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아트>│이토록 옹졸한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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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 피부과 의사, 2년제 대학 전임교수, 도매문구사 바지사장. 이들이 순수하게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은 딱 한가지뿐이다. 초·중·고등학교 동창. 연극 의 수현(이남희, 윤제문, 김재범), 규태(류태호, 정상훈), 덕수(유연수, 김대종)도 고등학교 동창이다. 그런 이들의 우정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것은 바로 수현이 산 그림 한 점 때문이다. 행여 지문이 묻을새라 하얀 천으로 곱게 들고 나오는 이 그림은 ‘착한 사람에게만 보여요’라고 얘기하는 듯, 쉽게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하얀 바탕에 하얀 선이 그려진 하얀 그림. 수현은 모더니즘의 최고봉이라 추켜세우며 2억 8천만 원에 그림을 샀고, 규태는 그런 그림을 ‘판때기’라 칭하고, 덕수는 자기 집 전세 값의 두 배를 훌쩍 뛰어넘는 그림 앞에서 마냥 웃을 뿐이다. 2004년에 국내 초연하여 11번째 재공연중인 의 프레스콜이 지난 21일 열렸다.

흔들린 우정 회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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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는 옹졸하게 흔들려버린 우정이 있고, 소통부재에 대한 따끔한 비판이 있다. 수현은 규태의 싸구려 같은 취향을 은근히 무시하고, 그런 규태는 잘 나가는 수현에게 자격지심이 있다. 덕수는 매번 둘 사이에서 중재를 담당하지만 정작 그의 이야기엔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다. 시작은 2억 8천만 원짜리 그림 한 점 때문이었을지언정, 후반으로 갈수록 그들은 10여년을 훌쩍 넘는 세월동안 쌓여있던 감정들을 토해낸다. 그리하여 “서로 달라진 사회적 위치 때문에 우정이 흔들리고, 또 그 흔들린 우정을 지켜나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연출의도처럼 는 시종일관 웃고 있지만 애써 숨겨두었던 인간의 추악한 면으로 관객의 가슴을 매몰차게 찔러대기도 한다. 무의식중에 튀어나오는 친구의 이혼과 가난, 그리고 알콜중독. 시종일관 속사포처럼 쏟아져 나오는 방백과 대화들은 서로의 취향이나 감정을 존중하지 않은 채 그저 툭툭 뱉어내는 말들이 얼마나 사람을 상처 입히는가도 보여준다.

이남희, 윤제문, 류태호, 유연수의 노련한 연기는 세월의 흐름과 관계없이 여전히 열여덟 언저리에 머문 듯 철없는 남자들의 다툼을 코믹하게 그린다. 반면 역대 평균연령 최연소가 될 김재범, 정상훈, 김대종 팀은 전작인 뮤지컬 의 호흡을 그대로 이어가며 연극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대학로 연극축제 ‘무대가 좋다’의 다섯 번째 작품 는 12월 23일부터 내년 3월 31일까지 대학로 예술마당 3관에서 계속된다.

사진제공. 악어컴퍼니

글.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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