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우면서 엉뚱하고, 솔직하며 사랑스러워요.” 배우 최강희가 ‘그의 플레이리스트’를 위해 음반을 추천하며 She & Him의 주이 디샤넬을 설명한 이 표현은 최강희 자신에게 어울리는 것이기도 하다. 분명 최강희는 예쁜 여배우지만 소위 ‘여신 포스’를 과시하는 타입은 아니다. 작품마다 성공적으로 제 몫을 다하지만 흔히 말하는 연기파 배우의 범주 안에 넣기도 애매하다. 대신 그녀는 여러 층위의 개성을 자기 안에 조화시키며 자신만의 매력을 만들어낸다. 간혹 4차원이라는 수식이 붙기도 하지만 최강희의 개성을 표현하기에 그 흔한 딱지보다는 ‘최강희스러움’이라는 말이 가장 어울린다.

친우들에게 ‘강자’라는 남자 이름으로 불릴 정도로 털털하고 엉뚱한 그녀의 개성은 작품 속 캐릭터에 고스란히 박혀있다. KBS <학교1>의 사랑보다는 우정이 어울리는 의리파 민재부터 싫어하던 동창에게 하이킥을 날리던 MBC <단팥빵>의 가란을 거쳐 소심하면서도 할 말은 하고 제 갈 길을 찾는 SBS <달콤한 나의 도시>의 은수에 이르기까지 그녀는 언제나 도를 넘지 않는 발랄함을 자신의 연기 안에 채워 넣었다. 만약 뛰어난 연기가 그때그때 전혀 다른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것이라면 최강희의 연기는 그와 거리가 멀다. 하지만 자기 안의 것을 캐릭터에 입히는 그녀의 연기는 빤하게 정형화되기보다는 오히려 캐릭터의 외연과 깊이를 더해주었다. 가령 MBC <떨리는 가슴>의 수경은 유부남의 마음에 싱숭생숭한 바람을 불어넣었지만 단순한 나쁜 여자라기보다는 자기 기분에 충실한 청춘이었고, <달콤, 살벌한 연인>의 미나는 연쇄살인범임에도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귀여움을 가지고 있었다. 자기다움을 TV와 스크린에서 유지할 수 있다는 건, 그리고 그것을 대중에게 납득시키며 사랑받는다는 것은 분명 대단한 일이다. 다음의 곡들은 그러한 ‘최강희스러움’을 만들어온, 그녀와 함께 추억의 과정을 공유해온 음악이다.




1. 이상은(Leetzsche)의 <6집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
“나에게 많은 위로가 되었던, 친구 같은 앨범”이라며 최강희가 소개한 첫 번째 앨범은 이상은의 <1991-1999 Best Album>이다. “어느 날 TV에 이상은 씨의 뮤직비디오가 하나 나오는데 굉장히 마음이 끌렸어요. 그 곡 이름은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였고, 그 길로 바로 레코드점에 달려갔지만 <6집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 앨범을 구할 수 없었어요. 대신 들고 나온 것이 <1991-1999 Best Album>이었죠. 그때 차에 타자마자 앨범 전곡을 들었는데요, 처음 나오던 곡이 ‘Summer Cloud’였어요. 지금도 이 곡을 들으면 알 수 없는 안타까움이 느껴지는데요, 이것이 아티스트가 가질 수 있는 진정성이 아닌가 생각해요.” 비록 그녀와의 추억을 공유하는 <1991-1999 Best Album>은 권리자의 요구로 온라인에서 음원이 지원되지 않지만, 대신 그녀가 처음 원했던 <6집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 앨범을 추천한다.



2. Various Artists의 <숏버스(Shortbus) O.S.T>
“<숏버스>는 성적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표현해 예술과 포르노의 경계에서 여러 이야기들을 내놓았지만 O.S.T만은 흠잡을 데가 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거 같아요. ‘Upside Down’, ‘Language’, ‘Soda Shop’ 등 앨범에 담긴 모든 곡들이 다채롭고 아름답습니다. 특히 스캇 매튜의 목소리를 알게 됐다는 건 이 앨범을 통해 얻은 최고의 수확이 아닌가 싶어요. 그의 목소리와 한동안 사랑에 빠졌는데 그중에서도 ‘Language’를 낮 두 시에 들어요. 처음 앨범을 구입하고 듣게 됐을 때 이 곡이 방 안에 울려 퍼진 게 그즈음이었거든요. 하늘이 너무 하얘서 밝은 날이었고, 창문 사이로 바람이 들어와 닿았는데 CD 케이스를 들고 스캇 매튜의 목소리를 듣고 있던 전 울고 싶은 기분이 들었어요. 하지만 나쁘진 않았어요. 낮 두 시였으니까.”



3. She & Him의 < Volume Two >
“She & Him은 우리가 잘 아는 영화 <500일의 썸머>에 나온 주이 디샤넬과 맷 워드로 구성된 팀이에요. 이 앨범은 주이 디샤넬의 이미지와 참 닮았어요. 아름다우면서 엉뚱하고, 솔직하며 사랑스러워요. 그중에서도 저는 ‘In The Sun’이라는 곡을 좋아해요. 뭔가 올드팝 냄새가 나면서도 재치가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요. 뮤직비디오도 참 귀여운데 주이 디샤넬이 출연했던 <예스 맨>의 페이튼 리드 감독이 연출했다고 해요. 이렇게 주이 디샤넬의 모든 것은 마치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잘 어울려요.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녀는 리더십이 강할 것이라고. 사실 한 가지를 또렷하게 표현하는 것은 무엇보다 어려운 일이이니까요. 뭐든 잘해낼 것 같은 그녀입니다.”



4. Elliott Smith의 < Either / Or >
“사실 저는 엘리엣 스미스의 목소리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아마 그의 첫 번째 앨범이었던 것 같은데 그의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미처 다 듣지 못하고 CD플레이어에서 CD를 뺐던 걸로 기억해요. 그의 목소리는 우울함을 넘어서 뭔가 참혹했어요. 후에 엘리엇 스미스를 좋아한다는 친구에게 그 앨범을 주었지요. 그리고 시간이 흘러 2년 전 즈음이었나. 제가 촬영한 <보그(VOGUE)> 화보 메이킹 장면을 보는데 그때 흐르던 음악이 엘리엇 스미스의 ‘Between The Bars’였어요. 뭔지 모를 울림에 큰 감동을 느끼고 그의 슬픈 목소리에 빠져들었어요. 작고 힘없지만 그의 목소리는 무엇보다 강렬했어요. 그렇게 그를 다시 찾게 되었지요. 지금은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꼽으라면 망설임 없이 엘리엇 스미스의 ‘Between The Bars’요, 라고 대답해요.”



5. World`s End Girlfriend의 <공기인형 OST>
최강희가 추천하는 마지막 추천 앨범은 배두나가 출연했던 일본 영화 <공기인형>의 O.S.T다. “이 영화는 특이하게도 O.S.T를 먼저 접한 후에 보게 되었어요. 그만큼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 훌륭한 음반이죠. 가사가 없는 연주곡들이지만 한 곡, 한 곡이 아닌 앨범 전체가 하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져요. 마치 영화 속 공기인형의 마음을 대신하는 것 같은 따뜻하고도 슬픈 느낌으로요. 하지만 그 곡들의 감동은 영화 안에서 배가돼요. 영화 속 공기인형인 노조미(배두나)가 마음을 갖게 되어 움직이게 되듯, O.S.T 속 연주곡들은 그녀의 움직임과 만나 작은 감정들을 만들어내죠. 훌륭한 음악과 영화의 만남이란 이런 것 같아요. 마치 음악과 연기가 서로의 수호천사가 되어주는 것 같았어요.”




최근작인 <쩨쩨한 로맨스>에서의 최강희는 분명 아주 새롭진 않다. 번역만 하라는 친구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스타일대로 칼럼을 쓰다 일거리를 잃고, 온갖 잘난 척은 다 하다가 정배(이선균)의 호통 한 번에 납작 엎드리는 다림은 일상적인 발랄함과 귀여운 소심함의 범위 안에서 움직이는 인물이다. 그럼에도 이번 작품에서의 최강희가 흥미로운 건, 너무 드라마틱하지 않은 일상의 연애를 과하지 않은 질감으로 연기하는 동시에 순간순간 극도로 코믹한 순간을 어색하지 않게 터뜨리기 때문이다. 가령 정배와의 첫 섹스를 앞둔 다림이 자신이 쓴 섹스 칼럼을 복기하며 벌이는 몸 개그는 그 자체로 영화에 큰 방점을 찍을 정도로 웃기지만, 그 어이없는 상황을 만들기까지 캐릭터의 엉뚱함을 자연스럽게 끌어올린다는 점에서 더욱 인상적이다. 말하자면 그녀는 자신이 잘하던 걸 더욱 잘, 그리고 능청스럽게 해냈다. 그녀는 그렇게 자신만의 ‘최강희스러움’을 더욱 넓고 깊게 만들어가고 있다. 물론 여전히 아름다우면서 엉뚱하고, 솔직하며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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