희빈으로 명실상부한 톱스타가 됐다. 사약을 거부하는 장희빈에게 다른 사람들이 숟가락으로 억지로 입을 벌려 사약을 먹이는 장면은 지금도 회자될 만큼 강한 인상을 남겼다. 당시 악녀가 드라마 중심에 서는 경우는 흔치 않았고, 죽는 순간까지 독기를 내뿜는 경우는 더더욱 없었다. 그는 이 작품으로 당시로서는 드문 카리스마적인 팜므파탈의 이미지를 가질 수 있었다. 또한 당시 일부 영화감독들은 여배우가 의미 없는 노출 연기를 거부하면 “모든 스태프들이 기다리게 만들어 노출을 피할 수 없게”하곤 했는데, 이럴 때면 촬영을 거부했다. 이 때문에 감독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위해 작품과 캐릭터 연구에 매달리게 됐다고. 지금도 회자되는 영화 에 출연할 당시에도 “그렇게 많이 싸운 사람은 이두용 감독이 유일”하다고 할 만큼 연출자와 많이 싸웠고, 이두용 감독은 이미숙의 의견을 많이 받아들여 작품에 반영했다.

안성기 : 영화 , 등에 함께 출연한 배우. 이미숙은 에서 말을 잃은 매춘부, 에서 청순가련한 여성을 연기했다. 두 작품과 ‘장희빈’, 등을 비슷한 시기에 연기한 것은 그만큼 작품의 폭이 넓었다는 증거. “안정적이고 어떤 패턴에 고정되는 걸 싫어”하던 그는 이때부터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다. “자신이 스스로 변신을 꾀하지 않으면 변신을 시켜줄 사람은 없다. 내가 변신에 대해 고민하면 내 주위에 그런 사람들이 모이고, 그 사람들은 나를 변신시키려고 한다”는 게 그의 지론. 에 출연한 것도 ‘장희빈’으로 인기를 얻은 뒤 연기에 대한 고민에 빠져 내린 결론이었다고. 또한 “배우들과 수많은 얘기를 하면서 엄청난 순발력을 요구”하는 배창호 감독과 을 찍으며 “감독과 많이 얘기하고 작품에 자꾸 참여하려는 버릇”이 생겼다. 여러 이미지의 캐릭터에 도전하고, 이른바 ‘스태프형 배우’라고 할 만큼 작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지금의 모습은 이때부터 시작된 셈.

강부자 : 이미숙이 자신의 연기 인생에 가장 큰 도움을 줬다고 말하는 배우. 데뷔 전 직접 그를 찾아와 사극에 데뷔시켰고,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조언을 했다. 특히 결혼 후 슬럼프에 대해 강부자와 의논을 하기도 했는데, 결혼 후 제작진들이 “결혼한 여자니까 이거 이상은 안 돼”라고 하거나, 무조건 애 엄마 배역만 주는 것에 상처를 입어 10여 년 동안 영화에 출연하지 않기도 했다. 일 때문에 “부인으로서 어머니로서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던 그는 “남편이 늘 비어있는 아내의 자리를 보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는 이유로 20여년의 결혼 생활을 정리하기도 했다. “가족에게만 정성을 쏟지 못해 미안할 때가 많지만 나는 일에 목숨을 걸어왔다. 아직 내가 최고이고 싶다는 생각은 변함없다”고 말하는 여배우가 일과 가정을 유지하기란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인 듯.

이재용 : 이미숙이 출연한 영화 , , 을 연출한 감독. 결혼 후 10년간 “가장 속상했던 시절”을 보내던 이미숙은 이재용 감독이 기획 단계부터 그를 생각했던 를 통해 화려하게 복귀한다. 13년 전에는 37세의 여배우가 영화 주인공으로 출연해 여동생의 약혼자를 사랑하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건 파격적인 일이었다. 당시 그는 키스신 하나를 찍는데도 5시간동안 매달릴 만큼 공을 들였고, 는 그에게 “10년이 지나도 세련된 느낌이 나는 영화”로 남았다. 이후 영화 에서 불륜에 빠진 여성, KBS 에서 20대 남자를 사랑하는 40대 여성을 연기하는 등 중년 여성 연기자의 새로운 영역을 열기 시작했다. 이미숙을 통해 한국에서도 중년의 여배우가 ‘누구 엄마’나 ‘누구 아내’가 아닌 ‘여성’이 되기 시작했다.

전도연 : 영화 에 함께 출연한 배우. 당시 전도연은 이미숙에 대해 “연기할 때만 잠깐 긴장상태에 들어가고, 모든 부분에서 릴렉스하다. 위트와 카리스마가 넘친다”고 말했다. “계산하지 않고 수절하든가 아주 밤도망을 가버리든가 드라마틱한 선택”을 하는 사극 속 여자들에 매력을 느껴 에 출연한다. 수많은 남자들을 농락하며 여장부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카리스마적이지만 동시에 섹시하고, 여기에 중년의 연륜까지 묻어나는 의 캐릭터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여성 캐릭터였다. 을 시작으로 이미숙은 ‘포스’ 넘치는 중년 여성의 캐릭터를 자유롭게 소화할 수 있게 된다. 그는 같은 영화를 만들어 “할머니 대부터 손녀까지, 심장을 짜는 극적인 신파와 모던한 여성성이 공존하는 드라마”를 만들고 싶은 꿈을 갖기도 했다.

송승헌 : MBC 에 함께 출연한 배우. 이미숙은 에서 “생애 첫 조연”을 했다고 말했지만, 그의 비중은 결코 주연 못지않았다. 그의 캐릭터는 작품 초반을 이끌어갈 뿐만 아니라 주인공인 두 아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이 캐릭터가 보여준 강인하고 질긴 생명력은 전체의 이미지다. “배역을 맡으면 10가지 캐릭터를 분석한 뒤 감독이 원하는 것을 잡아내는 노력”을 하고, 배우는 “인성과 개인의 철학과 사회의식과 연기라는 고도의 기술이 합산돼서 탄생”해 “관객의 일상을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의 연기관이 50대에 이르러 빛을 발하고 있는 것. 다만 은 이미숙의 연기력과 별개로 작품성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또한 한국에서 중년 여배우의 ‘포스’를 마음껏 보여줄 작품을 찾기란 쉽지 않다. 과연 그가 또 한 번 자신의 한계를 뚫고 자신의 걸작을 남길 수 있을까.

고현정 : 영화 에 함께 출연한 배우. 에는 이미숙에 앞서 장희빈을 연기했던 윤여정도 함께 출연했다. 또한 은 그가 출연한 영화 , SBS 등 여러 여성들이 출연하는 작품의 완성형이라 할 수 있다. 에서처럼, 이미숙은 윤여정과 고현정 사이를 잇고, 젊은 후배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릴 수 있는 여배우들의 좌장이다. 그는 젊은 여배우들이 보고 자란 톱스타일 뿐만 아니라, 지금도 주연급으로 자리 잡은 채 그들의 롤모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에서 윤여정-이미숙-고현정이 함께 대화하는 장면은 당대에 한국 여배우의 틀을 뛰어넘은 여성들의 기록이기도 하다. “내가 나이기 이전에 여배우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 이 여배우는 그렇게 기록에 남을 여배우가 됐다.

문근영 : KBS 에 함께 출연하는 배우. 에서 이미숙이 연기하는 강숙은 주연은 아닐지라도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자, 자식세대의 운명을 바꿔놓는다. 강숙은 살기 위해 자신의 여성적인 매력으로 남자들을 유혹했고, 자신의 욕망 때문에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다. 그러나, 동시에 남편을 경제적으로 이용하면서도 자신이 누군가의 아내가 된 것에 눈물 흘리고, 효선(서우)을 괴롭히면서도 자기 친자식에게는 끔찍한 모정을 보여준다. 남편이 “뜯어먹을 것 많아” 좋아한다면서도 그의 건강이 악화되자 지극 정성으로 건강을 돌보고, 죽은 뒤 서럽게 우는 여자의 진심은 무엇일까. 이미숙은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여자의 복잡다단한 모습을 강숙의 모습 안에서 완벽하게 소화한다. 는 여자를 선-악으로 나누는 대신 이기적이고, 욕망에 충실하며, 그럼에도 마음 한 켠에는 따뜻함을 원하는 있는 그대로의 여자를 보여줬다. 그리고, 그 여자를 연기할 수 있는 배우는 이미숙이다. 지금 이미숙은 그런 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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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에서 이미숙과 함께 출연한 전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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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윤종신김종국최지우휘성박찬호이효리장서희최양락다니엘 헤니이수근권상우소지섭이민호최명길정형돈김남주박진영손담비김태원신해철송강호김아중김옥빈이경규김혜자고현정원빈이승기닉쿤지진희박명수김혜수신동엽현빈윤은혜G드래곤하지원타블로김C유승호양현석강호동김태희김연아장동건장근석김병욱 감독정준하손석희정보석고수이병헌이수만김현중김신영장혁김수로이선균신정환김태호 PD강동원송일국노홍철조권김제동문근영손예진김수현 작가하하

글. 강명석 two@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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