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에겐 “넌 비정상이야. 확실히 돌았어. 하지만 멋진 사람들은 다 돌았지”라고 말해주는 아버지가 있었다. 어쩌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미친 모자장수(조니 뎁)에게도 그런 아버지가 필요했을지 모른다. 역시 비정상인 그는 그 소녀, 앨리스를 만나기 전까지 스스로의 광기에 대해 고민했으니까. 기본적으로 이 영화는 19세기 영국의 관습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세계를 찾아가는 소녀 앨리스의 성장담이지만 변화하는 것은 그녀뿐이 아니다. 모든 것이 기괴한 ‘언더랜드’ 안에서도 자타가 공인하는 미치광이인 모자장수는 앨리스를 통해, 더 정확히는 앨리스를 거친 앨리스 아버지의 말을 통해 스스로를 긍정하고, ‘좋마운’(좋고 고마운) 날을 맞이하기 위해 칼을 들고 선두에 선다. 오랜 시간 조니 뎁과 함께 해온 팀 버튼 감독이 그에게 이런 역을 맡겼다는 건 상당히 흥미로운 사실이다. 정상적 세계에 속하지 못한 이방인의 결핍에서 자신만의 세계로 충만해지는 긍정의 과정은 조니 뎁의 그것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조니 뎁을 만든 결핍의 힘



그의 유년기의 결핍은 <가위손>(왼쪽)이나 <길버트 그레이프>의 캐릭터에서도 발견된다.
우연이겠지만, 존 F. 케네디가 암살당했던 해에 그는 태어났다. 어떤 거대한 존재의 부재와 함께 시작된 그의 삶은 그가 유년기 때 겪었던 결핍과 기묘한 일치를 이룬다. 그는 궁핍하고 부모의 싸움이 잦았던 자신의 유년기에 대해 “매일매일 무엇인가가 폭발할 것 같은 느낌”으로 지냈다고 술회하며 15세 때 경험한 부모의 이혼에 대해서는 “천진난만함이나 어린이다움 같은 여러 가지 모든 것이 그 때 끝났다”고 고백했다. TV 시리즈 <21점프 스트리트>를 통해 틴에이저 스타가 되고서도 “완전히 다른 무엇을 바라던”(팀 버튼) 그가 선택한 작품이 <가위손>이라는 건 그래서 상징적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 에드워드는 자신을 만들어준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세상에 내팽겨진다. 손이 가위인 그는 마을에서 전혀 이질적인 ‘다른’ 존재이고, 마을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는 순간부터 ‘틀린’ 존재로서 배척받는다. 에드워드는 마을을 떠나 도망쳤고, 조니 뎁은 주목받는 스타임에도 불구하고 할리우드 시스템에 정착하지 못한 채 끝없이 부유했다.

그가 <스피드>나 <가을의 전설>,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같은 영화의 캐스팅 제의에 대해 “I`m not a Blockbuster Boy”라며 거절한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흥행의 공식 안에서 전형적인 모습이 될 수밖에 없는 캐릭터를 거부했던 그가 빵을 다리미로 굽는 <베니와 준>의 샘이나 흥행과는 거리가 먼 괴작을 자신감 넘치게 찍어대는 <에드 우드>의 에드 우드, 스스로를 역사적 바람둥이 돈 쥬앙이라 주장하는 <돈 쥬앙>의 정신 이상자처럼 사회가 비정상이라 규정하는 인물을 연기한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말하자면 세상과 불협하는 그의 태도는 블록버스터 시스템을 거부하는 고집 센 반항아로서, 또한 사회화되지 않은 영화 속 캐릭터로서 스크린 안과 밖을 모두 관통한다. 아마도 그가 연기한 인물 중 가장 선하고 순박하다고 할 수 있을 <길버트 그레이프>의 길버트 그레이프조차 정상적이라 말할 수 없는 가족을 짐으로 여기고 벗어나고 싶어 했다.

불안한 영혼에서 능동의 에너지로



집시의 모습을 보이던 그가 딸을 위해 <캐리비안의 해적>에 출연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흥미로운 건 이처럼 그가 아웃사이더를 자처하고, 어딘지 모르게 불안한 모습을 보일수록 대중은 더 높은 관심을 보이며 계속해서 그를 인사이드로 몰아넣었다는 점이다. 위노나 라이더와의 결별 이후 케이트 모스와 함께 하던 시절을 떠올려 보라. 당시의 그는 뉴욕의 마크 호텔 귀빈실을 때려 부술 정도로 정서적으로 불안정했지만 그래서 숨 막힐 듯 아슬아슬한 매력을 발산했다. 피플지가 선정한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에 뽑힌 것을 비롯해 그의 이름은 현존하는 가장 섹시한 배우의 리스트에 항상 올라가 있지만 그의 섹시함은 동갑내기인 브래드 피트의 잘 다듬어진 조각 같은 몸매나 두 살 위인 조지 클루니의 댄디한 매력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목걸이를 주렁주렁 매달거나, 청바지 주머니를 스카프로 장식한 그는, 자신이 연기했던 <초콜릿>의 집시, 로우가 그대로 할리우드에 등장한 듯한 모습이었고, 사람들은 그 자유분방한 매력에 열광했다. 스타 시스템에서 벗어나려 할수록 오히려 더 주목을 받는 역설. 그럴수록 그는 더더욱 기를 쓰고 흥행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테리 길리암의 <라스베가스의 공포와 혐오>, 짐 자무쉬의 <데드 맨> 같은 작품을 골랐다. 마치 주류 메커니즘에 삼켜지지 않기 위해 도망치는 것처럼.

만약 1999년 초까지 파파라치와 싸우다 체포된 적이 있던 그가 세상을 향해 바짝 세운 날을 거둬들였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딸 릴리 로즈의 탄생 때문일 것이다. “나의 딸의 출생은 나에게 삶을 가져다주었다”고 할 정도로,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그의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도무지 정착할 수 없는 유랑민 같았던 그는 아이의 엄마인 바네사 빠라디에게 헌신했고, 딸과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를 찍기 위해 첫 블록버스터인 <캐리비안의 해적>에 출연했다. 조니 뎁이 에드워드와 함께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인 캡틴 잭 스페로우는 그의 과거 캐릭터들처럼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을 하지만, 그것은 구속으로부터 도망치는 것보다는 광활한 자유를 즐기는 것에 더 가깝다. 그에게 블랙펄은 해군과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양을 누비기 위해 필요하다. 따뜻한 가정에 대한 동경이 조니 뎁의 삶과 작품 안에서 어떤 결핍과 불안감으로 등장했다면, 스스로 아버지가 되어 가정을 완성하면서 그의 개성은 그 자체로 긍정적이고 능동적인 에너지가 된 것이다. 이미 매력적인 캐릭터지만 결국 아버지와의 화해로 마음의 안정을 얻는 윌리 웡카(<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등장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때문에 팀 버튼-조니 뎁 콤비의 범작임에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조니 뎁이라는 배우의 필모그래피에 있어서는 하나의 중요한 방점이 된다. 앞서 말한 것처럼 그는 자신의 개성을 기껍게 끌어안는 단계에 이르렀다. 모자장수가 영화 종반에 선보이는 ‘으쓱쿵짝’ 춤처럼 그것은 정상 혹은 비정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과거의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 자체로 온전한 ‘무엇’이다. 올해 마흔 여덟이 된 이 남자가 아직도 아름다운 건 바로 이러한 유일무이함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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