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근우의 10 Voice] 신정아와 김영희 PD를 통해 본 분노의 메커니즘
[위근우의 10 Voice] 신정아와 김영희 PD를 통해 본 분노의 메커니즘
속도전의 시대다. 지난 22일,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는 학력 위조를 비롯한 여러 일들에 대한 해명을 담은 자전에세이 을 내며 화제를 모았다. 그리고 하루 만에 온갖 매체들로부터 ‘물귀신 작전’이라거나 ‘대한민국 전체가 그의 돈벌이에 적극 동원되고 있는 것’ 같다는 평가를 받으며 더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건 논란이 아닌 판결이다. 421페이지짜리 책과 저자에 대한 옳고 그름에 대한 판결이 이토록 빠르게 이뤄진다는 건 제법 놀라운 일이다.

빠른 게 문제는 아니다. 속도가 사유와 논의를 잠식하는 것이 문제다. 지금 신정아는 명백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진실인지 아닌지도 모를 지저분한 이야기들을 팔아 돈을 챙기고 있는 파렴치한으로 규정됐다. 그게 사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 결론을 내기까지 선행되었어야 할 논의 중 그 하루 사이에 제대로 진행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 더 정확히 말해 네티즌과 언론이 문제 삼고 있는 건, 정운찬 전 총리와 C 기자의 지분거림에 대한 진실 여부, 그리고 폭로의 저의에 대한 것이다. 이건 분명 작정한 폭로다. 하지만 이건 ‘남자가 잘하면 능력 덕분이고 여자가 잘하면 분명히 뒤에 배경이 있다고 여기’는 사회 풍토에 대한 지적의 맥락 안에서 이야기되어야 한다. 자극적 소재와 신정아의 기자회견 덕에 초판 5만부가 출고될 수 있던 건 어느 정도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모든 에피소드 중 정운찬 관련 파트만 발췌해 하룻밤 사이에 유통시킨 건 언론이었다는 사실이 은폐되어 있다.

분노가 여론으로 수렴되고 논의를 대신하다
[위근우의 10 Voice] 신정아와 김영희 PD를 통해 본 분노의 메커니즘
[위근우의 10 Voice] 신정아와 김영희 PD를 통해 본 분노의 메커니즘
신정아가 결백하거나 잘못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많은 이들은 현지 친구에게 논문을 대필시킨 주제에 학위 위조 문제를 변명한다고 비판하지만, 이 부분의 고백에서 오히려 실망스러웠던 건 논문 주제였던 원시 미술과 뒤샹과의 상관관계가 무척 추상적이고 성글지 못했단 것이었다. 예일대 학위 없이도 미술관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는 중이었다는 그의 반론에 대해 염치없다고 쏘아붙이는 건 쉽되 논리에 균열을 일으킬 수는 없다. 정말 신정아의 능력이 의심되고 배경 없이는 그 위치에 오르지 못했을 거라는 심증이 든다면 기획능력이 예일대 학위에 준할 만큼의 것인지 하나하나 따져보는 것이 맞다. 일반인은 A-B-C의 단계를 거쳐야 하는 논리적 사고를, 천재는 A-C로 넘어가는 게 가능하다고 한다. 지금 신정아에 대해 규정하고, 단언하는 사람들과 언론은 그런 면에서 천재적이다. 하지만 B의 단계를 천재적 직관으로 뛰어넘는 것과 생략하는 건 전혀 다른 일이다.

신정아와 에 대한 반응을 보며 역시 최근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MBC ‘나는 가수다’ 김영희 PD의 하차가 떠오르는 건 그 때문이다. 그의 하차 역시 겨우 3일 만에 결정됐다. 신정아보단 조금 긴 시간이었지만 하차라는 결론 C를 얻게 되기까지의 B가 얼마나 두텁게 진행됐는지는 의문이다. 쇼를 위기에 처하게 만든 건, 분명 김영희 PD의 개입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좋은 무대가 주는 감동은 잴 수 없는 것이지만, 그래도 다수결로 평가하자’는 이율배반적 기획 안에서 이미 발아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콘셉트를 유지하면서 뮤지션과 대중을 만족시킬 방향은 무엇인가. 김영희 PD는 그 방향을 찾을 수 없나. 없다면 누가 대신해줄 수 있을까. 하지만 네티즌의 분노를 여론으로 수렴해 하차를 결정한 MBC는 대답이 없다.

세상은 흰색과 검은색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위근우의 10 Voice] 신정아와 김영희 PD를 통해 본 분노의 메커니즘
[위근우의 10 Voice] 신정아와 김영희 PD를 통해 본 분노의 메커니즘
무언가에 대한 옳고 그름을 따지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다. 김영희 PD는 악마가 아니고, 신정아도 마녀가 아니다. 세상은 흰색과 검은색이 아닌 수많은 명도의 회색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이클 센델의 는 정의를 정의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걸 보여줬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이 옳은지에 대해 치열하게 싸우고 논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는 예능 연출자로서 김영희 PD의 무지를 지적했다. 이에 반대할 수도 찬성할 수도 있다. 그 과정을 통해서만 우리는 사건의 범인이 아닌 원인을 찾고, 가장 옳은 선택을 향해 발걸음을 옮길 수 있다.

지금 가장 두려운 건, 김건모의 재도전도, 신정아의 폭로도 아니다. 이런 일들이 더 일어나더라도 그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지는 메커니즘이 건강하게 돌아간다면 결국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불특정다수의 극렬한 분노가 합리적 논의를 대신하고, 여기에 브레이크를 걸어야 할 언론과 방송 주체가 대중의 의견은 무조건 옳다며 논의의 주체이길 거부할 때 진짜 절망은 시작된다. 한 사건에 대해 수많은 팩트와 관점이 존재할 수 있는 시대에 정의가 무엇인지는 말하기 어렵지만, 이것만큼은 확실하다. 이 메커니즘을 생략하는 건, 단 하나의 악이다.

글. 위근우 eight@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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