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세아이>│오늘 밤, 엄마에게 전화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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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선고가 주어진 환자와 가족들은 엄청난 고통을 대가로 받는 게 있어요. 건강한 사람들은 결코 누리지 못하는 삶의 정리기간 같은 거죠. 살면서 미안해했던 사람에겐 미안하다는 말을 해줄 기회를 갖게 되고, 마저 사랑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단 말이에요.”

천안함과 함께 잠든 수많은 이들의 죽음이 더욱 안타까운 건, 아무런 인사도 없이 홀연히 세상을 떠나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의 다섯 번째 작품으로 선정된 연극 은 스스로의 생을 정리하고, 주변인들과의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짧지만 가장 행복한 순간을 그리는 작품이다. 1996년 방송된 노희경 작가의 동명드라마에 MBC 와 등을 연출한 이재규 감독의 손길이 더해져 연극 무대에 올랐다. 인희(정애리)의 삶은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이용이), 무뚝뚝하기 만한 남편(최정우), 대화라곤 찾아볼 수 없는 딸(박윤서)과 아들(이현응) 덕분에 하루하루 피폐해져만 간다. 그러던 어느 날 인희는 자궁암 말기 진단을 받고, 가족들은 인희의 남은 생을 함께 살아내가며 지난 추억과 삶의 의미를 되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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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영상매체에 비해 훨씬 더 직접적인 장르다. 감독의 손에 의해 재단되는 영상과 달리 전체그림을 모두 펼쳐놓는 연극은 관객의 시야를 넓혀 새로운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리고 그런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허구이나 허구가 아닌 실제상황이 된다. 그래서 연극 은 4부작으로 이루어졌던 드라마에 비해 스토리의 촘촘함은 줄어들었을지언정 감정이입의 폭은 훨씬 더 넓어졌다. 관객들은 극이 진행되는 동안 죽어가는 인희가 될 수도, 그런 엄마를 미안함에 똑바로 보지 못하는 아들이 될 수도, 애써 외면하는 상주댁이 될 수도 있는 셈이다. 생각의 여지를 많이 남기는 무대는 이재규 감독의 담담한 연출이 큰 몫을 한다. 그동안 드라마를 통해 감각적인 영상으로 주목받은 그는 연극 연출을 맡으며 무엇인가를 더하기보다는 최대한 빼내는 방식을 선택한다. 얼마든지 흘러넘칠 수 있는 감정은 담담함으로 꾹꾹 눌러 담고, 복잡해질 수 있는 공간은 포인트 조명과 소품을 이용해 무대전환을 최소화한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이 작품의 백미는 단연코 디테일이 살아 숨 쉬는 텍스트다. 의사라는 직업을 가졌지만 정작 아내의 수술실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닫아라”라고 말하는 남편의 깊은 한숨, 엄마에게 합격통지서를 줄 수 있을 때까지만 살게 해달라며 삼수생 아들이 흘리는 눈물, 쭈뼛거리며 누나가 좋아하는 호두과자와 음료수를 건네는 망나니 동생(전배수)의 미세한 손 떨림을 무대에서 확인하는 순간 눈물을 흘리지 않기란 쉽지 않다. 특히 이번 연극에서는 인희의 죽음 후 상황을 에필로그 형식으로 삽입해 남겨진 자의 슬픔과 미소도 놓치지 않는다. 단순한 가족애를 넘어 ‘죽음’이라는 것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던지는 연극 은 4월 23일부터 7월 18일까지 대학로 문화공간 [이다]에서 계속된다.

사진제공. 연극열전

글.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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