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실이 누나와 (정)선희 누나의 기가 세서 눈도 못 마주치던” 입봉 PD였다. 지금은 국민 MC 강호동, 황제 이승기를 쥐락펴락 하며 협상을 주도한다. 예능 PD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이 잘못된 건 아닌지 고민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몇 년째 시청률 수위를 지키는 예능 프로그램의 연출자다. 여행도 싫어하고 낯도 가리던 성격이었지만 요 몇 년 동안 매주 전국을 돌며 풍광을 보여주고, 그 길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방법에 대해 전파하고 있다. KBS ‘1박 2일’을 연출하는 나영석 PD의 현재는 과거와 그만큼 다르다. 시청률이 높은 프로그램의 연출자라는 타이틀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외적인 포지션의 변화보다 중요한 건, 그가 가지고 있던 생각, 개성, 예능에 대한 고민 등 수많은 요소가 ‘1박 2일’과 함께 한 시간 동안 변화하고 성장했다는 것이다. 그와 함께 멤버들, 스태프들, 그리고 궁극적으로 프로그램 자체가 성장했다. 함께 하는 여행이란 그런 법이다.

숫기없던 PD와 어리둥절한 출연자, 서로가 서로를 믿기까지
나영석 PD│나 PD의 영업비밀
나영석 PD│나 PD의 영업비밀
첫 발걸음은 쉽지 않았다. 아무리 방송이라는 명징한 목적을 위해 모인 것이라 해도 사람과 사람이 만나 무언가를 할 때는 정서적인 교감이 필요한 법이다. 밤부터 아침까지 바깥에서 자라는 말에 연기자들은 ‘미친 거 아니야?’라는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이제 멤버들은 특별히 고생할 필요 없이 쉬라는 제작진의 말에 오히려 난감해한다. ‘1박 2일’의 현재는 그렇게 차츰차츰 변화하는 과정의 누적 같은 것이다. 당연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부침 심한 예능 프로그램의 영역 안에서는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다. 지루하다는 반응이 조금만 나와도 무리하게 게스트를 투입하고, 첫 기획의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포맷으로 전환하는 것이 이 바닥이다. 멤버 전원이 장흥 삼합을 배불리 먹는 모습이 밥 한 숟가락에 영혼을 거는 모습보다는 재미있지 않을 수 있다. 대신 엉덩이를 붙이고 먹는 것 자체에 몰두하는 모습과 그 모습을 묵묵히 담는 카메라를 통해, 그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를 앞에 둔 여행객의 설렘을 느낄 수 있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예능과 다큐 사이에서 고민하고, 멤버들이 방송을 친한 형, 동생끼리의 여행으로 받아들이는 3년여가 필요했다. 그리고 KBS ‘여걸 파이브’를 연출 할 때 출연자를 직접 대하는 게 부담스러워 작가를 통해 지시사항을 전달하던 나영석 PD에게도 그 시간은 변화의 과정이었다. 그는 방향을 지시하는 네비게이터보다는 여행의 동참자가 되어 함께 고민하는 방식으로 좀 더 자연스러운 서사를 풀어낼 수 있게 되었다.

나영석 PD가 하나의 캐릭터로서 카메라 안에 들어온 것과 ‘1박 2일’이 제작진의 인위적 개입을 극도로 줄이는 것이 거의 동시에 이뤄졌다는 건 그래서 흥미롭다. 승부사 강호동의 주도로 멤버들과 제작진이 협상을 벌인 건 상당히 오래 전부터다. 서로 함께 하는 시간이 누적되며 관계가 두터워질수록 이 협상 과정은 자연스럽게 친밀한 형태를 띠게 되고, 의도하지 않더라도 나영석 PD의 인간적 면모는 드러나게 된다. 마찬가지로 형들을 어려워하고 신곡 홍보에 목말랐던 예능 초보 청년이 ‘안 됩니다, 땡, 실패’의 나영석 3단 콤보를 웃으며 선보일 수 있을 때, PD는 이들 멤버들이 정서적 유대만으로 재미있는 무엇을 만들어 올 거라는 믿음을 갖고 스태프 없이 촬영을 보낸다. 무언가를 시키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멤버들은 방송에 나오든 안 나오든 제작진이 편집에서 활용할 소스를 위해 자기들끼리 복불복을 하고, PD는 그것을 고맙게 여기면서도 자연스러운 서사를 위해 방송에서 뺀다. 예능 역사상 전무후무했던 그 모험이 다섯 남자의 일상적이면서도 유쾌한 여행담을 남길 수 있었던 건, 이처럼 서로가 서로를 믿기에 가능했다.

서사의 진정성으로 새로운 예능을 열다
나영석 PD│나 PD의 영업비밀
나영석 PD│나 PD의 영업비밀
PD의 인위적 개입을 그 어느 때보다 줄인 지금, 역설적으로 나영석 PD는 그 어느 때보다 ‘1박 2일’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존재가 된다. 6대 광역시 특집에서 양준혁, 이종범, 이대호라는 각 지역을 대표하는 거물 야구선수들을 섭외할 수 있었던 건 각 지역에 나간 PD와 작가, 출연자를 믿고 맡겼기에 가능했다. 단순한 자유방임과 믿고 맡기는 건 다르다.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 멤버들은, 우리 스태프들은 잘해줄 거라는 믿음은 그 어떤 강요나 회유보다 더 강한 동기부여가 된다. 울릉도 단풍놀이가 태풍으로 취소되었을 때 강호동이 이만기와의 재대결이라는 대형 이벤트를 시도할 수 있었던 건, 최선의 아이디어가 나오면 망설임 없이 실행하겠다는 PD가 있어서다. 5명의 연예인과 80여 명의 스태프를 정해진 설계도대로 움직이게 하거나, 절대적인 카리스마로 지휘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때 “내가 잘못 판단할 때도 있고 긴가민가할 때도 있다.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나영석 PD의 정서는 ‘1박 2일’ 안에서 백퍼센트를 이끌어낼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일지 모른다.

지금 나영석 PD가 만들어가는 ‘1박 2일’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제 멤버들은 예능적 리액션에 대한 강박 없이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방향을 향해 최선을 다한다. 그러면서 최근 ‘1박 2일’에선 출연자들이 세상을 대하는 어떤 진심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이 있다. 얼마 전 방영한 외국인 근로자 특집은 굵직한 사건 없이, 처음 만난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소소한 정서만으로도 서사를 만들어내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렇게 누적된 서사가 있기 때문에 김종민이 자신의 파트너만큼은 밥을 먹여야 한다며 바닷물에 입수하는 장면 역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것이 ‘1박 2일’이 열어가는 새로운 예능의 영역이다. 앞으로 이 서사의 진정성이 어떤 방향으로 뻗어갈지는 알 수 없다. 다만 ‘1박 2일’과 함께 성장하며 리얼 버라이어티의 “영업 비밀”을 누적해가고 있는 나영석 PD에게는 더 많은 가능성의 영역이 보이지 않을까. 아직 여행은 계속되고 있고, 그는 여전히 길 위에 서있다.

글. 위근우 eight@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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