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결혼적령기라 불리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사이의 싱글 여성들, 설 연휴는 무사히 나셨는지? 사돈의 팔촌까지 물어오는 ‘결혼 언제 하냐’ 공격은 여전히 결혼하고 싶지 않은 여자, 아직도 결혼하고 싶은 여자 모두를 날카롭게 찌른다. 저녁에 혼자 먹고 남은 아구찜을 또 아침으로 먹을 때 결혼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MBC (이하 )의 올드미스들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일에서 성공한 34살 여자들은 경제적으로 안정됐고, 자신감도 넘치지만 여전히 결혼에 집착하고 독거노인이 되는 악몽을 꾼다. MBC 가 판타지에 가까운 연애의 달달함을 적극 활용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는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노처녀의 일상을 동력으로 삼는다. 그 일상을 묘사하는 방식이 진부하다해도 가 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는 묘책은 신영(박진희)과 민재(김범)의 비현실적인 연애가 아니라 나이를 속이다 들켜 도망가는 다정(엄지원)이나 훈증기 하나에 남자도 필요 없다 외치는 신영에게 있을 것이다. 최지은 기자와 김선영 TV평론가가 보고 있으면 웃다가 눈물 나는 아직도 결혼하고 싶은 여자들을 말한다. /편집자주

“난 결혼도 못했고 회사에서도 그저 그래. 입도 돌아갔고 옛 남친은 오늘 결혼해.” MBC 이신영(박진희)의 상황을 한 마디로 하면 ‘총체적 난국’이다. 남 보기엔 번듯한 직장에 다니는 방송 기자, 외모도 어디 가서 빠지지 않지만 서른넷 싱글 여성에게 세상은 관대하지 않다. 애인의 양다리 상대인 이십대 아가씨는 “그 나이까지 결혼도 못해보고 애인도 없이 살면 어때요?”라며 조롱하고 얄미운 직장 선배는 툭 하면 “너 시집 언제 가냐?”며 속을 뒤집는다. 하다못해 아구찜 같이 먹고 꽃등심 함께 나눌 상대도 없어 외로운 여자들에게는 여전히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2004년 방송된 MBC 에 이어 가 돌아온 이유다.

아직도 결혼하고 싶은 여자들은 더 괴롭다
가 그랬듯 는 일과 사랑을 함께 얻고 싶어 하는 여자 신영, 결혼해서 정착하기를 꿈꾸는 여자 다정(엄지원), 자립을 통한 안정에서 행복을 느끼는 여자 부기(왕빛나)로 대표되는 주인공들의 캐릭터를 통해 삼십대 여성들의 다양한 욕망을 읽어낸다. 90년대 초 이라는 제목의 드라마가 등장했을 만큼 과거 여성들에게 ‘일’과 ‘사랑’은 혼자서 잡기 버거운 두 마리 토끼였지만 2010년의 그들은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일에서만 잘나가고 결혼을 못할까” 라며 둘 다를 원한다. 여기에 “키 180 이상에, 명문대, 억대 연봉에 시누이 없는 차남, 인물 좋고, 사투리 안 쓰고, 머리숱 많고, 40평대 아파트를 가진 남자”에 대한 욕망이 더해지면 문제는 한층 더 복잡해진다.

그래서 “대체 괜찮은 남자들은 다 어디 있는 거야?” “태초에 태어나지도 않았습니다!” 같은 속 시원한 일갈을 들려주었던 에 비해 는 커리어와 로맨스, ‘스펙’과 욕망을 좀처럼 포기하지 못하면서도 “우리 또래 잘난 남자들은 우리보다 훨씬 어린애들 찾는 거 알지?” 라는 현실 인식에 부딪히는 주인공들의 딜레마에 좀 더 초점을 맞춘다. 내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생각하라고 후배들을 독려하는 전문직 여성이 자신을 찬 옛 애인의 집 앞에 찾아가 물벼락을 맞는 아이러니와 모든 인간관계를 소개팅으로 환산하는 캐릭터의 디테일, 수많은 연애굴욕담이 만들어내는 공감대와 강력한 코미디는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하다.

눈물 날 정도로 매력적인 여자들을 더 보고 싶다
그러나 비교적 안정된 전개와 빼어난 코미디에도 불구하고 는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로 세련된 파격을 보여주었던 만큼의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 6년 사이 케이블 채널을 통해 가 무한 재방송되며 ‘결혼하고 싶은 여자’ 들의 눈높이가 달라지고 ‘건어물녀’와 ‘철벽녀’ 같은 새로운 타입의 연애박약 여성들이 등장한 지금 에는 ‘올드미스 잔혹사’ 이상의 무엇이 필요하지만 완벽한 연하남 판타지를 구현하느라 이 작품에서 가장 겉도는 인물이 되어 버린 민재(김범)와 신영의 로맨스로는 역부족이다. 상당히 센 수위를 넘나드는 대화나 소재에 비해 평면적인 연출도 아쉬운 지점이다.

그런 면에서 오히려 로맨스보다 세 주인공이 모여 수다를 떨 때 가장 큰 시너지 효과가 생겨나고 직장에서나 연애에서나 버리기 아까운 소재가 차고 넘치는 이야기의 특성상 는 미니 시리즈보다 에피소드별 구성의 드라마에 더 적절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제 16회의 절반을 지나 신영과 민재가 기간제 연애를 시작하고 다정이 반석(최철호) 아버지의 결혼 반대에 부딪히며 새로운 갈등 국면을 맞이한 는 이 난관을 딛고 다시 한 번 성장을 보여줄 수 있을까.
글 최지은

‘아직’이라는 단어는 미완과 지속의 의미를 지닌 부사다. MBC 의 속편인 가 이 부사를 택한 것은 여러모로 적절해 보인다. 그녀들이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더 중요하게는 여성들을 둘러싼 사회적 조건이 아직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성들에게 있어 일과 결혼은 여전히 불화하고, 그래서 직업에서의 성공을 포기하지 않는 한 이신영은 서른둘이든 서른넷이든 ‘결혼 못하는 여자’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드라마의 제목은 사실 반어법처럼 보이기도 한다.

줌마렐라, 골드미스와 만나다
2004년 작 는 국내 30대 싱글 여성 로맨스, 일명 ‘올드미스 다이어리’ 장르 계보에서 맨 처음 도착한 드라마였다. 를 벤치마킹한 흔적이 두드러지긴 했지만, 그 다음 해 발표된 MBC 과 함께 이 장르의 한국적 전형을 마련한 작품이었다. 두 드라마의 성공 뒤 이 계보 안의 작품들은 주제의식과 소재 면에서 꾸준히 성장해오다가 어느 순간 비슷비슷한 플롯들을 양산하며 정체되어 왔다. 그리고 6년 만에 의 속편으로 등장한 역시 초반의 전개는 기존의 전형적인 올드미스 성장연애서사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성격도 가치관도 판이한 세 여성, 즉 신영(박진희)과 다정(엄지원), 그리고 부기(왕빛나)가 일과 사랑에 대해 고민하며 나누는 대화들은 그리 새롭지 않았고, 에피소드 구성이나 캐릭터 역시 신선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가 새로운 가능성을 확보하기 시작하는 건 상미(박지영)의 중년 여성 자아 찾기 플롯이 가세하면서부터다. 우아한 전업주부이던 그녀가 남편의 외도 사실과 아들의 독립 선언을 잇달아 접한 뒤 뒤늦게 찾아온 연하남과의 사랑에 흔들리는 모습은 분명 아줌마 로맨스의 익숙한 플롯이다. 그런데 상미가 아들 민재(김범)와 연인 상우(이필모)를 사이에 두고 신영과, 남편을 두고서는 부기와 얽히게 되면서 이 익숙한 줌마렐라 로맨스는 기존의 올드미스 연애담과 자연스럽게 결합한다. 상미는 올드미스들이 꿈꾸는 결혼의 어두운 이면을 보여주는 인물이자 결혼을 선택한 여성들의 멀지 않은 미래다. 즉 결혼이라는 구분선을 기점으로 데칼코마니처럼 겹쳐지는 이 드라마의 두 중심 서사는 여성들이 공통적으로 처해있는 어두운 사회적, 실존적 조건을 환기키시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를 통해 이 작품은 기존 30대 싱글 여성 로맨스 장르의 외연을 좀 더 넓히고 여성적 문제의식을 확장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아직은 결혼하고 싶지 않은 여자
8회에서 신영은 여성 성장서사의 클래식인 가운데 “외로울수록, 홀로 남겨질수록, 의지할 이가 없을수록 난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길 것이다”라는 구절을 인용한 뒤 농담처럼 다시 덧붙인다. “19세기 고아소녀 제인은 몰랐겠지. 21세기에도 이 말에 공감하는 여자가 있을 줄은.” 하지만 이것은 사실 농담이 아니다. 19세기 영국이나 21세기의 한국이나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있어서 결혼이 결정하는 요소는 여전히 크고, 여성의 자립적 성장과도 대립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영이 고교에서 자랑스러운 동문인 상을 수상하며 후배들에게 “가슴 속의 꿈을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충고한 말을 듣고 어떤 알파걸들은 또 성공을 위해 노력할 것이고 그들 중 누군가는 선배처럼 당당하지만 외로운 올드미스가 되어갈 것이다. 그들 중 또 누군가는 꿈꾸던 결혼에 성공한 뒤 위기의 아줌마가 되어 다시 새로운 자아 찾기에 나설지도 모른다. 여성들의 어두운 현실은 여전히 지속되고 반복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영의 진짜 속마음은 결혼하지 않은 채 아직은 결혼하고 싶은 여자로만 남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글 김선영

글. 김선영(TV평론가)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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