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내상 “연기를 한다는 건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안내상 “연기를 한다는 건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안내상과의 인터뷰가 진행된 카페 한 켠에서는 20대 초반의 청년들이 모여 기타 연주를 배우고 있었다.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대여섯 명 되는 그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즉석에서 기타 교습을 청하는 그에게선 KBS 의 인자한 스승이나 MBC 의 예민한 재벌 2세가 풍겼던 기운은 조금도 찾을 수 없었다. 그것은 스스로가 자신을 “20대와 동일시”하며 “아직도 청춘”이라 말한 이의 모습다웠다. 누구보다 치열한 청춘을 보냈고, 절망의 늪에서 “정체된 삶” 또한 살았으며 연기를 통해 “가슴 속에 담아두었던” 것들을 해소시킨 47살의 배우. 그럼에도 안내상이 아직도 청춘이라 말할 수 있는 근거는 그의 연기관에, 삶을 대하는 자세에, 후배들에게 건네는 말 한마디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가 배우로서 쌓은 신뢰만큼이나 나보다 앞서 인생을 산 선배로 더 신뢰하고 싶어진 그 날의 시간을 옮겼다.

첫 주연작인 영화 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영화는 어떻게 보면 부녀간의 사랑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무리한 설정들을 끌어오기도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연을 하게 된 것은 비단 주연이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안내상: 주연작을 그 동안 3번 정도 제안을 받았는데 다 엎어졌다. 나도 이제 어느 정도 선에서는 영화를 책임지고 갈 수도 있겠구나 하는 감은 좀 잡았는데. 물론 배우한테는 그렇게까지 작품이 다가오지 않는데도 주인공이니까 한다는 건 망하는 지름길이다. 어떤 느낌이 오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을 때 주인공이든 뭐든 하는 거라는 기본은 변함이 없다. 물론 이번엔 주인공이라는 부담이 좀 있긴 했다. 그래도 이건 내가 잘 표현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익숙한 감정인 동시에 한 번 도전해볼만 하겠다는 감정들이 공존하더라.

“에 대해서는 후회가 없다”
안내상 “연기를 한다는 건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안내상 “연기를 한다는 건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배우로서 도전해 볼만 하겠다하는 감정은 어떤 건가.
안내상 : 어떻게 보면 두열이라는 존재가 굉장히 불쌍한 인간이더라. 사회를 스스로 버렸다. 삶을 포기하고,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을 했는데 혈육이라는 엄청난 존재가 있다는 건 엄청난 사건이었을 거다. 내가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그런 인간의 감정을 표현해낸다는 것은 도전이었고, 해보고 싶었고, 만나고 싶었다. 어떤 사람이 나오게 될까 궁금하기도 했고. 다행스럽게 두열에게 들어갔고 결과가 나왔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웃음)

아무래도 딸 역이자 상대역인 진지희 양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재능 있는 아역배우를 넘어 스스로 배우라는 자의식을 가진 프로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똑 떨어지는 소녀인데. 함께 연기하면서는 어땠나.
안내상 : 아유, 애가 똑똑하고 너무 예뻤다. 너무 예쁘니까 진짜 딸 같고. 그래서 내 딸한텐 미안하지만 얘가 내 딸이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웃음) 그런 식으로까지 애정을 담아 줬다. 미운 짓이라고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눈 밖에 나는 짓이라는 걸 배워보질 못했나봐. 참 온전한 아이고 바르게 자랐고 재능이 워낙 출중하다. 아역들은 대부분 시키는 대로 하고, 어떻게 보면 귀엽게만 하려고 하고 깊은 감정을 담아내는 건 참 힘든 일인데 고맙게도 그런 걸 참 잘 해주더라. 만약에 지희가 그렇게 못했다면 나는 아주 힘들었을 거다. 허공에다 대고 혼자 소리치는 것밖에 더 되겠나. 그런데 얘가 다 받아주고, 오히려 에너지를 주니까 그것만 받아도 이 영화에서 두열의 역할을 충분히 해낼 수 있겠더라. 파트너복은 정말 탁월했다는 생각이 든다. 감독님도 처음에 몇 번은 터치를 하시더니 나중에는 그냥 놔두셨다. 그 어린애한테 믿음을 주더라.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지. (웃음) 근데 해내고 어떤 때는 그 이상을 해버리니까. 감독님한테 전화가 온다. 지희가 죽여줬다, 이러면서 지희 칭찬을 아끼지 않더라. 심지어 나는 샘도 나고. 아니 무슨 지희만 잘하나? (웃음)

그런 지희 양도 대단하지만 당신 역시 정말 치열한 배우 아닌가. 영화 에서 행려병자로 출연할 때는 실제 노숙생활을 몇 개월 동안 하기도 했는데 에서 두열은 복서다. 이번에도 복서 생활을 했나.
안내상 : 참 대단한 배우다. 노숙까지 할 수 있고. (웃음) 근데 이번에는 복서 출신이지만 환자기 때문에 몸을 만들 필요가 없었다. 어떻게 하면 더 폐인스럽게 표현을 할 수 있을까 고민 했다. 근데 내가 몸 축나고 이런 건 또 잘 한다. 사람이 좀 없어 보이는 거는 대한민국에서 나 따라올 사람이 없는 것 같다. (웃음)

그래도 최근에 종영한 MBC 에서는 재벌가의 장남 아니었나. (웃음) 물론 조동진은 대본상의 분량도 적고 제한적인 캐릭터였지만 안내상이라는 배우 자체가 가진 존재감 때문에 등장했을 때 긴장감을 확보할 수 있었다.
안내상 : 미미한 존재감이었지. (웃음) 처음엔 를 안 한다고 했다. 역할도 대본에 한두 신 있고, 캐릭터를 못 잡겠더라. 더구나 재벌이라는 거는 나와 안 맞는 세상의 이야기라 모르겠더라. 주변에서도 권하고 작가님들도 간절하다고 하시니 하게 됐다. 근데 방송이 진행되면서 완성도를 높이려고 하다보니까 두 주인공한테 힘을 실어 줘야하고, 그러면서 다른 인물들에 대해서 조금 소홀해졌던 부분들이 어쩔 수 없이 있더라. 나중에 작가님을 만났는데 의도한대로 못나갔다고, 죄송하다고, 원래는 그게 아니었는데 가다보니까 그렇게 됐다고 그러시더라. 그래서 너무 고마웠고, 좋은 인연이었던 것 같다. 좋은 작품이었고 에 대해서는 후회가 없다.

사실 재벌 캐릭터와 굉장히 안 맞는다고 했는데, 재벌보다 더한 왕도 KBS 의 정조부터 MBC 의 순종까지 여러 번 한 배우다. (웃음)
안내상 : 아, 그건 괜찮다. 누구도 보지 못한 존재는 내가 만들어서 할 수 있으니까. (웃음) 캐릭터를 받아들일 때 아 이거다, 꽂히는 지점이 있는 것 같다. 근데 꽂히지 않고 시작을 하면 스스로가 너무 어색하고 힘들다. 그래서 연기에 힘을 어디다 줘야할지 모르겠고. 연기를 한다는 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대사를 읊조린다고 해서 배우가 연기를 잘 하느냐 그런 문제도 아니고, 그 인물을 얼마만큼 자기 속으로 깊이 끌어들일 수 있는가 가 과제인데, 그런 것들이 처음 캐릭터를 만났을 때 그 분이 오셔야 가능하다. 그분이 안 오시면 이건 산으로 가는 지름길인 것 같고. 그런 면에서 는 나에게 오지 않는, 내 스스로에게 다가오지 않는 캐릭터는 앞으로 맡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 작품이었다. (웃음)

“제발 잘난 척 하지 말고, 겸손하게 하자”
안내상 “연기를 한다는 건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안내상 “연기를 한다는 건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지금까지 했던 작품들에선 다 그 분이 오셨나.
안내상 : 어느 정도는 왔던 것 같다. 이거는 코드가 어디고, 어떤 것들을 잡고 가면 되겠다는 게 있었으니까. 그래서 그런 부분들이 내게 많이 힘을 실어줬다. 어떤 때는 작가의 의도보다 더 세게 그런 것들을 만들어 간 적도 있었고, 또 작가가 좋아해줬고. 애드립을 치고 말고가 아니라, 표현력 자체를 더 세게 가져간다든가 작게 가져간다든가, 거기에 대한 제스쳐를 한다든가 그런 것들이 나오더라. 그런 게 참 신기하다. 스스로도 놀라는 게 평상시에는 모르거든. 대본보고 상대 하고 리허설 몇 번 맞춰보고 가는데, 카메라 돌아가면 내가 바뀐다. 그럼 상대배우는 놀라고, 나는 미안하고. 그런데 나는 이것밖에 안되고 이 순간에만 이게 나온다. 여기 컵이 있는 걸 아무도 몰랐는데 막 하다보니까 그게 보이는 거다. 그러면 거기에 손이 가고. 내가 미친놈이지. (웃음)

그럼 그 분이 강하게 오셔서 가장 ‘미친놈’이 됐던 경우는 언제인가.
안내상 : 의 한원수와 의 정조다. 한원수 같은 경우는 그렇게까지는 밉상은 아니었다. 그런데 뭘 하나를 해도, 예를 들어서 밖에서 누가 안에 있나 하고 들여다보고 들어오는 신인데, 카메라가 싹 돌면 이상한 놈이 나온다. 그냥 보는 게 아니라 아주 얄밉게 보게 되고, 나도 몸으로 하는 연기 싫어하는데 이상한 제스처를 막 하게 된다. 미는 문인데 자꾸 당기고 있고. (웃음) 이런 것들이 연기가 아니라 그냥 맞아 떨어졌다. 정조를 할 때는 약을 바르면서 고백을 하는 아주 장문의 대사가 있었다. 촬영 현장에서 감독님이 대사를 많이 손 봤는데 긴 대사인데도 토씨 하나 안 바뀌고 가슴에 그대로 꽂히더라. 그 대사를 가슴에 담고 살아와서 그런지 일이십 분 읽고 머릿속에서 정리를 하는데 다 정리가 됐다. 카메라가 돌고, 눈을 뜨고 대사를 읊기 시작하는데, 너무 신비로운 경험을 했다. 뭔가 들어와서 계속 나를 아프게 하는 거다. 정조가 이 대사를 치기까지 정조의 삶이 확 들어오더라. 대사를 하는데 NG 한 번 없이 한 번에 딱 끝나니까 너무 기분이 좋았다. 뭔가 안 한 것 같은데 다 한 것 같은 그런 느낌. 그럴 때 배우의 희열이 있다. 그날 뭔가를 처음 경험했는데 그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거고 지금도 내 가슴 속에 있다. 그때 벅차오름 같은 것들, 그런 기억들이 배우됨의 즐거움, 배우의 매력 아닌가 싶다.

정조 역할을 하면서 스스로도 뭔가 해소되는 느낌이었다고 했는데 KBS 의 정약용을 하면서도 그런 아쉬움에 대한 생각이 많았을 거 같다. 제대로된 스승을 가지기가 너무나 힘든 사회에서 학창시절을 보냈고, 치열하게 학생운동까지 했던 사람이라면.
안내상 : 정약용 선생은 내가 우리나라에서 존경하는 몇 안 되는 분이다. 그 분은 그 당시에 가장 올바른 길을 선택하셨고, 가르침을 주신 대단한 분이다. 그 시대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진짜 스승으로서 존재하고. 그래서 너무 하고 싶었다. 내가 늘 생각했던 게 참 죄송한 말이지만 우리의 스승들은, 내가 경험했던 스승들은 왜 이렇게 후지지? 하는 거였다. 아이들이 원하는 게 있고, 스승이 다가와 주기를 원하는데 멀찌감치 서서 자신의 권위나 해박함을 자랑만 하려들까? 모두가 믿고 따르고 그 분의 삶이라면 나도 따라 살고 싶다 정도는 돼야 스승 아니겠나. 그런 존재감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정약용 선생님이더라. 그분 역할을 한다는 건 부담이 됐지만 기분 좋았다. 이 분을 이번에 한번 불러볼까 이런 생각을 했었고. (웃음) 다행히 그 역할을 하면서 많은 느낌들을 받을 수 있었다. 이 분도 아팠구나. 이 분도 그 시대를 사는 게 녹록하지만은 않았구나.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고, 유배도 가고, 이러면서 글 쓰고. 그 삶이 또 얼마나 지난한 삶이었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잃지 않는 낙천성도 보여주셨고. 배우로서 풀기에 너무 매력적인 존재였다.

드라마를 할 때마다 후배 연기자들을 지도해준다는 배우들의 증언이 잇따르고 있는데.
안내상 : 증오가 아니고? (웃음)

최근에는 같은 소속사 식구인 김정훈 씨의 연기지도도 해준다고 하던데. 다른 배우에게 연기에 대해 알려준다는 건 어떤 경험인가.
안내상 : 딱 한번 했는데 기사가 나버려서 민망해 죽겠다. 가르친 것도 아니고, 리딩하는 거 한 번 들어주고 아, 이거 잘하는데, 좋다 이 말 한 마디 했는데 민망하다. 누굴 가르칠 그런 건 못되고, 그냥 연기 얘기를 좀 많이 하는 거다. 어떻게 하면 배우의 길을 제대로 갈 수 있을까 같이 고민하고. 나이 차이를 떠나서 같은 길을 가는 사람으로서 동료의식을 가지고 여러가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그럴 때는 자신의 노하우를 나눠준다거나 자신이 살아왔던 경험들을 들려주게 될 텐데, 주로 하게 되는 이야기가 있나.
안내상 : 배우됨의 자세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한다. 우리가 배우를 하는 이유가 뭔지 되새겨보자. 돈 벌려고? 그럼 그런 목적을 향해서 달려가든가. 그런데 진정한 배우됨에는 자기성취감도 있고 여러가지가 있을 것인데, 왜 누굴 흉내내기 바쁘나. 자기 걸 가져가자. 네거 있다. 네 것을 찾아라. 그 속에서 출발해라. 그러면 연기가 됐든 뭐가 됐든 즐거움이 돼서 돌아온다. 그런 얘기 하는 거다. 근데 안타까운 건, 현실에서 나타나는 배우들, 특히 젊은 배우들의 모습에는 그런 것들이 좀 부족한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만 고민하고 있지 그네들이 정말로 연기에 대한 기본적인 애정을 가지고 있다면 그렇게 표현할 수 없다. 사람이 말을 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무미건조할 수 있고, 어떻게 그렇게 한 가지 표정으로만 일관할 수 있나. 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연기를 사랑했으면 좋겠고 자기를 먼저 사랑했으면 좋겠다. 자기가 그 캐릭터에 들어가는 작업이 남들 흉내내기가 아니라, 안되면 소리를 지른다든지 뛴다든지 누구한테 배운다든지 적극적인 마인드를 갖고 움직였으면 좋겠다. 그럴 때 배우는 변화되고 발전되는 거니까. 제발 잘난 척 하지 말고, 겸손하게 하자는 얘기를 많이 한다.

“매체나 남에 의해서 활용당하는 존재가 되지 않았으면”
안내상 “연기를 한다는 건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안내상 “연기를 한다는 건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 같다”
학생운동으로 치열한 대학시절을 보냈다. 동시대에 학생운동을 했던 사람들 중에는 그토록 반대했던 기득권에 편입되려고 정치를 하거나 재산을 불리거나 한때 신념으로 가졌던 모습과는 정반대로 사는 이들도 있는데, 그 때와 지금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 있어 변한 것이 있나.
안내상 : 사회에 대해서 채무감을 아직도 갖고 있다. 내가 풀어야 될 과제를 풀지 못했으니까. 혁명을 꿈꿨는데 이루지 못한 미완의 상탠데, 그건 이제 요원하게 물 건너갔고… 그걸 저버리고 간다는 것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 나는 떠나는 선배나 후배들을 용납을 안했다. 정말로 그들을 사람취급 안 했다. 어떻게 시대가 이렇게 아픈데, 지 살겠다고 저렇게 쫓아나가나. 회계사 시험 본다고 공부하고 있고, 나를 그렇게 이쪽 길로 인도했던 선배는 방송국 PD가 됐고. 왜 그러는지 몰랐다. 왜 사람들이 나이를 먹으면 변할까. 감방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보니까 애들이 정치인한테 붙고 난리도 아니더라. 보좌관으로 들어갔다는데 정치하려고 그런 거야? 아, 너무 화가 나는 거다. 근데 세월이 더 지나니까 나한테도 그런 상황이 왔다. (웃음) 내 스스로를 용납할 수가 없었지만 더 이상은 그 길을 걸을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절망 속에서 정체된 삶을 한 3년 살다가 여기까지 왔는데. 지금도 그 때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정말로 길은 없었나. 그런 식의 타협이 내 인생에 존재한다는 게 아직도 너무 부끄럽다. 근데 잘했다 잘못했다를 떠나서, 길을 찾지 못한 나로서는 안타깝고 답답할 뿐이지. 이제는 그 때 친구들을 만나서 옛날 얘기도 할 수 있게 됐다. 물론 요즘에도 그 때 회계사된 형 욕하고, 보좌관 나갔던 애들 욕하고. 그렇게 쉽게 변절을 하다니 그래도 난 3년 동안 고민했는데! (웃음) 하여튼 그네들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 같고, 한 시대는 그래도 의미 있게 살았기 때문에 존중 받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곡해만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때 그 열정과 순수한 감정은 끝까지 가슴 속에 남아서 사회에 표출된다든가 주변 사람들에게 표출한다든가 아니면 자기 삶을 다시 되돌아보고 일어서는 계기가 될 거다. 그런 순수한 마음이 아직까지 남아있다고 생각 한다. 그렇다고 해서 거리로 뛰쳐나가겠다는 건 아니지만 내 삶을 아직까지도 올곧게 지켜주는 근거가 되고 있고, 비뚤어진 삶을 살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치열하게 청춘을 보낸 사람으로서 지금 청춘의 한 시기를 통과하고 있는 이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있을 것 같다.
안내상 : 글쎄… 어떤 게 있을까. 청년이지 않나. 청년은 세대를 떠나서 비슷한 성향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열정, 그 열정들을 어디로 쏟아 붓는가가 중요하다고 본다. 열정이 없는 청년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때는 학생운동을 하든 안하든 그 열정 하나만을 갖고 어떤 이는 학업에 집중을 했었고. 요즘 사람들은 그 열정을 좀 소모한다는 느낌은 들더라. 그 열정을 사회에 뺏기는 것 같다. 가치롭지 않은 일에 자신의 모든 열정을 쏟으니까 시간이 낭비되고 허하고 뭔가 채워지지 않은 빈자리를 가지고 사는 것 같다. 이 공간에서 분명히 주어진 삶의 가치가 있을 텐데 그걸 찾아야한다. 길은 여러 가지가 있고, 정답은 없지만 순수한 열정만큼은 지워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제발 매체나 남에 의해서 활용당하는 존재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근데 내가 왜 이런 얘기를 하고 있지? 나도 청춘인데! (웃음) 앞서 말한 게 내가 가야할 길이다. 아직까지는 나도 청춘이고, 20대와 동일시하고 있다. (웃음)

아직도 청춘이라고 했는데 연기자라는 위치만 보면 사실 생각이 많을 중년 연기자다. 누군가의 아버지나 남편이 아닌 배우로서의 색깔을 드러내기 힘든 TV 드라마의 구조 안에 있는데 앞으로 어떻게 배우 생활을 영위해 나갈지에 대한 고민도 분명 있을 것 같다.
안내상 : 고민이 많다. 좀 더 가다보면 구태의연해지는 모습들이 있을 수 있을 것 같고. 근데 누군가가 밟았던 길을 그대로 밟는 건 내가 원치 않고. 그래서 좀 일찍 이 공간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계속 이렇게 가는 건 내 살을 파먹는 것 같은 기분도 들고, 원치 않은 길이다. 어느 정도의 지점에 다다르면 훌쩍 이 공간을 떠나고 싶다. 물론 연기를 접겠다는 건 아니고 또 다른 연기의 공간을 찾아서 떠나게 될 것 같다. 그게 뭐가 될진 나도 궁금하고. (웃음)

어느 정도의 지점이란 어디까지를 말하는 걸까.
안내상 : 일단은 한 3~4년 정도 보고 있다. 그 정도까지 가면 경제적으로 좀 안정이 됐겠지. 그럼 경제적 부담을 가지지 않고 할 수 있는 그 무엇을 찾아서 떠나고 싶다. 그건 다시 말해 나를 찾고 싶은 거니까. 돈의 액수에 왔다갔다하고 이런 문제가 아니고, 정말 이제는 작품 따라 갈 수도 있는 거고, 작품이 없으면 내가 만들어갈 수도 있는 거고 그런 영역을 개척해 보고 싶은 게 지금의 청춘을 마지막으로 하고 있는 배우의 꿈이다. (웃음)

글. 이지혜 seven@
사진. 채기원 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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