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영 감독│<페스티발>과 한핏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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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엎어진 다음엔 크지 않고 내 몸에 딱 맞는 옷 같은 영화를 한 편 찍어야 치유될 것 같았어요. 정말 이해영 같은 영화를 한번 해야 자신감도 생기고 새로운 영화를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첫 영화 로 그의 꿈이 무엇이든 간에 응원하지 않을 수 없는 소년 동구(류덕환)를 세상에 내놓고, 대중의 지지와 동시에 작품성까지 인정받은 이해영 감독. 그는 두 번째 영화가 될 뻔 했던 이 엎어지면서 “화가 나서 못 살겠”던 순간까지 가봤고, “엉엉 울기도” 했다. 그렇게 “더 이상 술을 먹으면 죽을 것 같아서” 시작한 은 그에게 한 편의 영화가 아니라 치유 그 자체였다.

“단순히 를 끝냈을 때의 자신감을 회복했다는 개념이 아니고 전에 비해 많은 것이 달라졌어요. 좀 현명해진 것 같아요. 어떻게 자신감을 가지면 오만하지 않고 기분 좋은 긴장으로 작용하는가의 수위도 알게 된 거 같고. 영화를 하는 게 되게 즐거운 일이라는 걸 새삼스레 깨달았습니다.” 그가 다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동력과 만드는 즐거움을 회복한 만큼 에서는 긍정의 에너지가 그대로 느껴진다. SM 플레이어, 성인용품점에서 시간을 보내는 여고생, 리얼돌 마니아, 복장 도착자, 섹스에 집착하는 경찰관 등 ‘건전’의 기준에서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주인공들은 이해영 감독에 의해 “햇빛 쏟아지는 광장으로 나왔”다. 그 광장에서 비로소 이들은 모두가 손가락질해도 목소리를 높일 수 있었고, 뒤에서 계속되는 수군거림에도 당당해질 수 있었다.

“보수적인 사람도 보수적으로 살 수 있고, 진보적인 사람도 진보적으로 살 수 있고, 변태주의자도 변태적으로 살 수 있는 사회”를 향한 화두가 뜨거운 이해영 감독이 추천한 영화들은 모두가 즐겁게 볼 수 있는 성격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해서, 내 취향과 맞지 않는다고 해서 이 영화들이 틀리거나 나쁜 것은 아니다. 그저 조금 남다를 뿐인 다음의 영화들을 보는 동안, 당신은 ‘이해’에 대해 새로운 단초를 제공받을 것이다.
이해영 감독│<페스티발>과 한핏줄 영화
과 한핏줄 영화" />1. (Secretary)
2002년 | 스티븐 세인버그
“을 만들면서 다시 본 영화예요. 전격적인 SM영화이긴 하지만 나름대로 가볍게, 부정적이지 않게 그렸어요. 장면, 장면이 굉장히 묘하게 섹시한데 일부러 남자에게 혼나려고 침대에 바퀴벌레를 놓고 끝나는 엔딩이 깜찍했어요. 메기 질렌한을 좋아하는데 에 이어 여기서도 너무 섹시했죠. 는 SM을 귀엽게 묘사했다는 맥락에서 과 한 핏줄일 수 있지 않을까요? (웃음)”

가학증과 피학증은 쉽게 인정받기 힘든 취향이다. 폭력이 개입되는 성적 취향은 자연히 음지를 연상시키지만 리(메기 질렌한)와 그레이(제임스 스페이거)의 사랑은 보통 연인들처럼 사랑스럽다. 그것은 독특한 관계를 사랑으로 느낄 수 있게 만든 스티븐 세인버그 감독과 함께 메기 질렌할의 매력이 더해진 결과.
이해영 감독│<페스티발>과 한핏줄 영화
과 한핏줄 영화" />2. (Zack And Miri Make A Porno)
2008년 | 케빈 스미스
“친구인 두 남녀가 우연치 않게 술을 먹다가 농담처럼 포르노를 찍어서 돈 벌자는 얘기를 하게 되고 진짜로 실천하죠. 정말 이상한 사람들만 모아다가 포르노를 찍으면서 겪는 우여곡절과 남녀 사이에 사랑이 싹트는 모습들이 재밌어요. 터무니없는 짓들을 하면서 포르노를 만드는 과정을 보면 음탕함이 어떻게 귀여움으로 포장될 수 있는가를 알 수 있어요. 케빈 스미스는 감독 특유의 화법으로 재밌게 풀어낸 로맨틱한 영화입니다.”

불알친구 같은 친구 잭(엘리자베스 뱅크스)과 미리(세스 로건). 함께 사는 이들은 심각한 경제난에 시달린 나머지 순전히 돈을 벌기 위해 포르노 영화를 만들게 된다. 영화를 만드는 과정은 에로틱하기보다는 웃음을 자아내는데, 를 패러디 하거나 섹스 신을 찍다가 사랑을 깨닫게 되는 순간 등 끊임없이 깔깔 거리게 만든다.
이해영 감독│<페스티발>과 한핏줄 영화
과 한핏줄 영화" />3. (Everything You Always Wanted To Know About Sex But Were Afraid To Ask)
1972년 | 우디 알렌
“섹스에 관련된 야한 이야기들을 우디 알렌 식으로 귀엽고 만화적으로 풀어낸 작품이에요. 제일 마지막에는 우디 알렌이 병약한 정자로 나오는 정말 황당한 섹스 코미디인데, 감독 특유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영화로 만들어졌어요. 보면서 도 저런 식으로 귀여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을 재밌게 보려면 힌트를 얻을 수 있는 필독서나 에피타이저 같은 영화라고 할까요? 우디 알렌의 영화를 에피타이저라고 하긴 좀 그렇지만… (웃음)”

정조대, 복장도착자, 변태성향, 성에 대한 연구, 사정, 오르가즘 등 성에 대한 7가지 에피소드들은 많은 사람들이 성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고민이기도 하다. 특이한 취향을 가진 아내 때문에 고민하는 남편, 데이트하고 있는 남자의 복잡한 머릿속 등 누구나 한 번쯤 했을 법한 상상을 발랄하게 풀어냈다.
이해영 감독│<페스티발>과 한핏줄 영화
과 한핏줄 영화" />4. (S&M Hunter)
1986년 | 카타오카 슈지
“올해 핑크영화제에서 본 일본영화예요. 정말 재미있는 코미디 영화죠. 영화제에서 하드코어 섹션으로 분리됐을 정도로 수위가 좀 높아요. 근데 재미있었던게 새디스트의 우상 같은 히어로라고 할 수 있는 결박사가 나오는데 실제로 핑크영화계에서 엄청난 배우였죠. 결박을 하는 기술을 슈퍼히어로물 혹은 서부극처럼 비장미가 있는 액션으로 그렸어요. 굉장히 하드코어하고 변태적인데 보다보면 그들이 사랑스러워 보일 정도로 귀엽고 웃겨요.”

일반적인 영화에서 남자와 여자는 사랑을 나누는 대상이지만 에서는 철저한 적이다. 서로의 필살기로 상대를 굴복시키려는 남성과 여성 집단의 대결은 가학증과 피학증의 보고다. 핑크 영화에 익숙한 관객이라도 힘들 만큼 충격적이다.
이해영 감독│<페스티발>과 한핏줄 영화
과 한핏줄 영화" />5. (Lars And The Real Girl)
2007년 | 크레이그 질레스피
“에 리얼돌 설정을 넣고 나서 이 영화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어요. 이 설정을 바꿔야하나 고민했고, 실제로 플롯의 수정도 좀 있었구요. 영화는 굉장히 따뜻하고 예쁜 일종의 코믹 감동 휴먼 드라마예요. 특히 시선이 너무 좋았어요. 주인공이 소심하고 사회성이 떨어지는 남잔데 그걸 잘 살렸고, 그 남자가 인격체라고 보는 리얼돌과 그를 바라보는 동네 사람들의 따뜻한 포용력이 감동적이었어요.”

착하고 성실하지만 숫기 없는 라스(라이언 고슬링)의 최초의 연애 상대는 리얼돌 비앙카. 가족들과 동네 사람들은 그들에게 아연실색한다. 그러나 좀처럼 집 밖에 나오지 않던 라스가 비앙카와 함께 하며 파티에 참석하고 미사에도 나가면서 타인과 관계를 맺어가기 시작한다. 라스와 비앙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가족과 이웃들이 한없이 따뜻하다.
이해영 감독│<페스티발>과 한핏줄 영화
과 한핏줄 영화" />는 소년의 성장영화인 동시에 기성세대가 반대하는 가치를 적극적으로 찾으려는 전복적인 영화이기도 했다. 동구가 여자가 되고자 하는 것 자체가 기존의 질서나 세계를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역시 귀엽고 유쾌한 와중에 끊임없이 세상에 잽을 날린다. SM플레이어들은 감히 대낮의 대로변에서 사랑을 약조하고, 자신들을 손가락질하는 군중을 향해 당신들은 얼마나 깨끗하냐고, 건전하냐고 되묻는다. 그리고 그것은 그대로 이해영 감독의 외침이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에서 살면서 보수적인 어떤 것 때문에 누군가가 자기 얘기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을 갖고 있어요. 보수적인 걸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보수적인 건 우리가 갖고 있는 가치를 지켜주는 기준점이 된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보수적인 것 때문에 비롯되는 두려움이 결국에 누군가에게 폭력으로 작용하고, 그러면서 그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자기 존재를 지우고 누르게 만드는 매커니즘 자체에 짜증이 납니다. 나 이 성적인 코드로만 가긴 했는데 다양한 측면에서 이런 얘기는 직간접적으로 계속하지 않을까 싶어요.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선 제대로 된 보수를 본 적도 없고, 폭력의 다른 이름으로 행사되었던 것 같아요. 그것에 대해 최소한이나마 저항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글. 이지혜 seven@
사진. 이진혁 el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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