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수완 작가│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드라마
진수완 작가│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드라마
드라마가 작가를 닮는지 작가가 드라마를 닮아가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둘은 서로 닮는다. 그래서 데뷔 15년차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소년같은 웃음을 간직한 진수완 작가는 KBS 의 아이들과 닮았다. 1남 3녀의 막내, 어릴 땐 남자 같은 이름이 스트레스여서 ‘혜정이, 은정이, 지혜’ 같은 친구들이 부러웠고 여고 시절에는 짧은 머리에 체육복 바지를 입고 다니는 왈가닥이었던 소녀는 을 좋아했다. 국문과를 졸업한 뒤 처음 공모전에 입상한 작품도 고아 소년이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단막극 였다. “그 때는 30대는 되어야 진한 연애 이야기나 불륜, 고부 갈등처럼 찐득한 삶이 배어 있는 드라마를 쓸 수 있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저는 정신연령도 원래 낮고 사회 경험도 적으니까, 내가 지나온 청소년기에 대한 이야기라면 재미있게 쓸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루면서 문제의식을 가지고 가되 해결책은 열어놓자는 것은 시리즈 제작진 공통의 기준이었다. 실제 학생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선생님들과 통화를 하며 이야기를 만들었다. 네 명의 작가가 함께 집필한 에서 진수완 작가가 초반 캐릭터를 잡은 한태훈(심지호)은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아”라는 명대사로 오랫동안 소녀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기도 했다. “사실 가장 큰 인기 비결은 심지호 씨가 잘 생겨서였을 거예요. (웃음) 저는 굳이 고르자면 반장 지민이와 비슷한 편이었어요. 둥글둥글하고 감정적으로 좀 둔하고 별로 능력은 없지만 무지 열심히 하고, 그런데 결과는 별로인.” 작가 본인의 경험에서 바탕이 된 이야기도 있다. “아주 평범한 학생 이야기가 의외로 큰 호응을 얻은 적이 있어요. 날라리, 아웃사이더들은 선생님들이 주시하고 공부 잘 하는 애들도 관심을 받지만 평범한 아이들은 남들이 몰라주거든요. 제가 27번인데 ‘너희 반 27번 교무실로 오라고 해’ 같은 말을 들은 적도 있는데 거기 공감하는 학생들을 보며 에서 꼭 센 이야기만 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교사인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과 화해를 섬세하게 그려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수록되기도 한 ‘어느 날 심장이 말했다’ 역시 마감에 치어 부모님에게 소홀했던 데 대한 가책이 잠재적으로 작용한 작품이었다. “당시 큰 수술을 앞두고 있었는데 수술 당일 아침, 근육이완제를 맞으면서 탈고한 디스켓을 넘겼어요. 그걸 보시는 엄마의 눈이 충혈된 걸 보며 어찌나 죄송하던지. 수술을 마치고 나서 쓴 게 ‘어느 날 심장이 말했다’ 였어요. 교과서에 실린다고 했을 땐 깜짝 놀랐죠. (웃음)”

소설 를 원작으로 항일무장투쟁사와 로맨스라는 이질적 세계를 결합시킨 KBS 이 1930년대 경성이라는 공간에서 네 청춘의 사랑과 고뇌를 성공적으로 그려낼 수 있었던 것도 그의 단단한 필력을 통해 비롯되었다. 그리고 초등학교 시절 김수현 작가의 을 보며 처음으로 ‘도대체 누가 저런 이야기를 쓰는 건지’ 궁금해 하기 시작했다는 진수완 작가가 드라마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드라마를 골랐다.
진수완 작가│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드라마
진수완 작가│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드라마
MBC
1992년. 극본 최연지, 연출 이승렬
“제가 대학 다닐 때만 해도 트렌디 드라마를 좋아하면 ‘저런 부르조아…’ 하면서 비판하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그런데도 는 너무 재미있었고, 특히 엔딩에서 카메라가 뒤로 빠지면서 스태프들의 모습이 다 나오던 장면을 잊을 수 없어요. 최고의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저 많은 사람들이 최선의 노력을 한다는 데 대한 감동으로 저도 그 레카차에 타고 싶을 만큼 부러웠어요. 드라마는 끝나는 맛에 한다는 말도 있는데 정말 드라마는 행복한 쫑파티를 향해 달려가는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지금도 그 장면을 떠올리면 내가 그 때 얼마나 드라마 작가가 되기를 꿈꿨는지, 고생하는 스태프들을 위해 청사진을 내놓아야 하는 사람이 작가라는 것들을 다시 생각하면서 초심으로 돌아가게 돼요.”
진수완 작가│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드라마
진수완 작가│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드라마
MBC
1993년. 극본 박정화, 연출 장용우
“신춘문예는 20대 당선자가 있어도 드라마 공모전은 20대가 당선되지 못한다는 얘기를 들을 때였어요. 하지만 를 보면서 청소년 이야기라면 나도 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제가 좀 철이 늦게 들어 그런지도 모르지만 정준, 서재경 같은 주인공들에게 정말 공감을 많이 했고 마음이 정화되기도 했어요. 동민이 역의 정준 같은 경우는 그 전까지 청소년 드라마의 야무진 주인공들과 달리 허점도 많고 아직 생각이 어리기도 해서 더 리얼리티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아이들이 몰려다니기만 해도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었고, 대도시가 아닌 춘천이라는 공간이 주는 판타지도 참 좋았어요”
진수완 작가│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드라마
진수완 작가│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드라마
SBS
1995년. 극본 송지나, 연출 김종학
“작품 자체도 너무 좋았지만 한 연예 프로그램에서 촬영 현장을 찾아갔던 장면이 기억나요. 5. 18 광주민중항쟁 신을 찍기 위해 광주 금남로를 다 막고 시민들의 협조 아래 대규모 촬영을 하는데 정말 그 공간 전체가 조용-한 거에요. 김종학 감독님이 메가폰을 잡고 ‘액션!’을 외치는 순간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움직이고 시작하는데 너무 가슴이 벅찼어요. 그동안 아무도 하지 못했던 걸, 금남로를 막고 그 이야기를 재현하고 시민들의 도움까지 받았다는 게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진수완 작가│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드라마
진수완 작가│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드라마
“이 끝난 지 벌써 3년이나 됐더라구요. 작품 준비 좀 하다 보니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요. 다른 사람들은 재충전이라고 하던데 저는 그런 거 없어요. (웃음)” 어느새 중견 작가의 세대에 접어들었지만 점점 빠르고 역동적으로 변하는 드라마 시장에서 새로운 작품이 방송에까지 이르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진수완 작가는 크게 서두르지 않는다. “무엇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명확하면 너무나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모든 상황과 조건을 떠나 죽어도 이 이야기는 하고 싶다는, 그런 아이템을 기다리고 있어요.” 그가 새로운 이야기를 만나기를 기다리는 것이 작가 자신만은 아닐 것이다.

그동안 사랑해주셨던 ‘올댓드라마’는 진수완 작가 편을 마지막으로 연재가 종료됩니다. 앞으로 더 좋은 모습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글. 최지은 five@
사진. 이진혁 el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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