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를 위해 만난 장재인은 사진 촬영 내내 장난기를 감추지 않았다. 시종일관 웃으며 스튜디오를 긍정의 에너지로 가득 채운 그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활달했고 웃음이 많았다. 그의 또래인 스물 한 살들이 그런 것처럼, 매사에 웃음을 아끼지 않는 파릇한 청춘. 하지만 장재인은 그런 동시에 자신의 길에 대한 완벽하리만치 철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의 그를 파악하고자 던진 질문의 거의 대부분은 그가 정하고 다짐한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미래로 귀결 되었고, 어떤 질문에도 흔들리거나 고민하는 바 없이 자신의 중심을 지켰다. 자신의 미래에 대한 확고한 의지는 흡사 수도승을 연상케 했지만, 또 이내 키득거리는 웃음으로 무게감을 지워내는 장재인은 그래서 만난 이후에 자꾸만 궁금증이 커지는 종류의 아티스트다. 진짜 자신의 음악은 봄에 발표될 새 EP 앨범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말하는 이 욕심 많은 청춘과의 대화를 옮긴다.
<슈퍼스타K 2>가 끝나고 시간이 제법 흘렀다.
장재인
: 쇼가 끝나고도 한 다섯 달 정도 계속 달렸는데, 그 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를 지금 와서 좀 앓고 있다. 피부도 좀 뒤집어 졌고 몸도 좀 그렇다. (웃음) 그래도 지금은 훨씬 여유가 생겼다.

되돌아보니까 어떤 시간 같던가?
장재인
: 연예계에 대해서 많이 깨닫게 해 줬고, 내가 계획했던 것에 좀 더 살을 덧붙일 수 있었다. 그러니까 열여섯 살 때 음악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막연하게 세웠던 나의 길들, 계획들, ‘나는 이렇게 하고 이런 길을 가야겠다. 이런 식으로 앨범을 해야지’ 하는 생각들에, 체험을 하면서 ‘아, 이런 상황에서는 이런 게 필요하구나” 하는 것들이 붙었다.

남들이 수년에 걸쳐 겪을 걸 속성으로 겪은 셈이다.
장재인
: 모두 다 그렇게 얘기한다. 주위 사람들도 <슈퍼스타K 2> 11명에게 “너희들은 다른 사람들이 3년 혹은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인연, 경험, 시간들을 3개월 만에 겪었다”고 얘기를 하시더라.

“작곡은 나를 표현하고 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시작했다”



<슈퍼스타K 2>의 열풍은 어느 정도 잠잠해 졌지만, 여전히 당신을 알아보고 사인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많다. 본인이 지하철을 타고 다니고 길거리를 걸어 다녀도 마찬가지일 테고.
장재인
: 처음에는 신경 안 썼다. 딱히 내가 연예인이라는 자각도 없었고. 요즘은 차량이 생겨서 그거로 많이 이동 하는데, 개인적인 일로 이동을 할 때는 아직 그냥 혼자 지하철 타고 움직인다. 지하철 타고 버스 타는 게 제일 편하니깐 걸어 다니고. 생각해보니 별로 자각 없이 다녔다.

<슈퍼스타K 2> 지역 예선 때 다른 참가자들은 보통 스스로를 ‘가수 지망생’으로 소개를 하는데, 당신은 그 자리에서 스스로를 싱어송라이터라고 소개를 했다. 스스로를 그렇게 부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건 언제부터였나?
장재인
: 어릴 때부터 나는 혼자 지냈고, 어떤 일이든 혼자 스스로 했다. 부모님도 난 뭐든 혼자 잘 하는 애라고 생각했고. 그러니 또래 애들과 생각 하는 게 다르고 관심 분야도 달라도 딱히 대화 할 곳이 없었다. 그래서 속상한 일이 생기면 음악으로 풀었다. 집에 오면 방에 틀어 박혀서 책 보고, 침대에 누워서 이어폰 크게 틀고 눈 감고 상상도 하고. 팝송 가사 해석해서 그거 보면서 울기도 하고. 그러면서 가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곡은 아주 어릴 적부터 계속해서 쓰고 있었지만, 그 땐 그렇게 나를 명하고 싶은 게 꿈이었다. 서울 상경하고, 오디션을 봐서 홍대 클럽에 합격한 뒤부터 나를 싱어송라이터라고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싱어송라이터의 자격으로 활동을 하게 됐으니까.

초등학교 5학년이면 2002년 무렵인데, 처음으로 귀에 꽂혔던 음악은 어떤 곡이었나
장재인
: 음악적으로 취향이 명확해진 걸 설명하려면 중학교 때를 설명해야 되는데, 포 논 블론즈가 너무 좋았다. 일본 록밴드, 여성 싱어송라이터도 들었고. 음악적으로는 기타 사운드, 밴드 사운드를 그 때 많이 들었다. 고등학생이 된 후에도 더 밑으로 내려가고, 더 아날로그한 사운드로 갔다.

그런 쪽으로 취향이 짙어지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장재인
: 사랑 노래가 너무 많았다. 그때 내가 느끼는 것들과 원하는 음악, 그리고 음악에서 느끼고 싶은 것 들은 사랑 가사가 아니었는데. 이리 저리 뒤지다가 포 논 블론즈의 ‘What`s up’을 듣고, 가사를 보고 감동을 받았다. 이런 곡이 있었구나. 그래서 통기타를 잡게 됐는데, 그런 노래들이 다 록이었고 밴드 음악들이었던 거다.

결국은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찾다가 그렇게 가게 된 건가.
장재인
: 그 중에도 완벽한 내 얘기는 없었다. 그래서 곡을 쓰는 거에 더 매진하게 됐고. 작곡은 나를 표현하고 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시작했다. 정말 이기적인 이유로.

“가장 나답게 한 무대가 많이 사랑 받아서 행복했다”



그러면 곡을 쓰는 쪽과 부르는 쪽, 둘 중 어느 쪽이 더 스스로를 표현하는 데 만족스럽나.
장재인
: 싱어와 송라이터 두 가지 다 있기 때문에 싱어송라이터다. 난 어느 한쪽에 치우쳐 질 수가 없다. 대학에 오기 전부터 온 후에도, 작곡을 배울 기회가 있었는데 일부러 작곡을 선택 안 했다. 작곡 배운 사람들의 그 느낌이 있다. 조금 더 구조적인, 건축물 같은 느낌. 언젠가는 그렇게도 쓸 수 있어야겠지만, 우선은 지금 가지고 있는 이 느낌을 조금 더 누리고 싶다. 곡을 들을 때도 음악 이론이 명확한 사람들은 들으면서 해석을 한다. ‘아, 여기서 뭘 썼고 뭘 썼고’ 그런데 나는 그런 쪽은 없는 거다. 물론 오랫동안 음악을 접했기 때문에 분석하려면 분석도 가능한데, 풀어내는 방법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음악을 들으면 그냥 전체적인 느낌으로 들어온다. 슬프다, 깨끗하다, 따뜻하다, 몽롱하다 이런 식으로.

그런 식으로 당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내는 걸 늘 고민하는 것 같다. <슈퍼스타K 2> 무대에서도 양반다리로 앉아서 노래를 할 생각을 하고 그걸 감행한 건 당신뿐이지 않나.
장재인
: 사실 그 무대 며칠 전에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쪽지를 받았다. 외부 연락이 원래 통제되어 있는 데, 짐을 받는 도중에 같이 받았다. 그 때 나는 탈락한 멤버들이 돌아간 것 때문에 꽤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가로수 그늘 아래서 서면’은 그 당시 내 상황과 감정에 최고로 맞는 곡이었던 거다. 그 당시에는 최범석 선생님이 우리 의상을 봐주셨을 때인데, 무대의상이니까 굉장히 화려한 의상을 많이 줬다. 그런데 그 노래만은 내 욕심대로 하고 싶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진짜 이 노래는 내 노래로 부를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부탁을 드렸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최대한 수수하고 입고 싶다고. 그래서 흰 티와 바지를 하고, 그러고 무대는 앉아서 하겠다고. 그런 식으로 해서 앉아서 하게 됐다. 가장 나답게 하고 싶었다. 그 노래는.

미션에 충실했던 무대가 아니라 가장 자신답게 한 무대가 가장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된 셈이다.
장재인
: 가장 나답게 한 무대가 많이 사랑 받아서 행복했다. (웃음) 그렇게 완벽하게 노래에 몰입하는 무대가 좋은 무대인 것 같다. 부르다가 마지막쯤에 막 이렇게 울었다. “내가 사랑한 그대는 아나” 부분에서 굉장히 흐느낌을 참았었는데, 그런 식으로 감정몰입 되는 노래는 요즘 무대에선 잘 안 나오는데, 앞으로도 노래에 충분히 빠져든다면 그런 무대가 또 나오겠지.

멤버들이 떠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들이 많았다고 얘기했는 데, 이 쇼에 지원을 하게 됐을 때는 본선에 올라가면 어떤 일을 겪게 될 거라는 정보가 없었나.
장재인
: 없었다. 시즌1도 다는 안 보고 조금씩 몇 개만 봤으니까. 나는 내가 본선에 갈 거라는 생각 자체를 안 했다. 슈퍼위크에 갈 줄도 몰랐고. 3차를 봤을 때 자신감 있고 당당하게 봤던 것도 그거다. 떨어지면 계속 홍대 활동 하면서 경력을 쌓으며 메이저로 올라가면 되는 거고, 붙으면 붙은 대로 열심히 하면 되는 거고. 내 보컬 스타일이 전형적인 보컬 스타일은 아니기 때문에 본선까지 올라갈 거라곤 생각 안 했다.

여기서 붙거나 떨어지거나 상관없이 ‘나는 내 음악을 한다’는 생각이었던 건가.
장재인
: 그냥 붙으면 붙고 떨어지면 떨어지고, 난 내 것을 하면 되지, 하는 생각이었다. 그게 멤버들과 나의 가장 큰 다른 점이었고, 그래서 외롭기도 했다.

음악적으로 외로웠던 건가.
장재인
: 아무래도 그런 점이 있다. 혼자 추구하는 음악이 다르고, 다들 실은 우승을 목표로 하고 있는 데 나는 다른 걸 보고 있었다. 나는 어차피 나가면 다 똑같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사실 우승을 바라지도 않았고. 당시에는 팬들이 섭섭해 할 거라는 생각에 ‘열심히 해야죠’ 했지만,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우승 욕심은 없었다. 지금도 나는 내가 우승 안 한 게 참 좋다. (웃음)

우승을 안 할 거 같다는 확신에는 어떤 판단이 있었던 건가.
장재인
: ‘님과 함께’를 부른 무대 때 사실 내가 떨어질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 게 두렵지가 않았다. 욕심 많았던 건 무대 밖에 없었다. 떨어지는 주면 그런 게 느껴진다. 아, 이번 주는 내가 가는구나. (웃음) 나는 TOP4 때 그걸 느꼈다. 승윤이가 탈락하고 나서 다음은 나구나, 그게 딱 느껴졌다. 그건 어떻게 설명이 불가능하다. 숙소 생활과 무대에서 관객의 반응, 전체적인 상황, 제작진들한테 느껴지는 느낌.

매 미션이 붙고 안 붙고가 목적이 아니라,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도구들이 이런 것들이 있다는 걸 선보이는 무대 같았다. 기타, 카주, 건반까지 다룰 수 있는 악기를 차례차례 선보였으니까.
장재인
: <슈퍼스타K 2>에서의 나는 내가 아니란 생각을 했다. 싱어송라이터의 면모는 전혀 보여 줄 수 없는 곳이었기 때문에. 그냥 이 프로그램에 맞춰서 생각하자고 생각했다. 그럼 나는 언제 갈 지 모르는 거니까, 최대한 다양한 모습을 다 보여줘 보자고 생각했다. 보여줄 수 있는 여러 가지 면모는 다 보여주자.

“통기타 한 대만 들고 무대에 서도 가득 차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하지만 쇼가 끝난 뒤 어디를 가도 자신의 목소리가 들린다거나 하는 경험을 하고 나면, 스스로도 그 경계가 흐릿해지지 않나.
장재인
: 그것에 대해서는 솔직히 많은 생각을 안 했다. 왜냐면 내 곡들이 아닌 거다. 그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은 <슈퍼스타K 2>의 장재인이고, 내가 보여줄 거는 아직 멀었으니까.

최근 KBS <세 번의 만남>에 출연한 걸 보면, 오히려 홍대 클럽 무대 위에서 상당히 긴장하고 떠는 게 의외더라.
장재인
: 떨었던 이유는 단순하다. 연습이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갑작스레 무대에 서려 하니까, 나는 완벽주의자 성향이 강한데, 거의 불러보지도 못하고 무대에 서니까 떨었던 것 같다.

하지만 쇼 비즈니스에 발을 들이고 나면 본인의 의지처럼 모든 무대를 그렇게 준비하긴 어려울 텐데. 선택과 집중을 하면서 활동을 하다 보면 클럽 공연, 거리 공연 같은 것들도 점점 줄어들 수도 있고.
장재인
: 충분히 준비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말한 것처럼 그렇게 하지 못할 상황이라면, 그 조건 안에서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고. 거리 공연도 그렇다. 나는 하고 싶으면 할 거다. 교수님(김형석 프로듀서)도 그 쪽으로는 열려 계시고, 또 그게 내 즐거움이니까. 거리 공연이라는 게, 내가 하고 싶으면 지금 당장 여기 1층에 가서 노래 부를 수 있는 거다. 기타만 있으면 되니까.

쇼 비즈니스보다 좋은 뮤지션이 되는 게 먼저인 건가.
장재인
: 그렇다. 그러면서 음악도 많이 사랑 받으면 좋은 거고.

그럼 당신이 생각하는 좋은 뮤지션이란 무엇인가.
장재인
: 큰 사랑이 아니더라도, 대중들이 자신의 음악을 듣고 공감할 수 있고, 그 과정 안에서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사람? 두 가지가 다 이루어져야 될 것 같다. 대중가수라면, 대중들의 사랑도 받고. 그러면서도 자기가 표현할 수 있는 걸 표현할 수 있는. 대중이 원하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 늘 그 중간에 있고 싶다. 나만의 것으로 너무 가 버리면 그거는 혼자 하는 음악이다. 그렇다고 또 완벽하게 대중에게 맞추면 그건 내 색이 없는 거니까. 딱 그 중간에 있고 싶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EP 앨범은 언제쯤 세상에 나오게 되나. 오랫동안 생각했을 것 같고, 그래서 머릿속에 이미 어느 정도 큰 그림도 잡혀 있을 거 같은데.
장재인
: 정확하지 않지만, 봄에 나올 거 같다. 사실은 주제도 이미 잡았다. 예전부터 생각해 온 장르를 시도하려고. 완전 재미있을 건데 (웃음), 아직까지는 비밀이다. 외국에선 이미 각광받고 있는 느낌이었고, 한국에서 이런 시도를 해보면 어떨까 했는데 마침 김형석 프로듀서님도 그런 걸 하려고 하셨던 거다. 아직은 공개할 수 없지만, 자신이 있다. 스스로 곡을 쓰고, 앨범의 첫 구도부터 잡는 것에 대한 자신.

그럼 다르게 물어보자. 어떤 장르를 많이 듣고 있나?
장재인
: 요즘은 힙합을 재미있게 듣고 있다. (웃음) 좋아하는 음악은 역시 포크록이지만. 포크, 포크록, 올드 재즈, 모던록도 잘 듣고. 그런데 나는 늘 서너 개의 CD를 계속해서 반복해서 들으니까, 결국엔 늘 같다. 옛날 음악이 많다. 60년대, 7,80년대.

그렇게 자꾸 듣게 되는 6, 70년대 아티스트라면 누가 있을까.
장재인
: 난 비틀즈의 광팬이다. < Sgt. Pepper’s Lonely Heart Club Band > 그 앨범 너무 좋아한다. 그런 식으로 뭔가 주제가 있는 앨범을 내는 게 16살 때부터의 꿈이다. 한 곡 한 곡 들었을 때도 좋지만, 앨범이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그에 맞춰 진행되는 앨범. 그래서 나는 계속 그것을 생각하면서 앨범을 낼 것 같다. 싱글이 아닌 이상은.

그렇다면 당신이 최종적으로 추구하고 싶은 음악의 목표는 무엇인가.
장재인
: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건 늘 바뀌는 거다. 내가 쓰는 곡들도, 18살 때 쓴 곡들은 그냥 십대의 감성이고, 스무 살 때 쓴 곡은 또 다르다. 지금 쓰고 있는 곡들도 또 다르고. 그런데 그런 건 있다. 지금 21살 밖에 안 됐으니까, 지금 하고 싶은 것, 혹은 도전해 볼 것은 진짜 다 해볼 생각이다. 물론 늘 중심은 포크다. 통기타 들고 하는 음악이라는 게 아니라, 가사에 의미가 있는 음악을 포크라고 많이 하니까. 그러니까 가사 중심적인 음악, 나는 그 바탕 위에 온갖 장르를 다 섞어 보고 싶다.

그럼 다 해본 다음에 어떤 것이 남으면 좋겠나.
장재인
: 궁극적인 목표는 통기타 한 대만 들고 무대에 서도 그것만으로 가득 차는 사람이 되는 거다. 최근에 김광석 선생님 추모 콘서트에 참여했는데 그 때 더 확실하게 마음 먹었다. 쌓아 온 내공도 있고, 관객들이 그 사람을 신뢰하기 때문에 다른 것 없이도 충족이 되는 사람. 마지막엔 그런 가수가 되고 싶다.

<10 아시아>와 사전협의 없이 본 기사와 사진의 무단 인용이나 도용,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