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왜 <놀러와> PD는 삭발을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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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에 민머리가 한 명 늘었다. 최근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이하 MBC 노조) 이근행 위원장이 트위터에 올린 사진에는 민머리의 신정수 PD가 이하늘과 길 사이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지난 14일 MBC 경영진이 단체협약의 일방적인 해지를 통보하자, 신정수 PD를 포함한 MBC 노조 집행부 13인이 투쟁의 의지를 담아 삭발을 단행한 것이다.

작년 11월부터 계속된 단협 개정 협상에서 쟁점이 된 사안은 방송의 최종 책임을 누가 지느냐 하는 조항이었다. 사측은 현행 ‘국장책임제’에서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가 임명하는 본부장이 책임을 지는 ‘본부장 책임제’로 바꾸자고 요구했고, 노조는 견제장치로서의 중간평가를 전제로 이를 수용했다. 그러나 중간평가 시점을 ‘취임 3개월 후’에서 ‘1년 후’로 연장하자는 사측의 요구를 노조가 수용하지 않자, 사측은 노조가 경영권과 인사권을 침해하는 조항을 고수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며 단협 해지를 통보했다. 그러나 노조 측은 김재철 사장이 연임을 위해 의도적으로 단협 해지를 도발했다고 주장한다. MBC의 한 PD는 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방문진의 과반 이상을 차지한 여당추천이사 사이에서도 김재철 사장은 무능하다는 평을 받는다. 여당추천이사들의 신뢰를 사기 위해서는 노조의 힘을 약화시키는 단협 해지가 필요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방문진과의 불화 끝에 사퇴한 엄기영 전 사장의 뒤를 이어 작년 3월 취임한 김재철 사장의 임기만료는 엄 전 사장의 잔여 임기가 끝나는 올 2월, 연임에 성공하면 2014년 2월까지 사장직을 유지하게 된다.

역량과 시청률 강화 VS 비전 없는 혼란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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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임기간 동안 공영성 축소 논란과 무능하다는 세간의 평에 맞선 김재철 사장의 명분은 ‘경쟁력 강화와 시청률 증가’였다. “MBC를 살리겠다”는 말과 함께 취임한 김재철 사장은 작년 9월 와 폐지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서도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시청률부터 올리고 공영성을 생각해야 하지 않겠나. 더 좋은 방송을 위해서는 돈도 있어야 된다. 실패한다면 두 손 두 발 들고 나가겠다”고 말했다.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던 김 사장의 약속은 지켜졌을까. 지난 4일 MBC의 발표에 따르면 2009년 23억 원이었던 흑자는 2010년 관계사 포함 1100억 원 규모로 증가했다. 이진숙 홍보국장은 “경기 호전에 따른 광고 시장 활성화로 광고 수주가 늘었고, 김재철 사장 취임 이후 2008년부터 계속 해 온 비상경영이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개편 결과도 고무적이어서 주말 의 시청률도 두 자리 수로 증가했고, 또한 시청률 면에서 매우 성공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내부의 평가는 사뭇 다르다. 익명을 요구한 MBC 관계자는 “금융위기가 심각하던 2008년 말 발동된 비상경영계획안으로 축소된 제작비와 인건비가 아직 복구되지 않았다. 제작비 감축은 심각한 경쟁력 손실을 불렀다. 지난해 지상파 3사 중 전체 시청률 3위를 기록한 것만 봐도 입증되지 않느냐”고 반박했다. 시청률 올리기에 급급해 장기적 비전 없이 남발한 경영진의 단기처방이 오히려 제작 역량을 약화시켰다는 주장도 있다. 이 관계자는 “예능국 의 경우 파일럿 방송에 대한 평가도 다 끝나지 않은 채 경영진의 요구로 급하게 편성됐다가 5회 만에 시청률 저조를 이유로 폐지됐다. 10년 이상 MBC에 근무했지만 경영진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프로의 존폐를 결정하는 광경은 처음 봤다”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는 “지난해 사측에서 드라마 제작 역량을 확보한다는 명분으로 일선 PD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드라마국을 2개로 나눴지만 구체적인 운용 계획은 전무했다. 긴 안목과 비전 없이 일단 쪼개고 보자는 식의 조직개편 결과 역량은 더 분산됐다”고 밝혔다. 이런 졸속처방은 지난해 와 정도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수작이나 흥행작을 남기지 못 한 드라마 흉년으로 이어졌다. 최근에는 시청률 저조를 이유로 일일드라마 조기 종영이 결정되면서, 아침드라마로 기획 되었던 가 급히 후속 편성됐다. 덕분에 종영을 앞둔 아침드라마 는 졸지에 2달을 연장해야 한다. 작년 말 이미 올 상반기 드라마 라인업을 확정한 KBS와 SBS와는 달리, 아직 상반기 라인업도 제대로 나오지 않은 MBC 드라마국은 “혼란상태”라는 게 관계자의 증언이다.

“MBC 고유의 색깔이 사라지면서 경쟁력도 함께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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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D수첩 >을 제외하면 탐사보도 및 시사 영역의 프로그램이 거의 전무해진 시사교양국 분위기도 싸늘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PD는 “사측에서 거슬려 할 만한 기획은 편성이 안 될 것을 알기에 기획 자체를 잘 안 하게 된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정부 비판적인 프로그램을 다 폐지시킨 마당에 비슷한 기획안이 통과가 되겠나. 권력과 정부를 비판하고 감시하던 MBC 고유의 색깔이 사라지면서 경쟁력도 함께 잃었다”고 밝혔다. 또 다른 PD는 이러한 사측의 입김에 대해 “프로그램 편성에 경영진이 관여할 수는 있다. 하지만 적어도 제대로 된 비전을 가지고 관여해야 할 것이 아닌가”라며 참담한 심경을 토로했다.

익명을 요구한 MBC 구성원 가운데는 “어차피 김재철 사장이 연임에 성공할 거다. 입장을 드러내기 조심스럽다”고 밝힌 이도 있었다. 이렇듯 ‘살벌한’ 분위기에도 MBC 노조는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지난 1년간 김 사장의 경영능력을 비롯한 공영성, 공정성 척도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였다. 취임 이후 줄곧 공영성 축소 논란에 휩싸여 온 김재철 사장으로서는 유일한 명분인 경영능력에 대한 평가마저 박하게 나올 경우 내부적 입지가 더욱 흔들릴 수 있다. 24일 발표될 예정인 설문조사 결과에 귀추가 주목되는 이유다.

글. 이승한 fourte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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