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창고에 여섯 남자가 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프로이트, 칸트, 다윈, 사르트르. 물론 진짜 이름은 아니다.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본따 ‘시인의 모임’을 만든 그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철학자의 이름으로 서로를 부르고, 심취해있는 학자가 누구냐에 따라 그들의 성격도 결정된다. 제법 머리가 자란 이후 가진 ‘시인의 밤’.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누군가는 지각을 하고, 누군가는 수다를 떨고, 춤을 춘다. 그리고 그 곳에 자신을 진짜 사르트르라 일컫는 ‘사리’가 창고에 홀연히 그들의 이야기에 끼어들면서 극은 시작된다. 새로운 무리에 끼고 싶은 사리와 그를 경계하는 여섯 친구들. 그리고 그들은 <개그콘서트> 형사물에 등장할법한 허무맹랑한 인질극과 추격전을 벌이며 서로의 위치를 공고히 하고, 일련의 ‘쌩쇼’ 끝에 사리가 자신들과 같이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완전체의 원자, 아톰(atom)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친구가 되어 함께 춤을 춘다.




낯섦과 새로움 사이



지난 12월 7일부터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공연되고 있는 뮤지컬 <콘보이쇼-아톰>(이하 <콘보이쇼>)은 1986년 일본에서 시작된 댄스뮤지컬이다. 25년에 걸친 긴 기간 동안 일본최고관객기록을 보유하며 일본에서 롱런중이라는 설명에도 불구하고 <콘보이쇼>는 사실 낯설고 불친절한 작품이다. 다수의 많은 라이선스 뮤지컬이 소설이나 전설 등 익숙한 이야기를 원작삼아 만들어진 것에 비해 <콘보이쇼>는 제목만으로도 어떤 작품인지를 가늠할 길 없는 새로운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드라마나 영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음악, 무대 등 신경 써야 할 요소들이 더 많은 뮤지컬은 그래서 더욱 명확한 스토리라인을 구축한다. <콘보이쇼>와 궤를 같이 하는 댄스뮤지컬의 대표작 <코러스라인>이나 <컨택트>도 누구나 공감할만한 스토리라인이 단단히 짜여져있지만, 부도칸 콘서트용으로 제작된 이 작품은 신과 신 사이의 스토리 얼개가 성기고 얼핏 머리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들이 튀어나온다. 현지화 작업을 위해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를 삽입했지만, 90년대 일본 현지에서 많은 인기를 누렸던 B`z와 안전지대의 음악은 강한 비트와 현란한 사운드로 관객들을 낯선 세계로 인도한다.

그래서 결국 중요해지는 것은 배우들의 버라이어티정신이다. 각각의 캐릭터들이 가진 철학과 그들이 낭송하는 시가 몸의 언어로 치환되는 이상, 관객은 그들이 흘리는 땀만큼 몰입한다. 절도 있게 각이 들어맞는 군무는 물론이거니와 개인의 능력이 특별히 발휘되는 발레, 탭댄스, 재즈댄스 등은 그동안 앙상블이라는 이름 없는 배역에 숨겨져있던 배우들의 이름을 다시금 발견하게 만든다. 일곱 배우의 화려한 몸놀림은 단연 눈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초딩’시절을 연상시키는 신들은 과장된 톤과 일차원적인 감정의 연기를 요구하고, 이는 커져버린 몸에서 나오는 변성기 전 목소리처럼 마냥 낯설 뿐이다. 지난 세월을 잊지 말고 살아가자는 <콘보이쇼>의 메시지를 담은 엔딩곡 ‘카린토공장 굴뚝 위에’는 마음을 녹이는 안전지대의 음색에도 불구하고 부정확한 한국어로 되레 씁쓸하게 기억될 뿐이다. 오히려 ‘카린토공장 굴뚝 위에’를 한국배우들의 목소리로 불렀다면 더 깊은 인상을 남긴 엔딩이 되지 않았을까. <콘보이쇼>는 2월 27일까지 계속된다.

사진제공. 콘보이쇼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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