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주현, 그녀는 가수였다
옥주현, 그녀는 가수였다
무대로 나갈 때 옥주현은 제대로 걷지 못했다. 옥주현은 지금까지 출연했던 어떤 가수보다 더 긴장했고, 불안해했다. 무대에서 퇴장할 때는 다리가 휘청거렸다.

옥주현이 지난 23일에 있었던 MBC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의 무대에 서기 전 1주일, 그리고 무대에 선 뒤 다시 방송이 되기까지 1주일 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인터넷의 그 수많은 악플과 루머에 따르면 옥주현은 ‘나가수’에 서면 안 되는 사람이었고, ‘나가수’를 몰락시킬 주범이며, 심지어는 ‘나가수’ 출연진들 사이에서 분란을 일으킨다는 음해에 시달렸다. 임재범이나 이소라처럼 모두가 인정하는 가수들도 극도의 긴장감에 시달리는 무대에 옥주현은 자신에 대한 반감까지 견디며 노래해야 했다. 그리고 ‘천일동안’을 불렀다.

‘천일동안’은 누구나 알고 있는 명곡이다. 그만큼 위험한 선택이기도 하다. 완벽하게 다른 접근방식이 아니라면, ‘천일동안’은 새로운 편곡을 불허하는 거대한 성 같은 곡이다. 도입부에는 단지 피아노만 등장하던 곡이 하나 하나씩 소리를 쌓아가면서 어느덧 대규모 오케스트라가 등장하고, 곡 후반에는 록 기타와 색소폰까지 등장한다. 현악 오케스트라, 록 밴드, 관악기가 한 곡에 등장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가히 논리적이라고 할 만큼 악기와 악기가 하나씩 쌓여 점층적으로 스케일을 키운다. 이승환의 보컬은 그 사운드의 변화에 맞춰 낮고 처연한 감정부터 비명에 가까운 고음까지 모두 소화한다. 어지간한 가수는 이 곡을 제대로 부르는 것은커녕 비슷하게 재현하기도 힘들다. 노래를 제대로 부르는 것조차 어려울 뿐만 아니라, 원곡의 엄청난 편곡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완벽한 건축물 같은 원곡의 정교한 편곡을 뒤집을 만큼 새로운 편곡이 아니면 원곡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기 어렵다.

원곡과는 다른 해석, 갈리는 것이 당연한 호불호
옥주현, 그녀는 가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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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곡을 담당한 작곡가 윤일상이 트위터를 통해 오케스트라를 세우고 싶었다고 한 건 이런 문제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원곡과 아주 다르지 않을 바에야 편곡자 입장에서는 원곡 ‘천일동안’에 최대한 가까운 오케스트라 편곡을 동원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나가수’ 제작진이 음향에 신경쓴다 해도 ‘나가수’ 스튜디오에 현악기 연주자만 30여 명에 달하는 오케스트라 편곡을 할 수는 없다. TV 음향이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전부 살려낼 수도 없다. 또한 방송의 특성상 옥주현의 ‘천일동안’은 원곡보다 짧아야 했다. 옥주현의 노래는 그런 현실 안에서 최선의 결과물을 보여줬다.

옥주현은 원곡과 달리 처음부터 좀 더 강하게 힘을 넣어 노래했다. 짧은 러닝 타임 안에서 원곡처럼 도입부의 감정을 죽이면 폭발적인 후반부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후반부의 ‘그 천일동안 힘들었나요’가 시작되기 전, 원곡은 기타 솔로와 함께 터져 나오는 현악 사운드가 감정을 폭발시킨다. 하지만 옥주현은 같은 부분에서 원곡에 없던 보컬 애드리브를 넣는다. 단지 고음으로 청중 평가단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기 위해서가 아니다. 원곡과 달리 불과 네 명의 현악 연주자만 있고, 러닝타임 때문에 감정을 차분하게 끌어올릴 시간도 부족한 옥주현의 ‘천일동안’은 오케스트라가 곡을 폭발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 후반부의 폭발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옥주현의 보컬로 급격하게 곡의 흐름을 끌어올리는 방법밖에 없었다.

원곡을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옥주현의 ‘천일동안’이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 지극히 소박하게 시작한 뒤, 마지막에 거대하게 변하는 원곡과 달리 처음부터 드라마틱한 감정을 끌고 가려는 옥주현의 ‘천일동안’은 원곡의 정서와 다르다. 오케스트라 대신 기타를 전면에 내세우며 곡의 흐름을 바꾼 윤일상의 편곡은 훌륭했지만, 원곡의 오케스트라를 완전히 대체하기에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었다. 또한 마지막에서 최고음을 내지르면서 끝내는 옥주현의 곡 해석은 뮤지컬 출연을 통해 관객에게 호응을 얻어내는 노하우을 반영한 것이었겠지만 이 또한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옥주현의 ‘천일동안’은 원곡을 맹목적으로 복제하거나, 아예 무시하지도 않은 재해석이었다. 특히 뮤지컬 배우를 오래한 경험을 통해 아주 짧은 한 소절 안에서도 호흡 조절과 음 늘이기 등을 통해 마치 가사의 내용을 연기하듯 드라마를 그려냈다. 현장에서 옥주현의 노래를 들은 사람이었다면 이런 세밀한 기교는 큰 감동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겠지만, 옥주현이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며 자신만의 노래 스타일을 얻게 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무대에서 최선을 다하는 이들에게는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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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주현의 1위가 불만스러운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인터넷에는 옥주현의 1위에 대해 온갖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물론 사람들마다 음악이 다르게 들리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지금까지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던 한가지만 생각해보자. 대중에게 엄청난 비난을 받고, 무대에 오르는 순간까지 그렇게 떨면서도 왜 옥주현은 ‘나가수’에 출연했을까. 옥주현은 출연 이유를 묻는 질문에 “‘가수’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을 때 섭외에 응했다”고 답했다. 옥주현이 임재범처럼 큰 울림을 주는 가수라고 할 수는 없다. 그룹 핑클 해체 이후의 경력만 보면 가수로서 인상적이었다고 할 수도 없다.

하지만 설령 보잘 것 없는 경력을 가졌다 하더라도 어느 가수가 ‘나도 가수다’라고 고백했을 때, 그 가수가 최선을 다하는 무대에 “얼마나 잘하나 두고 보자”는 식의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을까. 설령 무대가 만족스럽지 못하다 해도 “인터넷에서 ‘옥’자 들어가는 글을 보는 것조차 두려운” 사람이 그럼에도 무대에 올라 최선을 다했을 때, 따뜻한 격려와 박수를 보낼 수는 없는 걸까. 무대의 감동을 느끼기 위해 ‘나가수’를 본다는 사람들이 그 정도의 여유조차 갖지 못하고, 오히려 가수의 ‘급’을 따지는 편견과 각박함을 드러낸다면 ‘나가수’는 왜 계속돼야 하는 걸까. 옥주현은 가수다. 그리고 가수가 최선을 다해 노래할 때 보여줘야 할 반응은 악플이 아니라 박수다.

글. 김명현 기자 eight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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