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호 PD : 한 명의 예능 PD가 있었다. 여섯 명의 출연자가 생겼다. 수많은 제작진이 생겼다. 팬들이 생겼다. 그리고 TV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한 사람은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하지만 한 사람은 세상을 바꾸는 시작이 될 수는 있다. 한 사람의 뇌구조가 거대한 세계로 실현되는 과정. 혹은 의 지난 5년.
김태호 PD
김태호 PD
권석 : MBC 의 ‘무모한 도전’을 연출했던 PD. ‘무모한 도전’은 일명 ‘초일류 연예인이 되기 위한 무한 프로젝트’로, 이 ‘유재석과 감개무량’, ‘천하제일 외인구단’ 등 유재석이 과거부터 시도했던 ‘루저들의 좌충우돌 도전기’를 기반으로 했다. ‘무리한 도전’은 차승원마저 땡볕에서 연탄을 나르게 하는 극단적인 몸 개그와 캐릭터들의 자학 개그로 봉태규가 출연을 자청할 만큼 마니아들을 모았지만, 한자리수 시청률을 기록했다. 김태호가 2005년 10월 29일에 새 연출자로 입성하며 ‘무모한 도전’은 ‘무리한 도전’으로 바뀐다.

나경은 : ‘퀴즈의 달인’에서 문제를 내던 아나운서. 이후 유재석과 결혼했다. 당시 ‘퀴즈의 달인’은 작은 세트 안에서 아나운서가 퀴즈를 내고, 장난스러운 남자들이 맞춘다는 점에서 KBS 와 유사했다. 하지만 ‘퀴즈의 달인’은 퀴즈, 앙케이트, 각종 게임 등을 하는 과정에서 출연자들의 캐릭터를 잡도록 만들었다. 장르의 형식을 비틀어 캐릭터의 역사를 녹이는 것은 고유의 특징으로, 이는 길의 무단방뇨 사건을 다룬 ‘죄와 길’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박명수도 이때부터 온갖 비난으로 캐릭터가 뚜렷해졌다.

박명수 : 거성, 악마의 아들, 하찮은, 2인자 등 깨알같은 별명들을 가진 의 큰 형. 박명수는 리얼, 캐릭터, 성장이라는 의 키워드를 대표한다. ‘무모한 도전’ 시절 권석 PD가 윗선으로부터 “섭외 참 쉽게 한다”는 말을 들을 만큼 하찮았던 박명수는 김태호와 함께 에 재입성, 과 상호 성장한다. 박명수가 출연자들의 실제 생활을 말하면서 은 쇼 바깥의 리얼리티를 끌어들였고, 은 박명수의 온갖 인생사를 공개해 그 자체가 하나의 캐릭터가 될 만큼 그를 성장시켰다. 박명수는 이제 ‘박명수의 기습공격’처럼 한 회를 끌고 갈 수 있는 존재감을 획득했고, 이는 이 유재석 중심으로만 흐르지 않도록 한다. ‘궁 밀리어네어’에서 문제 출제자는 유재석이었지만, 정답의 대부분을 맞춘 건 박명수였다. 또한 그는 ‘F1특집’에서 ‘천재 레이서’ 유재석을 이기고픈 ‘박 선배’가 되는 등 갈수록 영화 같은 에피소드가 많아지는 에서 스토리의 중심축을 이룬다. 하찮았던 그는 이제 의 가상 토크쇼였던 ‘거성쇼’를 정말로 진행할 만큼 성장했다. 그리고, 그 사이 은 루저들이 작은 스튜디오에서 서로를 비난하던 놀이에서 정체를 종잡을 수 없는 거대한 오락 프로그램으로 변했다.

하하 : 여전히 의 시작에 등장하는 공익 근무요원. 김태호는 그를 “PD마인드를 가진 연기자”라고 말할 만큼 신뢰, 소집해제 후 복귀가 점쳐지고 있다. 에서 하하는 유재석을 추종하는 ‘무한재석교’의 신자이자 노홍철과 함께 ‘젊은 피’ 노릇을 하면서 박명수와 정준하를 놀렸고, 정형돈과 어색한 사이임을 공개하며 출연자들의 실제 관계를 쇼에서 공개했으며, ‘강변북로가요제’에서는 가수출신답게 우승을 차지했다. 뚜렷한 캐릭터와 그들 사이의 관계를 통한 다양한 경우의 수가 필수적인 에서 하하는 제작진의 바람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리베로였던 셈. 하하의 복귀는 단지 캐릭터 한명이 더 늘어난다는 의미만은 아닐 것이다.

이상봉 : ‘슈퍼모델 특집’에 출연한 디자이너. 은 ‘슈퍼모델’ 특집 이후 ‘쉘 위 댄스’, ‘봅슬레이’, ‘식객’ 등 매년 연말에 일련의 리얼리티 쇼를 제작 중이다. 의 연말 리얼리티 쇼들은 사전 제작제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에피소드의 실제 제작시기와 방송시기가 일치할 필요가 없는 특유의 제작 시스템의 시초이자, 의 장르 인용 및 패러디의 뚜렷한 시작점이기도 하다. ‘슈퍼모델’은 같은 리얼리티 쇼의 화면 구성을 그대로 사용하기도 했고, ‘드라마’에서 드라마의 내용과 제작방식을, ‘강변북로 가요제’는 같은 가요 프로그램을 자기 식대로 뒤튼다. 은 이때부터 출연자들의 캐릭터를 장르적 형식이 자리 잡은 TV 장르들에 대입해 새로운 결과물을 내기 시작했고, 이는 의 중요한 특성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드라마’-‘쪽대본 특집’, ‘강변북로가요제’-‘올림픽가요제’에서 볼 수 있듯, 은 시간이 지날수록 TV 장르를 자유롭게 패러디하고, 뒤 섞으면서 새로운 형태로 나아가고 있다.

바다 : 의 ‘벼농사 특집’에서 “암 쏘 매~~~~~~”를 외친 후 공식 가수처럼 된 전직 요정. ‘벼농사 특집’에는 바다 이외에도 여러 연예인이 출연해 출연자들과 함께 실제로 몇 개월에 걸쳐 벼농사를 했다. 이는 같은 농촌을 소재로 했던 2006년의 ‘농촌체험 특집’과 확연히 달라진 부분. 당시 ‘농촌체험 특집’이 멤버들의 캐릭터와 몸개그로 1980년대식 슬랩스틱 코미디를 변용하는 정도였다면, ‘벼농사’는 여기에 리얼리티 쇼와 다른 연예인들과의 게임, 토크쇼 등을 뒤섞었다. 멤버들에게 코너를 마음대로 맡기는 ‘네 멋대로 해라’ 역시 2007년보다 2008년에 더욱 규모가 커지면서 리얼리티 쇼적인 요소가 강화됐다. 은 매번 완전히 새로운 소재를 다루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점점 더 많은 장르, 형식, 사람을 끌어들이며 성장한다.

정형돈 : 어쩔 수 없는 신체적 문제로 F1 레이싱카 탑승 외에는 못하는 것이 없는 캐릭터. 웃기지 못한다는 말도 있지만, 사실은 그것 자체가 웃음을 주는 캐릭터다. 정형돈은 에서 ‘리얼리티의 관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에서 이휘재에게 실제로 손가락 욕을 먹은 뒤 에서 ‘빨리 친해지길 바라’를 찍어 출연자들과의 실제 관계를 끌어들이는 계기가 됐다. 또한 ‘봅슬레이 특집’에서는 봅슬레이를 탈 수 없는 자신을 놀리는 박명수에게 화를 내며 오락 프로그램의 캐릭터가 아닌 실제 정형돈의 모습을 보여줬다. ‘봅슬레이 특집’을 기점으로 은 “박명수가 여러 캐릭터를 거쳐 박명수로 다시 돌아”갈 만큼 쇼와 실제 캐릭터의 간극이 거의 사라졌다. 이를 통해 은 ‘프로젝트 런어웨이’, ‘식객’ 등의 리얼리티 쇼에서 출연자들이 웃음 이전에 현실성을 보여줄 수 있게 됐고, 최근의 ‘권투 특집’에서는 그들이 역할을 분담해 실제 권투경기를 치러내는 단계에 오른다. 유재석이 의 기둥이고, 박명수가 의 성장이라면, 정형돈은 의 변화를 뚜렷하게 보여주는 성장점이다.

노홍철 : 돌+아이의 단순함과 사기꾼의 두뇌를 함께 가진 예능계의 아드레날린.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 ‘나 잡아봐라’, ‘의상한 형제’ 등에서 그는 상대를 속이는데 주력하는 그의 캐릭터는 프로그램이 계속 성장하며 모든 경계를 무의미하게 만든 만의 새로운 장르를 상징한다. 이 에피소드들은 현실 속에서 캐릭터의 실제 선택을 반영하는 리얼리티 쇼 같지만, 돈가방 다툼 같은 영화적 설정이 가미된 ‘범죄 오락물’이기도 하다. 특히 범죄영화 패러디에 가까운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와 달리, 최근작인 ‘의상한 형제’는 출연자들의 실제 관계만으로 2회 분량의 이야기를 만들어 이제 ‘ 어드벤처’가 작은 규모로도 큰 이야기를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수많은 작품들을 접하고, 비틀기 좋아했던 PD가 장르의 더미 속에서 이뤄낸 자신만의 성취.

정준하 : 온갖 사건들로 팬들에게 애증의 대상이 된 쩌리짱. 2007년 ‘서울구경’ 특집으로 각각의 캐릭터가 현실의 배경 속에서 경쟁하던 은 정준하 사건 이후 1년여 동안 그의 캐릭터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고, 꾸준히 넓어지던 의 세계도 정체됐다. 하지만 정준하는 이런 캐릭터 때문에 요즘 ‘의상한 형제’에서 6개의 쓰레기 더미를 받아도 되고, ‘식객’에서 명현지 쉐프와 갈등할 때는 비난을 받는 대신 에피소드의 현실성을 높여준다. 미우나 고우나 캐릭터의 개인사가 쇼에 영향을 주는 의 한 특징.

박지만 : 의 2009년을 기록한 사진작가. 그의 등장은 의 제작 시스템이 완성됐음을 보여준다. 은 1년을 기준으로 에피소드의 상당수가 사전 제작되고, 그 사이 1년 내내 진행되는 ‘무한도전 달력’,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같은 특유의 에피소드, 여름의 가요제, 연말의 ‘식객’ 같은 대형 리얼리티 쇼 등이 배치된다. 선례가 없던 쇼인 은 스스로 1년 단위의 안정된 제작 시스템을 만들면서 자기만의 스타일을 완성할 수 있게 됐다. 또한 ‘F1특집’에서 라이벌이 된 유재석과 노홍철이 마주보는 컷으로 스포츠 만화 같은 대립구도를 보여주는 영상과 편집은 이 이제 김태호 개인을 넘어 제작진 전체의 것으로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현미/츠바사 : ‘권투 특집’에 출연한 권투선수들. 과거 샤라포바, 앙리 등 스포츠 스타를 초대했던 은 ‘권투 특집’에서 비인기 종목의 선수들을 격려할 만큼 성장했고, 그 안에서 여러 장르를 마음대로 넘나드는 완숙의 경지를 보여준다. 한 에피소드 안에 최현미와 츠바사의 사연을 담는 휴먼다큐부터 MBC 의 ‘게릴라 콘서트’류의 이벤트, 그리고 실제 권투 중계가 모두 망라된다. 그리고 그렇게 장르의 경계를 없애는 사이 은 ‘권투특집’으로 현실에 영향을 줄만큼 자기 세계를 확대했다. TV에서 자란 슈퍼히어로들이 TV 밖으로 나와 세상을 바꾸는 것. 그것이 요즘의 이다.

유재석 : no.1 MC. 혹은 천재 레이서. 유재석은 김태호에 대해 “내가 하고 싶었던 걸 가장 잘 구현해줬다”고 말하기도 했다. 몸개그부터 리얼리티 쇼까지 모든 장르를 아우르는 의 특성은 MC, 리포터, 몸개그, 토크, 꽁트를 모두 경험한 유재석의 특징과도 연결된다. 특히 유재석은 최근 에서 자신의 역할을 변화시키고 있다. 유재석은 ‘봅슬레이 특집’에서 출연자들의 역할을 조정하는 진짜 리더였고, ‘궁 밀리어네어’에서는 고종에게 바치는 진상품을 묻는 질문에 다른 출연자들이 웃기는데 주력한 선물을 찾은 것과 달리 끝까지 진짜 ‘정답’을 찾았다. 단지 웃기거나 진행을 잘하는 것을 넘어 점점 더 도전 과제에 대한 결과물이 중요해지는 처럼, 유재석은 눈에 드러나는 진행 보다 프로그램의 진정성을 강조하는데 필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F1특집’에서 그의 운전 실력이 없었다면 에피소드의 긴장감은 떨어졌을 것이다. 유재석의 변화는 더 이상 ‘루저’로 머물 수 없는 출연자들의 과제에 대한 대답일 것이다. 유재석과 은 그렇게 오락 프로그램에서 본 적 없는 영역의 MC와 쇼로 변하고 있다.

무도팬 : 의 팬들을 일컫는 말. 그들은 리뷰북 제작, 프로그램 참여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은 물론, 김태호가 “시청률 20%를 넘기면 머리가 아프다”고 말할 만큼 이 10% 중후반대에서 안정적인 시청률을 기록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은 캐릭터의 성장사를 기반으로 시청자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팬들은 그들에게 아낌없는 성원을 보낸다. 그들이 없다면 이 리얼리티 쇼 사이에 ‘죄와 길’같은 가벼운 꽁트나 ‘28년 후’처럼 실험적인 에피소드를 만들기 어려웠을 것이다. 지금의 은 김태호가 중심이 되고, 팬들이 단단한 외벽을 치는 거대한 세계다. 그리고 은 그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계속 바깥 세상을 건드리면서 서서히 ‘무도 월드’를 넓혀 간다. 김태호가 “우리는 너희와 함께 간다”고 말하는 이유.

TEO : 김태호가 에서 쓰는 별명. 태호와 ‘CEO’를 결합한 듯한 이 이름은 김태호가 지금 보여주고 있는 예능 PD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에 좀처럼 얼굴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자막과 기획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획득했다. 그리고 ‘권투 특집’이 승자가 중요한 한일전이 아닌 권투의 숙명을 보여주는 눈물의 예능이 된 것처럼, 김태호는 자신의 가치관을 오락 프로그램에 실현하는 ‘작가주의 예능’을 탄생시켰다. 1990년대부터 시작된 대중문화의 세례를 받고 자란 한 명의 PD가 기존의 모든 것들을 인용하는 오락 프로그램을 만들고, 자신을 시작으로 쇼에 관계된 모든 사람들을 성장시키고 있다. 한 사람의 뇌구조가 하나의 세상이 되고, 다시 세상을 바꾼다. 김태호와 은 그렇게 도전한다. 그리고 성장한다.

Who is next
에 출연하는 정준하와 MBC 에서 함께한 나문희가 주연한 의 유해진과 영화 를 찍은 강동원

글. 강명석 two@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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