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성 “연기를 빼놓고 나면 할 게 없다”
김혜성 “연기를 빼놓고 나면 할 게 없다”
야구부 주장, 4번 타자, 팀 내 유일한 포수. 청각장애인들로 구성된 충주 성심학교 야구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의 주장 장대근과 곱상한 외모의 김혜성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본인도 그렇게 생각했다. MBC 이후 5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학생 역할을 하게 만든 것 또한 그의 어려 보이는 외모 탓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마음에 둔 여학생에게 손으로 하트를 그려 보낼 때는 영락없는 미소년인 그는 투수와 1루수를 불러 견제 모션을 회의하는 장면을 비롯해 영화 곳곳에서 주장의 책임감을 대사 없이도 제법 묵직하게 전달한다. 그래서 배역의 비중과는 별개로 이번 는 나이에 비해 어려보이는 외모 때문에 고민하던 이 배우에게 터닝 포인트 같은 작품이다. 그는 스물넷의 나이에 여전히 어색하지 않게 고등학생을 연기하고 있지만, 그 안에 자신의 성장과 변화의 표정을 담아내고 있다. 단순히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닌, 안에서 조금씩 여물어가는 과정은 이 젊은 배우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의 민호 이후, 그가 겪어야 했던 성장의 시간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는 육체적으로 힘든 작품이었을 것 같다. 완성된 작품을 봤을 때의 기분은 어땠나.
김혜성: 언론시사회와는 별개로 프로야구 선수들과 함께 봤다. 처음 완성된 작품을 보는 상황에서 진짜 선수들과 함께 보려니 부담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뼛속까지 롯데 자이언츠 팬”
김혜성 “연기를 빼놓고 나면 할 게 없다”
김혜성 “연기를 빼놓고 나면 할 게 없다”
야구를 해 본 건 처음이라고 들었다. 평소 프로야구는 즐겨 보나.
김혜성: 뼛속까지 롯데 자이언츠 팬이다. (웃음) 집에 이대호 선수 싸인 유니폼도 있다. 3년 전 롯데 개막전 때 부산 연예인들이 구장에 나오는 이벤트 때 받은 건데, 싸인이 지워질까봐 빨지도 않는다. (웃음) 경기를 보면서는 직접 하면 나도 좀 잘 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까 아니더라. 공도 안 잡히고 폼도 안 나오고.

그런 것 치고는 포수 연기가 그럴 듯 했다. 사실 포수라고 생각하면 체구가 큰 사람들로 생각하는데 위화감 없이 잘 하더라.
김혜성: 캐릭터는 너무 좋은데, 포수는 당연히 덩치가 좀 큰 사람이 할 거라는 생각이 있어서 하고 싶다고 해도 안 시켜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제작 PD님께서 미팅 때 포수는 어떠냐고 물어보셨다. PD님은 오히려 덩치가 작은 내가 하면 또 괜찮을 거 같다고 생각하셨다고 하더라.

영화 자체도 배터리(투수-포수) 중심으로 가는 부분이 있다. 게다가 극 중 당신은 팀의 주장이다. 연기를 할 때 중심을 잡아야 되겠다는 부담은 없었나?
김혜성: 연출부에서 매니저들을 현장에 못 오게 하고 나를 통해 야구부를 통제했다. 처음엔 내 한 몸 챙기기도 바쁜데 야구부원 열 명을 챙겨야 된다는 생각에 힘들었는데, 일상생활에서부터 야구부원들이 나를 따라주니까 촬영하면서도 편해졌다. 연습할 때도 내가 힘들다고 안 하면 야구부 친구들도 ‘쟤도 안하는 데 내가 왜 해?’ 라고 생각할까 봐 열심히 했다.

목소리를 쓸 일이 없는 작품이었다. 표현할 수 있는 도구 하나를 포기하고 시작하는 거였을 텐데.
김혜성: 촬영하기 전부터 야구부원들끼리 연습 삼아 말을 안 하고 지내보기도 했다. 그래도 말을 하면 대사도 자연스레 기억이 나는데, 말을 하지 않는 상태에서 수화도 정확하게 하고 표정연기까지 하려니 힘들더라. 다행히 전에 찍었던 단편 도 표정만으로 연기한 작품이어서 그 경험이 도움이 됐다. 항상 상대 배우의 눈을 보고, 눈으로 이야기를 하려 했다.

그게 전해져 올 때가 있었나.
김혜성: 눈을 보면 ‘이 친구가 이런 말을 하는구나’ 하고 느껴진다. 어떤 간절함이라든지 그런 것들. 투수 역할의 장기범 씨랑 장면이 가장 많이 붙는데 슬픈 장면을 찍을 땐 참 많이 힘들었다. 그런 감정들이 기범 씨 눈을 통해 절절하게 전해져 올 때가 많아서.

수화도 캐릭터마다 스타일이 조금씩 다른 것 같더라.
김혜성: 사람마다 수화에 특징이 다 있다. 1루수 역의 김연준 씨 같은 경우는 우리끼리 할렘 수화라고 불렀다. (웃음) 그 친구가 연습도 많이 했지만, 머리가 좋아서 그런지 수화를 기가 막히게 하더라. 그래서 수화 선생님을 뵙기 어려울 때는 다들 그 친구한테 물어봤다.

수화 연기는 어땠나.
김혜성: 어려웠다. 첫 촬영이 대사가 좀 길고 복잡한 장면이었는데, 촬영 당일에 대본이 수정됐다. 촬영하면서 새 대본도 외워야 되는데 안 되는 거다. NG가 9번이 났던 것 같다. 사람들이 내가 기분이 안 좋은 걸 알고, 위로해 준다고 잘 했다고 말해주더라. 딱 한마디 했다. 잘 했는데 아홉 테이크 가냐고. (웃음) 강우석 감독님도 ‘혜성아, 너 잘했지?’ 라고 물어보시는 데 나는 뭐라 말을 못하겠는 거다. 내가 뚱해 있으니까 감독님이 잘 했다고 다독여 주셨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거 같다”
김혜성 “연기를 빼놓고 나면 할 게 없다”
김혜성 “연기를 빼놓고 나면 할 게 없다”
말만 안 하는 게 아니라 안 들리는 연기를 해야 하는 상황인 건데, 사실 안 들린다고 생각을 해도 바로 귀로 들리지 않나.
김혜성: 야구 장면에서도 항상 우리는 심판을 봐야 했다. 심판의 동작을 보고 아웃인지 인인지 알 수 있는 건데, 심판이 ‘아웃!’ 이라고 외치니까 달리다 말고 자기도 모르게 ‘에이 씨…’ 이러는 친구도 있었고. (웃음) 처음엔 그렇게 헤매는 경우도 많았다.

또래 남자들끼리 그렇게 실수도 하고, 떠들썩한 재미가 있었을 것 같다.
김혜성: 재미있었다. 그런데 나도 좀 낯을 가리는 편이고, 서로가 처음에는 다가가기 불편해 했다. 훈련 4개월 중 처음 두 달은 서로 인사 밖에 안 했다. 훈련장에서 만나면 반갑다고 인사하고, 그 다음부턴 그냥 훈련만 하고. 일단 친해지면 안 그런 데 친해지기까지 시간이 좀 걸린다. 처음에는 그 친구들도 선입견을 가졌다고 하더라. ‘저 형은 우리보다 경력도 많아서 잘난 척하는 것 같다’ 뭐 이런 식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살갑게 대할 것을 요구받는 연예계에서는 힘든 성격인 것 같다.
김혜성: 사람들한테 살갑게 잘 하는 사람들 보면 부러울 때도 많다. ‘아, 저렇게 해서 손해 보는 건 없는데 왜 난 저러지 못할까’ 하는 생각도 들고, 살갑게 굴면 선배님들이든 감독님들이든 다 잘 받아주실 텐데. 그런데 성격 상 그게 안 된다. 쑥스럽기도 하고. 늘 친해지는데 시간이 걸린다.

시간이 계속 누적되면 그 선을 넘게 되는 거 같나.
김혜성: 그 선도 마음이 맞아야 넘는다. 굳이 마음이 안 맞는 사람한테는 안 그런다. 아직 젊어서 그런지 괜히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해가면서 남들한테 잘 보여서 뭐 하겠나 싶다. 물론 힘들 때는 입에 발린 소리도 해 가면서 살면 지금보다 편할 거 같단 생각은 한다. 나도 이제 이십대 중반이고, 꿈만 가지고 굶어도 난 연기를 할 거야 이러던 시절도 아니고. (웃음) 나도 언젠가는 현실 때문에 입에 발린 소리도 하게 될지 모르지만, 참을 수 있을 때 꾹 참고 자존심을 지키면서 일하고 싶다.

한 때 성격과 외모의 괴리에서 오는 답답함을 토로했던 적도 있는데 지금은 어떤가.
김혜성: 지금은 많이 괜찮지만 전에는 많이 힘들었다. 이 끝나고 (정)일우 씨나 김범 씨는 자기 나이에 맞는 연기를 했는데, 나는 그 작품 이후에도 항상 어린 역만 했으니까. 나는 괜찮은데 주위에서 그런 얘기를 하시는 사람들이 한 명에서 백 명, 백 명에서 천 명이 되면 그게 스트레스가 된다. 어느 순간 이 쪽 일이 싫어지더라. 다른 작품 하려던 것도 여건이 안 돼서 취소되기도 하고. 그래서 한 1년 정도 아무 생각 없이 살았다. 매일 술 먹고 되는 대로 살다 보니까 어느 순간 망가지더라. 같이 살던 매니저 형이 정말 왜 그러냐고, 미친놈 같다고 그럴 정도였으니까. 나도 어느 순간 이러면 안 되겠다 싶었다. 그 때 마침 를 하게 됐는데, 1년 만에 다시 연기를 하니까 너무 재밌는 거다. ‘아, 다시 해보자’ 이런 생각이 들더라. 매니저 형도 지금으로선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얘기해주는 데, 그 말이 맞다. 당장 얼굴이 더 성숙해 질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성형을 할 수도 없고.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거 같다.

같은 학생 역할을 해 왔다고 하지만, 과 사이의 간극은 참 크지 않나.
김혜성: 사무실 사람들도 나하고 좀 친하게 지내지고 나서야 ‘아, 얘가 원래는 그런 타입이 아니구나’ 하고 느낀다. 은 나 스스로도 그런 성향이 많아서 그런지 오히려 더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으로 또래 친구들과 같이 했던 작품이기도 하고. 유독 애착이 가는 작품이다. 그 때 배우들끼리는 아직도 다 만나고 있다. 얼마 전 (정)경호 형 군대 가기 전에도 다 같이 만나 술도 한 잔 했고. (조)진웅이 형도 아직까지도 인터뷰 할 때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을 묻는 질문에 항상 을 얘기하더라.

아직은 좀 더 자신과 더 닮은 걸 하고 싶은 건가, 아니면 당신이 가지고 있는 모습이 있는데 사람들이 그걸 모르니까 더 표현하고 싶은 건가.
김혜성: 대중이 기억하는 내 모습은 항상 이니까. 시청률이 너무 좋았고, 많은 사람들이 봤잖나. 은 쫄딱 망해서, 정말이지 쫄딱 망해서! (웃음) 내가 그런 연기를 했던 걸 사람들이 모른다. 내 안에 이런 모습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

김병욱 감독이 스타가 아니라 배우가 되라고 조언해 줬다고 들었다.
김혜성: 일우 씨랑 나는 가는 길이 다르다고 얘기 해 주신 적이 있다. 일우 씨한테는 지금처럼 스타성 있게 가는 것도 좋을 거 같다고 말씀해 주시고, 나한테는 스타성보다는 경험 많이 쌓아서 좋은 연기하라고 길을 제시해 주셨다. 그 후로 생각이 조금 정리가 됐다. 내가 일우씨 처럼 요즘 시대에 맞는 그런 사람은 아니니까 이 친구랑은 다른 길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좀 확고해 진 거 같다.

“이제는 어지간한 데 가서는 군대 간다는 기사 내보내면 안 된다”
김혜성 “연기를 빼놓고 나면 할 게 없다”
김혜성 “연기를 빼놓고 나면 할 게 없다”
처음 이 일을 할 때는 배우가 되겠다는 욕구와 스타가 되겠다는 욕구 중에 어느 쪽이 더 큰 것 같나.
김혜성: 때는 ‘이거 개봉 하면 나 정말 인기 많이 얻겠지?’ 하는 생각이 컸다. 연기는 뭐… 생각도 안 했지. 그런데 지금은 인기가 없다 해도 연기자로서 좀 더 많은 걸 느끼고, 연기를 더 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대중의 사랑은 연기를 잘 하면 저절로 받게 되는 거니까. 아직까지는 스스로 내공도 많이 쌓고 연기 경험을 더 쌓고 싶다. 작은 역할이라도 하고 싶다. 지금은 연기 아니면 할 수 있는 게 없는 거 같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내가 지금 연기 아니면 뭘 하고 있을까, 그런 생각 많이 한다. 연기를 빼놓고 나면 할 게 없다. 정말.

어떤 직업으로 사는가 하는 문제 말고, 연기 외의 여가시간엔 뭐 하나.
김혜성: 볼 차는 거 말고는 특별히 뭐 하는 건 없다. 집에서 잘 안 나가는 편 이어서.

축구할 때는 어떤 포지션을 주로 뛰나.
김혜성: 그냥 공격수도 시켜주고, 하고 싶은 자리는 다 시켜준다. 내가 뛰는 팀이 연예인 팀이 아니라서 나는 연예인 프리미엄이 있다. (웃음) 상대 쪽이 잘하는 사람들일 때면 왼쪽 풀백 밖에 자리가 없다. 그것도 그나마 연예인이라고 시켜 주는 거지만. (웃음)

같이 축구하는 분들하고는 데면데면 하지 않고 잘 지내는 거 같나.
김혜성: 볼 차러 나간지 한 4년 정도 되는 데, 처음엔 그 분들도 신기하니까 사진 찍고 이러는 게 좀 불편하더라. 그런데 이젠 연예인 취급도 안 해 준다. (웃음) 동네 동생처럼 그냥 대하고, 같이 엠티도 가고 그런다. 못할 때는 욕도 하고. 무슨 10년, 15년 같이 지낸 동생 다루듯 물 떠오라고 시키고, 상처 많이 받는다. 이제 다른 팀으로 이적하려고. (웃음) 사실 처음부터 형들이 시키지 않아도 내가 물 떠오고 그랬다. 괜히 연예인이라고 그냥 있어도 되지 않을까 이런 게 싫어서.

사적인 자리에서 붙는 소위 연예인 프리미엄이라는 게 불편한가.
김혜성: 불편하다. 그렇게 행동하면 일단 벽이 생긴다. 이 사람한테는 방송에 나오는 그런 모습들만 보여줘야겠다는 게 생기니까.

그 프리미엄이 가장 뚜렷한 게 군대일 수 있는데 올해 안으로 입대한다는 뉴스가 크게 났다.
김혜성: 현빈 선배가 해병대 간다고 너무 크게 터뜨리셔서 (웃음) 이제는 어지간한 데 가서는 군대 간다는 기사를 내보내면 안 된다. (웃음)

확실히 지금의 당신은 인기에는 많이 초연한 것처럼 보인다.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가.
김혜성: 아직까진 내가 배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아직까지는 그냥 배우 지망생인 거 같다. 예전에 이순재 선생님께서 어느 인터뷰에서 ‘카메라 앞에서 연기한다고 다 배우냐’고 하시더라. 맞는 말인 거 같다. 아무리 카메라 앞에서 연기한다고 해도, 연기를 못하는 데 어떻게 배우라고 할 수 있나. 나는 내가 배우라고 말 하는 것도 솔직히 낯간지럽다. 그냥 직업이 이거니까 사람들이 그렇게 불러주는 건데, 난 아직은 지망생이다.

야구로 치면 유망주 정도인 건가.
김혜성: 그렇다, 유망주! 강우석 감독님께서 촬영 중간 중간 농담 삼아 그런 얘기를 해주셨다. 너는 정말 배우가 될 수 있을 거 같다고. 그런 얘기를 아주 못 들어 본 것도 아닌데 이번만큼 좋았던 적이 없었다. 진짜 배우가 될 수 있을 거 같다는 자신감이 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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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승한 fourteen@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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