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석의 100퍼센트] ‘나는 가수다’, 음악이 사라지는 시대를 애도함
[강명석의 100퍼센트] ‘나는 가수다’, 음악이 사라지는 시대를 애도함
버글스가 불렀다. ‘Video killed the radio star’. 다시 로비 윌리암스가 불렀다. ‘Reality killed the video star’. 그리고 지난 27일 MBC 의 서바이벌 리얼리티 쇼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이하 ‘나는 가수다’) 방영 후 출연 가수들이 부른 노래들은 디지털 음원차트를 지배했다. 그 전에는 Mnet 의 노래들이, 또는 MBC 에 삽입된 이적의 ‘같이 걸을까’가 실시간 차트 1위를 했다. 가수 이현은 트위터에 ‘나는 가수다’의 노래들이 매주 가수들의 신곡을 제치고 1위를 할 것 같아 걱정된다는 글을 남겼다.

음악 리얼리티 쇼의 노래들이 인기를 얻는 건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대중이 오직 음악만 듣고 감동해야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다만 한국에서는 MBC 와 SBS 이 폐지됐다. SBS 같은 아이돌 위주의 음악 프로그램도 지난주 시청률이 4~5%대다. 반면 아이돌처럼 춤, 연기, 예능 등을 통해 음악 이외의 것을 줄 수 있는 엔터테이너들이 점차 시장 점유율을 높인다. 아예 인디 뮤지션의 길을 걷겠다고 작정하거나, 서태지 정도의 열광적인 팬덤이 있지 않는 한 뮤지션이 음악만으로 활동할 수 있는 방법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 음악만으로는 인기 리얼리티 쇼의 힘을 넘어서기가 불가능해지고 있는 셈이다.

달라지고 있는 음악산업의 정의
[강명석의 100퍼센트] ‘나는 가수다’, 음악이 사라지는 시대를 애도함
[강명석의 100퍼센트] ‘나는 가수다’, 음악이 사라지는 시대를 애도함
음악 감상만으로 대중의 엔터테인먼트가 충족되지 않는 시대에 음악을 적극적으로 구매하는 대중 역시 줄어든다. 김건모의 프로듀서 김창환은 음원 스트리밍 한 번당 음원 제작사로 1.2원이 들어온다고 밝혔다. 이는 디지털 음원 유통사가 한 달에 만원 안팎의 정액제로 무제한 스트리밍과 몇 십 곡 다운로드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이 정액제로 많은 곡을 들을수록 제작자들은 그 수익을 나눠 가지기 때문에 곡당 매출액이 기하급수적으로 낮을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현재 한국의 디지털 음원 사이트 유료 가입자는 250만 정도다. 김창환이 프로듀싱한 김건모의 3집 앨범 하나가 250만장 이상 팔렸던 시절을 생각하면 음악에 돈을 지불하는 사람의 숫자도, 그들이 음악에 지불하는 돈의 액수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줄어든 셈이다. CF, 드라마, 예능 등에 출연할 수 있고, 해외 진출도 가능한 인기 아이돌 가수들이 디지털 음원 차트 성적과 별개로 다른 가수들보다 높은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이유다. 단지 디지털 음원 판매와 소량의 앨범 판매만으로 매출을 기대하기엔, 음악에 일정 수준의 돈을 쓰는 사람들의 숫자가 너무 줄어든 셈이다. 수익 활동을 하려면 음악 활동과 다른 영역의 활동을 연계시켜야 한다. 한국의 음악 산업은 음반에서 디지털 음원으로 옮겨가지 않았다. 대신 음악에 돈을 쓰던 소비자가 더 이상 돈을 쓰지 않게 됐다. 다시 말하면, 엔터테인먼트가 아닌 한국의 ‘음악’ 산업은 망해가고 있다.

‘나는 가수다’는 가진 게 음악밖에 없는 가수들이 음악만으로는 활동할 수 없는 시대의 산물이다. 가수들은 리얼리티 쇼에 출연해 대중에게 접근할 수 있는 무대를 얻었다. 대신 온갖 논란에 시달리고, 스트레스로 눈의 실핏줄이 터지는 모습까지 보여줘야 하는 새로운 환경을 견뎌내야 한다. 여전히 그들의 음악을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음악팬은 마음이 아프다. 반면 음악을 다른 엔터테인먼트의 일부로 소비하는 데 익숙해진 대중은 ‘나는 가수다’를 통해 그들의 노래를 새롭게 인식하고, 음원을 듣는다. 어느 쪽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음악 소비의 패러다임이 바뀌어 가고 있고, 그에 대한 각자의 음악 소비 방식이 있을 뿐이다. 가수들이 적극적으로 음반을 사고 공연을 보던 소비자만으로도 충분하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 대신 가수들은 잠재적인 음악 소비자들 앞에 나서야 하고, 이 새로운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게 활동해야 한다. ‘나는 가수다’는 한국 음악 산업의 정의 자체가 변하거나, 실질적으로 사라질 수도 있는 시대로 가는 과도기의 산물이다.

한 시대가 이렇게 저물고 있다
[강명석의 100퍼센트] ‘나는 가수다’, 음악이 사라지는 시대를 애도함
[강명석의 100퍼센트] ‘나는 가수다’, 음악이 사라지는 시대를 애도함
‘나는 가수다’의 출연자들 중 가장 후배가 김범수와 정엽인 건 우연이 아니다. 그들은 그래도 뮤직비디오로, 또는 무대로 가수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시대의 끝자락에 데뷔했다. 그들 뒤로 데뷔한 가수들은 노래를 잘하든 못하든, 외모가 뛰어나건 아니건 아이돌이 되거나, 아이돌과 비슷한 방식으로 홍보와 활동을 해야 한다. 이 시대에 그래도 음악만을 할 수 있던 뮤지션들은 옛 시절의 자산을 가진 경우였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가 ‘나는 가수다’에 출연했다. 시대는 그렇게 변하고 있다. 이미 음악만, 노래밖에 가진 게 없는 가수 지망생들은 기획사의 문을 계속 두드리는 대신 와 MBC 에 출연해 기회를 노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제 노래 외에도 리얼리티 쇼가 원하는 것들을 익힐 것이다.

지금의 음악 소비자들을 탓할 일은 아니다. 그들은 그들의 필요에 따라 행동할 뿐이다. 싼 가격으로, 또는 공짜로 음악을 들을 수 있고, 음악 외에도 즐길 게 너무 많은 시대에 ‘진짜 음악’을 들으라며 음반 구입이나 공연 관람을 권할 수는 없다. 또한 달라진 시장의 요구는 그에 걸맞는 가수들을 만들어낼 것이다. 리얼리티 쇼의 무대에 어울리는 가수들이 등장할 수도 있고, ‘나는 가수다’ 같은 리얼리티 쇼에 어울리도록 여러 장르를 두루 잘 할 수 있는 가수가 데뷔할 수도 있다. 언제 어느 때건 음악은 존재하고, 대중음악은 대중이 원하는 방향으로 흐른다. 음악은 여전히 만들어질 것이다. 다만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어떤 음악들, 그 음악들을 만들던 뮤지션들이 사라질 뿐이다. 한 시대가 그렇게 사라지고 있다. 어쩌면 지금 할 수 있는 건 이 시대의 음악들을 열심히 모아 놓는 것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이 음악들이 고귀하나 다가서기 어려운 ‘클래식’ 취급을 받기 전에. 비디오 스타가 라디오 스타를 죽였고, 리얼리티 쇼의 스타가 비디오 스타를 죽였다. 그리고 이젠 우리가 음악이라고 알고 있던 무엇이 죽을 차례일지도 모르겠다. 슬프지만, 사실이다.

글. 강명석 two@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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