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진은 최근 ‘트루 크라임’이라는 비디오 게임의 목소리를 녹음했다. 내년 상반기 미국에서 출시될 이 게임은 아시아 갱들이 나오는 액션 RPG 게임이다. 김윤진과 함께 주인공을 맡은 배우들은 중국의 양자경과 재미교포 윌 윤 리. 이것은 할리우드에서 그녀의 위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아시아를 상징하는 군집을 형성할 때 가장 앞서 동원될 수 있는 배우. 그리고 그것은 6년의 방영 기간 내내 높은 시청률을 올린 드라마 <로스트>가 있어 가능했다. 수동적인 스테레오 타입의 동양 여자에서 시즌을 거듭할수록 극의 열쇠를 쥔 캐릭터로 변모해간 선은 김윤진의 무대를 전 세계로 넓혀주었다. 물론 “7개월 동안 똑같은 의상”을 입고 6년째 같은 드라마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로스트>는 유쾌한 작품이었지만 지루한 지점도 있었어요. 연기자로서 갈증도 많았고요. 그런 연기에 대한 욕구를 채우기 위해 한국에서 꾸준히 작품을 했죠.” 하와이에서 계속되는 <로스트>의 촬영 중간 중간 그녀는 “여행도 가고 싶고, 쉬고 싶기도” 했지만 대신 한국에서 연기를 했다. 흥행적으로도 성공을 거둔 <세븐 데이즈>나 <하모니> 모두 이 시기의 작품들이다. 그리고 <심장이 뛴다>로 김윤진은 다시 한 번 휴식 대신 작품을 택했다.

“연이는 초반부터 감정이 최고조에서 시작해요. 이미 딸은 몇 년 동안 아팠고, 영화가 시작한지 오 분도 안 돼서 딸 심장이 내일이라도 멈출 수 있다는 사형선고까지 받아요. 그런 감정을 영화가 끝날 때까지 계속 유지해야 했어요. 그래서 촬영이 끝나면 온몸이 아플 정도였죠.” <심장이 뛴다>에서 그녀는 <세븐 데이즈>, <하모니>에 이어 자식을 위해 못 할 게 없는 엄마가 되었다. 심장이식을 받아야만 살 수 있는 딸을 위해 모자랄 것 없이 곱기만 하던 엄마는 무엇이든 한다. 있는 대로 돈을 쓰고, 불법 장기이식업자들을 만나며 폭력 또한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아이를 위해서 운다.

가슴을 치며 얼굴 근육을 일그러뜨리고 토해내듯 울부짖는 그녀의 모습은 ‘온몸으로 연기하는 배우’라는 수식어의 현현(顯現)이다. 또 한 번 제 자식을 위해 모든 희생을 감수하며 절규하는 그녀의 모습은 익숙하지만 어쩔 수 없이 보는 이를 울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것은 그녀가 좋아하는 음악과도 닮았다. “음악에는 힘이 있는 거 같아요. 영화는 머리를 통해서 가슴으로 오는데, 음악은 바로 가슴을 관통하잖아요.” 관객의 뇌가 아닌 심장을 향해 직진하는 배우, 김윤진이 고른 음악들이다.




1. U2의 < The Joshua Tree >
“U2는 어렸을 적부터 너무나도 좋아한 밴드예요. 최근에 하와이에서 공연을 했었는데 <로스트> 배우들이랑 다 같이 가서 보기도 했죠. (웃음)” 수많은 명반을 남기고 현재까지도 활발히 활동하는 U2의 앨범 중에서도 최고로 손꼽히는 < The Joshua Tree >는 전 세계적으로 2,500만 장 이상 팔린 메가 히트 앨범이다. “< The Joshua Tree >는 아직까지도 저에게 최고의 앨범이에요. 나오는 곡마다 명곡이죠. 가사들도 그냥 한 편의 시예요. 앨범 전체가 누군가의 일생을 극적으로 담은 한 권의 시집이랄까요? 비틀즈 다음으로 최고의 밴드가 아닐까 싶어요.”



2. Beyonce의 < I Am… Sasha Fierce (Platinum Edition) >
걸그룹 데스티니스 차일드에서 음악성보다 예쁘장한 외모로 더 주목을 받았던 비욘세는 솔로로 데뷔하자마자 전 세계적인 섹시 아이콘으로 급부상한다. “비욘세는 정말 최고인 거 같아요. 갖고 있는 이미지뿐만 아니라 그녀의 모든 게 21세기 여성상에 가장 어울리지 않나요? 심지어 두꺼운 허벅지조차도 너무 섹시해 보이잖아요. 마치 거대한 나무처럼 당당한 그 자태! 거기다가 무대 위에서 킬힐을 신고 춤을 추는 게 정말 와… 불행하게도 비욘세가 우리나라에서 콘서트 할 때 제가 외국에 있어서 못 본 게 너무 아쉬워요. 미국에선 비욘세 콘서트 티켓 구하기가 너무 힘들거든요.”



3. Jason Mraz의 < Mr. A-Z >
“제이슨 므라즈는 우리나라에서도 워낙 유명하죠? 뭔가 그의 노래가 한국 사람의 정서와도 통하는 면이 있는 거 같아요. 그래서 유난히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있는 것 같고. 제이슨 므라즈의 노래는 가사도 재밌고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힘이 있어요. 제 아이팟에 모든 앨범이 다 들어가 있어요. 콘서트 버전도 담아놓을 정도로 좋아한답니다. (웃음) <심장이 뛴다> 촬영장에서도 계속 함께했던 노래들이에요. 전체적으로 밝은 분위기만 있는 것 같지만 짝사랑을 고백하는 가사들은 슬프기도 하고 간절한 면이 있는 거 같아요.”



4. Various Artists의 < Once O.S.T >
“최근에 들었던 영화음악 중에서 최고가 아닐까 싶어요. <원스>는 모든 배우들이 꿈꾸는 영화인 것 같아요. 정말 제게 음악적인 재능이 있고 천재적인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면 해보고 싶을 정도로 좋았던 영화이고, 음악이에요.” 실제 뮤지션인 글렌 한사드와 마르게타 이글로바가 주연한 영화 <원스>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들을 단번에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하는 뮤지션으로 부상시켰다. “제 노래 실력은 보통이지만 뭔가 다듬어줄 수 있는 (웃음) 영화가 있다면 정말 천 번이라도 연습을 해서라도 하고플 정도로 음악 영화, 그중에서도 뮤지컬 영화는 정말 하고 싶은 장르예요.”



5. 2NE1(투애니원)의 <1집 To Anyone>
“제가 투애니원을 좋아하는 게 의외라고요? (웃음) 되게 좋아하는 가수예요. 어린 나이에도 너무나 멋지고 당당하잖아요. 딱 지금의 현대 여성 같은 느낌이랄까요? 제가 봐도 퍼포먼스에서도 힘이 느껴지고 투애니원의 무대를 보고 있으면 속이 후련해지는 것 같아요. 춤추는 것도 그렇고 랩도 정말 멋스럽게 하잖아요. 물론 노래도 말할 것 없이 다 좋고요. 어제 우연히 <쇼! 음악중심>을 봤는데 투애니원의 ‘Can`t Nobody’ 무대를 봤어요. 보면서 내내 ‘와, 어쩜 저렇게 멋있지’ 했다니까요. (웃음)”




“<심장이 뛴다>는 제 심장을 뛰게 만드는 영화예요. <하모니>처럼 대놓고 신파도 아니고, <세븐 데이즈>처럼 대놓고 스릴러도 아니고. 과연 뭘까, 제가 어떤 영화를 찍었는지 궁금해요. 실제로 현장에서 감정 선이 중요한 부분에서 몇 가지 버전으로 따로 찍어두기도 했으니까요.” 그러나 전작들에 이어 또다시 엄마가 된 그녀의 열연을 쉽게 예상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섣부른 예상은 금물. “순식간에 몰입했다가 바로 빠져나오는” 김윤진과 “몰입된 감정을 하루 종일 끌고 가는” 박해일의 온도차에서 발생하는 날카로운 한기는 당신을 소름 돋게 하기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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