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오 올리오를 만드는 법은 쉽다. 특별한 재료도, 대단한 요리법도 필요치 않다. 마늘과 고추, 올리브와 파스타면의 식재료만으로도 충분히 맛있는 알리오 올리오가 탄생한다. 이 기본에 충실한 파스타를 맛있게 만드는 법은 팬을 충분히 달구고 질 좋은 재료를 쓰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좋은 드라마를 만드는 비법과도 통한다. 화려한 기교나 자극적인 양념보다는 충실한 이야기와 매력적인 캐릭터. 특별할 것 없어 보이지만 이 중요한 요소들이 잘 어울려졌을 때 “살고 싶게 만들 만큼” 맛있는 알리오 올리오 같은 드라마가 탄생한다. MBC 는 하이브리드 사극이 대세인 요즘 오히려 소박하고 단순해 눈에 띈다. 사랑과 일, 두 가지 고전적인 화두를 놓고 고민하며 커나가는 여주인공과 그녀를 둘러싼 남자들 그리고 주방이라는 일터. 극적인 사건도, 독한 설정도 없지만 시청자들을 TV 앞으로 불러들이는 의 레시피를 위근우 기자와 김선영 TV 평론가가 살펴보았다. /편집자주

수많은 전문직 드라마처럼 이탈리아 요리사가 등장하는 MBC 역시 궁극적으로는 주방에서 연애하는 이야기다. 까칠한 셰프 현욱(이선균)은 “내 주방에 여자는 없다”는 신조를 내세우면서도 위기의 순간마다 유경(공효진)의 멘토가 되어 기어코 그녀를 자신에게 반하게 만들고, 유경은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길 주저하지 않는다. 어쩌면 빤할 수 있는 그들의 이야기가 흥미로울 수 있는 건 그들이 밀고 당기기를 하는 주방이라는 공간이 단순히 3차원적 의미의 공간이 아닌 공적인 관계망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확하게 말해 는 주방에서 연애하는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다.

막내 요리사와 셰프가 연애하는 풍경
<파스타> vs <파스타>│주방에서 하려는 게 요리야, 사랑이야?
vs <파스타>│주방에서 하려는 게 요리야, 사랑이야?" />신임 셰프 현욱이 라스페라로 부임하면서 했던 첫 작업은 부주방장 석호(이형철)부터 유경까지 요리사들의 서열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물론 3년 동안 아무 불평 없이 주방 보조로 일해야 프라이팬을 잡을 수 있는 이 철저한 계급 사회는 인턴과 레지던트 간 서열이 확실한 MBC 이후 메디컬 드라마 속 병원에서 이미 볼 수 있던 것이다. 하지만 병원에서 연애하는 가장 세련된 이야기였던 SBS 에서도 연애의 가장 큰 장애물은 서로의 성격 차이와 주변의 여건이었지, 자신들이 맺은 공적인 관계 때문은 아니었다. 하지만 서열의 맨 위에서 주방의 전권을 휘두르는 현욱과 주방 보조를 제외한 요리사 막내 유경의 연애는 극도로 민감한 일이다. 현욱이 이탈리아 대사를 위한 봉골레 파스타를 유경에게 맡긴 건 메뉴를 미리 예상한 그녀의 혜안과 모시조개를 준비한 성실함 때문이었지만 해외파든 국내파든 그녀보다 높은 서열의 요리사들이 둘 사이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못마땅해 하는 게 라스페라의 풍경이다. 이처럼 누가 어떤 메뉴의 프라이팬을 잡느냐에 민감해지는 주방이란 공간 안에서 그 모든 것을 책임지는 셰프가 냉장실의 식재료 다수를 못 쓰게 만든 요리사에게 연인의 따뜻한 시선을 보낼 수는 없는 일이다.

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밀고 당기기가 오일 잔뜩 넣어 실패한 알리오 올리오처럼 느끼하지 않은 건 바로 이 지점이다. 동해에서 새벽 배를 기다리는 낭만적인 상황에서도 그들은, 더 정확히 말해 현욱은 공적인 관계를 벗어나지 않는다. 연인끼리의 희롱처럼 보이는 젓가락으로 목을 조르거나 꿀밤을 때리는 상황 역시 셰프 현욱이 요리사 유경에게 벌을 주는 상황에서만 벌어진다. 부임 둘째 날 유경을 해고하고 사적으로 마주친 횡단보도에서 “하자, 연애”라고 말한 건 현욱이 ‘또라이’라서가 아니라 상하가 뚜렷한 공적인 관계에선 수평적인 연애를 생각할 수 없는 깐깐한 원칙주의자이기 때문이다. 유경에 대한 현욱의 까칠함이 필연적이기 때문에 그의 태도에 따른 둘 사이의 기류 변화는 작위적이지 않다. 하지만 이것은 동시에 앞으로의 가 우려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직장 연애사의 새로운 공식을 제시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하지만 이 드라마는 주방에서 연애하는 이야기다. 이것은 어느 정도 이율배반적인 상황이다. 때문에 이 명제가 현실적으로 성립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라스페라를 떠나거나 현욱이 자신의 원칙을 어겨야 한다. 그리고 주방에서 현욱이 유경의 눈에 키스하며 드라마는 후자의 길을 선택하는 듯하다. 물론 10회에 이르러야 “나도 너 좋다”고 말하는 상황이 급작스러운 건 아니다. 문제는 그 이후다. 합리적이고 까칠한 게 아니라 합리적이어서 까칠했던 현욱의 매력과 여성스러움을 어필하는 대신 더 좋은 요리사가 되어 현욱에게 인정받으려 하는 유경의 씩씩함, 그리고 서로 보이지 않는 선을 넘을 수 없어서 더 아기자기했던 순간들이 과연 앞으로의 에서도 드러날 수 있을까? 이 숙제를 효과적으로 풀어낸다면 이 드라마는 직장에서 연애하는 이야기의 새로운 공식을 제시한 작품으로 기억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글 위근우

“연애도 사랑도 인생도 요리처럼 레시피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소설 가운데의 이 한 대목은 딱 MBC 의 주인공 유경(공효진)이 중얼거렸을 법한 문장이다. 는 요약하자면 연애도 요리도 초보인 그녀가 자신만의 인생 레시피를 만들어가는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일과 사랑은 분리되어야 한다는 현욱(이선균)이나 “여자인 걸 포기해야 요리사가 되는 줄 알았던” 세영(이하늬)과 달리 유경에게 사랑은 요리와 똑같은 비율로 중요하다. 그녀의 꿈은 곧 직업과 사랑을 균형 있게 조율해야 하는 성장로맨스로서 의 지향점이기도 하다.

그 남자의 주방, 그 여자의 식당
현욱은 셰프로 부임하자마자 거침없는 주방 개혁으로 라스페라에 일대 파란을 일으킨다. 그가 중요시하는 건 “사장의 간섭, 입김은 주방에서만큼은 사라져야 한다”는 주방의 독립권이며, 최고의 실력은 그를 주방의 절대군주로 군림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하지만 실력이라는 완벽한 위계질서로 이루어진 그의 주방은 매우 불안해 보인다. 그는 “내 주방에 여자는 없다” 선언했으나 유경이란 예외가 생겼고, “주방에 사랑 따윈 필요 없다” 단언했지만 그녀에게 자꾸만 흔들리며, “내 주방엔 두 명의 셰프란 없습니다”를 외쳤는데도 세영이 공동 셰프가 된다. 현욱이 반복해서 “내 주방”을 강조하는 동안 오히려 그의 세계는 자꾸만 무너지고 흔들린다. “주방이 왜 셰프 겁니까? 주방은 손님 거예요”라는 유경의 반박이나 “주방은 팀워크의 예술”이지 “무협지 주인공처럼 혼자서 칼을 잘 쓴다고 해서 훌륭한 요리가 완성되는 건 아니”라는 부주방장 석호(이형철)의 주장은 현욱의 주방이 결코 완벽한 세계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는 “셰프가 꿈꾸는 주방은 대체 뭐냐”는 유경의 질문에 아직 대답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 자신의 말대로 현욱의 주방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이러한 현욱의 세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유경이다. 주방 중심주의자이자 정통과 원칙을 강조하는 현욱과 달리 유경의 세계는 경계 없이 유연하다. 그녀는 손님이 원한다면 파스타를 철가방에 넣어 배달할 수도 있고, 피클 문제로 홀과 주방이 대립할 때도 비록 실패로 돌아가긴 했지만 과일 칵테일처럼 자신 나름의 해법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전쟁 같은 주방과 평화로운 홀이 대조되는 라스페라의 세계에서 유경은 유독 두 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이러한 성격은 그녀가 꿈꾸는 식당에서도 잘 나타난다. 자신만의 레시피를 고집하지 않고 손님을 위해 요리부터 서빙까지 다 하는 식당을 만들겠다는 그녀의 이상에 대해 현욱은 “딱 동네 분식집”이라며 핀잔을 주지만, 정작 흠잡을 데 없는 세영의 레시피보다 짜게 먹고 싶다는 손님을 위해 짜게 만들어줄 수 있는 식당을 찾겠다며 유경의 영향을 드러낸다. 그가 여자 요리사들을 몽땅 해고한 다음 날 유경을 자신의 락커에서 발견한 순간부터 그녀는 현욱의 견고하고 폐쇄적인 세계 속으로 차츰 들어오며 그의 주방을 서서히 변화시킨다.

당신의 사랑은 설익은 요리보다 낫다
그래서 라스페라의 주방을 지배하는 이는 현욱이지만, 실질적으로 를 이끌어가는 것은 유경의 드라마다. 현욱이 공적인 공간인 주방에서 연애를 배제하려 해도 결국 유경에게 이끌리는 모습은 마치 그동안 전문직 드라마의 미명 아래 사랑을 장식 취급하면서도 실은 멜로에 끌려갔던 많은 드라마들의 한계와 닮아 있다. 그러나 자신의 감정을 돌려 말할 줄 모르는 유경의 꾸밈없는 사랑처럼, 굳이 스스로를 전문직 드라마로 포장하지 않는 는 자신이 결국 로맨스 드라마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의 이러한 자의식은 세영에게 던진 산(알렉스)의 질문, 즉 “주방에서 하려는 게 요리야, 사랑이야?”라는 대사에서도 잘 드러난다. 유경도, 도 그 물음에 대해 어떤 대답을 내놓을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지금껏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그 뻔한 대답을 에둘러 말하기 위해 자극적인 조미료를 첨가하지만 않는다면 는 ‘첫 맛과 뒷맛이 동일한’ 맛있는 로맨스로 기억될 수 있을 것 같다.
글 김선영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글. 김선영(TV평론가)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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