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주의 10 Voice] 동네 바보들에게 욕망을 허하라
[김희주의 10 Voice] 동네 바보들에게 욕망을 허하라
욕망이 긍정되는 시대다. 드라마 속 인물들이 돈, 권력, 사랑, 성공, 또는 이 모든 것이 뒤섞인 무엇을 향해 악다구니를 쓴다. MBC , 처럼 여성 주인공이 ‘욕망의 탑’이라 할 수 있는 재벌가 안에서 자신의 목표를 위해 강렬하게 달려가는 작품들은 이 욕망의 시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드라마 속에서 욕망이 이야기의 원동력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최근 드라마들은 욕망을 둘러 싼 싸움을 갈수록 적나라하게 묘사한다는 점이다. 이른바 ‘막장 드라마’라 불리는 SBS 은 돈을 바라는 새 어머니 때문에 주인공이 기생이 될 정도다. 최근의 재벌 드라마나 막장 드라마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은 이런 노골적인 욕망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외피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드라마 속에서 이 욕망의 질주로부터 배제되는 존재들이 있다. ‘동네에 꼭 하나씩 있는 바보’라고 불리는 지적 장애인들이다.

MBC 와 KBS 에는 모두 지적 장애인이 중요한 인물로 등장한다. 는 아이큐 70에 지능이 7살에 멈춘 봉영규(정보석)가 있고, 에는 9살 수준의 정신연령을 가진 안나 레이커(도지원)가 나온다. 그들은 단적으로 말해 착하다. 그리고 순수하다. 어린 아이 수준으로 지능이 멈췄다는 이유로 세상 물정을 전혀 모르고, 인간관계에서 계산적이지도 않다. 그들 주변 사람들이 이전투구를 벌이는 동안에도 그들은 언제나 해맑은 얼굴로 ‘미안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입에 달고 산다.

지적 장애인에 대한 위험한 클리셰
[김희주의 10 Voice] 동네 바보들에게 욕망을 허하라
[김희주의 10 Voice] 동네 바보들에게 욕망을 허하라
분명히 보기에 따뜻한 순간이다. 욕망이 넘실대는 시대에 이런 캐릭터들은 사람들에게 순수를 되찾아주는 느낌일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을 보는 맘이 편치 않을 때가 있다. 영규와 안나 같은 지적 장애인 캐릭터는 단지 착하고 순수하게 그려지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작품 속에서 욕망 자체가 없는 존재로 묘사된다. 영규는 신체적으로 성인 남자다. 하지만 그는 지능이 낮다는 이유로 전혀 위험하지 않은 남자로 그려진다. 영규는 청각 장애인인 미숙(김여진)을 좋아하고, 그녀에게 예쁜 꽃도 주고 싶어하며, 그래서 결혼이 뭔지는 몰라도 주위 사람들에 의해 미숙과 결혼한다. 그리고 그는 미숙과의 첫날밤에 아무 것도 모르는 얼굴로 남진의 ‘님과 함께’를 부른다. 영규는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있어도 대상에 대한 어떤 욕망도 없는 것처럼 그려지는 셈이다. 안나 역시 새와(박정아)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이용당하지만, 누구도 미워하지 않은 채 늘 곱고 다소곳한 여자 아이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드라마에서 영규나 안나 같은 착한 바보들이 등장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다만 비현실적으로 착한 이들의 모습은 과거 어눌한 모습으로 희화화되었던 선배 바보 캐릭터들과 또다른 방식으로 대상화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각박한 사회에 지친 시청자들이 지적 장애인의 순수한 동심에 위로를 받아 좋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는 우리가 편의에 의해 이들을 지나치게 미화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MBC 속 진주(오현경)의 사례처럼 수술이나 기적적인 충격 요법으로 갑자기 장애가 없어지는 설정만 장애에 대한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 아니다. 장애인을 비장애인보다 특별히 더 고운 심성의 캐릭터로 그리는 것 역시 현실을 위험하게 왜곡하는 것일 수 있다.

그들을 동화 속에 가둬두지 마라
[김희주의 10 Voice] 동네 바보들에게 욕망을 허하라
[김희주의 10 Voice] 동네 바보들에게 욕망을 허하라
많은 드라마와 영화 속에서 지적 장애인들은 신과 인간의 중간에 존재하는 것처럼 묘사된다. 우리가 욕망을 거리낌 없이 토해내는 동안 그들은 동심이나 순수함 같은 이름표를 달고 우리의 죄를 대신 사하는 예수 같은 역할을 한다. 그건 그들을 우리의 시각으로 박제하는 것은 아닐까. 영화 의 반전이 소름 끼쳤던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가진 지적 장애인의 이미지를 철저하게 뒤집기 때문이다. 지적 장애인도 욕망을, 또는 어떤 위험성을 가질 수 있다. 그 사실부터 인정해야 우리는 그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의 제작진은 아이처럼 순수하게 진실을 말하는 용감한 바보들이 주인공인 드라마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 선의를 의심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언제나 선의가 좋은 결말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택한 설정이라도 현실이 아닌 동화에 무게 중심이 쏠리면 의도마저 퇴색될 수 있다. 지적 장애인과 청각 장애인이 등장하는 가 좀 더 신중하고 배려심 있는 드라마이길 바란다. 비장애인들은 스스로 돈과 권력과 성공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용인하고 있다. 이 욕망의 시대에 장애인들에게만 착하고 순수한 채로 있으라는 것은 잔인한 판타지에 다름 아니다.

글. 김희주 기자 fifte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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