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볼 때마다 느낌이 달라지는 사랑 영화
김정은│볼 때마다 느낌이 달라지는 사랑 영화


김정은이라는 배우에게서 야심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삭발한 4차원 환자(MBC )라는 센세이셔널한 등장과 달리 스타로서 구축한 그녀의 이미지는 밝고 씩씩한 캔디였다. 조폭들의 욕설과 칼부림이 범람하던 영화 의 막내딸도 다혈질이지만 사랑스러웠고, 조금 과격했지만 착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가장 큰 영광을 안겨준 SBS 의 태영은 “나를 이 자리까지 끌고 와줬지만 넘고 싶었던 이미지”의 총체이자 10년 동안 대중 곁에 머물렀던 김정은 그 자체였다.

캐릭터와 배우를 동일시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지만 김정은에게 있어서 그녀의 캐릭터들은 오랫동안 김정은 자체로 받아들여졌다. 돈 봉투가 동반되는 모욕적인 결혼 반대에도 웃으며 ‘아자 아자’를 외치고, 옥탑 방에서 구워먹는 삼겹살 하나에 행복해지는 태영은 곧 김정은이었다. 그녀는 그늘이 끼어들 틈 없는 따뜻한 햇살 같은 웃음을 달고 살았지만 “더 이상 소모되는 게 싫고, 내가 없어지는 게 두려”웠다. 그리고 “칸의 레드카펫을 등 파인 드레스를 입고 걷는” 야심 또한 이루고 싶었다. 그 와중에 만난 는 그녀에게 욕망의 돌파구였다. 극적인 신데렐라 스토리도, 웃음소리 한 번 크게 낼 일 없는 서른 살 인영을 만들어낸 김정은은 더 이상 ‘부자 되세요’를 외치는 핀업걸이 아니었다. 일상의 피로함과 다가온 사랑에 대한 설렘이 녹진하게 배어있는 학원 강사의 얼굴을 캔디에게서 발견할 줄이야.

그렇다고 이후 그녀의 커리어가 드라마틱하게 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그녀는 눈물 많은 따뜻한 의사(MBC )이거나 SBS 의 수더분한 진행자였다. 자신이 잘하는 것과 대중이 원하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김정은은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 만큼 내가 원래 잘하는 것도 더 잘하고 싶다”고 욕심을 숨기지 않는다. 이제껏 쌓아올린 이미지의 성을 부수고 다시 짓기를 오가는 김정은처럼 그녀가 고른 영화들도 현실의 김정은과 광적인 사랑을 갈망하는 김정은 사이를 오가는 영화들이다. “현실에서 그러질 못하니까 영화는 더 세고 강렬한 사랑을 담은 것을 좋아”하는 그녀가 “볼 때마다 느낌이 달라지는” 사랑 영화를 추천한다.
김정은│볼 때마다 느낌이 달라지는 사랑 영화
김정은│볼 때마다 느낌이 달라지는 사랑 영화
1. (Sarangni)
2005년 | 정지우
“너무 빨리 내려서 다들 볼 수 없었던 비운의 영화죠. (웃음) 원래 가제가 ‘과자 부스러기처럼 나를 따라다니는 남자들’이었는데 정말 딱이죠? 사실 얼마 전에도 또 봤는데 느낌이 다르더라구요. 예전에 봤을 때는 세상이 나를 보는 눈, 사람들의 시선에 더 신경이 쓰였어요. 그래서 인영이의 마음도 ‘너희들의 이해를 바라진 않지만 피해를 줬다면 미안해’ 이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했는데 이번에는 ‘그래, 오늘을 살자’더라구요. 자기 앞에 주어진 오늘, 지금 좋은 사람을 만나자는 거니까 ‘오늘에 충실해야지, 미래는 욕심이야’ 이렇게 해석이 달라지더라구요. 신기했어요.”

사랑에 있어서 기억이라는 두뇌활동은 시간과 만나 추억을 구워 내거나 또 다른 사랑을 부풀게 하는 이스트가 된다. 인영(김정은)은 열일곱 첫사랑의 기억을 추억으로 박제시키지 않고 서른이 된 지금까지도 현재진행형으로 만든다. 첫사랑과 이름도 얼굴도 같다고 믿고 있는 학원생 이석(이태성)과 사랑에 빠지는 동시에 현실에는 그 시절 열일곱 인영(정유미)이 여전히 살아있다. 급기야 서른이 된 진짜 이석(김준성) 또한 인영 앞에 등장한다. 자신의 남자들에 둘러싸인 인영은 그날 밤, 무슨 생각을 했을까?
김정은│볼 때마다 느낌이 달라지는 사랑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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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he Piano)
1993년 | 제인 캠피온
“는 연령에 따라 달라지는 느낌이 팍팍 나는 영화예요. 처음 봤을 때가 고 2 때였는데, 그 때는 에이다를 이해할 수 없었어요. 나중에 20대 후반, 서른이 넘어서야 ‘아, 저게 사랑이지’ 하게 되던데요? 그리고 이상하게 영화를 볼 때 전 악기나 천재에 대한 매료돼요. 항상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되는 운명을 타고 나서 그런가 봐요. (웃음) 듣거나 말하지 못하는 대신에 피아노를 천재적으로 연주하는 에이다를 보고 있으면 그저 감탄만 나오죠. 그래서 O.S.T 또한 1번으로 꼽는 영화예요.”

얼굴도 모르는 남자와 결혼을 하기 위해 뉴질랜드로 온 에이다(홀리 헌터)에게 아름다운 바닷가는 유배지와도 같았을 것이다. 자신의 피아노를 구해준 베인스(하비 케이텔)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오로지 욕망하는 것이라곤 피아노밖에 없었던 에이다는 베인스를 만나 손가락도 잃고, 피아노도 잃지만 잃었던 삶을 얻었다. 안개가 자욱했던 어둑한 해변이 그녀가 새 삶을 찾아 떠날 땐 환한 빛을 얻은 것처럼.
김정은│볼 때마다 느낌이 달라지는 사랑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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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La Pianiste)
2001년 | 미하일 하네케
“에리카는 굉장히 변태적이고 이상한 여자예요. 그래서 파릇파릇한 제자가 사랑한다고 밀어붙여도 호응을 못해주죠. 엄마와의 관계도 문제구요. 마흔이 넘도록 혼자서 무언가를 해본 적이 없이 엄마와 단둘이 사는 여자가 어떻겠어요? 결국 남자는 여자에게 큰 상처를 주고 떠나구요. 그런데 그 둘이 했던 게 사랑…일까요? 봐도 봐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영화예요. 사람들의 감정이 바닥을 치는 것까지 다 보여주니까요. 보고 있으면 힘들긴 한데 마음이 요동치고,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영화적인 자극을 원하는 관객들이라면 좋아하실 거예요.”

마흔이라는 나이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외모에 귀가하는 딸의 가방을 뒤지는 엄마와 함께 사는 음악원 교수. 피아니스트라는 낭만적인 직함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만큼 비뚤어진 욕망을 가진 에리카(이자벨 위페르)는 어느 날 자신을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청년 클래머(브누와 마지멜)를 만난다. 그러나 슈베르트가 아름답게 흐르던 이들의 만남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선회한다. 미카엘 하네케 감독은 사랑과 욕망에 대해 그 누구도 명쾌하게 답할 수 없는 파괴적인 질문들을 던져 놓았다. 54회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과 남녀주연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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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Lust, Caution)
2007년 | 이안
“양조위의 그 눈빛을 잊을 수 없어요. 마지막 장면에서 짓던 양조위의 표정이 지워지지가 않아요. 그 표정도 처음에 봤을 때는 ‘아 사랑이구나, 이 시간에 여자는 처형되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는 거라고 느꼈어요. 그래서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했는데 계속 보다보니 달라지더라구요. 양조위는 여자로 인해 새로운 삶을 만난 거였는데, 그녀가 없던 시절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공포를 담은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쪽으로요.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이해하겠지만 누군가와 만나다 헤어지면 그 사람이 아니라 그의 빈자리가 더 고통스럽거든요.”

이 영화 한 편을 온전히 보기 위해 중국의 관객들은 홍콩까지 가서 삭제되지 않은 를 보았다. 그리고 이안 감독은 으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지 2년 만에 또다시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를 둘러싼 모든 사실들이 이례적이지만 주연을 맡은 양조위와 탕웨이에게 가장 이례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다. 오랫동안 쌓아온 선한 이미지를 배반하는 양조위와 여배우로서 힘든 도전을 한 탕웨이는 이 영화의 영광을 누릴 만하다.
김정은│볼 때마다 느낌이 달라지는 사랑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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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In The Mood For Love)
2000년 | 왕가위
“에서도 그렇지만 양조위는 정말 훌륭한 배우예요. 특히 그의 눈에는 텅 빈, 머릿속이 하얘지는 그런 느낌이 있어요. 사실 배우에게는 뭔가 채워 넣는 것보다 비우는 게 더 힘들거든요. 가장 힘든 게 카메라 앞에서 가만히 견디는 거예요. 일단 액션이란 소리가 들리면 뭔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고. (웃음) 그런데 양조위는 가만히 서서 눈빛만으로도 모든 걸 보여주잖아요. 지금까지 말한 영화들처럼 도 일 년에 세 번 이상 봐요. 혼자 볼 때도 있고, 못 본 사람들한테 보여주려고 볼 때도 있구요. 남자친구가 생기면 꼭 보게 하는 영화이기도 하죠. (웃음)”

치파오, 붉은 립스틱, 국수 도시락, 스테이크. 를 떠올릴 때 자리 잡는 몇 가지 이미지들이다. 차우(양조위)와 리춘(장만옥)의 중지될 수밖에 없었던 사랑은 대신 지독히도 아름다운 장면들을 남겨놓았다. 국수를 사러가는 길 스친 두 남녀. 리춘의 아찔한 치파오와 붉은 입술, 그리고 둘의 데이트에 함께 한 스테이크 접시. 그러나 시간이 흘러 둘의 사랑이 가장 아름다웠던 때 ‘화양연화’를 떠올리며 리춘은 창밖을 내다보며 눈물을 삼켜야했고, 차우는 앙코르와트에 자신의 비밀을 묻어둬야만 했다.
김정은│볼 때마다 느낌이 달라지는 사랑 영화
김정은│볼 때마다 느낌이 달라지는 사랑 영화
“전에는 내 이미지를 꼭 바꿔야지, 바꿀 거야 하는 강박이 있었어요. 그러다가 또 몇 년을 별 생각 없이 살다보니 어느새 좀 변해있더라구요. 그게 작품 덕이든 제 사생활 덕이든 우울함을 흘리고 다닌다는 소리도 듣고. (웃음) 이제는 사람들도 마냥 ‘힘내세요!’ 이런 이미지로만 절 보지는 않는 거 같아요.” 그래서 의 장은은 그녀에게서 발견하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던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다. 김정은이 장은을 인간미가 표백된 부속품 같은 악역이 아니라 성찬을 응원하는 만큼 긍정할 수밖에 없는 라이벌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전전긍긍하며 손에 꽉 움켜쥐고 있던 변화라는 열쇠를 놓고 나서야 비로소 도약의 문을 열어젖힌 김정은. 그녀가 또다시 다음 단계의 문을 열 때쯤, 김정은은 칸의 레드카펫에서 발견될 지도 모른다. 물론 등이 시원하게 트인 드레스를 입고 말이다.

글. 이지혜 seven@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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