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감독 수염은 언제까지 기를 수 있을까?
김성근 감독 수염은 언제까지 기를 수 있을까?
요즘 프로야구 하고 있지?
물론 하고 있지. 개막한지가 언젠데.

기아는 어때? 지난번에는 별 되도 않는 아이디어로 응원하더니.
묻지 마.

못하는구나?
못하긴 뭘 못한다고 그래! 아직 선발 투수들 몸이 안 풀려서 그래. 지난 4월에 좀 추웠어? 이제 5월 시작되고 날 따뜻해지니까 곧 날아다닐 거라고. 여기에 부상이었던 김상현까지 복귀하면 뒤집기 시작이라고.

아무튼 지금은 못한다는 뜻이구나?
그래! 지금은 좀 못한다! 그걸 그렇게 내 입으로 말하는 걸 듣고 싶었냐!

뭐래. 그럼 요즘 제일 잘하는 팀은 어디야?
SK. 2007, 2008년 우승을 차지했었고 작년에도 그랬고 올해 역시 최고의 우승후보인 팀이야. 심지어 최근에는 15연승을 하고 있어. 연승이 시작된 첫날부터 기르기 시작한 SK 김성근 감독의 수염이 이제는 덥수룩해졌을 정도지.

수염을 길러? 왜?
아, 넌 잘 모를 수도 있겠구나. 원래 김성근 감독은 항상 말끔하게 면도를 하는데 한화에 역전패한 다음날 깜빡 잊고 면도를 안 했다가 팀이 이기자 그럼 질 때까지 면도를 안 하기로 마음 먹었나봐. 일종의 징크스인 셈이지.
김성근 감독 수염은 언제까지 기를 수 있을까?
김성근 감독 수염은 언제까지 기를 수 있을까?
그럼 전에는 그 김성근 감독이란 분에게 그런 징크스가 없었던 거야?
음, 적어도 수염 징크스는 없었던 걸로 알고 있어. 하지만 과거 신일고등학교 감독이었던 시절엔 동문운동장에서 시합이 있으면 장충단 공원 쪽으로 우회해서 들어가고, OB 베어스 코치였을 땐 노란색 팬티를 입고 갈아입지 않는 독특한 징크스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더라. 어쨌든 요즘 프로야구에서 최고의 화제는 홈런 기록이나 타격왕 경쟁이 아니라 오히려 김성근 감독의 수염이야.

독특해서 재밌긴 한데 사실 그냥 미신에 불과한 거잖아.
사실 과학적이라 말하긴 어렵지. 하지만 그의 징크스가 이렇게 화제가 되는 건 단순히 특이한 습관이라서만은 아니야. 김성근 감독은 야구팬들로부터 야구의 신, 줄여서 ‘야신’이라 불리는 감독이야. 기아의 전신인 해태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김응용 감독이 직접 그렇게 불렀을 정도지. 혹자는 정근우, 박정권, 김광현, 박재홍 등 최고 수준의 선수들이 즐비한 SK 안에서 최강의 전력은 김성근 감독이라 평가하기도 하고. 그만큼 SK의 강력한 야구를 대표하는 그가 이런 징크스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화제가 되는 거지. 폄하하려는 건 아니지만 만약 선발 엔트리에서 빠져있는 선수가 수염이랑 손발톱을 기른다고 화제가 되겠어?

그 김성근 감독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대단해? 그래봤자 경기는 선수가 하는 거잖아.
그렇게 생각하는 애가 왜 축구 대표팀에 히딩크가 다시 왔으면 좋겠다고 하는 거야?

그건… 꼭 그렇게 무안을 줘야 후련하냐?
뭐래. 야구처럼 개인 능력 이상으로 팀플레이가 중요한 스포츠에서 감독의 판단은 엄청나게 중요해. 만약 우리 팀이 수비하는 입장이라면 현재 투수를 계속 던지게 할지, 교체할 거라면 어떤 투수를 내놓을지, 수비 위치를 앞으로 당겨서 단타를 대비할지, 아니면 뒤로 물러나서 장타에 대비할지 결정하는 건 결국 감독이야.

정확히 어떤 건지 예를 들어 설명할 수 있어?
올해엔 조금 달라진 경향이 있지만 소위 ‘벌떼 야구’로 불리는 정확한 투수 교체 타이밍만으로도 그의 능력은 굉장하다고 할 수 있어. 요즘은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지만 좌타자가 등장하면 좌타자에 강한 좌투수를 내보내 삼진 하나만 잡고 다른 투수와 교체시키는 좌계투진 전략을 한국에서 제대로 도입한 것도 김성근 감독이지. 쉽게 말해서 잘 던지던 투수가 조금 흔들린다 싶을 때, 혹은 현재 나온 타자에 가장 강한 투수를 빠르게 교체하는 거야. 상대가 주먹을 내기 직전에 보를 내고, 상대가 보를 내기 직전에 가위를 내고, 상대가 가위를 내기 직전에 바위를 내는 거지.
김성근 감독 수염은 언제까지 기를 수 있을까?
김성근 감독 수염은 언제까지 기를 수 있을까?
못하면 빼고, 잘하는 사람을 집어넣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
당연한 거지. 하지만 우선 그 당연한 판단을 하기 위해선 수많은 데이터를 모으고 그 중 의미 있는 것들을 골라내서 분석할 수 있어야 돼. 물론 여기까진 최근의 몇몇 감독들도 시도하고 있어. 그런데 사람은 기본적으로 기대심리라는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데이터 분석 이후에도 그에 따른 결단을 쉽게 내리지 못해. 포커로 치면 투페어를 들고서 풀하우스를 노리는 거고, 주식으로 치면 계속 떨어지고 있는 주식을 계속 미련이 남아 빼지 못해 손해를 보는 건데, 이건 결코 멍청해서 그런 게 아니야. 혹시나 하는 기대는 그만큼 강력하지. 자신의 생각을 철저히 객관화해서 바라보기란 결코 쉬운 게 아니야.

그럼 그걸 선수들이 다 완벽하게 따르는 거야?
그게 김성근 감독의 또 다른 무서움이지. 선수들을 엄청나게 훈련시켜서 실수 없이 자신의 작전을 실행할 수 있는 야구 기계들로 만들어내거든. 아, 이건 결코 선수들을 개성 없는 존재로 폄하하려는 게 아니야. 오히려 승리를 위해 감독을 백퍼센트 신뢰하고 자의식을 억누르는 좋은 선수들이라고 봐. 솔직히 한 번 찾아온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는 SK를 보면서 두려움을 느꼈던 게 사실이야. 그래서 싫어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러게. 사람들 보면 SK 좀 싫어하지 않아?
우선 이번 15연승에서 볼 수 있듯, 일종의 끝판왕이기 때문이고, 팀의 브레인인 김성근 감독부터 손발인 선수들까지 오직 승리에 집중하는 만큼 간혹 매너가 부족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야. 그게 꼭 김성근 감독과 SK만의 것이 아니라고 전제한다면 SK 정근우의 주루 플레이가 수비수에게 신체적 위협을 가할 뻔했던 일들이 확실히 있었고, 빈볼 논란이 유독 많은 것도 사실이야. 거의 승리가 확실해 보이는 경기에서조차 집요할 정도로 도루나 번트처럼 득점에 목숨 거는 작전을 쓰는 건, 사실 잘못된 게 결코 아니지만 상대팀 입장에서는 잔인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지. 그렇기 때문에 그를 존경하는 팬만큼이나 많은 안티 역시 몰고 다니는 게 김성근 감독이야. 하지만 확실한 건, 그가 이끄는 팀이 4년 내내 우승에 가장 접근한 팀이 아니었다면 별다른 안티를 달진 않았으리라는 거야. 싫든 좋든 인정할 수밖에 없는 감독이고, 그가 이끄는 최강의 팀인 거지.

너 오늘 남의 팀 되게 밀어준다? 무슨 이유라도 있어?
그런데 그 팀을 작년 한국시리즈에서 누가 이겼게?

글. 위근우 eight@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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