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들이 그를 사랑한다. 이유? 오히려 그를 좋아할 수 없는 이유를 찾는 것이 더 어렵지 않을까. 숙적 다스베이더와 기구한 부자 관계를 가지고 있고, 타이타닉의 침몰과 함께 연인을 잃었다가 아바타로 부활한, 맨해튼의 대통령 걸리버를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영화 의 르무엘 걸리버는 이처럼 소인국 릴리풋의 최고 스타다. 물론 그가 릴리풋 국민들을 열광시킨 이야기 대부분은 거짓말이다. 그가 맨해튼에서 실제로 하던 일은 언론사 우편물 관리이고, 잘하는 거라곤 게임 클리어뿐이다. 하지만 그가 릴리풋의 모든 광고 간판을 장식할 정도로 인기를 얻을 수 있는 건, 단순히 그가 거짓말을 해서가 아니라 그 거짓말이 너무나 매력적이고 믿고 싶은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원작 소설의 걸리버보다는 허풍선이 남작에 더 가까울 것 같은 이 남자를 연기한 건 잭 블랙이다. 당연한 선택이다. 이유? 오히려 그를 캐스팅하지 않아야 할 이유를 찾는 것이 더 어렵지 않을까.

그가 수많은 코믹 배우들과 다른 이유
잭 블랙│이 어메이징한 남자야
잭 블랙│이 어메이징한 남자야
눈을 희번득거리며 얼토당토 않는 거짓말과 몽상을 늘어놓는 건 잭 블랙 최고의 장기다. 그는 친구와의 아이디어 타임 때, 메이플 시럽이 들어간 잉크패드나 개똥을 사라지게 만드는 스프레이에 대해 열변을 토하며(), 방과 후 록밴드 연습을 하면 하버드 입학에 유리할 거라고 아이들을 꼬드기고(), 친구와 비디오카메라로 과 를 찍고는 ‘스웨덴 버전’이라 사람들에게 속인다. () 하지만 여기에는 그저 허풍이라 치부할 수 없는 전염성 강한 열정과 진정성이 있다. 피터 잭슨 감독이 의 듀이를 보고 의 칼 던햄 역으로 잭 블랙을 캐스팅한 건 그 때문일 것이다. 두 캐릭터는 성격이 전혀 다르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위해 무모한 계획에 주위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일종의 광기를 공유한다. 끊임없이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배우와 작가, 스태프를 해골섬에 끌어들여 위험에 빠뜨리는 던햄은 분명 좋은 사람이 아니다. 그럼에도 자신만 믿고 따르다 죽어버린 부하 직원에게 작품으로 보상하겠노라는 모습이 위선으로 느껴지지 않는 건, 그가 정말 자신의 이익보다는 걸작을 남기겠다는 욕망을 위해 움직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코믹 배우들의 루저 연기와 잭 블랙의 그것이 확연히 구분되는 건 이 지점이다. 그는 흰소리를 해대며 빈둥거리는 룸펜형 루저보다는 정열적인 몽상가로서 스크린 위에 존재감을 드러낸다. 데뷔 이후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던 그를 대중에게 각인시킨 첫 작품 를 보라.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를 찾는 손님에게 “그런 걸 사려면 큰 쇼핑센터에나 가보라”며 쫓아내는 음반가게 직원 배리는 롭(존 쿠삭)의 말대로 ‘fucking maniac’이다. 잭 블랙의 영화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뻔뻔함은 단순한 사회성의 결핍보다는 오히려 무언가에 대한 열정의 과잉에서 출발한다.

실제로 카일 가스와 함께 록밴드 터네이셔스 D를 결성해 활동하고 있는 잭 블랙이 자신의 팀을 주인공으로 삼은 나 , 그리고 액션 게임 에서 메탈 뮤지션으로 등장하는 건 그래서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자타가 공인하는 메탈 마니아인 그는, 헤비메탈의 마왕 로니 제임스 디오를 에 출연시키고 에서는 “러쉬의 닐 퍼트는 최고의 드러머”라고 말하며 자신의 음악적 영웅에 대한 존경을 영화 속에서 드러내고 관객에게 인식시킨다. 하지만 여기에 그친다면 그는 그저 성공한 오타쿠에 불과할 것이다. 잭 블랙이 배우로서 탁월한 건, 그렇게 자신을 투영시켜 만든 캐릭터의 인상적인 부분을 연기적 무기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가령 애니메이션 의 포가 보여주는 쿵푸에 대한 호들갑스러운 애정은 잭 블랙의 목소리 연기를 통해 구체적 질감을 획득했다.

배불뚝이 골방 기타히어로가 주는 희망
잭 블랙│이 어메이징한 남자야
잭 블랙│이 어메이징한 남자야
하지만 이 배우가 작품 속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순간은 자신의 열정과 개성을 현란한 ‘말빨’과 뻔뻔함으로 납득시킬 때가 아니다. 그는 어느 순간, 실제 능력과 자신이 부풀린 말 사이의 간극과 균열을 인정한다. 포가 그랬고, 듀이가 그랬으며, 의 이그나시요가 그랬다. 그렇다고 현실이 꿈과 희망을 잠식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균열을 받아들이고 반성할 때, 그는 자신이 거짓말과 허세로서만 가질 수 있었던 세계를 진짜로 갖게 된다. 포가 스스로를 먹을 것 밝히는 팬더로 인정했을 때 그를 쿵푸마스터로 만들 훈련의 길이 열렸고, 그가 용의 전사로 거듭나는 것 역시 비법에 얽매이지 않고 온전히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기에 가능했다. 마찬가지로 듀이 역시 자신이 아이들에게 거짓말했던 것을 고백하며 그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고, 록 경연대회에서 진짜 록스피릿이 살아있는 무대를 만들어낸다. 의 마일스는 그 자체로도 매력 있고 사랑스러운 남자였지만 나쁜 여자에게 끌리는 자신의 취향을 버리고 자기 옆의 아이리스(케이트 윈슬렛)에게 손을 내밀 때 진실한 사랑을 얻었다. 요컨대 그가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 해피엔딩은 단순한 인생역전이 아닌 스스로를 넘어서는 성장이다. 그래서 대견한 것이다.

잭 블랙이 직접 제작까지 맡은 가 여행 그 자체보다는 여행을 통한 걸리버의 성장에 방점을 찍은 것도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영화 속 걸리버는 로봇과의 대결에서 패배하며 릴리풋 국민들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걸 고백한다. 하지만 그는 짝사랑하던 여자에게 데이트 신청 한 번 못하던 비루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대신, 더는 누구도 실망시킬 수 없다는 마음으로 다시 한 번 릴리풋의 수호자로서 돌아온다. 싸워서 질 것 같은 두려움, 고백했다가 차일 것 같은 두려움을 극복한 자에게는 행복이 기다리고 있다. 그것이 배불뚝이 골방 기타히어로라 해도. 어쩌면 이것은 잭 블랙이 연기한 캐릭터들이 늘어놓은 그 어떤 대사보다 더 매력적인 거짓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그의 연기를 볼 때마다 그 희망 가득한 이야기에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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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위근우 eight@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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