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KBS 의 종영 이후 2년 2개월만이다. 그 사이 만화나 인터넷 소설을 각색한 드라마들이 시장의 대세로 자리 잡았고, 단막극의 부활은 요원해보였다. 그러나 5월 15일 노희경 작가의 ‘빨강 사탕’을 시작으로 단막극은 다시 TV로 돌아온다. 그리고 앞으로 6개월간 총 24편이 방영될 이 레이스를 가 함께 뛰며 응원할 것이다. 을 이끌어갈 인물들에 대한 차별화된 시선과 현장 기사까지 의 스페셜한 기사는 매주 월요일 홈페이지와 에서 볼 수 있다. /편집자주

KBS <드라마 스페셜> ①│노희경의 손을 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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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커는 무조건 큰 게 좋다. 양보는 없었다. 돈을 모아서 키의 절반쯤 되는 스피커를 샀다. 방에는 이미 두 사람쯤 누울 공간만 남았다. 옷장을 없애고 스피커를 들였다. 밤에는 그 스피커 사이로 머리를 뉘고 잠들었다. 스피커 사이의 간격이 너무 좁아 꼭 헤드폰으로 음악을 듣는 것 같았다. 반대편으로 눕기엔 문을 통해 들어오는 한기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었다. 아침이 되면 일어나 노트북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방은 자물쇠로 잠갔다. 가족 중 누군가 들어오지 않도록. 나 상처 입었어. 나 좀 봐줘. 나 좀 이해해줘! 하루 종일 바깥에서 글을 쓰다 집에 돌아왔다. 울었다. 윤상의 음악을 듣거나, 를 보면서.

나도 아팠지만, 너도 참 아팠었구나
KBS <드라마 스페셜> ①│노희경의 손을 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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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옥(배종옥)이는 어째 저리 사나. 오입쟁이던 아버지는 볼 때마다 속없는 말로 찌르지. 매일 생선 대가리를 잘라야 하는 가게에서는 언제 누구하고 머리끄덩이를 잡을지 모르지. 그래도 혼자 애는 키워야 하지. 어머니는 그런 내 앞에서 바보처럼 웃고만 있지. 세상에 칼이라도 휘두르고 싶었던 그 시절에, 노희경 작가는 내게 다 이해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알고 있다고 했다. 너 같은 사람을 알고 있다고. 갈 곳도, 쉴 곳도, 이해받을 곳도 없는 인생이라는 게 있다는 걸 안다고. 그때부터 조금씩 덜 울기 시작했다. 노희경 작가는 나를 알고, 미옥이를 알고, 미옥이의 어머니를 알고, 심지어 사고로 미옥이의 동생을 죽게 만든 인철(김명민)도 알고 있었다. 나도 아팠지만, 너도 참 아팠었구나. 그리고, 어머니는 그래도 바보처럼 웃던 거였구나. 어느 순간부터 미옥이처럼 나도 나를 배웅하는 어머니를 뒤돌아보기 시작했다. 더 이상 미워하기엔, 우리는 그렇게 그들의 삶을 알아버렸다.

과 을 보며 그들의 불륜에 돌을 들 수 없었고, “나는 구로동이 싫어”라며 신분상승의 사다리를 기어올라가던 의 재호(배용준)의 휑한 어깨를 감싸주고 싶었다. 알고 보니, 우리는 모두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채 살고 있었다. 우리 모두가 사실은 소외된 삶을 산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오히려 위안을 얻고, 그래야 타인과 소통할 수 있다는 눈물 나는 역설. 어떤 드라마는 판타지를 준다. 어떤 드라마는 삶을 반영한다. 그리고, 노희경 작가는 드라마 속의 ‘그들이 사는 세상’을 보여주면서 그들의 아픔이 우리와 다르지 않고, 그리하여 우리가 소외에서 벗어나 소통의 기회를 마련하도록 했다. 의 술집 작부도, 의 게이도 모두 ‘그들’이 아니라 같은 슬픔과 상처를 가진 ‘우리’였다. 을 보았던 사람들이 혼자 드라마 보기를 멈추고 작은 모임을 만들어 을 단체 관람한 것은 노희경 작가가 그와 소통하고자 했던 시청자에게 무엇을 주는지 보여준 최초의 현상이었다.

타인에게 손 내미는 방법을 알려주는 노희경
KBS <드라마 스페셜> ①│노희경의 손을 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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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노희경 작가는 그들에서 우리의 이야기로, 다시 우리의 세상으로 나아갔다. 부터 에 이르는 작품들이 우리와 다를 바 없이 살고 사랑하고 아파하던 사람들의 단편이었다면, 는 그들 각자가 자신의 방에서 나와 소통할 수 있는가를 보여줬다. 그것은 가난으로부터, 아버지로부터 상처입었던 노희경 작가가 스스로 자신의 상처를 고백하는 시간과도 같았다. 누군가는 가난해서, 누군가는 가족을 위해, 누군가는 과거를 덮기 위해 죄를 짓고, 거짓말을 하고, 비밀을 만든다. 누구도 타인이 자신을 이해해줄 것이라 생각하지 않으며. 그러나, 그들이 누구에게도 이해받으려 하지 않을수록, 그들이 사는 세상은 거대한 소외 지역이 된다. 우리는 어떻게 과거의 죄로부터 벗어나 진심을 소통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는가. 노희경 작가는 에서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스스로의 상처를 드러냈고, 에서 그 상처로부터 파생된 현대인의 소외된 삶을 바라봤다. 사회의 소수자를 위로하고, 그들의 삶을 보는 시청자와 내밀한 고백을 주고받고, 모두가 스스로를 아프고 불쌍하다 여기는 공동체를 발견한다. 그렇게 노희경 작가는 우리 모두를 알고 있고, 우리에게 타인에게 손 내미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소외된 개인이 작은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을 건넨 뒤, 노희경 작가는 에서 어떤 공동체의 삶을 보여준다. 한 방송사의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은 일과 사생활의 경계조차 불분명하고, 끊임없이 서로에게 사랑과 상처를 번갈아 주면서 살아간다. 직장 동료와 연인, 선배와 친구의 경계가 불분명하고, 연인의 이별과 만남의 기준조차 모호한 어떤 방송사의 드라마국. 그들이 사는 세상은 타인의 시선에서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노희경 작가는 또다시 알고 있다. 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세상에서 살지만, 그 세상 안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아무리 괴롭고 힘들어도 드라마 방영시간은 다가오고,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당장 눈앞의 동료와 함께 일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지긋지긋한 공동체에서의 삶은 그들이 어떻게든 살아가도록 만드는 힘이 된다. 작은 방에 웅크리고 있던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었던 노희경 작가는, 이제 그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에 손을 내밀고 있다. 그래도, 함께 살자고. 노희경 작가가 집필하는 의 첫 작품인 ‘빨강 사탕’이 기대되는 것은, 단막극의 부활 이전에 새로운 시기에 접어든 그가 어떤 삶에 대해 이야기할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방의 자물쇠가 사라진 그 다음. 노희경 작가는 또 무엇을 알고 있을까.

글. 강명석 two@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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