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 가는 노잣돈 대신 편지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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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 가장 허탈해지는 순간이 위험에 빠진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또 다른 누군가가 목숨을 잃을 때더군요. 사람 목숨에 경중이 따로 어디 있다고 누군가는 칼침을 맞아도, 암기에 맞아도 불사조처럼 살아나는가 하면 누군가는 날아온 화살 한방으로 숨을 거두고 만단 말입니까. 천지호(성동일), 당신이 세상을 떠나던 날도 마음이 심히 울적했습니다. ‘언년이 살생부’가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떠돌 만큼 숱한 이들이 죽어 넘어갔던지라 이젠 익숙해질 만도 한데 당신의 죽음만큼은 어째 그러려니 하고 넘길 수가 없네요. 살아가는 이유가 혜원(이다해) 아씨였던 백호(데니 안)가 죽던 날도, 뭔가 한방이 있으리라 기대했건만 지붕 위에서 노상 폼만 잡다만 명나라 자객 윤지(윤지민)가 죽던 날도, 우리의 정겨운 추노꾼 왕손이(김지석)나 최장군(한정수)이 죽은 줄만 알았던 날도 이리 허무하지는 않았습니다.

진작 몰라봐서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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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제가 괜찮은 사람이다 싶어 정을 붙이려던 찰나였기에 더 서운했는지도 모르겠어요. 고백하자면 당신은 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중 제가 가장 싫어하는 캐릭터였거든요. 능글맞고 야비하고, 특히 약한 사람은 지르밟고 돈 있고 권력 있는 사람에겐 빌붙는 스타일인지라 눈을 희번덕대며 누군가에게 딴죽을 걸기 시작하면 꼴 뵈기 싫어 채널을 돌린 적도 여러 차례였답니다. 아마 더러워서 피한다는 게 바로 이런 경우일 거예요. 내내 그리 여기고 지내다 형장에서 숨이 끊어지려는 대길(장혁)이를 구하기 위해 이빨로 밧줄을 물어뜯는 모습을 보고 그제야 겨우 당신의 진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불과 몇 분 지나지 않아 등에 화살을 맞고 말았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죠.

언젠가 늘 옥신각신 원수처럼 지내던 경쟁자 대길이를 혼내주려고 덫을 놓았던 날, 대길이의 손에 순식간에 만득이(김종석)를 비롯한 수하들이 죄다 나가떨어지자 당신이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도라지 백 뿌리보다 산삼 한 뿌리가 낫네.” 눈에 가시 같은 대길이지만 그의 진가를 알아보고 즉시 인정할 줄 아는 당신의 진가를 정작 저는 몰랐던 거예요. 혹시 자신을 더덕쯤으로 여겨 귀하디귀한 산삼을 구하고자 자신의 위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던 겁니까? 저로서는 도대체 대길이의 목숨과 당신의 목숨을 바꾼 명분이 뭔지 모르겠습니다. 심정적으로 제일 얄미운 건 당신의 도발을 빌미로 형장에서 쉽게 몸을 피한 송태하(오지호)라고 할 수 있겠죠. 물론 떠나는 순간 칼을 날려 밧줄을 끊어준 덕에 대길이의 숨통이 틔었지만 그다지 고마운 마음은 들지 않더군요. 자신을 구하러 온 청나라 장수 용골대(윤동환)의 부하들이 그리 여럿이더만 그 급박한 상황에 놓인 대길이를 두고 어찌 자신만 도망을 친단 말입니까.

어느 목숨 하나 사연 없는 목숨 없을진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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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아무리 무예를 나눠 친구가 된 사이라고는 해도 병자호란으로 아내와 자식을 잃은 이가 적장의 도움을 기꺼이 받아들인 꼴이잖아요. 그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죄다 목격한 관동포수 출신 노비 업복이(공형진)가 옳은 소리 한 마디 하더군요. “큰 일 한다고 사람을 막 죽여도 되는 건지. 어느 목숨 하나, 사연 없는 목숨 하나 없는 것 같은데…” 그러게요. 대의명분이란 게 뭔지, 바른 삶이라는 게 뭔지, 진정 옳은 이가 누군지 곰곰이 생각하게 만드는 날이었어요. 믿을 사람 하나 없어 스스로 노잣돈을 입에 넣고 세상을 떠난 당신. 당신의 진가를 몰라 본 점, 뒤 늦게 사과드립니다.
저승 가는 노잣돈 대신 편지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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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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