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 2일’ 조연출 “산이나 섬에 갈까 그러면 주먹을 꼬옥 쥐게 된다”
‘1박 2일’ 조연출 “산이나 섬에 갈까 그러면 주먹을 꼬옥 쥐게 된다”
이제 이들의 얼굴이 어느 정도 낯익을 지도 모르겠다. KBS ‘1박 2일’의 열혈 시청자라면 얼굴과 이름을 매치시켜 기억할 수도 있겠다. ‘가파도 편’ 스태프 찾기 게임에서 등장했던 유정아 PD, ‘경남 남해 편’에 등장해 김대주 작가와 환상의 하모니를 들려줬던 박민정 PD, 두 조연출은 그 잠깐의 분량만으로도 순식간에 시청자와 가까워졌다. 하지만 ‘1박 2일’ 안에서 그들이 보여준 진정한 활약은 항상 카메라 뒤편에서 이뤄져왔다. 나영석 PD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촬영을 이끄는 통솔력부터, 방송이 끝날 때마다 인터넷 문의가 올라오는 선곡까지, 한국을 대표하는 리얼 버라이어티 속 조연출의 역할이 무엇인지 그들에게 직접 들어보았다. 진정한 ‘야생’은 여기에 있었다.

최근 유정아 PD가 직접 출연했던 ‘가파도 편’ 스태프 찾기 게임에서 ‘1박 2일’에 스태프가 많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그 많은 파트 중 나영석 PD 외의 PD의 역할이 궁금했다.
유정아 PD : 멤버 각각 흩어져서 레이스를 펼칠 땐 나영석 선배가 다 따라갈 수 없으니까 조연출들이 전담 PD가 되어 멤버들을 따라간다. 다 같이 다닐 땐, 미리 그들이 가야할 장소에 가서 현장 세팅을 한다. 가령 휴게소에서 어떤 장면을 찍고, 베이스캠프를 찍는다면 미리 그들이 들어올 때 받아줄 카메라 등을 조율하는 거다. 또 멤버들 야외 취침을 할 때 텐트 치고 이불 깔고 카메라 설치하는 일도 다 우리가 한다. 눈이 오면 땅도 파고. (웃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더 잡다한 일들을 많이 하는 편이다.
박민정 PD : 촬영 진행이나 편집처럼 방송적인 것 외에도 정말 생각 못할 일들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그 많은 인원이 다녀오면 엄청난 돈을 쓰고 오는데 그 때 법인카드 외에 현금을 써야할 때도 있다. 그런 전도금 진행부터 시작해 여러 가지 일들을 조연출이 하고 있다.

“결국 조연출이 자기 색을 낼 수 있는 건 편집이다”
‘1박 2일’ 조연출 “산이나 섬에 갈까 그러면 주먹을 꼬옥 쥐게 된다”
‘1박 2일’ 조연출 “산이나 섬에 갈까 그러면 주먹을 꼬옥 쥐게 된다”
그야 말로 ‘1박 2일’이기에 하는 일들일 수 있는데 전에는 어떤 프로그램을 맡았었나.
유정아 PD : 우리 둘 다 입사 4년차 동기인데 나는 작년 4월부터, 박민정 PD는 작년 11월부터 ‘1박 2일’에 합류했다. 여기 오기 전 나는 라는 공감 버라이어티를 했고, 을 거쳐 이번이 세 번째 프로그램이다.
박민정 PD : 슬픈 과거가 떠오르는데… 나는 라는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으로 시작해 ‘천하무적 야구단’을 했는데 폐지됐고 도 했는데 역시 단명했다.

조연출로서, 과거 하던 프로그램과 리얼 버라이어티, 혹은 ‘1박 2일’과의 가장 큰 차이는 어떤 것인가.
유정아 PD : 전에는 VCR 연출, 말하자면 대본을 가져가서 연출한 뒤, ENG로 찍어오는 연출이었다. 그 때는 PD의 역할이 철저히 디렉터 개념이었는데, 여기는 전혀 다른 개념인 거다. 대본도 없고 누구에게 지시해 이런 상황을 만들라고 할 수도 없고. PD로서 하는 건 현장에서 출연자들이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이끌어내게 주변 상황을 체크하고 보호해주는 거다. 그래서 처음에는 PD로서 어디까지 개입을 해야 하나 고민을 했다. 지금은 멤버들이 얼마나 알아서 잘 스토리를 만들어 가는지 알기 때문에 신뢰도 생겼고, 내가 뭘 어떻게 해서 이야기를 만들어야한다는 부담도 적다.

하지만 그 부분, 프로그램이 이미 잘 돌아가고 있다는 게 꼭 마음 편한 일만은 아닐 텐데.
유정아 PD : 조연출로서 걱정했던 게 두 가지다. 우선 내가 이렇게 잘나가는 프로그램에 누를 끼치면 안 된다는 것, 그리고 이렇게 잘 되고 있는 프로그램에서 내 역량을 얼마나 발휘할 수 있을 것인가. 이미 체제가 너무 잘 잡혀있고 안정적인 프로그램이니까 현상유지에만 급급할 수도 있겠다고 고민했는데 결국 조연출이 자기 색을 낼 수 있는 건 편집이다. 음악이나, 자막 등을 포함해. 가령 박민정 PD가 주력하는 건, CG로 데커레이션을 예쁘게 하는 거다.
박민정 PD : 첫 ‘배달 레이스’ 때 처음 그걸 시도했다. (이)승기가 퍼즐을 들고 가다 쏟으면 울상을 짓는 그런 건데, 팬들 반응이 좋았다. 사실 우리는 열심히 하더라도 TV 앞에 나오는 사람이 아니라 표시가 잘 안 나는데, 그런 시도에 대해 누구 한 명 블로그에라도 언급하면 힘이 난다. 그러면 피곤하더라도 이건 어떨까, 이야기를 더 하는 거고. 배달레이스에 대한 반응이 있었기 때문에 또 해보자고 해서, ‘5대 섬 특집’ 때 울릉도에 별이 잔뜩 있는 CG 같은 걸 넣었다.

음악 이야기도 했는데, 단순히 어울리는 음악을 까는 개념이 아니라 편집 자체가 선곡 과정을 포함하는 것 같다. 가령 설악산에서 일출을 보려고 기상할 때, ‘Kung Fu Fighting’을 트는데, 야경을 비추며 고요한 전주가 흐르고 ‘Everybody Kung Fu Fighting’이란 가사와 함께 기상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박민정 PD : 편집을 하고나서 음악을 정하는 경우도 있고 어떨 땐 이런 음악이 좋겠다고 정해놓았다가 편집이 안 풀릴 때 음악을 틀어놓고 그림을 붙이기도 한다. 말했던 설악산 기상의 경우에는 편집을 끝내고서 여기에 음악의 호흡을 맞췄다. 이쯤에서 이 비트로 넘어가면 좋겠다고. 그게 잘 맞아떨어지면 PD도 기분이 좋다.
유정아 PD : 가사나 제목이 상황과 어울리는 경우도 있다. ‘방학 특집’ 때 이승기 씨 때문에 오디오 녹음이 안 된 적이 있다. 그 때 멤버들이 아무런 음향도 없이 냇가에서 돌 던지기 게임을 하는 걸 보며 사이먼 앤 가펑클의 ‘The Sound Of Silence’(침묵의 소리)를 깔았다. 마침 노는 것도 복고풍이라 제목과 어울리더라.

음악을 깔아서 분위기를 고조하는 것과 그냥 지금 분위기 그대로 담백하게 가는 걸 결정하는 것도 쉽진 않을 거 같다.
박민정 PD : 케이스마다 다른데, 지난 설악산 일출 같은 경우에는 내가 원래 좋아하던 체리필터의 ‘느껴봐’를 좀 터지는 느낌으로 깔았다. 곡의 가사를 보면 ‘오렌지 빛을 하늘에 물들여’라는 구절이 있는데 그게 해가 뜨며 밝아오는 하늘과 맞아떨어지는 것 같았다. 이게 감동적인 부분인 만큼 좀 웅장하고 서정적인 게 어울릴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한데, 그러면 심심할 거 같기도 하고. 그럴 때 가편집 상태에서 시사를 하며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결정한다. 하지만 대부분 PD들이 시사를 하며 확신을 얻지, 수정을 하는 편은 아니다. 판단은 우선 자기 스스로 하는 거다.

편집을 통해 조연출들의 시그니처를 남기는 건데, 나영석 PD는 그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주는 타입인가.
유정아 PD : 나영석 선배 특징은, 이렇게 편집하면 좋겠다고 말하기보다는 네 느낌대로 하라고 던져주고, 이후 수정사항을 얘기하는 식이다. 그래서 여러 가지를 실험할 수 있다.

“우리 이름 는 제작진에게 행복한 일요일”
‘1박 2일’ 조연출 “산이나 섬에 갈까 그러면 주먹을 꼬옥 쥐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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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각자 맡을 분량은 어떻게 나누나.
유정아 PD : 우리를 포함한 조연출들이 최종 약 20~25분 정도로 편집을 하는데 그 분량은 나영석 선배를 포함해 공평하게 간다. 나 같은 경우 나영석 선배가 복불복 같은 게임을 많이 맡긴다. 박민정 PD에게는 멤버들의 친화력이나 주제, 그리고 내러티브를 녹일 수 있는 정서적 장면들을 맡기고. 나영석 선배는 전천후지. 먼저 우리가 맡을 것들을 배치하고 자기 가져갈 걸 가져간다. 메인 PD치고 편집을 되게 많이 하는 편이다.

나영석 PD가 많이 참여할 수밖에 없는 게, 이게 단순한 합집합이 아닌 유기적인 서사물이 되어야 하지 않나.
유정아 PD : 찍고 나서 너희 팀은 뭐가 제일 재밌니, 뭐가 포인트니, 묻고 그걸 메인 PD와 작가가 엮는 편인데, 이런 어려움이 있을 때가 있다. 각 PD마다 그 회차에서 자기가 맡은 멤버에 대한 애정이 생기는 거다. 최대한 살려주고 싶고, 분량이 많이 살게 해주고 싶다. 지난번에 ‘5대 섬 특집’을 할 때 김종민을 따라 갔는데 그 때 좀 슬럼프였던 시기였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편집을 해서 뮤직비디오도 만들고 나영석 선배에게 어필도 많이 했다. 하지만 전체 분량이 너무 넘쳐나서 마지막에 잘려나갔다. 나는 김종민 하나만 보고 편집을 한다면 나영석 선배는 넓은 그림을 보고, 그나마 빼도 덜 아까운 부분을 빼는, 어찌 보면 냉정한 부분들 담당한다.
박민정 PD : 내가 ‘1박 2일’ 첫 촬영을 한 게 ‘6대 광역시 특집’이었는데 이수근과 함께 광주를 다녀왔다. 무등산 등산 하고 혼이 빠진 상태로 왔는데 편집도 장난이 아닌 거다. (웃음) 이미 그 자체도 서사물이다. 이종범도 만나고, 사인회도 열고. 그렇게 1시간 정도 되는 분량으로 1차 편집을 하고 나서 시사를 열고, 다시 짜임새 있게 엮어가는 전혀 새로운 편집을 해야 한다.

정확히 편집과 시사, 그리고 재편집 과정은 어떻게 이뤄지나.
유정아 PD : 촬영이 있는 주와 없는 주로 나뉜다. 촬영이 없는 주에는 월, 화 아이템 회의를 하고 수, 목 이틀은 가편집을 하고, 목요일에서 금요일로 넘어가는 새벽에 시사를 한다. 그걸 바탕으로 금요일에 자막을 집어넣으며 편집을 완성하고, 또 그 다음날 새벽에 부장님, 팀장님, ‘남자의 자격’ 스태프까지 다 모여 새벽 5, 6시까지 완성 시사를 한다. 그 다음 마지막 종편은 제작편집실 스케줄 상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넘어가는 자정에 시작해 새벽 5, 6시 쯤 끝낸다. 일요일은 쉽니다. (웃음)
박민정 PD : 일요일에 퇴근해서 자고 일어나면 를 시작한다.
유정아 PD : 그러면 우리는 그 방송을 다섯 번 정도 본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웃음) 그리고 그 다음은 촬영이 있는 주라 월요일에 답사를 갔다가 저녁에 들어와 새벽 1, 2시까지 회의를 한다. 어떤 콘셉트로 촬영할지. 그리고 화요일에 작가들이 아이디어 회의할 동안 조연출은 편집을 시작해서 수요일까지 가편집을 끝낸다. 나머지 일정은 앞서 말한 것에서 하루씩 앞당겨진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완성 시사를 하는 금요일에 우리는 촬영을 떠난다. 그리고 토요일에 돌아와 그 꼬질꼬질한 몸으로 종편을 하고, 일요일은 쉽니다. (웃음) 그래서 우리 프로그램 이름이 라고 생각한다. 제작진에게 행복한 일요일.

그런 일정을 소화하는 만큼 멤버들처럼 본인들도 울컥할 때가 있겠다.
유정아 PD : 우리들도 인간이라 아이디어 회의에서 다음 주에 산에 갈까, 섬에 갈까 그러면 주먹을 꼬옥 쥐게 된다. 올해 초 같은 경우에는 울릉도에 갈 것이냐 설악산에 갈 것이냐 선택하라고 하는데, 아니 대체 뭘 선택하라는 건지! (웃음)
박민정 PD : 실컷 설악산 다녀왔더니 이젠 울릉도를 가야할 것 같지 않느냐고 하는데, 그럴 거면 왜 선택하게 했을까. 멤버들도 농락당한 기분이겠지만 조연출도…

제작진에게도 버라이어티 정신을 요구하는 프로그램이다.
유정아 PD : 씻지 않을 수 있다, 밖에서 잘 수 있다, 각오하지 않으면 힘들다. 촬영 끝내고 돌아왔을 때 택시가 안 잡히는 것도 각오해야 하고. 그래, 지금 내가 얼마나 더러울까. (웃음) 그런데 다들 그렇게 하니까.

조연출로서 지금 이 시기가 도제 기간이라 했을 때 무엇을 얻은 시기라 기억하게 될까.
유정아 PD : 체력적인 한계도 경험했기 때문에 어디에 가더라도 오기와 끈기는 확실히 뒤지지 않을 것 같다. 다만 이곳은 멤버십이 튼튼하고, 던진 거에 비해 결과물이 잘 나오는 현장이기 때문에 다른 곳에 가서 지금 정도의 아이디어로 이만큼의 결과물이 안 나올 수도 있다는 건 분명히 생각하고 있다.
박민정 PD : 사실 PD로서 경험할 수 있는 한계를 경험하는 곳이 이곳인데, 그럼에도 행복한 곳이기도 하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으니까. 어떤 곳은 원하는 대로 메이킹을 할 수 없는데 이곳에선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고, 또 그에 대한 반응이 오지 않나. PD로서 만족감이 큰 시기로 기억할 것 같다.

글. 위근우 기자 eight@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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