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석의 100퍼센트]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강명석의 100퍼센트]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가수들이 밥을 먹을 시간이 마땅치 않으니까 부드럽고 따뜻한 밥이 준비돼 있지 않으면 힘들어요.” 지난 9일 방영한 tvN 의 두 번째 탈락자는 신해철이었다. 그러나 그는 탈락의 슬픔 대신 동료들에 대한 배려를 말했다. 오페라가 자신의 본업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는 가수들을 세심하게 배려한다. 그들의 사정에 따라 생방송 대신 사전 녹화로 공연을 진행하기도 하고, 출연자들에 대한 투표는 그들의 무대가 진행될 때와 축하 공연 때만 가능케 하면서 공평한 결과를 끌어내려고 한다. 심사위원들의 평가 역시 비판보다는 격려와 충고에 초점이 맞춰진다.

오디션 프로그램이면서도 출연자의 부담을 덜어내는 이 배려는 예상 밖의 결과를 가져온다. 문희옥은 오페라를 부르면서 자신의 속에 쌓인 울화를 푼다고 말했고, 신해철은 탈락의 순간에 “많이 배워간다”고 했다. 타인과의 경쟁을 전제로 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출연자가 자신의 성취를 기뻐한다. 리얼리티 쇼를 경쟁사회의 한 모델로 바라본다면, 는 그 이상에 가장 근접해 있다. 경쟁은 치열하되 크게 상처받는 사람은 없고, 참가자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한다.

평가 대상이기 이전에 인간이 출연하는 오디션 프로그램
[강명석의 100퍼센트]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강명석의 100퍼센트]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모든 오디션 프로그램이 처럼 될 수는 없다. MBC 의 ‘신입사원’의 참가자들은 1분 안에 특정 주제에 대한 설명을 해야 한다. 1분으로 당락을 결정하는 건 잔인해 보이지만, 아나운서가 가져야할 필수 능력이기도 하다. 심사위원들의 평도 꼼꼼하고 냉정하다. 그러나 ‘신입사원’의 한 심사위원은 출연자들을 보고 냉정한 평이 어렵다며 괴로워한다. 도전자 중 한 명이었던 강미정은 탈락 위기에서 “여기 있는 분들 소중하지 않은 꿈이 어디 있겠습니까?”라며 울먹인다. 그는 자신의 가능성에 대해 묻고, 가능성이 없다면 “흔치 않은 자리기 때문에 더 괜찮은 사람에게 양보를 해야 한다”고도 한다. 그는 절박한 동시에, 경쟁 원리도 정확히 알고 있다. 탈락의 공포 안에서도 경쟁에 절실하게 부딪친 사람에게 먼저 해야 할 건 독설이 아니라 자존감에 대한 배려다. 가장 치열하고 절박한 경쟁일 수밖에 없는 입사 시험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신입사원’은 잔인하다. 하지만 ‘신입사원’은 역설적으로 경쟁의 평가에 수반돼야 할 최소한의 덕목을 보여준다. 응시자는 평가 대상이기 이전에 인간이다.

인간에 대한 존중 이전에 경쟁의 효율성만을 내세울 때, 세상은 경쟁의 지옥으로 바뀐다. 몇 달 사이 카이스트의 학생들이 연이어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자살의 명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지나친 경쟁위주의 학교 운영이 원인의 하나로 지목된다. 카이스트는 일정 수준의 학점을 받지 못하면 무료로 다니던 등록금을 내야 하는 ‘징벌적 등록금제’를 실시 중이다. 이 제도가 누군가에게는 경쟁의식을 고취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평생 1등만 하고 살았을 학생들에게 공부를 못했으니 돈을 더 내라는 건 누군가에게는 그들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지탱할 수 있었던 자존감을 무너트리는 일일 수도 있다. 가수들의 자존심을 배려하려는 나 냉정한 태도 속에서도 출연자의 꿈과 절박함에 공감하는 ‘신입사원’의 심사위원의 태도는 현실에서 적용될 수 없었을까.

경쟁의 결과는 행복이지 경쟁 그 자체가 아니다
[강명석의 100퍼센트]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강명석의 100퍼센트]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그래서 최근의 오디션 프로그램은 단지 쇼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실제 사회보다 더 직접적인 경쟁구도를 통해 격렬한 드라마를 만드는데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한국은 이미 학점이 부족하면 돈을 더 내야 하는 서바이벌이 현실에서 벌어진다. 이런 현실에서 경쟁을 다루는 오락 프로그램은 현실의 반영이 된다. 지난 주 MBC 의 ‘쩐의 전쟁’에서는 만원을 쓰는 데도 신중해야 하는 대학생의 모습과 함께 대학생 등록금 문제를 거론했다. 카메라가 앞에 있다 해도, 유재석과 박명수가 파는 물건이라 해도 쉽게 웃으며 만원을 줄 수 없다. 이 때 시청자들이 유재석과 박명수에게 보여주는 태도는 자신이 현실에 대해 보여주는 태도이기도 할 것이다.

돈을 버는 대신 자신들의 물건을 시청자에게 그냥 준 유재석과 박명수의 선택은 논란의 대상이 됐다. 게임의 룰을 어기면서 쇼의 재미를 반감시켰다는 이유다. 의 첫 생방송에서 심사위원의 평은 지나치게 부드럽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들의 행동은 실제 세계에서 진짜 물건을 팔거나, 경쟁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재석과 박명수는 실제로는 많은 돈을 벌고, 그들이 물건을 판 사람은 연예인이 아니라 실제 대학생이었다. 두 사람은 쇼 이전에 어린 대학생에 대한 측은함이 먼저 와 닿지 않았을까. 의 멘토들은 이미 몇 달 동안 그들을 지켜봤고, 함께 연습해 왔다. 더 냉정하고 혹독한 평은 연습 시간에 해도 충분할 것이다. 첫 탈락자였던 황지환은 탈락자 발표가 나는 순간부터 눈물을 참지 못했다. 어떤 평가 없이도, 그는 이미 슬프다.

당연히, 시청자들은 리얼리티 쇼에 더 많은 재미를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리얼리티 쇼는 인생을 건 경쟁이다. 그 경쟁 위에 있는 사람들을 조금 여유롭게 바라봐줄 수는 없을까. 모두가 행복할 수 없는 세상에서 경쟁은 어쩔 수 없이 필요하다. 그러나 경쟁의 결과는 행복이지 경쟁 그 자체가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미 인생을 걸고 경쟁 중인 사람에게 더 철저하게 경쟁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필요한 건 누구든 어떤 순간에도 따뜻한 밥은 먹고 살도록 해줄 여유다. 따뜻한 밥. 그거라도 좀 먹이자.

글. 강명석 기자 two@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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