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는 그 자체가 이미 거대한 텍스트가 돼 버렸다. 누군가는 김연아에게 피겨스케이팅의 이상을 발견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김연아에 대한 열광의 실체를 분석하기도 한다. 어떻게 한 소녀의 피겨스케이팅이 한 나라 단위의 팬덤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그것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ㄱ부터 ㅎ까지 이어지는 이 작은 단어장도 마찬가지다. 김연아의 팬이라면 이 정도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김연아가 만들어낸 수많은 열광의 기록들이 남은 작은 조각들을 모으다 보면 김연아가 우리에게 보여준 것, 그리고 우리가 김연아에게 주고 있는 것들에 대해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국민코치 : 브라이언 오서 코치의 별명. 김연아가 브라이언 오서의 지도를 받으면서 세계 정상의 선수가 됐을 뿐만 아니라 김연아와 함께 희노애락을 함께하는 모습으로 한국 피겨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김연아의 기술적인 면은 물론, 음악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통해 김연아의 풍부한 감정 연기를 끌어냈다. 그리고 피겨스케이팅과는 관계없는 이야기겠지만 커밍아웃한 게이여서 김연아의 많은 팬들에게 안심 아닌 안심을 주고 있다.

나이키 : 김연아가 CF에 출연 중인 스포츠 의류 업체. 김연아가 출연한 대부분의 CF는 김연아의 금메달을 기원하거나 국민에게 기쁨을 줄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반면 나이키는 인생에서 가장 큰 도전에 선 김연아가 혼자 짊어져야 하는 고독과 승부에 초점을 맞췄다. 물론 스포츠 의류업체의 특성 때문에 가능한 CF이기도 했겠지만, 대중이 원하는 김연아가 아닌 김연아 개인의 심리에 초점을 맞춘 것은 나이키 CF가 유일했다. 김연아의 피겨스케이팅을 즐기면서도 그에게 부담감을 최소화 시킬 수 있는 어떤 방법.

데이빗 윌슨 : 김연아의 안무가. 예술적 표현력을 중시하는 그의 안무는 피겨스케이팅을 “피겨는 기록경기가 아니다. 자신의 프로그램을 얼마나 잘 소화하는 능력이 있느냐를 따지는 경기다. 기록보다는 경기에 집중하고 싶다”고 말하는 김연아에게 가장 어울리는 것이었다. 이번 밴쿠버 올림픽에서 여성미를 극대화 시킨 ‘본드걸’과 거쉰의 곡에서 보여준 김연아의 우아한 동작들은 데이빗 윌슨이 보여준 안무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을 듯.

록산느 : 2006~2007 시즌 김연아가 선보인 쇼트 프로그램 안무에 사용된 곡. 이 때 시니어 무대에 진출한 김연아는 ‘록산느’를 통해 보다 여성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하며 한층 업그레이드된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김연아는 ‘록산느’를 기점으로 국내에서 확실한 스타로 자리 잡기 시작한다.

만약에 : 김연아가 SBS 에서 부른 노래. 김연아는 ‘만약에’, ‘들리나요’ 등을 매끄럽게 부르며 엔터테이너적인 면모를 과시했고, 이는 그의 상품성을 더욱 높이는 계기가 됐다. 여린 몸의 피겨스케이터들이 힘차게 뛰어오르는 여자 피겨스케이팅은 소녀가 있는 힘을 다해 절실하게 불러야 어울릴 것 같은 ‘만약에’와 어울린다. 그리고 김연아는 유명세를 타기 전 여러 아이돌 가수들의 노래를 부르길 좋아했는데, 지금은 그 자신이 한국에서 전무후무한 아이돌이 됐다.
김연아│국민코치에서 승냥이까지, 연아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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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희 : 김연아의 어머니. 김연아의 어린 시절 피겨 스케이팅에 대한 기술 및 체력 훈련까지 담당하며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했다. 박미희의 이런 정성으로 인해 ‘피겨맘’이라는 신조어도 생겼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딸의 어린 시절을 유화로 그려 간직한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 아니었을까. 김연아의 부모는 밴쿠버 올림픽 당시 너무 떨려 경기를 제대로 지켜보지 못했다고.
김연아│국민코치에서 승냥이까지, 연아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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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냥이 : 김연아의 팬덤을 의미하는 동물. 김연아의 매력을 알리고, 그가 셀러브리티가 되는 데에는 승냥이들의 역할이 컸다. 하지만 승냥이들을 비롯한 김연아 팬들의 가장 큰 역할은 피겨스케이팅 자체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했다는 점. 그들이 아니었다면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의 차이점이나 김연아 외의 피겨스케이팅 스타들의 이름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물론 모든 열성적인 팬덤이 그러하듯 김연아에 대한 일부 팬들의 맹목적인 열광은 과하다 싶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한국 피겨스케이팅의 붐업에 큰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김연아│국민코치에서 승냥이까지, 연아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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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다 마오 : 아사다 마오는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가 밴쿠버 올림픽에서 기록한 23.06의 점수 차는 아사다 마오와 7위를 기록한 레이첼 플렛의 점수차보다 더 크다. 일본 방송사에서 몰래카메라라는 비도덕적인 수단까지 동원해 채점 의혹을 제기한다 해도, 두 사람은 현재 라이벌이라고 하기엔 너무 격차가 벌어져 있다. 어쩔 수 없다. 김연아가 너무 세다.
김연아│국민코치에서 승냥이까지, 연아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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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연아 : 김연아의 CF패러디한 정준하의 별명. 이밖에도 솔비는 Mnet 에서 피겨스케이팅에 도전했고, 밴쿠버 올림픽 기간 동안에는 온갖 연예인들이 김연아를 응원한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지금의 김연아는 아이돌 스타의 스타성에 월드컵 국가대표 축구선수 같은 관심을 받고 있으니 연예계에서 어떤 식으로든 그와 관계를 맺으려 할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다만 그래도 최고 대출금리가 40%가 넘는 대부업체에서 김연아의 이미지를 카피한 듯한 CF를 만드는 것은 보기 언짢은 것이 사실이다.
김연아│국민코치에서 승냥이까지, 연아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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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분 드라마 : 김연아의 자서전 제목. 만 19세의 나이에 자서전은 어울리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19살이 엄청난 부담 속에서 세계 정상을 지키는 선수라면 그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도 귀담아 들을 이야기가 많을 것이다. 김연아와 관련된 수많은 상품들이 이제 김연아의 생각에까지 미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예. 하지만 김연아에게 ‘7분 드라마’ 이상으로 중요한 건, 그가 앞으로 남은 인생을 즐겁게 보내는 일일 것이다.
김연아│국민코치에서 승냥이까지, 연아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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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비에스 : SBS의 밴쿠버 올림픽 독점방송으로 인해 김연아의 경기화면을 자료화면으로 밖에 내보내지 못한 두 공중파 방송 중 하나. 김연아의 금메달 이후 를 긴급 편성해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하기도 했지만 제목과 달리 내용은 아사다 마오 위주로 흘러갔을 뿐만 아니라 점프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조차 틀리는 부실한 방송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이밖에 일부 언론에서는 벌써 김연아의 올림픽 2연패를 독려하거나 은퇴설을 제기하고 있고, 대한체육회는 기자회견에서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들을 위한 의자조차 마련하지 않았다. 1등은 엉뚱하게 이용 되고, 메달이 없는 선수들은 1등만 대접한다며 한탄하는 세상. 김연아에게는 좀 더 여유를 주고, 나머지 선수들에게는 좀 더 예의를 지켜줄 수는 없는 것일까.
김연아│국민코치에서 승냥이까지, 연아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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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플 악셀 : 아사다 마오가 내세우는 점프. 또한 현재 채점제에서는 트리플 악셀(3.5)과 더블 점프(2.5)를 합쳐 5.5회전을 뛰는 것보다 트리플 점프(6)를 두 번 뛰어 6회전을 하는 것에 더 높은 점수를 준다. 간단하게 말하면, 피겨스케이팅은 공중에서 세 바퀴 반을 도는 종목이 아니다.
김연아│국민코치에서 승냥이까지, 연아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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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스케이팅 : 10대 소녀가 10여년 동안 모든 것을 다해 경기를 하다 20대 중반에 은퇴를 준비해야 하는 종목. 여린 소녀가 엄청난 정신적 압박을 이겨내고 아름다운 몸짓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여성 피겨 스케이팅은 동계 올림픽의 꽃이자 선수들에게 아이돌 가수와 같은 팬덤이 생길 수 있는 종목이다. 김연아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인기 역시 단지 그가 금메달리스트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매력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는 부분이 크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피겨 스케이터들은 또래에 비해 훨씬 더 큰 정신적 압박에 시달릴 수밖에 없고, 계속 자신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김연아│국민코치에서 승냥이까지, 연아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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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 지금 김연아가 누려야할 것. 세계적인 선수, 그것도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누리는 선수는 그만큼 부담감을 갖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만 19세의 여성은 조금은 자기 마음대로 살면서 행복을 누릴 권리도 있다. 김연아가 여왕이든 여신이든, 지금은 좀 편안하길. 최소한 3월 한 달 만이라도.

글. 강명석 two@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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