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판 존 레논과 오노 요코
일본판 존 레논과 오노 요코
존 레논이 세상을 떠난 이후 오노 요코는 그의 음악 세계를 들여다보는 하나의 만화경이었다. 음악을 들으며 떠올렸던 그림들이 새로운 퍼즐 조각과 만나 새로운 이야기를 물고 왔다. 그저 남겨진 것들 사이에서 슬픔에 잠겨있던 대중은 오노 요코의 삶에서 존 레논의 이야기를 다시 시작했다. 존 레논의 동반자 오노 요코는 좋든 나쁘든 팬에게 히든 트랙과 같은 존재다. 하나의 예술을 다른 창구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기쁨. 이는 대중을 흥분시키기에 모자람이 없다. 대중의 촉수는 항상 예술의 작은 흔적이라도 잡으려 민감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두 부부 예술가의 일상을 남녀의 시점에서 들어보는 건 어떨까. 우리네 부부싸움도 성별 따라 내용이 천지차이라는데 작품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남녀의 설전이라면. 지금 일본에선 일본의 만화가 사이바라 리에코의 일상을 그린 영화 두 편이 동시 상영 중이다.

2010년 12월 4일 히가시 요이치 감독의 가 개봉했다. 이 영화는 사이바라 리에코의 전 남편이자 지금은 세상을 떠난 카메라맨 카모시다 유타카의 자전적 동명 에세이를 원작으로 한 영화다. 아사노 타다노부와 나가사쿠 히로미가 부부로 출연한다. 그리고 2011년 2월 5일 코바야시 쇼타로 감독의 가 공개됐다. 이 영화는 사이바라 리에코의 자전적 동명만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고이즈미 쿄코와 나가세 마사토시가 출연했다. 두 영화는 모두 사이바라와 카모시다가 결혼 후 아이를 가진 뒤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원작의 소재가 같으니 영화의 소재도 동일하다. 만화로 가계를 꾸려가는 사이바라 리에코와 전장에서의 촬영 후유증으로 알콜 중독에 시달리는 카모시다가 싸우고 화해하고 이혼하고 다시 만나는 과정을 그린다. 같은 이야기에 대해 는 사이바라의 시점이고, 는 카고시다의 시점인 셈이다. 그리고 의 출연배우 고이즈미 쿄코와 나가세 마사토시는 실제 이혼한 커플이기도 하다.

상대방의 시선에서만 볼 수 있는 진짜 이야기
일본판 존 레논과 오노 요코
일본판 존 레논과 오노 요코
사이바라 리에코는 국내에서도 인기가 있는 만화작가다. 대표작 은 국내에 번역 출간됐고, 등 영화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작품도 다수다. 단조로운 스케치에 익살스러운 표정을 담아내는 그녀의 만화는 언뜻 보기엔 거칠어 보이지만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짙게 배인 삶의 정수가 묻어난다. 도박, 여행 등 직접 경험한 리포트를 바탕으로 그려져 생동감도 넘치고 자신의 삶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 작품이 많아 진솔함이 묻어난다. 알콜 중독의 친부, 가정폭력과 도박의 의부 아래서 자란 그녀는 자신의 삶을 무덤덤하지만 결코 경솔하지 않은 그림으로 그려낸다. 이번에 공개된 는 자신의 결혼 생활을 바탕으로 그린 매우 솔직한 작품이고 는 그녀가 끝까지 버리지 못했던 남자의 일기장 같은 작품이다. 비슷한 시기에 공개된 두 작품의 영화는 우연히도 서로의 마음을 훔쳐보는 일종의 편지 형태가 되었다.

같은 이야기라 해도 영화는 화자의 작풍 따라 화법도 다르다. 다소 자극적인 현실을 특유의 서정성으로 버무려내는 사이바라 리에코의 원작을 취한 는 유머가 넘치는 휴먼드라마로 완성됐고, 전쟁에서의 상처로 마음을 다친 뒤 에세이스트로 활동했던 카모시다 유타카의 책을 원작으로 삼은 는 인생의 질곡을 초현실적인 엔딩으로 추모한다. 같은 공간과 시간을 서로 부딪치며 그려낸 글과 그림은 한쪽에선 보이지 않았던 서로의 진심과 삶의 이면을 보여준다. 사이바라 리에코의 만화를 보며 작품 속에 등장하던 ‘위험한 아빠’, ‘카모짱’이 궁금했던 독자라면 속에서 그 비밀을 찾아낼 수 있을 거고, 카모시다 유타카의 사진과 책을 보며 그의 마음속이 아련했던 이라면 에서 작은 주석을 찾아낼 수 있을 거다. 매일 엄마의 잔소리가 시끄러웠던 아이에게 술이 깨 돌아온 아빠가 그저 반가운 존재인 것처럼 말이다.

글. 정재혁 칼럼니스트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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