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요
1. Thank you
2. 여기서 발언을 마무리 할까 합니다.

tvN 는 출연자들의 진지한 도전 못지않게 심사위원들의 전문적인 평가 덕분에 드물게 시청자의 신뢰를 유지하는 리얼리티 경쟁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다른 심사위원들이 예리하고 정확하게 출연자들의 노래를 분석하며 채찍질 할 때, 바리톤 서정학은 싱글싱글 웃으며 그들에게 버터 바른 당근을 던져준다. “대-애박!” 혹은 “브롸아-보!”라고 운을 뗀 서정학은 대부분 출연자가 얼마나 “힘들게 힘들게” 도전곡을 이해하고 연습했는가, 이 경쟁에서 버텨왔는가를 언급한다. 그러나 그마저도 구체적으로 기술되기 보다는 이심전심을 유도하는 눈빛으로 설명되며, 그 과정을 견디고 무대에 오른 출연자들에게 그가 가장 방점을 찍어 보내는 심사평은 주로 “고마워요”다. 이때, 눈은 반드시 웃음기를 머금어 가늘게 뜨고, 혀는 구개와 간격을 유지하며 목구멍 쪽으로 당겨 약간의 에코 사운드를 유도한다. 특히 중요한 것은 바운스와 멜로디인데, “고_마↗워~요-”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한 가지 참고할 점은 눈 표정에 따라 악관절의 긴장이 달라져 소리의 울림 정도에 차이가 발생하니, 진지한 “고마워요”와 즐거운 “고마워요”를 구분할 때는 반드시 눈 모양에 신경을 써야 한다.

물론 서정학의 “고마워요”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평가와는 거리가 멀다. 냉철하게 출연자들의 보완점을 지적해 주는 다른 심사위원들과 비교해 그의 심사위원 자질을 의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서정학은 특별 공연을 통해 자신의 실력을 증명했고, 이로써 그의 평가는 ‘느슨하고 게으른 멘트’가 아니라 ‘노래의 기쁨과 연습의 지난함을 아는 사람의 애정 어린 격려’로 격상되었다. 또한 그의 “고마워요”는 결과 지상주의에 빠진 세상에서 과정의 가치를 지지하는 희귀한 발언인 만큼, 그 의의가 크다. 그러나 과정을 예찬하기 위해서는 결과에 대한 치열한 이해라는 자격이 있어야 한다. 결과가 반드시 의도를 반영하는 것은 아니나, 대부분의 경우 의도는 “고맙게도” 어떻게든 결과에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심사 연습
* 오늘 평소보다 컨디션 때문인지, 팔 힘이, 팔 힘이 조금 부족했어요. 하지만 정확한 타이밍, 고생했어요. 고마워요.
* 자, 몇 분정도? 몇 분정도 제친 것 같아요? 축구공을 통한 여행, 고마워요.
* 브롸아보! 아… 정말, 우리 열심히 했잖아요? 호흡도, 발성도 참… 힘들게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 정말 보기 좋았어요. 하아… 고마워요-
* 우리… 1등 가수, 자랑스러워요. 똑바로 하는 모습, 연습한 만큼 얻어가네요. 고마워요.
* (기립해서) 대애애- 박! 으하하하하! 이렇게 오늘 웃음 줘서, 정-말 고마워요!

글. 윤희성 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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