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훈이가 좋은 가족을 만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지난 금요일 밤, 사실 저는 MBC 오디션 프로그램 을 학수고대 중이었습니다. 예고에 감질나게 살짝 보인 이유나 양과 김정인 어린이의 듀엣 곡 ‘댄싱 퀸’에 매료되어 한 주일 내내 기다려 왔거든요. 그런데 TV를 켠 순간, 마침 화면은 SBS 이었고 “도와주세요. 보고 싶어요” 하는 애절한 목소리가 들리자 도무지 채널을 돌릴 수가 없더라고요. 불이 꺼져 있는 을씨년스러운 집 안에서 한 어린 아이가 흐느껴 울고 있었습니다. 어른도 무서워서 있는 대로 불을 켜놓을 법한, 사람이 사는 흔적조차 느껴지지 않는 커다란 이층집이었어요. 그런데 벌써 오래 전부터 밤마다 울음소리가 들렸다죠? 제작진이 찾아가 확인한 바로는 집안에 갇혀 있는 어린아이는 올해 여덟 살 된, 그러나 영양상태가 좋지 않아 겨우 오륙 세쯤으로 보이는 송지훈 군이었습니다. 제작진이 건넨 음식을 허겁지겁 입에 넣는 지훈이를 보고 있자니 목 안이 뜨끔하며 눈물이 솟더군요. 요즘 같이 먹을거리가 지천인 세상에 도대체 우리 어른들은 이 자그마한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한 걸까요. 다른 쪽 채널에서 한 어린이가 열화와 같은 관심 속에 빛나고 있으리란 걸 잘 알고 있기에 더 서글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왜 한 쪽의 어린이는 어둠 속에 버려진 채 모진 추위와 배고픔으로 떨고 있어야 하느냐고요.

현실은 소설보다 훨씬 암울하네요

혼자 외로운 시간을 보내온 지훈이는 낯선 이를 두려워하기는커녕 얘기라도 나누자며 창문을 가로막고 있는 빗장을 애써 뽑아내더군요. 그리고는 물었죠? “봉투에 담겨 있는 건 뭐에요?” 아이의 애처로운 말과 행동 하나, 하나에 가슴이 저려왔습니다. 더 가슴 아픈 건 지훈이가 어머니의 모진 폭언과 학대를 묵묵히 견뎌왔다는 점이에요. 흉하게 어깨에 남은 상처는 어머니가 뜨거운 물을 부은 결과물이었고 그와 비슷한 상처자국이 여기저기에서 발견 되었어요. 약사인 63세의 어머니는 친어머니가 아니라 몇 년 전 지훈이와 또 다른 아이 둘을 동시에 입양한 분이시더군요. 체벌과 학대를 구별 못하는가 하면 “나쁜 부모의 DNA를 타고난 아이들이라 태어날 때부터 문제아”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 등 반성의 기미를 조금도 보이지 않았죠.

물론 양어머니에게도 피치 못할 사연이 있을 수 있다고 봐요. 남자 아이 셋을 키워 왔으니 제 자식이라 해도 감정 제어를 하기 어려운 사건 사고가 많았을 테고, 마음이 점점 엇나가다 보면 처음 입양을 결심했을 때와는 생각이 일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는 집에서 키우는 동물이라 할지라도 크게 지탄 받아 마땅한 사안이 아닐는지요. 배울 만치 배운 분이기에, 밤마다 성당에 들러 미사 참례도 하신다는 신앙인이라기에 더 기막힙니다. 어이없는 건 이와 같은 비윤리적인 부모들의 처벌 기준이 애매한데다가 즉각적인 파양 역시 쉽지 않다는 사실이더군요. 또 같은 아픔이 되풀이 된다는 게 아이들에게 크나큰 상처일지 모르겠지만 어찌 이런 잔혹한 어머니에게 다시 아이를 맡길 수 있겠습니까. 십여 년 전 소설 ‘다락방의 꽃들’을 읽으며 느꼈던 분노와 공포가 되살아나는 기분이었어요.

고맙고도 서운합니다

그러나 어찌 보면 소설보다 훨씬 어처구니없는 게 현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설 속 아이들은 아무도 모르게 숨겨져 있었다지만 지훈이 형제들은 주변 어른들이 알면서도 철저히 외면해온 것이니 말이에요. 지훈이의 불행은 이 세상 모든 어른의 책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머니가 참석하지 않은 유치원 졸업식에서 마치 유령처럼 어느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고 겉도는 지훈이를 보니 우리 사회의 무신경이 어느 정도인지, 뼈저리게 느껴지더라고요. 이미 큰 아이로 인해 아동학대 신고를 받은 바 있다는 아동보호 기관도 어찌 그리 무심하셨을까요.

저는 솔직히 제작진 여러분께 고마운 마음 반, 서운함 반입니다. 지훈이가 처한 긴박한 상황을 낱낱이 전해주신 점은 고맙기 그지없지만 내 자식이어도 과연 그렇게 돌아서실 수 있었을지 묻고 싶어요. 무엇보다 추위에 떠는 아이에게 차디찬 우유와 빵을 주시는 장면에 놀랐거든요. 난방도 되어 있지 않은 방에서 손을 바들바들 떨며 빵을 먹던 모습이 아직도 머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발견 즉시 아동보호 전문 기관이나 경찰의 협조를 얻어 조처를 취한 게 아니라 꽤 오랜 기간 프로그램 제작을 위한 취재를 계속하셨다는 것도 마뜩치 않습니다. 무섭다며, 도와달라며 두려움을 호소하는 아이를 바로 당장 구해주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 사이 이유 모를 분노를 표출하는 어머니가 혹여 또 다시 뜨거운 물을 부었다면, 전화도 없고 사방이 폐쇄된 집에 화재라도 발생했다면 어쩔 뻔 했을지, 모골이 다 송연합니다. “묻고 싶은 게 있어요. 왜 저는 엄마에게 버림 받아야 했나요. 제발 제 기도를 들어주세요. 두 번째 엄마에게는 버림 받지 않도록”이라는 지훈이의 바람으로 프로그램의 문을 여셨지만 오히려 두 번째 어머니와 파양하고 다른 좋은 가정에 입양되도록 제작진 여러분께서 부디 물심양면으로 힘써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편집. 장경진 th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