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이 영상에서 시작하자. 누가 보이는가. 그 옛날 SBS 의 능청스러운 만수? MBC 의 이민호 선배? 혹은 예능프로그램에서 오랜 연인을 향해 깜짝 프로포즈를 하던 남자? 그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죄로 사형선고를 받은 안중근이자 대중에게 ‘주인공 친구’로 각인되어 온 정성화다. 배우는 수많은 캐릭터의 삶을 살아낸다. 나라를 구한 영웅이 될 수도 있고, 어느 날 갑자기 연쇄살인마가 되어 칼을 휘두를 수도 있다. 그간 ‘주인공 친구’였던 그가 지난 2010년 으로 제 4회 더뮤지컬어워즈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무대에 선지 8년 만의 일이었다. 한 분야에서 인정받기까지의 지난한 세월 역시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정성화는 좀 다르다. 주연이냐 조연이냐 혹은 그가 업계에서 인정받느냐 아니냐의 차이가 아니라, 그가 자유로운가 아닌가라는 점 때문에.

친구의 반격, 뮤지컬에서 시작되다
정성화│주인공 친구의 무대 정복기
정성화│주인공 친구의 무대 정복기
정성화는 개그맨이었다. 그래서 출신에 기인한 드라마와 영화에서는 늘 주인공 친구였다. 직업의 소중함 대신 자신의 불운을 더 먼저 떠올렸던 20대. 하지만 “박수를 쳐야 할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할 줄 아는” 관객의 박수를 받고난 후 그는 삶의 의미를 되찾았고, 자신을 둘러싼 선입견을 깨는 조각을 시작했다. 여러 번의 실험 끝에 조승우와 함께 2007년 (이하 )의 돈키호테에 캐스팅되며 그동안 축척된 굳은 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해, 조승우는 시상대 위에서 함께 노미네이트되었던 정성화를 향해 “이 상은 형 것”이라 말했다. 친구의 반격이 시작된 셈이다.

불가능한 꿈을 향한 용기와 전진은 낮은 베이스의 울림을 타고 관객의 가슴에 단도로 꽂혔다. 그 누구도 정성화에게서 상상하지 않았던 모습이었다. 특히 “지금의 모습이 아니라 앞으로 되어질 모습을 연모하겠나이다”를 읊조리는 돈키호테는 그동안 그가 걸어온 길과 중첩되며 정성화의 미래를 주목하게 했다. 그래서 그에게 가능성의 날개를 달아준 것이 였다면, 이후 그 날개로 날아오른 것이 바로 이다. 상대적으로 더 “토종스러운” 외모와 목소리를 가진 정성화의 안중근은 불안에 흔들렸고 선택에 머뭇거렸다. 그래서 안중근은 무거운 독립투사의 짐을 벗고 끊임없이 번뇌하는 서른한 살의 청년으로 태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을 정성화의 작품으로 이야기하는 이유다.

인정받는 뮤지컬배우 그 이후
정성화│주인공 친구의 무대 정복기
정성화│주인공 친구의 무대 정복기
아쉽지만, 여기까지다. 제 아무리 수상소감이 화제를 모으고 연일 1000명의 기립박수를 받는다 해도, 무대를 떠나는 순간 정성화는 “여전히 주인공 회사 직원 중 가장 웃긴 사람”일 뿐이다. 최근작 에서도 그는 섬세한 손끝처리와 함께 “언니라 불러도 돼요?”라며 게이인 척 연기하던 순간으로 기억됐다. 개봉을 앞둔 역시 헤어롤을 말고 딸기무늬 원피스를 입은 컷으로 ‘순정만화에 빠져있는 4차원’ 캐릭터를 연기한다. ‘명품 조연’이라는 수식어를 달수도 있겠다. 하지만 쉬어가는 타이밍을 위해 만들어진 캐릭터는 그의 수많은 가능성을 좀먹었다. 그래서 그가 뮤지컬배우들의 드라마 진출에 대해 “나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큰 역을 맡을 수 있을 것”이라 말한 점은 의미심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성화는 카메오든 단역이든 가리지 않고 출연한다. 배우에게 필요한 것을 알기 위해 시나리오를 써보고, 자신의 객관적인 위치를 인정하고, 어쨌든 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마인드로 끝까지 간다. 그리고 가다 보면 KBS 의 ‘보라색 하이힐을 신고 저승사자가 온다’와 같이 자신이 가진 가능성을 전시할 수 있는 순간이 온다. 그동안 무대에서의 삶도 늘 화려하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안정된 발성과 정확한 딕션이라는 기본기 위에 자신의 색을 덧칠해온 결과 그는 희극과 비극 모두에서 인정받는 뮤지컬배우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래서 노래 없이 오롯이 연기로만 평가될 은 그의 배우 인생에서 중요한 하나의 전환점이 될 것이다. 새로운 국면을 가져올 수도, 혹은 아무런 변화를 가져오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는 분명하다. 조각은, 정으로 수만 번을 깨는 자만이 완성할 수 있다.

글. 장경진 three@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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