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니는 대체 왜 봉산탈춤을 춘 걸까?
나니는 대체 왜 봉산탈춤을 춘 걸까?
혹시 주말에 박지성이 골 넣었어? 포털마다 인기 검색어에 ‘박지성 골’이라고 나오네?
확실히 박지성이 유명하긴 유명하구나. 너처럼 축구에 관심 없는 애들도 박지성 골 넣은 건 알고. 맞아, 이번 아스널과의 경기에서 09-10 시즌 최초로 골을 넣었어. 현재 프리미어리그 2, 3위를 다투는 아스널과 맨유의 대박 매치라 챙겨봤는데 박지성이 골 넣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니까.

그건 내가 알 바 아니고, 경기를 봤으면 봉산나니도 알겠네? 박지성이랑 연관 검색어로도 나오고 여기저기 게시판에도 나오던데 대체 봉산나니가 뭐야?
아, 나니 얘기구나. 나니는 박지성과 같은 맨유에서 뛰는 선수인데, 아까 말한 아스널과의 경기에서 박지성이 골을 넣자 마치 봉산탈춤을 추듯 덩실덩실 기뻐하는 세리머니를 보여줘서 국내 네티즌들에게 봉산나니라는 별명과 함께 급호감이 됐어.

에이, 진짜 봉산탈춤을 춘 건 아니고? 그럼 특별할 것도 없네.
네 말대로 나니의 퍼포먼스에 대해서 굳이 봉산탈춤이라는 이름을 붙여 특별히 예뻐할 이유는 없을지도 몰라. 대신 이번 박지성의 선전이 나니와 연결되어 있다는 걸 생각하면 우리나라 팬들이 나니를 응원할 이유는 충분할 거 같아.

박지성이 잘하는 거랑 나니라는 그 선수랑 무슨 상관인 건데.
우선 지난 시즌에 비해 굉장히 늦게 첫 골이 나온 걸 떠나서 이번 시즌 박지성은 선발 출장도 부족하고 플레이에 있어서도 조금 기복 있는 모습을 보여줬어. 물론 어느 선수나 그런 시기는 오지만 항상 꾸준한 모습을 보여준 박지성이었기 때문에 좀 의외긴 했지. 그 때 가장 많이 거론된 이유가 호날두의 레알 마드리드 이적이야.
나니는 대체 왜 봉산탈춤을 춘 걸까?
나니는 대체 왜 봉산탈춤을 춘 걸까?
아, 그 잘생기고 돈 잘 버는 호날두?
그렇지. 지난번에 말한 것처럼 호날두는 엄청난 이적료와 함께 맨유에서 레알로 넘어갔어. 그런데 지난 시즌 박지성은 호날두라고 하는 세계 최강의 공격수가 마음껏 활개 칠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했거든. ‘당신은 박지성을 아는가’ 편에 대해 얘기할 때 설명했던 거 기억나?

뭐야, 그럼 박지성은 호날두를 도와주는 역할이라 중요했다는 거야?
그렇다기보다는 박지성이 있었기에 호날두의 공격력을 극대화하는 전략이 가능했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하겠지. 호날두가 있던 지난 시즌의 맨유는 상대방의 공격을 막은 후 빠른 역습으로 골을 넣는 ‘선 수비 후 역습’의 플레이를 자주 구사했어. 중앙에서 볼을 가지고 만지작거리기보다는 수비 이후 빠른 패스로 공격진에 볼을 배급하는 방식이었지. 덕분에 맨유는 상당히 빠른 템포의 공격 축구를 보여줬는데 이건 그 패스를 받아 엄청난 스피드로 상대 수비 진영까지 몰고 가서 골을 넣을 수 있는 호날두라는 존재와 혹시라도 그 공격이 무산됐을 때 상대의 빠른 역습을 차단할 수 있는 박지성, 루니 같은 선수가 있기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어. 특히 이런 역습에서는 멍하니 자기 포지션을 지키고 있는 것보단 비어 있는 공간을 찾아 들어가거나 패스를 하는 능력이 중요한데 박지성은 그런 능력이 뛰어났지. 이런 전략을 통해 맨유는 지난 시즌에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거머쥘 수 있었고.

그런데 호날두가 나가면서 그게 어려워졌단 말이지?
그렇지. 호날두의 스피드와 득점력을 최대한 살렸던 맨유는 호날두가 나가자 새로운 전술을 들고 나왔어. 소위 점유율 축구라는 건데 포지션을 가리지 않고 빠른 움직임으로 상대방 수비진을 흔드는 과거 전술과 달리 말 그대로 자기 포지션을 유지하며 멤버들끼리 계속 공을 돌리면서 볼을 오래 점유하는 전술이야. 그러다가 상대방에 허점이 보이면 날카로운 패스를 루니나 오웬, 베르바토프 같은 공격수들에게 공급하고 그들이 골을 넣는 방식인 거지. 이런 전술 안에서 박지성의 부지런한 활동력과 공간 창출 능력은 빛을 발하지 못했어. 그보다는 개인 드리블 능력이 뛰어난 발렌시아나 중앙 공격수에게 탁월한 크로스 패스를 올려주는 라이언 긱스 같은 선수들이 더 중용됐던 거고.

그래서 골을 많이 못 넣은 거야?
기본적으로 출장 기회 자체가 줄어드니까 골을 넣을 기회도 줄어들겠지. 게다가 아까 말한 것처럼 예전에는 호날두가 공격의 핵 역할을 하기 때문에 호날두에게 상대팀 수비가 몰렸는데 그 때 박지성이 빈 공간을 빠르게 확보하면서 호날두의 패스를 받아 직접 득점을 노릴 수 있었어. 하지만 올 시즌 맨유에선 그런 모습을 보기 어려웠지. 그런데 나니가 잠자고 있던 가능성을 깨우면서 사태가 반전된 거야.
나니는 대체 왜 봉산탈춤을 춘 걸까?
나니는 대체 왜 봉산탈춤을 춘 걸까?
잠자고 있던 가능성이라니? 가능성은 뭐고, 그게 잠잔다는 건 뭐야.
나니는 호날두와 같은 포지션의 측면 공격수로서 좋은 발재간과 빠른 스피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호날두를 대체할만한 선수로 종종 이야기됐어. 하지만 그런 가능성에 비해 나니가 보여준 모습은 많이 실망스러웠어. 드리블 실력을 믿고 공을 너무 오래 붙잡고 있다가 상대편 수비에게 공을 뺏기기도 하고, 호날두처럼 측면에서 가운데로 빠르게 공을 몰고 가는 자신감 있는 모습도 보여주지 못했지. 그러다보니 우리나라에선 호날두의 대체자라기보다는 같은 측면 공격수이자 미드필더인 박지성의 주전 경쟁자 정도로 인식된 게 사실이야. 그래서 ‘망’나니라는 별명으로 불렸고.

그런데 잠자고 있던 가능성이 터졌다?
응. 최근 들어 맨유는 과거에 가까운 포스를 보여주고 있는데, 가장 큰 이유는 호날두의 활약 때문에 가려졌던 루니가 무시무시한 공격력과 공간 활용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거고, 다른 하나는 나니가 마치 호날두를 연상시키는 발전된 기량을 보인다는 거야. 공격 스피드도 빠르고 비어 있는 멤버에게 패스도 잘하고. 이번 아스널과의 경기는 그렇게 가능성이 폭발한 나니와 박지성의 조합을 통한 역습 전술이 성공적이라는 걸 보여줬어. 실제로 첫 번째 골은 골키퍼 자책으로 기록됐지만 나니가 박지성을 위해 시도한 패스에 가까웠고, 박지성의 골은 나니의 패스를 받은 건 아니지만 어쨌든 빠른 역습 상황이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지. 이런 맥락을 알아야 망나니였던 나니가 봉산나니가 된 걸 이해할 수 있을 거야.

그러고 보면 사람 이미지 바뀌는 건 순간이야, 그치?
그렇지. 하지만 또 한결 같아서 좋은 사람도 있잖아.

누구?
아, 있어. 만날 귀찮게 물어봐도 하나하나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사람. 모르겠지? 너도 참 초지일관이다.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