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크리스마스>│“미스터리물이라기보다 ‘그냥 재밌는 거 한 번 만들어보자’에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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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는 2011년의 신선한 충격이다. 폭설로 고립된 명문 고등학교에 갇힌 아이들은 수능 따위와 비교도 할 수 없이 극한 상황에 몰리고 각자의 내면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악은 어느 순간 깨어나 자신과 타인을 덮친다. 눈부신 육체를 지닌 젊은 배우들이 설원에서 상의를 벗어던지고 눈싸움을 벌이는 장면은 아름답지만 사실 이 드라마가 들여다보는 것은 성장의 감동적인 순간이 아니라 덮어둔 상처를 건드리며 위험하게 들끓는 욕망들이다. 이 거친 듯 하면서도 탐미적이고, 낯설지만 매혹적인 작품을 만들고 있는 김용수 감독을 만났다. 입사 후 , 등 단막극만을 연출해 온 그는 여전히 “자의식을 가지고 접근할 수 있는”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박연선 작가가 2009년 상반기에 이미 기획에 들어갔던 작품으로 알고 있다. 워낙 실험적인 기획이다 보니 편성과 제작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을 텐데 어떻게 맡아 만들게 되었나.
김용수 감독: 처음부터 이걸 하겠다고 했던 건 아니고, 좋은 기획안이라고 들어서 알고 있다가 직접 읽게 된 건 드라마제작국 기획실무회의에서였다.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는데 그 때 KBS에서 편성이 되지는 않았다. 그러다 팀에서 연작 드라마 하나를 나에게 맡기길래 그럼 이 작품을 하고 싶다고 했다. 사실 문제는 몇 부작으로 만드느냐였다. 박연선 작가는 12부작 정도를 생각했고, 나는 10부작 정도면 어떠냐고 회사를 설득했는데 안 된다는 답을 들었다. 작가가 8부작으로는 도저히 못 하겠다고 해서 어느 시점에선 안 하는 게 되었다가 내가 좋은 말로는 설득했고 나쁜 말로는 ‘꼬셨다’고 할 수 있다. (웃음)

뭐라고 꼬셨나? (웃음)
김용수 감독: 편성은 생물이라 준비하다 보면 다른 작품이 준비 안 된 시간에 들어갈 수도 있고 반응이 좋으면 늘어날 수도 있다고 했다. 사실 빈 말이 아니라 그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고 믿었다. 그러던 중 박연선 작가가 ‘하든 못 하든 얼굴 보고 얘기 하겠다’고 회사로 찾아왔다. 계속 설득했더니 그러면 가위 바위 보로 결정하자는 거다. (웃음) 그래서 나는 이렇게 중요한 걸 그렇게 결정하면 절대 안 된다고 했고, 박연선 작가는 ‘지금 기회 아니면 방송 안 될 것 같냐’고 물어보더라. 내가 판단하기에는 앞으로 더 어려워질 것 같다고 했고, 결국 그 날 가위 바위 보를 안 하고 방송을 하기로 했다.

“지문 하나하나가 시각화되어 그림이 떠올랐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미스터리물이라기보다 ‘그냥 재밌는 거 한 번 만들어보자’에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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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부로 분량이 줄어들면서 빠지게 된 부분들은 어떤 것들인가.
김용수 감독: 일단 처음 나온 대본에서 4부까지가 1부로 줄었다. 은성이(이솜)의 자살 시도는 원래 4부에 있었다. 윤수(이수혁)와 미르(김현중) 쪽 에피소드도 꽤 많았다. 특히 동상 폭파는 메인이 되는 편지 에피소드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서 뺄 수밖에 없었지만 아쉬웠다.

사실 는 5부쯤 속도감이 붙고 장르물의 재미가 드러나지만 그 전까지는 상당히 낯설고 복잡한 이야기다. 시놉시스에서서 특히 재미를 느낀 건 어떤 면인가.
김용수 감독: 이야기 자체가 기존 드라마에서 보기 힘든 내용이었고 지문 하나하나가 시각화되어 머릿속에 그림이 떠오르는 게 좋았다. 박연선 작가는 그 방면에서 굉장히 뛰어난 분이다. 하지만 내가 어리석고 무모했다고 생각한 게, 이 대본을 본 많은 PD들이 ‘남들은 어떻게 만들까’를 굉장히 궁금해 했다고 하더라. 농담으로 ‘다시는 박 작가님 작품 안 하겠다’고 했을 만큼 떠오르는 이미지를 영상으로 구현하는 게 어렵다. 그래서 오히려 장르물에 대한 고민보다 이 텍스트를 그림으로 어떻게 옮길 것이냐에 대한 고민이 더 컸다. 작가님과 나는 솔직히 말하면 청춘물, 미스터리물이라는 생각보다 ‘그냥 재밌는 거 한 번 만들어보자’ 였다. 박연선 작가님은 재미를 추구하거든. 근데 왜 이렇게 시청률이 안 나오는지. (웃음)

젊고 훤칠한 배우들을 보는 재미도 있다. (웃음) 사실 신인 연기자를 키운다는 면에서도 의미 있는 작품인데.
김용수 감독: 사실 나와 작가님은 키운다는 생각도 딱히 안 했다. (웃음) 일단 작가님이 원했던 건 캐스팅 시점인 작년 나이로 스물네 살 이하, 키 180cm 이상이었다. 그래서 계속 사진을 보여주며 누가 더 나은지 의논을 했는데 재미있었던 게, 처음에 성준 씨를 보고 잘 생겨서 포털에서 검색해 보라고 했더니 같은 직종인 모델계에서 일하는 김현중 씨가 어떤 이미지에 같이 나와 있었다. 작가님도 좋게 봤고, 내가 봐도 잘 생긴데다 개성 있어서 미르 역할에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 생각에 연기를 잘 해야 하는 배역이 무열이(백성현), 강모(곽정욱), 영재(김영광), 재규(홍종현)였고 치훈이(성준)와 미르는 조금 못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서 신인을 캐스팅한 거다.

사실 김영광이나 홍종현, 이수혁도 연기 경험이 많지 않은 편인데, 이런 신인들을 여럿 모아놓고 작품을 만들 때 이들로부터 무엇을 어떻게 끌어내려고 했나.
김용수 감독: 현장에서 디렉션을 주기도 하지만 특별한 계획은 없었다. 김영광 씨는 그 자체로 준비를 잘 해오고 홍종현 씨는 호흡이 길긴 하지만 굉장히 섬세한 연기를 한다. 그런데 캐릭터들이 십대 후반인 데 비해 이 연기자들은 이미 몇 살 위니까 그 솔직한 감성이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걸 좀 부끄러워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걸 계속 설득한 걸 제외하면 대본이 훌륭해서 나는 되도록 내버려두고 가는 편이다.

카메라가 밖에서 이들을 관찰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고 앵글도 다양하다. 어떤 효과를 주려고 했나.
김용수 감독: 매 신마다 미묘하게 달라지는 부분이 있는데 원래 내 촬영 스타일이 카메라 블로킹이 많은 편이다. 단적인 예를 하나 들자면 내레이션으로 진행되는 신에서는 아주 객관적인, 쉽게 얘기하면 큰 사이즈를 쓴다. 3부 마지막에 은성이(이솜)가 체육 선생님(정석원)이 죽은 걸 보고 호각을 부는 장면에서 내레이션이 깔릴 때 다른 아이들이 달려오는 건 원경으로 보여줬다. 그러니까 아이들끼리 이야기할 때는 타이트 샷을 주고받는데 내레이션이 나오면 생뚱맞게 큰 화면이 나오는 식인데 원래는 그런 식으로 잘 찍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선 내레이션 자체가 말하는 사람의 감정이 아니라 이들이 처한 상황 자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의도된 거다. 등장인물 대신 ‘보는 사람’이 이 상황을 보는 것, 그래서 캐릭터들의 주관보다 객관화시킬 수 있도록 만들려고 노력했다.

작품에서 음악을 활용하는 방식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인디 뮤지션 박현민과 전자양이 음악 감독을 맡고 있는데 어떻게 함께 작업하게 됐나.
김용수 감독: 사실 클래식을 비롯해 모든 장르의 음악을 좋아하지만 기본적으로 음악을 상품으로 접근하지 않는 사람들은 미사리나 홍대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홍대의 좋은 음악을 대중에게 소개하고 싶었고, 처음엔 사이키델릭 장르를 하고 싶었는데 락이 좀 더 맞을 것 같았다. 마침 그 때 그 분들이 만든 니나이안 프로젝트 앨범을 듣다 보니 음을 다루는 기술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르물이니까 음향 효과적인 음악을 시도하기도 했는데 아주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우리 음악은 상당히 괜찮다고 생각한다.

엔딩에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Toxic’이 등장했는데 극의 분위기와 전혀 다른 음악을 배치한 이유는 뭔가.
김용수 감독: 그래서 욕도 많이 먹었는데, 사실 그것까지 포함해서 의도한 바였다. 나는 이 드라마를 보며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든 마지막에 그것으로부터 깨어나길 바랐다. 의도된 것이었던 만큼 나를 욕하든 하지 않든 그에 대해 의식했다는 건 그 자체로 성공적이었다고 본다.

왜 깨어나길 바랐나.
김용수 감독: 무겁고 간단치 않은 작품이기 때문에 다 보고 나서는 깔끔하게 끝나길 바랐다. 주문에 걸려 있다가 깨어나는 것처럼 ‘아, 이제 자야지’ 하도록. (웃음)

“자의식을 가지고 접근할 수 있는 대표적인 장르가 단막극”
<화이트 크리스마스>│“미스터리물이라기보다 ‘그냥 재밌는 거 한 번 만들어보자’에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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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주인공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평범한 십대들과 다르지만 그 또래들이 가지고 있는 욕망과 어두운 면 등 보편적인 속성도 가진 아이들이다. 고등학교 시절 어떤 학생이었나.
김용수 감독: 83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나는 철이 없고 공부도 별로 안 하고 그냥 놀러 다니기만 하는 학생이었다. 부모님이 공부하라고 하는 스타일이 아니셔서 다행이었다. 이번에 촬영하면서 서울과 목포의 고등학교를 오갔는데 확실히 우리가 학교 다닐 때와는 다른 것 같았다. 방학 때도 찍었는데 그 때도 공부하고 있고, 이기기 위해 매진하는 것이 당연한 분위기가 된 것 같다.

지난 해 을 부활시켜 꾸준히 방송해왔다는 점은 KBS 드라마에 좋은 자양분이 된 것 같다. 도 그 일환으로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은데 다음에는 어떤 작품을 하고 싶은가.
김용수 감독: 나는 원래 단막극만 했었고, 회사에도 다시 단막극을 하고 싶다고 얘기했다. 내가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생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하반기에 다시 단막극을 하고 싶다.

대부분의 감독들은 단막극을 시작점에 두고 점점 큰 사이즈의 작품을 하고 싶어 하지 않나.
김용수 감독: 8부작을 해보니 작품의 어느 시점까지는 내가 대본을 완전히 장악하고 컨트롤할 수 있었는데 절반 이상이 지나면서는 현장에서 만들게 되는 것이 많아졌다. 그래서 굳이 꼭 미니시리즈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사실 나는 단막극에 대해 신인 작가와 연출자를 양성하는 과정으로만 여기는 시각이 굉장히 아쉽다. 그건 굉장히 작은 이유에 불과하다. 나쁜 의미가 아니라, TV 드라마는 원초적으로 경박할 수밖에 없는 장르인데 그 중에서 경박하지 않을 수 있는, 자의식을 가지고 접근할 수 있는 대표적인 장르가 단막극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시장 논리에서는 이게 통하지 않으니까. (웃음)

방송이 2회 남았다. 시청률을 떠나 굉장히 독특한 인상의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은데 만든 사람으로서 돌아보면 어떤가.
김용수 감독: 나는 원래 그렇게 대중적인 감독은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걸 만드는 편이었는데 이번에는 시청률도 어느 정도는 나오면서 평도 괜찮은 작품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 대본을 채택하지 않은 방송사 사람들에게 이게 굉장히 좋은 이야기였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 목표를 다 이루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글. 최지은 five@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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