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내가 너무 한심해서 과거로 돌아가 새 인생을 살고 싶을 때, 그 소원이 이뤄진다면 당신은 무엇부터 하겠는가. 미티 작가의 웹툰 <남기한 엘리트 만들기>(이하 <남엘만>)는 이토록 간단한, 어쩌면 크게 신선하지 않을 수도 있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한다. 어느 날 16년 전 과거로 돌아가 어른의 기억과 지식으로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는 남기한의 이야기는, 하지만 단순한 해프닝의 나열이나 쉽게 예측 가능한 이야기로 흘러가지 않는다. 좋은 학군에서 공부하기 위해 전학을 포기한 남기한의 행동은 계속해서 다른 사람들의 과거에까지 영향을 주고, 세상이 순리대로 흐르길 바라는 운명의 힘은 그에 상응하는 핸디캡을 남기한에게 부여한다. 담배를 피우다 아버지에게 혼나고 실수로 바지에 실례를 하는 코믹한 에피소드들은 어느 순간부터 역사와 평행이론에 대한 거대한 세계관 안에 통합되기 시작한다.

“누구나 과거로 돌아가길 꿈꾸지만, 그 목적은 다를 것이다, 라는 게 초반부터 있었던 생각이에요. 가장 흔한 생각인 ‘과거로 돌아가서 잘 먹고 잘 살자’라는 남기한을 중심에 두고 과거로 돌아가 죽은 사람을 살리고 싶은 자, 세상을 바로잡고 싶은 자 등등 다른 목적을 가지고 과거로 돌아온 사람들이 계속해서 나타나 얽히고설킨다는 내용으로 채워나가고 덧입힐 생각이었어요.” 미티 작가의 말대로 남기한과 신영곤, 지성인 등 다양한 인물의 욕망이 얽히면서 <남엘만>은 작가 본인부터 “전개나 개념들을 스스로 놓칠까 봐 계속해서 정주행” 해야 할 정도로 복잡한 복선과 가설들 위에 세워지게 됐다. 에피소드 하나만 살짝 틀어져도 거대한 구조물이 와르르 무너질 것 같은 긴장감. 이것은 그만큼 200회가 넘는 동안 미티 작가가 <남엘만>의 스토리에 얼마나 주의를 기울였는지 증명한다. 그래서 이번 ‘그의 플레이리스트’에서는 범상치 않은 그의 상상력을 자극해준 음악들을 소개한다. 자신만의 색채로 칠해진 다섯 개의 완결된 세계들이 여기에 있다.




1. 넥스트의 <3집 The Return of N·EX·T Part II The World>
“학교 다닐 때 오랫동안 함께 했던 앨범이에요. 개인적으로는 넥스트 앨범 중에서도 최고라고 하고 싶네요. 그 중 ‘세계의 문’이 인상적인데, 몽환적인 음악과 함께 나오는 도입부 내레이션 가사는 그립다 못해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기억의 단편들을 떠올리게 하죠. 같은 앨범에 실린 ‘Hope’ 역시 추천하고 싶네요.” 미티 작가의 말대로 많은 넥스트의 올드팬들이 2집 < The Return of N.EX.T PART I The Being >과 함께 최고로 꼽는 명반 중의 명반이다. 2집에 이어 프로그레시브한 구성은 더욱 복잡해졌고, 김세황이라는 기타리스트의 가세로 솔로 연주는 더욱 현란해졌다. 신해철의 시적인 가사 역시 인상적인데 미티 작가가 추천한 ‘세계의 문’ 도입부의 향수 어린 가사는 <남엘만>의 정서와도 어느 정도 통하는 지점이 있다.



2. 체리필터의 < The Third Eye >
미티 작가가 두 번째로 추천한 곡은 체리필터의 ‘Back To The Future’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가사에 담긴 이야기가 <남엘만>과 많이 닮아있어요. 체리필터의 경우 각 앨범의 대표곡만 듣다가 이 곡은 연재 시작하고 나서 나중에 듣게 되었는데, 가사를 듣고 나서 ‘헐.. 이런 내용이 노래로도 나오는구나’ 생각했었어요.” ‘헐..’이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이 곡의 가사는 제법 파격적인데 나이 팔십의 할머니가 갑자기 젊어지며 가족에게 온갖 오해를 사고 오히려 나이 들었던 시절을 그리워한다는 내용이다. <남엘만>처럼 과거로 돌아가는 구성은 아니지만, 자신의 진실을 알아주지 않아 답답해하는 마음은 역시 만화와도 일맥상통한다.



3. My Chemical Romance의 < Three Cheers For Sweet Revenge >
“‘Welcome To The Black Parade’를 처음 접하고 무한 반복으로 듣다가 빠져들게 된 팀인데요, 특히 강렬하면서도 장난기 섞인 보컬이 마음에 들어요. 그러면서 < Three Cheers For Sweet Revenge > 앨범도 듣게 됐는데 여기에 수록된 ‘I`m Not Okay’는 요새도 작업할 때 랜덤 리스트에서 계속 돌아가고 있는 곡이에요. 제목부터 애써 담담한 척, 쿨한 척하지 않잖아요. ‘나 안 괜찮다고~!@#$@!’ 식인데 솔직해서 좋아요. 가사 내용도 재밌으니 천천히 들어보면 좋을 거 같아요.” 마이 케미컬 로맨스를 세계적 밴드로 만든 앨범은 역시 한 편의 거대한 록 오페라인 < The Black Parade >일 것이다. 하지만 < Three Cheers For Sweet Revenge > 시절의 그들 역시 약간 덜 정제된 느낌의 활기찬 이모코어 밴드로서의 매력을 보여준다.



4. Hanson의 < Middle of Nowhere >
유독 추억 속의 곡들을 많이 추천하는 미티 작가의 네 번째 추천곡은 팝을 좋아하지 않던 이들도 흥얼거리던 그 곡, 핸슨의 ‘Mmmbop’이다. “중학교 1학년 때 즈음에 기타 치면서 따라 부르던 곡이에요. 코드가 쉽거든요. 그땐 가사도 모르고 영어 역시 몰라서 소리 나는 대로 적어서 따라 불렀는데 지금 다시 들어보니 역시 ‘음밥’ 이거 빼면 다 다른 가사네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친형제 밴드인데 데뷔 당시 드럼 치는 막내가 정말 어려서 놀랐었어요. 보컬은 머리도 길고 예쁘장하게 생겨서 여자인 줄 알았는데 남자였고. 암튼 이래저래 놀라웠던 친구들이에요.” 만약 2011년에 등장했다면 얼굴만 믿고 나온 실력 없는 아이돌 밴드라는 식의 근거 없는 악플이 잔뜩 달릴지도 모르지만, 당시 세 소년의 풋풋하면서도 귀에 감기는 곡은 전 세계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5. 불독맨션의 <1집 Funk>
미티 작가가 마지막으로 추천한 곡은 불독맨션의 ‘Hello! My Friend’다. “2002년 월드컵 열기가 서서히 식기 시작할 무렵에 들었던 음악으로 기억해요. 전체적으로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경쾌한 음악이고요, 가사 내용은 <남엘만>에서 지성인이 해외로 이민을 갔다가 한국으로 돌아오는 모티브와 많이 닮아있네요. 아, 이것도 그리고 나서 생각해보니 그렇다는 걸 알게 됐어요. 하하.” < Funk >라는 제목만큼이나 그루브한 리듬 라인과 시원한 브라스 사운드가 제대로 훵키한 음악을 만들어내는 앨범이다. 이한철이라는 뮤지션의 진짜 재능은 음악을 진정 즐기는 태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불독맨션 1집은 몸을 들썩이며 들어야 하는 그런 앨범이다.




“결말에 대해서는 어떤 언급도 하지 않을게요”라는 작가의 말이 서운할 만큼, 최근 <남엘만>은 남기한의 예정된 죽음을 비롯해 수많은 궁금증을 계속해서 불러일으키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남엘만>은 이야기의 힘이 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좋은 이야기가 그렇듯, 오지랖 넓은 남기한이 어떻게든 운명의 힘에 저항하며 자신의 신념을 이뤄가는 과정은 인간의 보편적 가치에 대해 질문한다. “기본적으로 작가는 문제를 내는 사람이지 정답을 말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작품의 제목이자 모티브가 되는 ‘엘리트 만들기’ 역시 그래요. 남기한을 돈과 성공을 거머쥔 엘리트로 만들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무엇이 이 사회의 엘리트인지 독자에게 묻고자 하는 게 맞는 거 같아요.” 조심스럽되 문제의식을 놓치지 않으려는 작가의 태도는 미덥지만, 그래서 결국 단 하나의 불만을 불러일으킨다. 아니, 이러면 결말이 더 궁금해지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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