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규 “비록 서른넷이지만 귀여운 이미지를 얻었다”
임지규 “비록 서른넷이지만 귀여운 이미지를 얻었다”
“혹시 독고 형님 사진이?” 테이블에 놓인 비타민 음료 병을 보며 농담을 던지는 임지규에게서는 여전히 MBC 에서 자신이 연기했던 독고진(차승원) 매니저 재석의 얼굴이 자연스레 드러났다. 올해 초 MBC 의 비서 강우 역에 이어 에 출연하면서 이제 복잡한 출근길에도 알아보는 이들이 생겼지만 지금 임지규가 있는 자리는 오랫동안 나홀로 맨땅에 헤딩해 온 이 배우가 얻어낸 눈물겨운 결과물이다. 2004년 첫 단편영화 로 데뷔한 후 연기할 기회가 오지 않을 때는 스태프로 일하며 현장을 익혔고 과 등 독립영화와 상업영화를 두루 경험하며 한 걸음씩 나아갔다. 연기를 전공한 것도 아니고 왜소한 체형이 항상 콤플렉스였지만 곱상한 외모 뒤에 은근한 끈기를 지닌 그가 드디어 배우로서 ‘최고의 시간’을 맞이하기 시작한 것이다. 서른넷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는 ‘귀요미’, 그리고 연기에 대해서만큼은 여전히 군기 바짝 든 신인의 마음가짐으로 임하고 있는 임지규를 만났다.

MBC 때도 비서 강우 역할로 좋은 반응을 얻었는데, 그 때와 비교해보면 체감온도가 좀 다른가.
임지규: 우선 알아봐주시는 분들의 숫자가 많아졌고, 예전에는 그냥 쳐다만 보셨다면 이제 직접 아는 척 해주시는 분까지 생겼다. 오늘 새벽에도 교회에 가는데 길이 많이 막혀서 지하철을 탔다. 정신없는 출근길이니 설마 날 알아보겠어,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왠지 느낌이 이상해서 뒤를 스윽- 쳐다봤더니 아주머니가 휴대폰을 들고 나한테 “맞죠? 흐흐”라고 속삭이셨다. (웃음) 하지만 집에서 너무 급하게 나오느라 세수만 하고 나온 바람에 사진 촬영은 못 해드려서 죄송하다.

“차승원 형님이 내가 주목받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주셨다”
임지규 “비록 서른넷이지만 귀여운 이미지를 얻었다”
임지규 “비록 서른넷이지만 귀여운 이미지를 얻었다”
의 재석은 사람들이 “진짜 매니저 같다”고 말할 정도로 굉장히 사실적인 캐릭터였는데, 처음에 어떻게 접근했나.
임지규: 사실 처음에는 이 역할이 와 닿지 않았다. 성격이나 대사가 굉장히 평범했기 때문에 어떻게 연기해야 될 지 감이 안 잡혔다. 에서 강우가 구용식(박시후)에게 했던 것처럼 독특하고 공격적인 말투를 쓰면 그것만으로도 재밌을 수 있겠지만 그런 요소가 없다면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게 부족할 것 같았다. 게다가 독고진 캐릭터가 워낙 강하니까 나의 존재감이 미미하다는 생각에 촬영 초반에는 기가 많이 죽었다. 그런데 소속사 대표님께서 “이 역할은 네가 정말 매니저가 되어서 그 배우의 마음을 이해해주면 쉽게 풀릴 수 있다, 에서는 박시후 씨가 조금 무게를 잡고 네가 통통 튀는 역할이었다면 이번에는 네가 독고진 캐릭터가 살 수 있도록 받쳐줘야 한다”고 하시더라.

하지만 처음부터 욕심을 내려놓고 평범한 매니저를 표현하긴 쉽지 않았을 텐데.
임지규: 사실 손해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이 작품을 통해 에 이어 개성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데 혹시나 작품이 끝날 때까지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독고진과 재석이 캐릭터가 확실히 대비가 되니까 오히려 내 캐릭터가 살더라. 만약 내가 뭘 하려고 욕심냈다면 보는 사람도 오글거렸을 텐데 그걸 포기했더니 사람들이 귀엽게 봐주신 것 같다.

차승원과 미리 만나서 매니저 역할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고 들었다. 그 과정에서 차승원의 실제 매니저 이름(재석)을 가져오기도 했고.
임지규: 먼저 전화를 하셨다. 나 차승원인데, 하면서. (웃음) 같은 남자지만 카리스마 있는 남배우를 마주하는 게 쉽지 않았다. 포스가 남다르셨다. 차승원 형님이 재석이는 좀 더 부드럽고 말투도 공격적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애초 대본에는 “독고 형님, 이게 잘못된 거잖아요”라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스타일이었는데, 때로는 혼잣말로 궁시렁 대다가 독고 형님한테 그걸 들키는 식으로 직접적으로 얘길 안하는 게 낫겠다고 제안하셨다. 최대한 직접적으로 긁지는 말자고.

촬영에 들어가 보니 차승원과 호흡은 잘 맞던가.
임지규: 형님은 작품을 같이 하는 사람들에게 애정이 굉장히 깊으시다. 편집실에 가셔서 편집을 확인하고 나한테 전화도 하셨다. “지규야, 이 신 너무 재밌었어. 근데 이건 네가 좀 나갔어도 됐는데”라고 하시는데, 형님 몰래 통화 내용을 녹음까지 했다. 물론 첫 번째 이유는 형님의 충고를 잊지 않기 위함이었지만, 두 번째는 와, 차승원이잖아! (웃음) 이건 평생 보관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주변 사람들한테도 막 자랑했다. 흐흐. 나를 드라마 속 많은 조연 중 한 명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진짜 파트너로서 대하신다는 걸 느꼈다. 그 때부터 마음이 더 열렸다. 최대한 매니저처럼 보이게끔 연기했더니 어느 순간부터 형님이 내가 주목받을 수 있는 상황을 마련해주시고 나와 함께 애드리브를 만들어갔다.

“연예계에 대해 내가 오해한 부분도 많았다”
임지규 “비록 서른넷이지만 귀여운 이미지를 얻었다”
임지규 “비록 서른넷이지만 귀여운 이미지를 얻었다”
그 시작이 ‘술주정’ 애드리브였나. (웃음)
임지규: 아니, 그건 절정이었다. (웃음) 대본에는 구애정이 약간 오해할 정도의 상황이라고만 나와있었는데, 차승원 형님이 리허설 때 “지규야, 이건 로맨틱 코미디니까 조금 과하더라도 시청자들이 이해하실 거야”라고 말씀하셨다. 굉장히 디테일하게 주문하셨다. 뒤에서 가슴을 잡는데, 그걸 재밌게 잡았으면 좋겠다. 어차피 여자가 아니니까. 그리고 몸을 쓰다듬을 때는 가슴 쪽으로 왔다 갔다 하면 더 재밌을 거고, 그러다가 가슴을 훑었으면 좋겠다. 나도 하다보니까 이 상황이 어떻게 찍히고 있는지 그림이 그려졌다. 어차피 차승원 형님 몸도 좋으니까, 몸이 살짝 살짝 보여도 재밌을 것 같았다. 그래서 손을 넣어서 티셔츠를 가슴까지 올렸는데, 그대로 받아주시더라. 아, 형님이 용납하시는구나. 시청자들을 위해 더 강하게 막 위로 올렸다. (웃음)

‘술주정’ 장면 뿐 아니라 노래방에서 독고진과 ‘Heartbreaker’를 부르는 등 코믹한 모습을 많이 보여줬는데.
임지규: 사실 난 노래를 못한다. 생목으로 불러서 노래 세 번만 부르면 목이 쉰다. 심지어 랩이 들어간 노래는 울렁증이 있다. 근데 그 신은 독고 형님의 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기 때문에 내가 ‘Heartbreaker’를 불러야만 하는 분위기였다. 예전에 이 노래가 처음 나왔을 땐 랩은 못 따라하니까 그냥 흥얼거리다가 후렴구에 ‘허’ ‘허’ 이것만 따라했다. (웃음) 그러다가 직접 랩을 하려니까 죽겠더라. 매니저랑 둘이 대낮에 노래방에 가서 연습했다. 한 시간 반 동안 그 노래만 불렀다. 중간에 애드리브도 막 넣었다. ‘brand new G.D’라는 가사를 ‘brand new 재석’으로 바꾸고 춤까지 준비했는데 그건 편집됐다.

그와 다른 면에서 은 연예계라는 공간을 무섭도록 현실적으로 그린 드라마다. 단지 대본으로만 읽히지 않고 현실과 오버랩되는 부분도 있었나.
임지규: 내가 오해한 부분도 상당히 많았다는 걸 느꼈다. 직접 본 것도 아닌데 단지 전해들은 이야기들로 누군가에 대해 비호감이라고 착각한 적도 있다. 그런 일을 직접 당하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속상할까. 나를 공격하는 것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상처를 입게 되는데, 그런 상황을 드라마가 강압적이지 않게 잘 설명해줬다. 만약 나한테 이런 일이 닥친다면, 그래서 가족까지 건드리는 상황이 온다면 어떤 제스처를 취하는 게 덜 고통스러울 것 같다. 어쨌든 닥쳐봐야 알 것 같다.

아직까지는 그런 일이 없었던 것 같나.
임지규: 나를 건드릴 일이 뭐가 있으려나? 아! 오늘 기사에 내가 27살 때 코미디TV 의 작업남으로 출연했던 사진이 실렸다. 압구정 로데오 거리에서 거울을 들고 “저의 무기는 잘생긴 외모입니다”라고 날 소개하는 콘셉트였다. 이렇게 과거 사진이 공개되니까 이걸 어떻게 찾았나, 나한테 그만큼 관심이 있구나,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혹시 내가 들키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한 건 없나 라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지금 하는 행동이 몇 년 뒤에 이렇게 기사로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좀 더 조심스러워진다.

때도 그렇고, 여배우와 러브라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남자 배우와 붙었을 때 좋은 반응이 나오는 것 같다.
임지규: 특히 이번에는 외모적인 부분이나 키 차이가 많이 났기 때문에 더 귀엽게 봐주신 것 같다. 난 깔창을 하나 깔았고 차승원 형님은 단화를 신으셨는데도 머리 하나가 차이 나니까. (웃음) 그래도 효진 씨랑 붙을 때는 최대한 그림이 살아야 되니까 신경을 많이 썼다. 15회 때 나랑 효진 씨가 독고진 집에서 감자를 발견하는 장면이 있다. 둘이 같이 계단에서 올라와서 감자를 봐야 하는데, 음… 내가 더 빨리 올라가서 재빨리 자리에 앉은 상태로 감자를 발견해야 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님한테 “죄송한데 1분만 시간을 주세요. 효진 씨 키가 커서 뭐라도 깔아야겠어요”라고 말씀드렸다. 그리고는 양말 속에 깔창을 넣었더니 효진 씨가 그걸 보고 완전 깔깔대며 웃었다.

지난 인터뷰에서 이후에는 왜소한 체격을 보완할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오히려 그 부분을 아예 드러내놓고 하나의 캐릭터로 만들었다.
임지규: 의도했던 건 아닌데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것들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게 솔직한 것 같다. 그게 연기하기도 편하고. 오히려 (정)준하 형 때문에 덕을 본 것도 있다. 제니(이희진)를 앞에 두고 둘이 똑같이 귀여운 행동을 해도 상대적으로 내가 더 귀여워 보이는 부분이 있었다. 덕분에 처음으로 찌질하지 않다는 얘기를 들어봤다. 자칫 잘못하면 독고진한테 치여서 찌질하게 보일 수도 있었는데, 이번 드라마에서 귀여운 이미지를 얻었다. 비록 나이가 서른넷이지만 (웃음) 사람들이 ‘어우 나이 많아’가 아니라 ‘나이가 많은데도 귀엽네’ 하고 좋아해주시는 것 같다.

“남성스러운 역할을 하고 싶다”
임지규 “비록 서른넷이지만 귀여운 이미지를 얻었다”
임지규 “비록 서른넷이지만 귀여운 이미지를 얻었다”
과 을 거쳐 남자 주인공의 조력자 캐릭터가 뚜렷해졌다. 대중들에게 나를 어필할 수 있는 이미지가 생겼다는 건 좋지만, 이미지가 너무 고정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나.
임지규: 그래서 다음 작품에서는 과 많이 겹치지 않는 선에서 조금은 남자다운 모습의 역할을 해보고 싶다. 물론 지금의 모습을 기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걸 기대했다가 싫증내면 안 되니까. 주어진 작품들 중에서 내가 너무 편하게 할 수 있는 역할은 피하고, 임지규가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될 것 같다.

아무래도 드라마는 영화에 비해 본인이 캐릭터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여지가 적다는 아쉬움이 있을 것 같다.
임지규: 드라마에서 조연은 감초 역할로 분위기를 업 시켜줘야 하니까 아무래도 진지한 모습은 적게 나온다. 그에 비해 영화는 내가 뭘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좀 더 많다.

그래서 드라마에서 채우지 못한 갈증을 영화에서 풀고 싶다는 생각도 드나.
임지규: 그렇다. 지금 내가 남성스러운 역할을 하고 싶다고는 얘기했지만 당장 드라마에서는 기회가 없을 것 같은데 만약 영화 쪽에서 그런 기회가 생긴다면 하고 싶다. 어제도 차승원 형님한테 전화가 왔다. “너는 앞으로 영화하고 싶니, 드라마하고 싶니”라고 물으시길래 “영화하고 싶습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우리나라 배우들은 한 작품 끝나고 다음 작품까지 공백기가 너무 길다. 꾸준히 연기하는 게 좋은데 영화는 너를 각인시키는 데 있어서 자칫 도박이 될 수도 있다. 드라마와 영화를 병행하는 게 제일 좋다. 그래야 연기를 덜 쉬고 감을 잃지 않는다”고 조언해주셨다. 진심으로 날 걱정해주시고 잘 되길 바라시는 게 느껴져서 정말 감사했다.

혹시 연극에 도전해 볼 생각은 없나.
임지규: 오, 해보고 싶다! 얼마 전에 교회 축제에서 무언극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관객과 직접 만나는 묘한 매력이 있더라. 소극장도 있고 대극장도 있는데 지금 내 발성으로는 대극장은 힘들 것 같고. 연극이라는 게 좋은 작품을 계속 반복하는 작업이지 않나. 그 날 컨디션에 따라 다른 연기를 보여줄 수도 있고. 다만 혹시라도 내가 TV에서 조금 인지도를 얻었다고 해서 무대로 너무 쉽게 가는 것처럼 보일까봐 걱정되는 부분은 있다. 절대 무례가 되지 않게끔 연극에서도 임지규다운 모습을 보여주면서 기존에 연극하시는 분들의 기대를 채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길을 가면 사람들이 알아볼 정도까지 오는데 10년이 넘게 걸렸지만, 그 시간을 견뎌온 덕분에 앞으로 도전할 수 있는 영역들이 더 다양해졌다. 그동안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힘은 뭐였나.
임지규: 영화 을 굉장히 인상적으로 봤다. 앞이 안 보이는 주인공이 어느 선생님을 만나면서 ‘나도 뭔가 할 수 있다’는 걸 알아가고 성장해 가는데, 그 과정이 굉장히 설득력 있게 그려졌다. 스스로 그 과정을 이겨내려고 한 발 한 발 내딛는 모습이 나와 많이 닮아 있다고 느꼈다. 나 역시 어려운 상황에 있었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우리는 어느 순간 뿅-하고 성장해 있는 모습을 많이 보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다. 여기까지 오는데 오래 걸렸던 이유도 그만큼 오래 가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글. 이가온 thirteen@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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